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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본 열하일기
돌베개 | 부모님 | 2025.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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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정본 열하일기』는 박영철 간행의 『연암집』 속에 별집의 형태로 수록된 『열하일기』를 그 저본으로 하여, 국내외의 수많은 『열하일기』 이본과 대조 교감해서 하나의 교합본으로 완성한 것이다. 『열하일기』의 원래의 모습을 가능한 복원하고, 원본의 오류까지 찾아내어 바로잡았으니, 명실상부 『열하일기』 정본으로서 존재 의의를 갖는다 하겠다.

초고본 계열과 후대 필사본이 그 표현과 내용에서 다른 부분이 발견될 경우에는 가능한 초고본을 따르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그 순서도 재구성하였고, 후대의 필사본이 원전의 오류를 수정한 경우에는 이를 따르기도 하였다. 한편 초고본에 오류가 있는 경우에는 관련 자료를 찾아서 바로잡았다. 『열하일기』 자체가 완벽한 책이 아니므로 교감의 과정에서 많은 오류가 발견되었다. 서명, 인명, 지명 등의 고유명사는 물론 중국 문헌에서 인용한 글들은 모두 관련 원전을 찾고 대조하여 이를 수정하였다.

박영철본에 없던 것으로 정본에 수록한 보유편의 『열하피서록』, 『양매시화』, 『천애결린집』 그리고 부록의 『연행음청 곤』은 자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 특히 『연행음청 곤』은 『열하일기』의 성책과정을 보여 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출판사 리뷰

원서로 읽는 우리 고전 『열하일기』

한때 ‘해리포터 시리즈’가 극장가를 풍미하자 영화와 함께 조앤 롤링의 책을 원서로 읽는 붐이 일었다. 10년 영어공부를 1년 만에 끝낸다는 둥, 여기저기서 원서로 ‘해리포터’를 읽는 방법을 포스팅하고 덩달아 책 판매도 뛰었다. 그렇다면 우리 고전의 경우는 어떠한가? 원서는 고사하고, 축약하지 않은 완역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금오신화』, 『춘향전』, 『홍길동전』을 완역본으로 읽은 독자가 얼마나 있을까? 이것이 우리 고전의 현주소이고 수준일 것이다. 『정본 열하일기』가 이렇게 출간될 수 있는 것은, 성가(聲價)가 높은, 민족 최고의 고전이라는 명성 덕이다. 『열하일기』 정본 작업은 우리 문화가 한 걸음 더 내딛는 큰 성과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민족 최고의 고전, 조선 최고의 베스트셀러

조선을 대표하는 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창강 김택영(1850~1927)은 “조선 500년 역사에 퇴계, 율곡의 도학과 충무공의 용병, 연암의 문장, 이 세 가지가 나란히 특기할 만하다”고 말했다. 현대에 들어와 서울대 국문과 명예교수인 박희병 교수는 그의 번역서인 『나의 아버지 박지원』(원제 ‘과정록’過庭錄; 돌베개, 1998) 서문에서 “영국에 셰익스피어가, 독일에 괴테가, 중국에 소동파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박지원이 있다”고 극찬한 바 있다. 과장이 아니라, 연암 박지원은 손꼽히는 조선의 대문호이며, 여전히 많은 학자의 연구 대상이다.
연암 박지원(1737∼1805)은 청나라 건륭제의 70회 생일을 축하하는 사절단에 끼어 중국을 다녀왔다. 공적인 소임이 없어 자제군관 자격으로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었던 연암은 북경 여행과 함께 조선인으로서는 전인미답이라 할 수 있는 열하 지방을 다녀올 수 있었다.
1780년(연암 44세) 5월 25일 한양을 출발했고, 그해 10월 27일 한양으로 돌아왔다. 연암은 중국 여행을 마치고 귀국하는 즉시 『열하일기』 집필에 전념했다. 『열하일기』 초고는 책으로 완성되기도 전에 그 일부가 주변의 지인들에 의해 전사(傳寫)되었고, 급기야 한양에 일파만파로 퍼져 나갔다. ‘연암체’(燕巖體)라는 새로운 글쓰기 문체가 생겨날 정도로, 『열하일기』는 당시 독서계와 문인 지식층에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열하일기』는 당시 문단에서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새로운 글쓰기 시도에 환호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청나라 연호를 썼다 하여 ‘노호지고’(虜號之稿)라고 비방하였다. 문체반정(文體反正)을 추진하던 국왕 정조(正祖)까지 이 작품을 주목하고 문제시했던 것은 유명한 일화다. 시대착오적인 반청(反淸) 사상을 풍자하고 조선을 낙후시킨 양반 사대부의 책임을 추궁하는 등 현실 비판적인 내용과 신랄한 표현이 담긴 이 책은 당대는 물론이고 조선조 내내 받아들여질 수 없었다. 그 때문에 손자 박규수가 우의정으로 있던 조선 말기에도, 그리고 서적의 출판과 보급이 비교적 활황을 보였던 근대 초기까지도 공간(公刊)되지 못하고 오직 필사로만 유통되었다.

수많은 이본이 존재하는 『열하일기』

연암은 귀국 직후부터 『열하일기』 저술에 착수하여 죽을 때까지 이를 끊임없이 수정하고 보완하였다. 미처 완성고를 내기도 전에 초고가 필사되어 날개 돋친 듯 사방으로 퍼졌다. 그야말로 낙양의 지가(紙價)를 올리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연암의 사후에는 아들 박종채와 손자 박규수 등의 손길이 이어졌으며, 1932년 박영철본 『연암집』으로 정비되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필사본이 전승되었다. 현재 전하는 필사본의 종수만 해도 60여 종이다.
학자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열하일기』 이본은 대략 초고본 계열, 『열하일기』 계열, 『연암집』 외집 계열, 『연암집』 별집 계열 등으로 나눈다. 이중 가장 중요한 것이 『열하일기』 초고본 계열의 이본들이다.
『열하일기』 초고본은 연암이 쓴 『열하일기』의 처음 원고에 가장 가까운 자료로서 여타 이본들에서 삭제되거나 개작되기 전 『열하일기』의 최초의 모습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자료라 하겠다. 특히 개작된 이본들과 초고본이 서로 다를 때는 초고본이 하나의 표준이 된다. 『열하일기』 초고본들을 통해 그동안 필사본 형태로 존재했던 수많은 이본이 본래의 모습에서 어떻게 수정되고 변경되었는지, 『열하일기』의 개작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2000년대에 들어서 국내와 해외에 소장된 우리 고문헌 자료들이 조사되며 미국의 버클리대본이나 일본의 동양문고본 등 『열하일기』의 중요한 이본들이 학계에 보고되고, 2012년에 단국대 도서관 연민문고에 소장된 『열하일기』 초기 필사본이 학계에 대거 공개되면서, 『열하일기』 정본화 작업이 더욱 절실해졌다.
왼쪽 사진은 연민 이가원 선생이 단국대에 기증한 『연행음청 곤』(燕行陰晴坤)이다. 이 책은 책 제목이 ‘열하일기’가 아니라 ‘연행음청’(燕行陰晴)인데, 『열하일기』의 처음 제목이 ‘연행음청’이었다. 책의 종이는 연암이 쓴 사고지(私稿紙)로, 귀퉁이에 연암산방(燕岩山房)이라는 글씨가 찍혀 있다. 연암이 남긴 편지와 서화의 글씨체를 대조해본 결과, 이 책은 연암의 친필본으로 판명되었다. 연민 이가원 선생이 연암의 현손인 박영범 씨로부터 입수하여 소장해온 자료라고 한다.

드디어 만나는 ‘정본’ 『열하일기』

『정본 열하일기』는 박영철 간행의 『연암집』 속에 별집의 형태로 수록된 『열하일기』를 그 저본으로 하여, 국내외의 수많은 『열하일기』 이본과 대조 교감해서 하나의 교합본으로 완성한 것이다.
『열하일기』의 원래의 모습을 가능한 복원하고, 원본의 오류까지 찾아내어 바로잡았으니, 명실상부 『열하일기』 정본(定本)으로서 존재 의의를 갖는다 하겠다.
초고본 계열과 후대 필사본이 그 표현과 내용에서 다른 부분이 발견될 경우에는 가능한 초고본을 따르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그 순서도 재구성하였고, 후대의 필사본이 원전의 오류를 수정한 경우에는 이를 따르기도 하였다. 한편 초고본에 오류가 있는 경우에는 관련 자료를 찾아서 바로잡았다. 『열하일기』 자체가 완벽한 책이 아니므로 교감의 과정에서 많은 오류가 발견되었다. 서명, 인명, 지명 등의 고유명사는 물론 중국 문헌에서 인용한 글들은 모두 관련 원전을 찾고 대조하여 이를 수정하였다.
박영철본에 없던 것으로 정본에 수록한 보유편의 『열하피서록』(熱河避暑錄), 『양매시화』(楊梅詩話), 『천애결린집』(天涯結隣集) 그리고 부록의 『연행음청 곤』(燕行陰晴坤)은 자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 특히 『연행음청 곤』은 『열하일기』의 성책(成冊) 과정을 보여 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이 책은 다음과 같은 요령으로 엮었다.
우선, 박영철본 『열하일기』를 저본으로 하되, 이와 달라진 부분은 색을 넣은 글자로 구분하였다. 저본의 내용을 수정, 보충, 삭제한 경우에는 붉은 글자로 표시하였다. 그리고 저본의 속자, 약자, 고자 등 이체자는 해서체의 정자로 수정하고 푸른색으로 표시하였다. 통가자(通假字)는 바른 글자로 바꾸고 푸른색으로 표시하였다.
교감에 사용한 필사본은 친필초고본을 포함해 대표 이본을 모두 대조했는데, 그 종류가 30종이다. 교감에 사용한 필사본의 종류는 이 책의 일러두기에 모두 밝혀 놓았다.

정본에 맞춰 재정비한 개정2판 『열하일기』

돌베개가 2009년에 출간한 완역본 『열하일기』(김혈조 옮김, 돌베개, 2009)는 ‘박영철본’을 저본으로 번역한 책이고, 8년 뒤에 출간한 개정신판 『열하일기』(김혈조 옮김, 돌베개, 2017)는 연민 이가원 선생이 기증한 친필초고본 『열하일기』 및 대표 이본 몇 가지를 교감하여 번역하고 수정한 책이다. 이번에 『정본 열하일기』를 출간하며, 정본의 체제에 맞추어 새롭게 번역하여 개정2판 『열하일기』를 함께 선보인다.
후인이 각색하지 않은, 원형 그대로의 『열하일기』를 재현하였다. 개정신판과 비교해 많은 부분이 수정되고 추가되었다. 새롭게 수록된 도판도 많다.
정본과 조금 순서가 다른 부분이 있는데, 이는 정본이 원서 체제를 최대한 구현하는 데 목적이 있다면, 번역본의 경우, 내용의 흐름을 우선하기 때문이다. 정본과 비교해 순서가 달라진 부분은 일러두기에 따로 표시하였다. ‘정본’을 보는 독자라면 ‘개정2판’과 함께 보실 것을 권해 드린다.




  작가 소개

지은이 : 박지원
조선 후기의 탁월한 문장가이자 실학자다. 박사유(朴師愈)와 함평(咸平) 이씨(李氏) 사이에서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16세에 처사 이보천(李輔天)의 딸과 결혼했다. 장인에게는 《맹자》를, 처삼촌 이양천(李亮天)에게는 《사기(史記)》를 배워 본격적인 학문을 시작했다. 처남인 이재성(李在誠)과는 평생의 문우(文友) 관계를 이어 갔다. 청년 시절엔 세상의 염량세태에 실망해 불면증과 우울증으로 고생했으며 이러한 성장 배경을 바탕으로 진실한 인간형에 대해 모색한 전(傳) 아홉 편을 지어 《방경각외전(放?閣外傳)》이라는 이름으로 편찬했다.영조 47년(1771) 마침내 과거를 보지 않기로 결심하고 서울 전의감동(典醫監洞)에 은거하면서 홍대용,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을 비롯한 많은 젊은 지식인들과 더불어 학문과 우정의 세계를 펼쳐 갔다. 정조 2년(1778) 홍국영이 세도를 잡고 벽파를 박해하자 생명에 위협을 느끼고 황해도 금천군(金川郡)에 있는 연암협(燕巖峽)으로 피신해 은둔 생활을 했다. 연암이라는 호는 이 골짝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정조 4년(1780)에 삼종형(三從兄)인 박명원(朴明源)의 연행(燕行) 권유를 받고 정사의 반당 자격으로 북경에 가게 되었다. 이때 건륭 황제가 열하에서 고희연을 치르는 바람에 조선 사신 역사상 처음으로 열하에 가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연행을 통해 깨달음을 확대한 연암은 여행의 경험을 수년간 정리해 《열하일기》를 저술했다.정조 10년(1786) 유언호의 천거로 음사(蔭仕)인 선공감(繕工監) 감역(監役)에 임명되었다. 정조 13년(1789)에는 평시서주부(平市署主簿)와 사복시주부(司僕寺主簿)를 역임했고, 정조 15년(1791)에는 한성부 판관을 지냈다. 그해 12월 안의현감에 임명되어 다음 해부터 임지에서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이때 정조 임금이 문체를 타락시킨 장본인으로 《열하일기》를 쓴 연암을 지목하고는 남공철을 통해 순정한 글을 지어 바치라 명령했으나 실제로 응하지는 않았다. 정조 21년(1797) 61세에 면천군수로 임명되었다. 이 시절에 정조 임금에게 《과농소초(課農小抄)》를 지어 바쳐 칭송을 들었다. 1800년 양양부사로 승진했으며 이듬해 벼슬에서 물러났다. 순조 5년(1805) 10월 20일 서울 가회방(嘉會坊)의 재동(齋洞) 자택에서 깨끗하게 목욕시켜 달라는 유언만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 선영이 있는 장단(長湍)의 대세현(大世峴)에 장사 지냈다.박지원의 문학 정신은 ‘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옛것을 본받되 변화를 알고 새롭게 지어내되 법도를 지키라”는 의미다. 그는 문학의 참된 정신은 변화의 정신을 바탕으로 창조적인 글을 쓰는 데 있다고 생각했다. 비슷하게 되려는 것은 참이 아니며, ‘닮았다’고 하는 말 속엔 이미 가짜가 들어 있다는 것이다. 연암은 억지로 점잖은 척 고상한 글을 써서는 안 되며 오직 진실한 마음으로 대상을 참되게 그려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하여 그는 틀에 박힌 표현이나 관습적인 문체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독특한 문체를 지향했다. 나아가 옛날 저곳이 아닌 지금 여기를 이야기하고자 했다. 중국이 아닌 조선을, 과거가 아닌 현재를 이야기할 때 진정한 문학 정신을 구현할 수 있다고 믿었다.연암의 학문적 성취와 사상은 《열하일기》에 집대성되어 있다. 《열하일기》에서 연암은 이용후생의 정신을 기반으로 청나라의 선진적 문물을 받아들여 낙후된 조선의 현실을 타개하자는 주장을 펼침으로써 북학파를 대표하는 학자로 우뚝 서게 되었다.연암은 《열하일기》 외에도 《방경각외전》, 《과농소초》, 《한민명전의(限民名田議)》 등을 직접 편찬했다. 연암의 유고는 그의 아들 박종채에 의해서 정리되었는데 아들이 쓴 〈과정록추기〉에 의하면 연암의 유고는 문고 16권, 《열하일기》 24권, 《과농소초》 15권 등 총 55권으로 정리되었다. 《열하일기》는 오늘날 완질은 26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연암의 작품은 대부분이 문(文)이며 시(詩)는 50여 편이 전한다.

  목차

책머리에
일러두기

熱河日記序
渡江錄
盛京雜識
馹汛隨筆
關內程史
漠北行程錄
太學留館錄
還燕道中錄
傾蓋錄
黃敎問答
班禪始末
扎什倫布
行在雜錄
審勢編
忘羊錄
鵠汀筆談
山莊雜記
幻戲記
避暑錄
口外異聞
玉匣夜話
黃圖紀略
謁聖退述
盎葉記
銅蘭涉筆
金蓼小抄
補遺篇 I. 熱河避暑錄
補遺篇 II. 楊梅詩話
補遺篇 III. 天涯結隣集
附錄. 燕行陰晴 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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