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 옵저버 선정 올해의 책
소설가 이주혜 추천
“섀프턴의 기억술(memoir)은 기억이 애도가 되고
애도가 새로운 현재를 구성한다는
더없이 산뜻하고 조금은 서글픈 증거다”
—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를 어떻게 따라다니는지,
그리고 현재 속에 어떻게 살아 있는지 응시한
내밀하고 선연한 단상들강렬한 색채와 감각적인 문장으로 독보적인 세계를 구축해온 린 섀프턴의 에세이가 출간되었다. 섀프턴이 수영 선수였던 삶의 한 시절을 뚝 떼어내 쓴 『수영 그만두기』는 출간 직후 큰 주목을 받았다. “점묘화처럼 섬세하고 조용히 깊은 울림을 주는”, “씁쓸하면서도 아름다운 과거의 한 부분을 마치 병 속에 가둬놓은 향기처럼 완전하게 담아냈다”는 평처럼, 물을 머금은 듯 먹먹하면서도 농도 짙은 분위기의 글이다.
몸이 다 자라지도 않았던 시절, 섀프턴은 비교적 빠른 선수였지만 최고는 아니었다. 고독과 긴장 속에 매일 절박하게 물살을 갈랐지만 그의 수영 커리어는 뚜렷한 결과 없이 막을 내린다. 제대로 닫지 못한 그 시절의 장면들은 세월이 흐른 지금도 그의 앞에 섬광처럼 나타나고 사라진다.
수영이라는 한 영역에 대한 개인의 감정을 넘어 삶에 관한 통찰로 이어지는 섀프턴의 사유는 푸른 빛을 머금은 듯한 그림, 사진과 겹쳐지며 쉽사리 눈을 뗄 수 없는 고유한 분위기를 풍긴다. 추천의 글을 쓴 소설가 이주혜의 말처럼 “작가가 소환해낸 물의 기억이 […] 우리 저마다의 기억을 불러와 그 경계가 무의미해지는 순간”, 이 책은 읽는 이의 마음에도 오래 지워지지 않을 물자국을 남긴다.
“그만두는 건 쉬웠어”
한 시절의 열망과 상실이
몸에 남기는 깊은 자국섀프턴에게 수영은 “맑고 잔잔한 물속 깊은 곳에 놓인 조개껍데기”와 같았다. 저 앞에 선명히 보이지만, 잡으려고 손을 뻗으면 물결에 굴절되어 흐려지고 마는 것.
올림픽 선발을 위한 훈련팀에 들어간 섀프턴은 새벽마다 살을 에는 추위를 뚫고 물속으로 뛰어든다. 식단을 치밀하게 조절하고, 시간을 10분의 1초, 100분의 1초 단위로 나누어가며 지겹도록 훈련한다. 그럼에도 뜻대로 되지 않아 새어나오는 좌절감을 겨우 틀어막는 날이 생긴다.
과거와 현재가 겹쳐지듯 수시로 현재형으로 되돌아가는 섀프턴의 문장을 읽다 보면 물속의 고독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무섭게 따라잡는 옆 레인 팀원을 볼 때의 철렁함, 바깥 레인으로 한 칸씩 밀려날 때의 두려움, 미친 듯이 저어대던 팔다리가 나가떨어져 더는 속도가 나지 않을 때의 울컥함이 문장 하나하나에서 배어나온다. 어느 날 물속을 나아가다 문득 자신은 올림픽에 나갈 수 없으리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묵어 있던 감정들은 한꺼번에 빠져나가고 마음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빈자리가 남는다. 그 갑작스러운 공백은 읽는 이로 하여금 끝내 놓아버린 무언가를 가만히 떠올리게 한다.
“분명한 것은 모든 시간의 토막이 지금의 우리를 형성한다는 것”
묵묵한 자기 단련이 데려다준 삶의 다음 층위익숙한 수평의 자세를 떠나 수직으로 어색하게 땅에 선 섀프턴을 지탱한 것은 수영에서 배운 단련의 습관이었다. “특별한 단 하나가 발생하도록, 언제일지는 몰라도, 아주 오랜 뒤라 하더라도, 전혀 특별하지 않은 일련의 일들을 아주 잘, 반복하고 또 반복하여, 백만 번 넘게 하는 것.” 수영장을 100바퀴 돌듯 100장의 드로잉을 그리고 100번의 상담을 받는 동안, 끝없는 반복은 섀프턴을 물살처럼 조금씩 다른 층위로 밀어 보낸다.
수영에서 번져간 그의 작품들은 금방 물에서 건진 듯 퍼렇고 먹먹하다. 코를 찌르는 선명한 락스 냄새와 눅진한 물 내음, 젖은 수건과 양털 장갑의 작은 조직까지 되살아나는 듯한 글과 그림, 사진이 얽혀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지난 시절을 그대로 머금은 듯한 섀프턴의 서술적 성취를 소설가 이주혜는 이렇게 설명한다.
“평생 물에 이끌려 산 사람이 자신이 경험한 물에 대해 말할 때 느낄 수밖에 없는 완벽하게 해내고 싶은 열망과 성에 차지 않는 언어의 갈급함이 페이지마다 가득하다. 결국 작가는 공감각의 파도처럼 몰려왔을 기억을 포착하기 위해 이미지로 곧장 환원되는 표현적 문장을 쓰고 긴 묘사를 대신하는 이미지를 한데 엮어 전달한다. 덕분에 우리는 텍스트에서 선명한 푸른 물을 차갑게 감각하고 얼룩 같은 색채에서 수영장의 염소 냄새와 양털 장갑, 말라붙은 케첩 냄새를 맡는다.”
“수영은 내 몸을 떠난 젊음 그 자체이지만,
나는 빠르게 지금의 몸을 살아가고 있다”
삶이라는 두 번째 수영 앞에서섀프턴은 다양한 예술작품을 글로 가져와 삶을 살아내는 데 필요한 집중력과 인내를 빗댄다. 그중에서도 피터 벤츨리의 소설 『죠스』의 비유는 날카롭고도 은유적이다. 상어는 평온한 일상을 습격해 우리를 흔들고 유혹하는 감정을 상징한다. 당장이라도 모든 것을 그만두고 도망쳐버리고 싶은 순간, 사랑하지만 이제는 지겹기도 한 무언가를 놔버리고 싶은 유혹은 때때로 우리를 강렬하게 흔든다. 섀프턴은 그런 유혹 앞에서 수영을 사랑했던 방식을 떠올린다. 인내하고 반복하며, 끝까지 계속하는 법을.
섀프턴은 이제 스스로를 수영하는 사람보다는 그저 물에 몸을 담근 사람으로 바라본다. 수영은 점점 과거의 물웅덩이로 멀어져가지만, 고독 속에서 끝까지 인내하고 반복했던 기억은 아직도 섀프턴의 몸에 깊이 새겨져 있다. 이제 그는 물속 깊은 곳에 남겨두었던 조개껍데기 옆에 나란히 몸을 눕힌다.
“왜 수영을 그만두었을까, 왜 토론토를, 캐나다를 떠났을까 생각해본다. 두 개의 면, 두 개의 삶이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선연하게 느낀다. 운동선수와 보통의 성인이라는 분류 말고, 몸의 삶과 마음의 삶 말이다.”

물은 근본적인 것. 우리를 구성하지만 그 안에선 살 수 없고 그 없이도 살 수 없는. 내게 수영의 의미를 설명한다는 건 맑고 잔잔한 물속 깊은 곳에 놓인 조개껍데기를 바라보는 것과 같다. 저기, 선명하게 존재하지만 손을 뻗어 수면을 건드리는 순간, 잔물결에 굴절되고 마는. 조개껍데기는 다섯 개였다가 스물다섯 개가 되고, 나는 크고 작게 일렁이는 그것들 사이에서 몹시도 또렷하게 보였던 그 조개껍데기를 찾아 더듬거린다.
개인적으로 그리고 관념적으로도 나는 스스로를 운동선수, 그러니까 수영 선수였던 짧고도 강렬한 시절을 토대로 정의했다. 하루에 대여섯 시간씩 주 6일을 훈련하고 그 사이에는 최대한 많이 먹고 자려고 애썼던 나날들. 주말은 훈련이나 경기로 흘러갔다. 나는 비교적 빠른 선수였을 뿐, 최고는 아니었다. 전국 최고의 선수들과 함께 훈련하고, 먹고, 여행하고, 샤워했지만 나는 최고가 아니었다. 꽤 괜찮았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