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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에 꼭 필사해봐야 할 한국의 명시
일제강점기, 지식인의 고뇌가 담긴 민족 시인 8인의 시 세계
북랩 | 부모님 | 2017.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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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일제강점기 여덟 시인의 애절하고 아름다운 시 100선을 모았다. 한국을 대표하는 김영랑, 김소월, 윤동주, 정지용, 권태응, 이상화, 한용운, 이육사의 시를 따라 쓰며 그들의 감성을 공유하는 가운데, 일제강점기를 살았던 시인들의 강한 의지와 우리나라를 지킨 조상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손으로 시를 읽는 경험은 읽는 것 이상의 가치와 특별한 사색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시를 읽고 느꼈던 감정이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종이 위에 새겨지고, 한 글자 한 글자 눌러 쓴 그 온기가 마음속까지 전해질 것이다.

  출판사 리뷰

손으로 시를 기억하고 나를 돌아보는 힐링의 시간
불꽃처럼 살다간 시인들의 영혼이 내 마음에 스민다!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써보는 일제강점기 시인 8인의 애절하고 아름다운 시 100선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 8명의 시를 따라 쓰다 보면 시어 하나하나 고민하며 시 한 편을 완성한 시인의 감성을 공유할 수 있다. 또한 일제강점기를 살았던 시인들의 강한 의지와 우리나라를 지킨 자랑스러운 조상들의 숨결도 느낄 수 있다.
손으로 시를 읽는 경험은 읽는 것 이상의 가치와 특별한 사색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시를 읽고 느꼈던 감정이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종이 위에 새겨지고, 한 글자 한 글자 눌러 쓴 그 온기가 마음속까지 전해질 것이다.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짓는 샘물같이 _ 김영랑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_ 김소월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_ 윤동주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_ 정지용
낮에도 밤에도 잠도 안 자고 즐거워 똑닥똑닥 노래합니다 _ 권태응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_ 이상화
당신은 해당화 피기 전에 오신다고 하였습니다 _ 한용운
흰 돛은 바다를 칼질하고 바다는 하늘을 간질여 본다 _ 이육사

  작가 소개

저자 : 권태응
1918년 충북 충주에서 태어난 권태응 선생님은 1937년 일본 와세다 대학 정경학과에 입학하였고, 1939년 ‘독서회 사건’으로 1년간 감옥 생활을 하였습니다. 귀국하여 폐결핵 요양을 하던 중 1951년 병세가 악화되어 34세의 나이로 돌아가셨습니다. 1948년 동시집 『감자꽃』을 냈습니다.

저자 : 김소월
고향이 평안북도 정주이고 그곳에서 성장하고 생활하고 사망했기 때문에 전기적 사실을 확인하기가 어렵게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와 관련된 사람들의 회고담이나 신문 잡지에 난 관련 기사를 통해 그의 생애를 재구해 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소월의 본명은 정식(廷湜)으로 1902년 음력 8월 6일(양력 9월 7일) 평안북도 구성군 서산면 외가에서 태어났다. 남산학교를 졸업하고 14세 때 세 살 연상인 홍실단(원명은 홍상일)과 결혼했으며 상급 학교로 진학하지 못하고 3년간 농사일을 거들었다. 그의 재능을 아깝게 여긴 동네 사람들의 도움으로 1917년 오산학교 중학부에 입학해 수학하던 중 은사인 김억을 만나 시를 쓰게 되었다. 오산학교를 다니던 1919년 3월 3·1운동이 일어나자 동급생들과 함께 만세 운동에 참여해 학업을 중단하게 되고 오산학교도 임시 폐교되었다.1920년 스승인 김억의 주선으로 ≪창조≫에 <낭인의 봄> 등의 시를 소월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했다. 이때 발표한 작품은 <낭인(浪人)의 봄>, <야(夜)의 우적(雨滴)>, <오과(午過)의 읍(泣)>, <그리워>, <춘강(春崗)> 등 다섯 편이고 그 후 ≪학생계≫, ≪동아일보≫ 등에 작품을 발표했으나 소월은 이 초기의 작품들을 시집에 수록하지 않았다. 소월은 오산학교에 이어 학업을 마치기 위해서 서울로 이주해 1922년 4월에 배재고등보통학교 4학년으로 편입했다. 1923년 3월에 배재고보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상과대학 예과에 입학했으나 학자금 조달에도 어려움이 있고 9월 간토대지진이 일어나자 10월에 고향 정주로 돌아왔다. 1924년에 김동인, 이광수, 김억, 주요한, 김찬영, 전영택, 오천석 등과 함께 ≪영대≫의 동인으로 참여했으며 1925년 12월 26일 자로 시집 ≪진달래꽃≫을 간행했다. ≪진달래꽃≫은 상당히 판매가 되었는지 발행처는 같은 매문사로 되어 있지만 총판이 ‘중앙서림’으로 되어 있는 것과 ‘한성도서주식회사’로 되어 있는 것의 두 판본이 유통되었고 그 원본이 각기 현재 전해지고 있다.1924년 이후에는 그의 처가가 있는 평안북도 구성군 남시로 이주해 생활했으며 1926년 8월부터 동아일보 지국 일을 맡아 본 것으로 되어 있다. 이후 1년에 한두 편씩 작품을 발표했고 1932년과 1933년에는 작품을 발표하지 않았다. 1934년에 다시 몇 편의 시를 발표했으나 그의 생활은 극도로 피폐해졌던 것 같다. 지국 경영은 일찍이 작파해 남에게 넘겼고 시대와 자신의 삶에 대한 울분이 겹쳐 거의 매일 술을 마셨으며 아내에게 살아 봐야 낙이 없으니 같이 죽자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고 한다. 1934년 12월 23일 밤에도 술에 취해 잠이 들었는데 새벽에 남편이 괴로워하는 소리를 잠결에 듣고 불을 켜 보니 아편 덩어리를 입가에 흘린 채 죽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소월의 사망 일자를 1934년 12월 24일 아침으로 보고 있다.소월의 사망이 알려지자 12월 30일 자로 ≪조선중앙일보≫와 ≪동아일보≫에 사망 관련 기사가 실리고 1935년 1월에 서울 종로 백합원에서 소월 추모회가 개최되었다. 여기서 김억은 소월에 대한 추모사를 낭독하고 그것을 ≪조선중앙일보≫(1935. 1. 22~26)에 <요절한 박행의 시인 김소월의 추억>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1939년 12월 김억이 소월의 시를 선정하고 다시 편찬해 박문출판사에서 ≪소월시초≫를 출간했다.

저자 : 김영랑
1903년 전라남도 강진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김윤식이며 아호는 영랑(令郞)이다. 강진보통학교를 졸업하고 휘문보통고등학교를 거쳐 1920년에 일본의 아오야마학원 영문학과에서 공부했다. 그 후 김영랑은 1930년 3월 창간한 《시문학》을 중심으로 박용철, 정지용, 이하윤, 정인보, 변영로, 김현구, 신석정, 허보 등 여러 시인과 더불어 아호인 영랑(令郞)으로 활동했다. 1935년에 첫 번째 시집인 《영랑시집》을 시문학사에서 간행했다. 《영랑시집》에는 총 53편의 시가 실려 있으며, 각각의 시가 처음 발표되었을 때의 제목을 쓰지 않고 일련번호를 붙여 시집에 실었다. 이후 김영랑은 1949년에 중앙문화사에서 《영랑시선》을 출간했다.김영랑은 조국 해방이 이루어질 때까지 창씨개명과 신사참배 및 삭발령을 거부했으며, 광복 후 신생 정부에 참여해 당시 중앙행정부인 공보처의 출판국장으로 일했다. 1950년 한국전쟁 때 부상을 당해 9월 서울에 위치한 자택에서 47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현재 묘지는 서울 망우리에 있다.

저자 : 윤동주
1917년 만주 간도성 화룡현 명동촌 출생. 아명 ‘해환(海煥)’. 1925년 명동소학교 입학. 5학년 때 급우들과 등사 잡지 《새 명동》 창간. 1931년 중국인 소학교 화룡 헌립 제일소학교 고등과 편입, 1년간 수학. 1932년 용정 기독교학교인 은진중학교 입학. 1934년 〈초 한대〉, 〈삶과 죽음〉, 〈내일은 없다〉 등 3편의 시를 썼다. 1935년 평양 숭실중학교 편입. 교내 YMCA 문예부의 《숭실활천》에 〈공상〉이 실려 그의 시가 처음 활자화. 1936년 신사참배 강요에 자퇴하고 용정으로 돌아와 광명학원 중학부 5학년 편입. 연길에서 발행되던 《카톨릭 소년》에 동시 〈병아리〉 〈빗자루〉 〈오줌싸개지도〉 〈무얼먹고 사나〉, 〈거짓부리〉를 발표. 1937년 연희전문학교 문과 입학, 외솔 최현배 선생에게 조선어를 배우고 이양하 교수에게서 영시를 배웠다. 1939년 조선일보에 산문 〈달을 쏘다〉, 시 〈유언〉 〈아우의 인상화〉 발표. 《소년》에 동시 〈산울림〉 발표. 교우 정병욱과 이화여전 구내 형성교회에 다니며 영어성서반 참석, 릴케, 발레리, 지드 작품 탐독, 프랑스어 독습. 1941년 연희전문 문과 《문우(文友)》에 〈우물속의 자화상〉 〈새로운 길〉 발표. 1941년 졸업기념으로 19편의 작품을 모아 자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77부 한정판으로 출간하려다 일제의 탄압을 걱정한 주변의 만류로 뜻을 접고 시집을 3부 작성해 한 부는 자신이 가지고, 이양하 선생과 정병욱에게 1부씩 증정. 본래 제목은 ‘병원’이었으나 〈서시〉를 쓴 후 바꾸었다. ‘병원’은 병든 사회를 치유한다는 의미. 일본으로 건너가기 위해 ‘히라누마’로 창씨개명. 1942년 고국에서 쓴 마지막 작품이 된 시 〈참회록〉을 썼다. 도쿄 릿쿄(立敎)대 문학부 영문과 입학. 1942년 〈쉽게 씌어진 詩〉등 시 5편을 서울 친구에게 보냈다. 1942년 교토 도시샤(同志社)대 영문학과 편입. 1943년 송몽규가 교토 시모가모 경찰서에 독립운동 혐의로 검거되었다. 1943년 고향에 가려고 준비하던 윤동주도 송몽규와 같은 혐의로 검거되고 많은 책과 작품, 일기가 압수된다. 1944년 교토 지방재판소에서 ‘독립운동’ 죄목으로 2년형을 언도 받고 송몽규와 큐슈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1945년 2월 16일 큐슈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별이 되었다.

저자 : 이육사
1904년 5월 18일 경북 안동시 도산면 원촌리 881번지에서 이가호와 허길 사이에 6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다. 본명은 원록(源祿)이다. 본관은 진성(眞城)으로 퇴계 이황의 14대손이다. 그의 형제 중 다섯째는 문학평론가로 활동하다가 월북 이후 1950년대 초 숙청당한 이원조다. 어릴 때 조부 이중직에게서 한학을 배웠다. 1919년에 신학문을 접한 보문의숙을 졸업했다. 1925년 독립운동단체인 의열단(義烈團)에 가입하고 1926년 베이징으로 가서 베이징대학 상과에 입학해 7개월간 다녔다.1927년 귀국했으나 장진홍(張鎭弘)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되었다. 일본 경찰이 장진홍이란 인물은 물론 단서조차 잡지 못하자, 대구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인물들을 잡아들여 고문으로 진범을 조작해 법정에 세웠다. 이 과정에서 육사를 비롯해 원기·원일·원조 등 4형제가 함께 검거되었다. 원기를 제외한 나머지 형제들은 미결수 상태로 1년 반을 넘겼다. 그때의 수인번호 264에서 따서 호를 ‘육사’라고 지었다.1930년 1월 3일 첫 시 <말>을 조선일보에 이활(李活)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하면서 시단에 나왔다. 1935년 정인보 댁에서 시인 신석초를 만나 친교를 나눴다. 같은 해 다산 정약용 서세 99주기 기념 ≪다산문집(茶山文集)≫ 간행에 참여했다. 그리고 신조선사(新朝鮮社)의 ≪신조선(新朝鮮)≫ 편집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시를 발표했다.1940년 4월에 베이징으로 가서 충칭과 옌안행 및 국내 무기 반입 계획을 세웠다. 같은 해 7월 모친과 맏형 소상에 참여하러 귀국했다가 붙잡혀 베이징으로 압송되었다. 이때 베이징 주재 일본총영사관 경찰에 구금된 것으로 추정된다. 1944년 1월 16일 새벽, 베이징 네이이구(內一區) 동창후퉁(東廠胡同) 1호에서 옥사했다.

저자 : 정지용
1902년 충청북도 옥천군에서 출생했다. 한국 현대시사에 가장 기념비적인 서정 시인으로 알려진 정지용은 휘문고등보통학교 재학 시절 《서광》 창간호에 소설 「삼인(三人)」을 발표했고 ‘문우회’ 학예부장, 《휘문》 창간호 편집위원 등으로 활동하며 문재(文才)를 발휘했다. 일본 도시샤대학교 유학 시절에 대표작 「향수」를 썼고, 1930년에 ‘시문학’ 동인과 함께 본격적인 문단 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태준, 김기림, 박태원 등과 ‘구인회’를 결성하여 반카프적 입장에서 순수 문학을 옹호하며 ‘모단 보이’로 일세를 풍미했다. 이후 《경향잡지》, 《문장》, 《경향신문》 등의 편집위원으로서 청록파 시인들을 비롯해 이상, 윤동주 등 수많은 시인을 발굴해 냈다. 광복 후에는 이화여대와 서울대에 출강하며 시론, 평문, 번역시를 발표했다. 한국전쟁 당시 녹번리 초당에서 설정식 등과 함께 정치보위부에 나가 자수 형식을 밟다가 잡혀 납북된 것이 자진 월북으로 오인되었다. 그리하여 그의 작품은 오랫동안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을 뿐 아니라 출간조차 되지 못하다가 1988년 월북 문인 해금 조치와 함께 비로소 공개되었다. 향토적이면서도 감각적인 언어로 시를 썼으며 한국 현대시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1950년 한국전쟁 이후의 행적에 여러 설이 있으나 월북했다가, 1953년경 북한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저자 : 한용운
충남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에서 한응준과 온양 방씨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자(字)는 정옥(貞玉), 속명은 유천(裕天), 법명(法名)은 용운(龍雲), 법호(法號)는 만해이다. 어려서 서당에서 한학을 수학한 뒤, 향리에서 훈장으로 학동을 가르치는 한편 부친으로부터 때때로 의인들의 기개와 사상을 전해 듣고 큰 감명을 받았다.기울어 가는 국운 속에서 홍주에서 전개되었던 동학농민전쟁과 의병운동을 목격하면서 집을 나서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설악산 오세암으로 들어갔다. 여기서 불교의 기초지식을 섭렵하면서 수도하다가 다른 세계에 대한 관심으로 노령 시베리아 등지를 여행하기도 하였다. 귀국 후 1905년 다시 설악산 백담사로 들어가 속세와 인연을 끊고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1910년 당시 모순과 부패가 만연하던 한국불교의 상황을 개탄하면서 개혁방안을 제시한 실천적 지침서인 《조선불교유신론》을 백담사에서 탈고하였고, 그것을 1913년 발간함으로써 불교계에 일대 혁신운동을 일으켰다. 1914년 4월에는 고려대장경을 독파하고 《불교대전》을 간행하였으며, 1918년에는 본격적인 불교잡지 <유심(惟心)>을 발간하였다. 1919년 천도교, 기독교, 불교계 등 종교계를 중심으로 추진된 3.1운동 계획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고, 불교계측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는 일도 맡았다. 1919년 7월 10일에는 경성지방법원 검사장의 요구로 ‘조선독립에 대한 감상’이란 논설을 집필하여 명쾌한 논리로 조선독립의 정당성을 설파하였다. 3.1운동 때문에 감옥에 갔다가 석방된 뒤에도 전국적으로 확산된 물산장려운동을 지원하고, 민족경제의 육성과 민족교육을 위한 사립대학 건립운동에 앞장섰다. 창씨개명 반대운동, 조선인 학병출정 반대운동 등을 펴기도 했다. 1944년 6월 29일 그토록 그리던 조국광복과 민족독립을 눈앞에 두고 입적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는 뜻으로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

저자 : 이상화
1901년 대구에서 부친 이시우와 모친 김신자의 2남으로 출생했는데, 가정은 부유했으나 7세 때 부친이 별세해, 어머니의 인자하고 후덕한 성정과 백부 이일우의 엄격한 훈도 밑에서 성장했다. 백부 이일우는 인품과 재력을 갖추었으며, 민족정신을 선도하고 국민 계도에 앞장선 지사로서, 이상화로 하여금 가내에 설치한 사숙에서 한문 수업을 받게 했다. 백부를 통해 이상화는 민족의식을 함양하고 많은 감화와 영향을 받았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상화의 형인 이상정이 독립 운동가로 활동하게 된 것 또한 이러한 가계의 영향이라 볼 수 있다. 이상화는 17세에 현진건, 백기만, 이상백 등과 함께 대구에서 ≪거화(炬火)≫라는 습작집을 프린트판으로 발간했다고 하나 전하지 않는다. 1919년 3·1운동 때에는 대구에서 백기만과 더불어 독립운동 거사 모의에 참여하나 사전에 누설되어 서울로 피신, 박태원의 하숙에 기거하게 된다. 이해 10월 서한보의 장녀 서온순과 결혼했다.1922년, 빙허 현진건의 소개로 ≪백조(白潮)≫ 동인이 된 이상화는, 시 <말세의 희탄> <단조> <가을의 풍경> <To___> <나의 침실로> <이중의 사망> <마음의 꽃>을 게재하게 된다. 이들 시에는 식민지의 암울한 시대 현실에서 오는 좌절, 권태, 우울, 애수 등이 불덩이 같은 정열로 분출되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다. 이상화는 열린 세계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프랑스 유학의 기회를 얻기 위해 도일했는데 도쿄 체류 기간인 1923년, ≪백조≫ 3호에 발표한 <나의 침실로>는 문단에 대단한 주목을 불러일으킨다. 상화의 <나의 침실로>는 “낭만적 상상력과 유미주의의 극한” 또는 “낭만적 에로티시즘의 정화” 또는 한국 데카당스 문학의 전형으로 미학적 성공을 거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이 시에는 당시 이상화가 대구에 본처를 둔 상태로 유보화와 사랑에 빠진 일 등 20세 초 청년기에 체험한 사랑과 열정, 일제의 질곡 속에서 느낄 수밖에 없었던 강박 관념, 불안 심리, 성애의 원죄 의식이 상징적으로 표출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후 백조기에는 ‘데카당이즘’으로 깊이 빠져들게 되면서 절망을 다룬 시편들을 주로 창작한다.1923년 9월 발생한 관동대진재로 1924년 봄, 유학을 포기하고 귀국한 이상화는 1925년 2월, 무산 계급 문예 운동 단체인 ‘파스큘라’에 참석하고, 1925년 8월 결성된 카프에 가담하면서 창작기의 절정기를 이룬다. 이상화는 1925년부터 1926년 사이에 시 34편, 평론 7편, 단편 2편, 감상문 4편 등 50여 편의 각종 시문을 남겼다. <가장 비통한 기욕> <이해를 보내는 노래> <빈촌의 밤> <조소> <가상> 등에는 일제의 압제와 착취 아래서 신음하는 조선인들의 빈궁상을 보여 주면서 당대 현실의 모순과 저항의식을 비유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상화는 <무산 작가(無産作家)와 무산 작품(無産作品)>과 같은 급진적인 평론을 발표하기도 했으나 카프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지는 않았다고 본다. 이렇게 이상화의 한계 지워진 계급투쟁 의식은 <가상> <조소> <폭풍우를 기다리는 마음> <비를 다고!>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등에서 살펴볼 수 있다.1926년 가을, 연인이었던 유보화가 폐병으로 사망하자 1927년, 이상화는 향리인 대구로 낙향해 카프나 중앙 문단과는 거리를 두게 된다. 서울 생활을 청산한 이상화는 대구에서 실의와 절망의 나날을 보내며 애정 행각을 벌이고 창작 활동을 하지 못해 작고하기까지 14년간 침묵기로 진입하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도 1928년 6월,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신간회에서 출판 간사직에 있던 이상화는 여러 차례 가택 수색을 당하고 구금되기도 했다. 낙향기에서 보여 주는 이러한 침체는 그가 처한 환경의 변화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이상화가 1934년 ≪조선일보≫ 경북 총국을 경영했으나, 1년 만에 문을 닫은 것도 실의와 좌절의 한 요인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1937년 3월부터 약 3개월간,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형 이상정 장군을 만난 후, 이상화는 새로운 의식으로 전환해, 교남학교에서 영어와 작문을 가르치면서 사회에 봉사하게 된다. 이에 대륜중학의 건립에 이상화의 숨은 공로가 지대했다고 전한다. 이상화의 이러한 사회적 헌신은 미래의 인재를 양성함으로써 모든 것을 잃어버린 민족의 광복을 성취하고자 하는 안타까운 충정에서 비롯했다고 본다. 그의 아호 ‘백아(白啞)’는 어둡고 불구적인 식민 치하의 고통을 실의와 자조로 표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1940년, 이상화는 사회적 활동을 그만두고 칩거하며 춘향전 영역, 국문학사, 프랑스 시 평역 등을 시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다. 1943년 4월 25일, 불치의 병 위암으로 투병하다가 타계한다.

  목차

프롤로그 004

김영랑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014
숲 향기 숨길 016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018
오월 020
꿈밭에 봄 마음 022
물 보면 흐르고 024
모란이 피기까지는 026
다정히도 불어오는 바람 028
외론 할미꽃 030
황홀한 달빛 032
내 마음을 아실 이 034
눈물에 실려 가면 036

김소월
먼 후일 040
꿈으로 오는 한 사람 042
눈 오는 저녁 044
못 잊어 046
금잔디 048
드리는 노래 050
비단 안개 052
마음의 눈물 054
엄마야 누나야 056
눈물이 쉬루르 흘러납니다 058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060
진달래꽃 062
천리만리 064
강촌 066

윤동주
별 헤는 밤 070
서시 072
눈 074
둘 다 076
반딧불 078
봄 080
애기의 새벽 082
참새 084
새로운 길 086
편지 088
빨래 090
무얼 먹고 사나 092

정지용
향수 096
달 098
이른 봄 아침 100
별 102
유리창 1 104
호수 1 106
고향 108
별 110
종달새 112
바람 114

권태응
감자꽃 118
가을 새벽 120
구름을 보고 122
도토리들 124
어느 날 눈을 감아 보고는 126
겨울나무들 128
시계 130
어린 보리싹 132
뻐꾹새 134
봄날 136
코록코록 밤새도록 138
꽃시계 140
재밌는 집 이름 142

이상화
단조 146
파란 비 148
농촌의 집 150
달밤 152
가을의 풍경 154
바다의 노래 156
비 갠 아침 158
어머니의 웃음 160
달아 162
비를 타고 164
무제 166

한용운
해당화 170
비 172
참아 주셔요 174
꿈 깨고서 176
님의 얼굴 178
꽃이 먼저 알아 180
후회 182
쾌락 184
어디라도 186
하나가 되어 주셔요 188
첫키스 190
님의 침묵 192
사랑하는 까닭 194
달을 보며 196
사랑의 존재 198

이육사
청포도 202
바다의 마음 204
광야 206
호수 208
자야곡 210
교목 212
절정 214
꽃 216
말 218
강 건너간 노래 220
춘추삼제 222
광인의 태양 224
산 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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