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솔시선 32권. 김기섭 시인의 첫 번째 시집. 산악인이자 국내에서 가장 많은 바윗길을 개척한 사람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암벽등반가 김기섭 시인의 자전적인 목소리를 담은 이 시집은 암벽을 오르며 마주한 나날의 기록이다. 젊은 날부터 암벽을 타며 산길을 만들어온 시인의 궤적이 그려가는 시세계는 등반이라는 자신의 삶의 순간순간을 시로 체화하는 작업이라 할 것이다.
이 시집을 통해 시인은 전 생애를 통해 써내려온 시를 세상에 펼쳐보인다. 산을 오르며 마주한 고투의 끝에서 피어난 서정 가득한 시편들은, 그가 개척해온 산길들을 담은 지도이면서, 산에서 만나온 사람과 자연의 생명을 채록한 그리움의 기록이기도 하고, 거친 암벽을 지나 마침내 도착한 고도에서 바라본 삶의 형상들이 저마다의 모습으로 나이테를 그린 이야기들이라 할 수 있다.
출판사 리뷰
실존의 세계에서 다시 오르는 바위산의 순간들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것 하나
낮게 내리는 춘설 한 더미에도
녹슬지 않는 봉우리”
실존의 세계에서 퍼올린 강과 숲과 산의 기억
김기섭 첫 번째 시집, 『달빛 등반』
솔시선 32권으로 김기섭 시인의 첫 번째 시집이 출간되었다. 산악인이자 국내에서 가장 많은 바윗길을 개척한 사람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암벽등반가 김기섭 시인의 자전적인 목소리를 담은 이 시집은 암벽을 오르며 마주한 나날의 기록이다. 젊은 날부터 암벽을 타며 산길을 만들어온 시인의 궤적이 그려가는 시세계는 등반이라는 자신의 삶의 순간순간을 시로 체화하는 작업이라 할 것이다.이 시집을 통해 시인은 전 생애를 통해 써내려온 시를 세상에 펼쳐보인다. 산을 오르며 마주한 고투의 끝에서 피어난 서정 가득한 시편들은, 그가 개척해온 산길들을 담은 지도이면서, 산에서 만나온 사람과 자연의 생명을 채록한 그리움의 기록이기도 하고, 거친 암벽을 지나 마침내 도착한 고도에서 바라본 삶의 형상들이 저마다의 모습으로 나이테를 그린 이야기들이라 할 수 있다.
다음을 알 수 없이 암벽을 오르다
“암벽 장비를 꺼내본다.
자일에 걸려 있는 뭉게구름
길은 어느덧 고비사막으로 나 있고
자고 나면 신기루같이 사라지는 바윗길”
시인 김기섭은 서정성을 지닌 산악인으로 유명했다. 그의 감수성이 젊은 날부터 오른 산에서 비롯되었을 수도, 그의 감각이 산에서 비로소 피어오른 것일 수도 있다. 그는 자신이 개척한 바윗길과 암릉길을 통해, 또 그 길들의 낭만적인 이름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산악활동에 대한 열정을 불러 일으켰다.
『달빛 등반』은 김기섭 시인이 명명한 산길의 이름이 주축을 이루어 등장한다. ‘배추흰나비의 추억’, ‘별과 바람과 시가 있는 풍경’, ‘별을 따는 소년들’, ‘봄날은 간다’, ‘시인 신동엽길’, ‘한 편의 시를 위한 길’, ‘체 게바라길’, ‘몽유도원도’, ‘별길’ 등에서 시인의 감각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한 시인이 빚어낸 첫 시집 『달빛 등반』의 성과는 그의 시 속에 충만한 대지와의 교감과 자연과 마찰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그의 본능적인 서정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시인은 자연의 풍광을 묘사하고 강과 숲을 헤치면서 ““바라건대 삶이 저물어/숲과 더불어/해와 달을 품고 살아갈 수 있다면”(「방태산 아침가리골」)이라고 노래한다.
텅 빈 산
텅 빈 하늘
어느 봄날
불현듯 만난 손톱만 한 나무 이름들
―「방태산 아침가리골」 중에서
리듬감으로 가득한 그의 시들은 “곧장 노래의 본능을 자극하고, 그리움의 심지에 불을 붙인다. 시의 밑바닥에 흐르는 내재율의 물살은 대부분 작가의 숨결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숨결을 더욱 신뢰하게 만드는 것은 그가 시종 대지의 맨살과 접촉하는 지점에서 서정을 발화시킨다는 데 있었다.”(「해설」 중에서)
시인에게 산은 “새로 산 오만분의 일 지도”로 미리 걸음을 짚으며 “낯선 호기심에 사로잡”(「방태산 아침가리골」)히게 하는 장소이지만, 개척한 산길에서 비롯된 시의 여정들과 함께 주목하여 볼 것은 그가 다닌 험난하고 거친 바윗길에 있다. 그는 “십 대부터 절망이 절망을 부르는 벽에 매달려, 바윗길이 끝난 곳에서 또 다른 길을 찾았다. 그럴 때마다 손등과 정강이엔 상처가 생긴 뒤 새살이 돋아났고, 새로운 길을 갈 적마다 죽음은 숙명처럼 따라다녔다.”(「산과 벽」) 사람이 태어나고 사라지는 동안 바위는 더욱 단단하게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그 무게가 시에 부여하는 감정은 그 단단한 바위에 줄을 동여맨 작은 생명들에 달려 있다. 따라서 『달빛 등반』의 시세계는 낭만성 안에 긴장을 내포한다. 시인은 지면에서 떨어져 창공에 다가서는 이 여정을 그려내며 “손금에서 손금으로 잇닿은 운명선을 떠돌”듯이 바윗길을 오르고, “지문이 이지러지도록/비탈을 거슬러 올라야 하는 것이 숙명”(「별과 바람과 시가 있는 풍경」)이라고 받아들인 이처럼 다음을 알 수 없는 걸음을 뗀다.
산정의 정신, 깊고 푸른 고독 속을 걷다
“돌이켜보니 평생 바위산에 갇혀 살았다”
시인은 산 위에서 보는 풍경을 사랑하면서, 바위와 바람과 바다의 감각들 속에서 생명의 본질에 대한 철학을 이야기한다. “제도와 체제로부터 방출된 이들에게 산은 문명의 감옥을 벗어난 사람들이 의지할 마지막 희망의 영토였다. 그래서 동의할 수 없는 세계와 화해할 생각이 없는 자들이 생존하는 자리가 그곳이라면, 산은 기존 세계가 아닌 또 다른 세계를 향하는 비상구임이 틀림없다.”라고 해설자는 말했다. “따라서 산 사람들이 산을 “오른다!” 하지 않고 “들어간다!” 말하는 것은 지극히 타당한 표현이다. 말하자면 산은 일탈자와 선각자가 거처하는 곳이니까.”(「해설」 중에서) 시인이 걷고 오르며 깨달은 단순한 진리는 하나의 정신으로 응축되어 여울로 퍼져나간다.
내가 사는 동네 정령사원에는 간단한 교리가 담겨 있는 책이 한 권 놓여 있다. 우주의 생성과 소멸을 믿으며, 인간의 탄생과 죽음을 인정하며, 살아 있는 동안 선을 행할 것이며, 사람과 자연을 공경하라. 인간을 고의적으로 살해하거나 자연을 파괴한 자들은 사후 불의 형벌을 받을 것이니, 이 단순한 말씀은 내가 사는 마을과 사원에 봄비처럼 내린다.
- 「정령사원 교리에 대하여」 부분
산이라는 거대한 자연 앞에 선 시인은 그 안으로 잠겨들기를 택한다. 그의 걸음은 “몸이 야윈 정령들이 사는/자작나무 숲”에 닿을 때 비로소 생명을 얻는다. “상처받은 사람끼리 모여 사는/사람 사는 마을에도 눈이 내”리듯.(「사람 사는 마을에도 눈이 내린다」) “김기섭의 시적 토대가 되어 있는 ‘대지와의 교감’은 현대인들이 우주적 생명의 본능을 잃어가는 탓에 고수하게 된 ‘대지에 대한 도덕적이고 생태적인 태도’의 하나이니, 그것은 지구 별의 일부인 자아가 산업에 의한 착취, 문명에 의한 착취를 벗어나기 위해 선택한 저항의 한 형식이다. 그래서 폭력에 반대하는 시 정신의 공유지를 산행에서 찾았다는 것”(「해설」 중에서)은 김기섭 시 정신의 본질이자 실존에서 끌어올린 ‘산정을 걷는 깊고 푸른 정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에게 산이란 “낮게 내리는 춘설 한 더미에도/녹슬지 않는 봉우리”(「북한산 인수봉」)를 가진 끊임없이 올라야 할 이상향이기도 했을 것이다. 시인의 영혼은 그곳에서 “지상의 가장 높은 곳에 집을 짓자”(「내린천 여름밤과 송준호」)고 다짐한다. 그곳에서 시인은 “벽 앞에서 우리의 확고한 믿음을 묶자”고 이야기하고, 비로소 도달한 산정에는 “새살처럼 돋아나는 푸른 물살”과 “불멸을 꿈꾸는 저 바다 빛”(「해벽 등반」)이 펼쳐져 있는 것이다.
거의 ‘음악맹’에 가까운 내게도 그의 선율은 곧장 노래의 본능을 자극하고, 그리움의 심지에 불을 붙인다. 시의 밑바닥에 흐르는 내재율의 물살은 대부분 작가의 숨결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숨결을 더욱 신뢰하게 만드는 것은 그가 시종 대지의 맨살과 접촉하는 지점에서 서정을 발화시킨다는 데 있었다. 시를 보라. 천체는 무심해서 인간이 겪는 감정 따위를 거들떠보지도 않지만 살아 있는 생명은 그래도 대지와의 교감을 멈출 수 없다. 여기서 벚꽃 지는 날의 속수무책을 견디는 화자의 눈빛은 애오라지 인간과 대지가 분리되지 않을 때만 샘솟는 연민의 힘을 내뿜는다. 특히 자연과 마찰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다음 시와 같은 즉자적 충동들은, 인간 개체의 몸짓에서 지구에 있는 생명체들에게 공통된 어떤 거시적 작동 방식을 읽는 듯한 감동과 매혹을 준다.
- 「해설」 중에서 ·김형수(시인 · 신동엽문학관장)
보름달이 떠오르면
우리는 21야영장을 떠나
인수봉 앞에서 자일을 묶는다.
봄밤을 두드리는 소쩍새 소리
바위틈에 스며든 빛의 화음을 매만지며
초여름 신록 속으로 빠져든다.
동양길 삼각 테라스에서
내려다본 세상은 높고 낮음은 있으나
공평해 보인다.
가진 것이 없더라도
산처럼 살기로 다짐하며
앞서간 선등자에게 눈길 한 번 준다.
야영장 불빛이 꺼질 적마다
그리운 것들은 많아졌고
고도를 높일수록 맑아지는 눈
우리는 가파른 바위 끝
하늘과 맞닿은
인수봉 정수리에서
달빛에 몸을 맡긴다.
-「달빛 등반」 전문
서서히 풀리는
산안개 따라 아침가리골로 들어간다.
겨우내 버림받은 바람
복수초 봉오리를 틔우고
숲은 먼 생애로부터 흘러들어 온
잔설만큼이나 간명하다.
-「방태산 아침가리골」 부분
작가 소개
지은이 : 김기섭
1962년 강원도 화천에서 태어났으며, 경원대학교를 졸업했다. 열여덟 살에 암벽 등반을 시작해 1989년 설악산 노적봉 ‘한 편의 시를 위한 길’을 낸 이후 북한산 백운대 ‘시인 신동엽길’ 등 총 23개의 암릉길과 암벽 등반 코스를 개척했다.월간 『사람과산』과 『마운틴』 기자로 일했다. 2006년 인수봉 등반 중 추락 사고로 지체장애1급 판정을 받았다. 현재 ‘경원대학교OB산악회’와 ‘백운산장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다.
목차
제1부
꽃비 야위어가는 날 | 배추흰나비의 추억 | 토왕폭으로 | 봄밤의 동백꽃 | 단목령 가는 길 | 북한산 인수봉 | 달빛 등반 | 방태산 아침가리골 | 북한산의 봄 | 월출산 범바윗골에서 | 환절기 | 눈과 바람의 노래 | 갈기산, 구구절절이 단풍이 | 꽃잠
제2부
오대산 북대암 빗소리 | 어라연, 가는 길에 | 별과 바람과 시가 있는 풍경 | 조양강에서 | 내린천 여름밤과 송준호 | 별을 따는 소년들 | 지리산 연하천 별밤 | 봄날은 간다 | 해벽 등반 | 시인 신동엽길 | 시인 신동엽길을 가다 | 사람 사는 마을에도 눈이 내린다 | 함박눈 | 한 편의 시를 위한 길 위에서
제3부
양폭산장 바람 소리 | 비수구미의 첫눈 | 설악가 | 속리산 | 수정헌의 봄 | 앨버트 프레더릭 머메리 | 산행 편지 | 산꾼들과 두꺼비 | 눈 내리는 날 | 손정준, 그의 산그늘에 | 너는 어째서 | 관매도에서 | 산과 벽 | 겨울잠
제4부
지도에 없는 길 위에서 | 배롱나무 | 건이가 없다 | 정령사원 교리에 대하여 | 달동네 산 1004번지 | 암호 같은 하루 | 털신 | 새들은 어디서 잘까 | 꿈꾸는 수렴동 | 새벽 강에서 | 남대천, 연어의 귀향 | 늑대별 | 묘비명 | 춘설
해설_김형수_산정을 걷는 자의 깊고 푸른 정신에 대하여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