도서 소개
모두가 잠든 밤, 김성은 선생님은 안내견 강산이를 떠올리며 조용히 편지를 썼다. 취업과 독립을 앞두고 안내견학교에서 처음 만난 강산이는 늠름한 자태와 남다른 덩치, 멋진 털을 가진 친구였다. 큰 덩치로 좋다고 폴짝폴짝 뛰던 강산이가 처음엔 무서웠지만 어느새 나란히 걷고 숨 쉬며, 둘은 서로를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게 된다. 학교 가자면 학교로, 마트 가자면 마트로 데려다주던 듬직한 강산이와는 말 없이도 대화가 가능했다. 《사랑하게 된 거야, 너를》은 김성은 선생님과 강산이, 두 존재가 함께 웃고 울며 마음을 나누던, 무수한 추억의 시간을 담은 편지글이다. 시각장애인으로서 겪은 주변의 시선을 담담하게 고백하기도 하며, 무엇보다 선생님의 코와 귀에 새겨진 고유한 감각을 눈 삼아 바라본 세상과 타 객체 이야기를 따뜻하게 담았다. 선생님의 가족과 친구들이 보여준 눈부신 우정과 사랑, 교사로서 한 걸음 더 나아가려는 선생님의 단정한 태도가 그러하다. 결코 적지 않은 상처와 아픔을 겪었을 선생님이 주변의 존재와 삶을 피부로 느끼며 적어 내려간 일상엔 그래서 눈물 맺힌 호쾌함이 있다. 눈물이 마르지 않았을 종이 위로 흐르는 웃음과 담담한 고백, 그리고 두 존재 사이의 ‘가장 깊은 교감과 사랑의 형태’가 이 책에 그려져 있다. 표지 그림 속 선생님은 강산이를 꼭 안은 채 들어 올리고, 둘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강산이의 발이 땅에 닿지 않는 모습은 그가 무지개다리를 건넜음을, 그리고 다음 생엔 자신이 강산이의 길잡이가 되고 싶다는 저자의 바람을 상징적으로 그려냈다. 본문에는 강산이와 선생님이 산책하는 일상의 모습 등을 총 네 장의 그림에 담았다.
출판사 리뷰
제목과 저자 이름에는 점자가 새겨 있습니다
2025 경기도우수출판물 선정
『몽 카페』『상처 없는 계절』 신유진 작가 추천
나란히 걷고 숨 쉬며,
서로를 느꼈던 다정한 시간의 기록
나의 첫 안내견 강산이에게 띄우는 사계절 편지 죽음과 부재는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하지만 그 상대가 말없이 서로의 눈을 맞추고, 껴안고, 숨결로 소통하던 동물이라면 이 교감은 더욱 특별하다. 애도 방법은 모두 달라도 사라진 뒤의 그리움 앞에선 모두가 같은 마음이 된다. 대화보다 더 진한 감응의 순간은 결코 지워지지 않기에, 김성은 선생님의 말처럼 그들의 냄새도 털도 더는 훼방의 대상이 아닌 감각의 일부가 된다. “강산이 매력에 중독되고 보니까 너의 입속 아니라 어디라도 상관이 없어지더라니까. 그때부터였어. 강아지 냄새도 털도 누나 감각 영역 밖으로 밀려난 것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우리 강산이 배변 시간 엄수가 인생 최대 과제가 된 것이. 똥도 눈곱도 예쁘기만 하더라.”
지방 소도시로의 취업과 독립에 걱정과 기쁨이 공존하던 때, 강산이의 존재는 더욱 특별했다. 버스정류장으로 선생님을 안내하는 강산이를 보고 선생님의 어머니는 “나보다 낫다”라고 감탄했고, 기차 좌석 바닥에 조용히 엎드려 있다가 내릴 때가 되면 절도 있게 선생님을 안내하는 모습에 승무원들은 감탄했다. 소리로 상황과 분위기를 파악하는 선생님에게 강산이와 둘만 걷던 고요한 산책은 경직됐던 몸과 정신의 피로를 풀고 자유를 만끽하던 귀한 시간이었다. 홀로 걷기, 저자가 늘 갈망하던 것이자 강산이가 있어 허락된 유일무이한 자유였다.
우연히 학생들에게 안내견 이야기를 꺼낸 것을 계기로 김성은 선생님은 강산이에게 편지를 써 이 책을 엮었다. 사계절을 지나며 점처럼 떠오르던 강산이와의 추억을 적어 내려갔고, 하루를 마감한 소회를 강산이에게 털어놓았다. 책에는 강산이와의 추억뿐만 아니라 저자의 가족과 친구들이 보여준 사랑과 우정, 몸으로 겪은 현실과 고민, 읽기와 쓰기를 향한 저자의 애정 어린 고백이 담겨 있다.
엄마의 장애를 그저 하나의 사실로서 담백하게 받아들이는 딸 유주의 활력과 엉뚱함이 유쾌한 서사를 자아내는가 하면, 부러 곱게 단장한 모습으로 찾아오는 친구 조그라미, “화장실을 알려주라던” 시아버님, 새 집 벽지를 함께 만져본 형님의 세심함과 다정함은 읽는 이로 하여금 세상을 향한 알 수 없는 억울함도, 미지의 결핍도 잠시나마 내려놓게 만든다. 김성은 선생님의 글이 가진 힘이다.
마냥 즐겁고 다정한 이야기만 나누진 않는다. 강산이 털 날린다는 한마디에 기가 죽고, 강산이에게 허락 없이 과자를 준 이름 모를 사람에게 말 한마디 못 해 화가 난 적도 있다. 불법 주차한 트럭에 부딪혀 이가 깨져 고생하고, 맨홀에 빠져 창피한 것도 모자라 뼈가 부러지는 동료들의 사건사고 앞에 선생님은 전생에 죄를 지었나 하는 허탈한 심정을 갖기도 한다. “장애가 죄도 아닌데”라고 말하는 동료에게 “그거 죄 맞아” 하며 강산이 생각을 물을 땐 어떤 숱한 폭풍우가 선생님의 가슴을 쓸고 갔을지 감히 짐작만 할 뿐이다. 그런데도 선생님의 맑고 다정한 기운은 줄어들지 않으니, 한탄할 시간보다는 남편에게 해주는 한 시간 마사지가 훨씬 소중하고, 친구들과 먹는 베이글과 커피의 달콤함을 즐기는 게 우선이므로. 저자의 밝고 환한 미덕은 이렇듯 책 곳곳에 스며 있다.
이러한 깨끗하고 단정한 기세의 중심에는 바로 선생님이 평생을 사랑한 읽기와 쓰기가 자리하고 있다. 분하고 화나던 마음도 책 앞에서 순하게 누그러졌고, 읽고 쓸 때만큼은 나로서 존재할 수 있었다. 도리어 저자는 자신의 보이지 않는 눈을 위시해 혹여 타인을 오해하고 여과 없이 해석할까 봐 염려하며 더욱 읽고 썼다. 슬픔을 쌓아 올리는 대신 “타인을 감각하려 하고” “할 수 없음이 아닌 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더 넓은 세계로의 연결과 확장을 끊임없이 소망했다. 책에 쓰인 말처럼 “할 수 없는 것이 아닌, 할 수 있는 것 하나를 더 가져보려” 했다. “강산아, 누나의 글쓰기도 더 넓은 세계로 연결, 지속, 확장되면 좋겠다. 그리하여 이 쓰기의 쓸모를 관념 아닌 실제로 감각하고 싶어. 응원해 줄래?”
이 책은 단순한 애도가 아닌, 존재를 기억하는 방식에 대한 하나의 제안이다. 짧고 명료하고 담백한 글로 지어진 이 책엔 삼켜진 침묵이 많다. 글자 빈틈 사이로 깊게 고인 저자의 감정은 또 다른 이야기다. 이 보이지 않는 이야기마저 독자에게 가닿기를 바란다. 벼리고 벼려져 날카롭기보다 오히려 둥그러진 햇빛 같은 이야기. 그 이전의 서사가 글자 사이 사이에 펼쳐져 있다.
“강산아, 말, 아차 하는 순간 내 인격의 민낯을 드러내잖아. 타 객체를 연결하는 도구요, 사람 사이 가장 간편한 표현 양식. 방어하지 않고, 경계 짓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 이해할 수 있는 햇빛 같은 말이라면.”

학생들이 모처럼 싱싱한 목소리로 안내견에 대한 질문을 쏟아냈던 날, 일기 같은 편지를 쓰기 시작했어요. 낯선 환경에서 인정사정 없이 고독했지만, 그래서 더 충일했던 강산이와의 시간을 곱씹어 보았습니다. '자유로웠구나.' 차별 혹은 특별의 영역 그 어디쯤에서 외줄을 타듯 '보통 사람'을 추구했습니다. 나약하고 게으른 저를 번번이 살게하는 선한 이들 기운에 힘입어 여기까지 왔어요.
강산이가 누나 연수하는 사이 숙소에서 3일 치 도시락 사료를 다 뜯어 먹고는 누나를 보고 깜짝 놀라 토해버린 사건, 침대에 올라가면 안 되는 수칙을 어기고 몰래 누나 침대에서 자다가 아닌 척 제자리로 돌아가 앙큼하게 시치미를 떼던 모습, 누나 남자 친구가 아무리 인사를 건네봐도 고개를 획획 돌려 버리던 매몰찬 녀석, 하네스와 목줄을 훌훌 풀고 맘껏 뛰라고 판을 깔아줘도 누나 다리에 딱 붙어 꼼짝도 안 하던 새침데기. 그게 바로 너였는데, 인정?
우리 강산이, 못 말리는 그 도도함은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자만 뿜어낼 수 있는 깨끗한 아우라였다. 누나가 "교회 가자" 하면 교회로, "학교 가자" 하면 학교로, "마트 가자" 하면 틀림없이 마트 문 앞에 나를 데려다 놓았던 요술 같던 친구. 보고 싶다.
작가 소개
지은이 : 김성은
197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입학 무렵 녹내장을 진단받아 매년 수술했지만, 양안 모두 실명했다. 중학교부터는 시각장애 특수학교에서 공부했다. 대학에서 특수교육학을 전공하고 현재까지 지방 소도시에 위치한 특수학교에서 눈 아닌 몸으로 세상을 감각하는 학생들을 가르친다. 천리안 PC통신을 통해 알게 된 남자와 결혼했고, 아빠를 닮아 춤과 노래에 능한 딸을 하나 키우며, 호흡하듯 쓰고 듣고 읽는다.
목차
작가의 말
1장 봄의 초입에서
2장 강산아, 거기도 많이 더워?
3장 낙엽 냄새가 코에 스미녀
4장 첫눈 온다고 말해주고 싶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