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환경부가 ‘2022 우수환경도서’로 선정한 《두더지 잡기》의 리커버 에디션이 출간되었다. 전직 두더지 사냥꾼이자 정원사 마크 헤이머의 자전적 에세이 《두더지 잡기》는 2021년 12월 한국어판 발간 이후 국내 독자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이번 리커버 판에서는 새로운 표지 디자인을 비롯해 김소연 시인의 추천 서문과 19세기 빈티지 삽화들이 추가되었고 최신 어문 규범에 따른 교정 작업이 이루어졌다.영국에는 두더지 사냥꾼이라는 직업이 있다. 땅을 헤집어 정원과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두더지를 잡아 생계를 유지하는 두더지 사냥꾼은 영국에서 수백 년간 존재해 온 전통적 직업이다. 시인이자 정원사인 마크 헤이머는 이 책에서 두더지의 생태와 두더지 사냥꾼으로서의 삶, 그리고 더 이상 두더지를 잡지 않기로 결심하기까지의 자전적 이야기를 단단하고도 세심한 문체로 전한다.헤이머는 열여섯 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에게 쫓겨나다시피 집을 나와 하염없이 걸었다. 숲과 강가에서, 나무 밑에서 새와 벌레들과 함께 잠을 잤다. 그렇게 2년 가까이 홈리스로 살았던 경험은 이후 정원사가 되어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가는 데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지금도 정원 소유주들의 의뢰를 받아 잔디를 깎고 생울타리를 손질하며 살아가는 그는 들판을 걷거나 화단을 가꿀 때마다 자연의 모든 생명체처럼 ‘평범하게 존재한다’는 사실로부터 생의 장엄함을 발견하곤 한다.책은 크게 세 타래의 이야기가 서로 겹치고 잇대이며 진행된다. 첫째는 두더지 사냥꾼으로서 경험한 이야기, 둘째는 10대 시절 고독한 부랑자로 살았던 이야기, 셋째는 바로 현재, 노년에 이르러 마침내 두더지잡이를 그만두고서 고요하고 자성적인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헤이머가 60대에 들어서 쓴 첫 책 《두더지 잡기》는 2019 웨인라이트상 후보에 올랐으며, 독특한 소재와 작가의 이력, 울림 있는 문장들로 큰 화제를 모아 세계 16개국에 번역·출간되었다.젊은 시절, 사람들은 내가 채식주의자인 것을 조롱하며 나를 허약하고 나약하며 비위가 약한 놈으로 부르곤 했다. 내 남동생들은 저녁 식사 접시에 담긴 고기를 흔들어대며 “맛있느은, 고기다!” 하고 말하곤 했다. 나는 동생들을 사체 탐식가라고 불렀고, 나는 좀비가 아니며 시체의 고기 조각 따위는 먹지 않는 편을 택하겠노라 말했다. 나는 저녁 식사 자리에서 고기를 치우려다 뺨을 맞기도 했다. 우리 중 그 누구도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 우리는 모두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는, 그 뒤에 그것을 합리화한다. - ‘정원사의 일’ 중에서
이처럼 고요한 순간에는 완전함의 감각이 느껴진다. 그 순간을 온전하고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필요한 건 아무것도 없다. 나는 들판을 내려다보며 내 일을 시작한다. 나는 조용히 내면으로 들어간다. 그러면 침묵이 밖으로 쏟아져 나오며 완벽함에 난 어떤 금이나 흠을 채워주는 듯하다. 그저 존재한다는 이 느낌을 한번 경험하고 나면, 당신이 왜 존재하는지에 대해 더는 물을 필요가 없어진다. - ‘길 위의 신사’ 중에서
밤이 되어 휴식을 취할 때면, 나는 마치 내가 땅과 밤으로 이루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그것들 속으로 녹아들었다. 나는 자연 속에 있지 않았다. 나는 그것과 ‘교감’하지 않았다. 나는 자연이었다. 매일매일, 하루 종일, 날마다 내 안의 진정한 자연에 최대한 가까워졌다. 그리고 매일 아침 새벽마다 나의 침대를 떠나며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그곳을, 다시는 소유하지 못하고 똑같이 경험해 보지 못할 그것, 그 침대, 그 풍경을, 어쩌면 아주 짧게나마 뒤돌아보았는지도 모르겠다. 이곳들은 그때도,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나의 집이다. - ‘땅으로 녹아든 밤’ 중에서
작가 소개
지은이 : 마크 헤이머
영국 웨일스에 거주하는 작가이자 정원사로, 삶과 자연의 깊은 연결을 탐구하는 작품으로 널리 사랑받고 있다. 북부 잉글랜드에서 가난한 어린 시절과 청년기의 노숙 생활을 거쳐 정원사로 20년 이상 일하며 쌓은 경험은 그의 글에 진정성과 흙냄새 나는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대표작 『두더지 잡기』와 『씨앗에서 먼지로』는 노동을 통해 자연, 생명, 그리고 인간 존재의 본질을 시적으로 풀어내며 각각 2019년 그리고 2021년 웨인라이트 자연 문학상 후보에 올랐다. 마크 헤이머의 글은 소박하면서도 철학적이며, 자연과의 조화를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깊은 공감을 선사한다. 현재 그는 아내 페기와 함께 웨일스에서 글쓰기와 정원 가꾸기를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