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페미니스트는 남자랑 연애하면 안 되는 걸까?”
남자를 만나는 페미니스트의 사랑x욕망x섹슈얼리티 탐구
왜 나는 나의 연애를 숨겨야 할까?페미니스트로 정체성을 정한 뒤, 어쩐지 연애 이야기를 하기가 조심스러워졌다.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이, 사랑받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 왠지 숨겨야만 하는 일로 느껴졌다. 페미니즘 리부트가 시작된 후, 여자들은 한국 남자들을 보이콧하고, 남자들은 ‘페미’라는 단어를 조롱으로 쓰기 시작했다. 저자는 “너 페미야?”라는 조롱과 혐오의 말들을 듣지 않기 위해 때로는 숨기도 하고, 때로는 “그게 뭐”, 라며 더 당당해지려고도 했다. 못생긴 여자들이 페미한다는 말이 듣기 싫어서, 오히려 외모에 더 신경 쓰는 날들도 있었다. 무엇을 위해 서로 싸우는지도 모르면서, 혼란스러운 나날들이었다.
그러다가 “남미새”가 나오는 영상을 보게 되었다. ‘남자에 미친 여자’라는 은어를 희화화한 이 영상은, 그런 모습을 보이는 여성을 조롱하기 위해 제작된 콘텐츠였다. 그런데, 남자에 미친 여자, 솔직히 말해서 그 여자가 사실 “나”였다. 페미니스트는 남자를 좋아하면 안 되나? 왜 그 욕망을 숨겨야만 하나? 나의 사랑과 나의 욕망을 계속 숨긴다면, 나는 과연 언제까지 숨길 수 있을까?
사랑하고 욕망하고, 당연한 걸 당연하게 하고 싶다“페미”가 욕이 되는 시대, 페미냐 아니냐를 두고 사상 검증을 하는 시대다. 그렇게 젠더 갈등이 한참이던 중, 페미니스트는 영원히 이성애 연애를 할 수 없느냐는 글이 한 커뮤니티에 올라왔다. 다양한 댓글이 올라와 댓글창은 폭발할 것 같았는데 그중 인상 깊은 댓글이 하나 있었다. “커뮤에 휩쓸려 현실 인생을 눈치보며 살지 마.” 현재, 이 게시글은 삭제된 상태다.
이 책을 쓴 저자 역시 페미니스트가 건강하고 “빻지 않은” 이성애 연애를 할 수 있을까에 대해 오래 고민했다고 고백한다. 페미니스트 친구들이 모두 비연애와 비섹스의 세계로 나아갈 때, 그런 고민을 했다. 나는 지금 이성애 연애를 하고 있는데, 어쩐지 그걸 말하는 순간, 친구들을 배신하는 것 같았다고. 실제로 페미니스트 동료나 선배들이 결혼했다고 말하는 순간 “뭔가 깬다”라는 느낌과 분위기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왜, 페미니스트는 남자와 연애하면, 사랑하면 안 되는 걸까.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한국남자가 몇 프로 안 되어서, 수요와 공급이 맞지 않아서 사랑할 수 없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저자는 솔직하게 말한다. 페미니스트라서 욕을 먹기도 하고, 페미니스트라서 너가 싫다고 말하는 남자도 있지만, 여전히 자신은 남자와 사랑하고 남자를 욕망한다고 말이다. 페미니스트라서 숨겨야만 했던 그 욕망에 대해, 속시원하게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이 연재를 시작했다. 현실 인생을 “커뮤 때문에” 눈치 보며 살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그래서 그 욕망을, 자세히 들여다보기로 했다.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꼭꼭 누르고 감춰온 자신의 솔직한 욕망을 말이다. 그동안 남자를 만나며 연애를 숨겨온 시간부터, 비건이자 페미니스트로 한국에서 살며 만나는 다양한 갈등과 고민을 전부 글감으로 잡아 보았다. 페미니즘이 뭐길래, 연애와 사랑 사이에서, 왜 포장을 해야 하는 걸까. 그래서 저자는 2030 남자들도 만나 인터뷰를 해보았다.(2부) 남자들이 피부로 느끼는 페미니즘은 무엇인지, “남미새” 페미니스트를 어떻게 인식하는지, 그들의 진짜 이야기도 정리해 담아 보았다. 저자는 혼자서 페미니즘과 욕망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정치색과 이념이 전혀 다른 한국 남자들을 직접 만나 그들이 가진 두려움과 페미니즘에 대한 거부감까지도 과감없이 들어 보았다.
지금, 우리는, 왜 서로 오해하고 사랑하지 못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슬기롭게 욕망하고, 자연스럽게 페미니스트로 살기누군가는 말한다. 남자가 정말로 여자를 사랑했다면 가부장제는 진작에 없어졌을 거라고 말이다. 우리가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사랑한다면 여성 혐오의 말들이나 성착취물도 진작에 없어졌을 것이다. 페미니스트는 남자를 정말로 사랑하기 때문에, 남자가 여자를 “한 명의 인간”으로 존중할 수 있다고 진정으로 믿기 때문에 페미니스트다.(민서영 작가의 추천사 중) 남미새 페미니스트인 저자는 남자와의 당연한 연애와 욕망을 꿈꾸기에 이 책을 끝까지 썼다. 그리고 더 많은 남미새 페미니스트들이 자신의 욕망을 솔직히 이야기하고 공유하기를 바라기에 이 글을 썼다. 이제 숨기지 않아도, 억지 부리지 않아도 되지 않나. 연애하는 게 어때서, 한국 남자가 어때서, 서로 대화와 이해가 가능한 지점이 있을 거라고, 저자는 고백한다.
여기 실린 이야기들은 한 사람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남미새이자 페미니스트, 욕망하고 욕망당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사랑하길 바라는 자, 남자와 의심없이 사랑하고 싶은 자, 그런 사람들이 모두 공감할 이야기일 것이다.

당시 숏컷이었던 나는 굳이 내 앞에서 그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궁금했지만, 그 의도를 가늠하는 것보다 더 흥미로운 생각들이 솟아났다.
와, 나도 뒤에서 저런 말로 까이고 있지 않을까? 지금은 페미지만, 예전엔(?) 남자 엄청 좋아했다고….
그게 그렇게 모순적인 일인가? '남자 좋아하는 페미니스트'로 살면 안 되는 걸까?
<조각난 욕망 : 페미와 남미새 사이에서> 중
전 애인에게도, 친구들에게도 미안한 일이었는데 다행히 전 애인은 내 입장을 이해해 주었다. 파도처럼 기복이 심한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지지해 주는 호수 같은 사람이었다. 페미니스트 정체화와 탈코르셋 실천과 비건 지향, 모두 그의 곁에서 시작했다. '여성만이 여성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다'며 '레즈비어니즘'을 실천하는 친구들에게 나의 헤테로 연애 사실이 알려지면 얼마나 우습고 한심해 보일지 걱정했다(지금도 레즈비언 친구들을 보면 가끔 주눅이 든다). 그러면서도 퇴근 후 나를 데리러 온 남성 애인의 차를 타고 그의 집에 가서 그가 만들어준 채식 볶음밥과 해시브라운을 먹으면서 평안을 찾았다.
<욕망 숨기기: 슬기로운 페미 생활>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