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현대 영미권을 대표하는 정교회 신학자인 존 베어가 그리스도교 신학의 출발점, 그리하여 신학함의 의미를 근본적으로 되묻는 책이다. 오리게네스와 이레네우스, 니사의 그레고리우스와 같은 교부들의 권위 있는 원전 비평판을 작업한 교부학자이자 신학자로서 그는 『니케아로의 길』과 『니케아 신앙』와 같은 책으로 대표되는 그리스도교 신학의 형성을 다시 검토하는 책을 내놓은 바 있다. 『그리고 신학이 시작되었다』는 그러한 작업을 압축해 보여주는 요약판임과 동시에 그러한 작업이 지향하는 바를 드러낸 책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존 베어는 신학이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는가를 두고 오늘날의 신학 전반에 조용하지만 날카로운 물음을 던진다.
그에 따르면 현대 주류 신학은 대체로 이렇게 움직인다. 삼위일체론과 그리스도론이라는 신학공식을 먼저 주어진 것으로 놓고, 성서를 창조에서 타락, 구원사의 전개, 성육신, 수난, 부활, 재림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시간적 서사로 읽는다. 이 구도 안에서 십자가는 일종의 중간 사건이 되고, 성육신은 수난보다 앞서는 독립적 출발점이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베어는 멈추어 서서 묻는다. 과연 이것이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사유한 방식인가? 그들은 신학적 사유를 이러한 방식으로 전개해 나갔는가? 더 나아가 이것이 신학적 사유를 하는 올바른 길인가?
그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답한다. 제자들은 예수와 함께 걷고, 기적을 목격하고, 변화산에서 그 영광을 바라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수난의 순간 모두 그를 떠났다. 심지어 베드로는 그를 알지 못한다고 부인했다. 그들이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로 알게 된 것은 수난 이후였다. 부활하신 주님이 엠마오로 가는 길에 두 제자 곁에 다가왔을 때, 그분은 모세와 모든 예언자로부터 시작하여 그리스도에 관한 성서의 말씀들을 풀어주셨고, 빵을 나눌 때 비로소 그들의 눈이 열렸다. 그리고 그분은 곧 사라지셨다. 이 장면이 신학의 원형이라고 베어는 말한다. 신학은 수난을 출발점으로 삼아, 뒤를 돌아보며, 그 분으로 성서를 다시 읽는 행위로부터 시작된다.
출판사 리뷰
신학의 시금석은 수난이다.
현대를 대표하는 정교회 신학자가 제시하는 신학의 회복
『그리고 신학이 시작되었다』는 현대 영미권을 대표하는 정교회 신학자인 존 베어가 그리스도교 신학의 출발점, 그리하여 신학함의 의미를 근본적으로 되묻는 책이다. 오리게네스와 이레네우스, 니사의 그레고리우스와 같은 교부들의 권위 있는 원전 비평판을 작업한 교부학자이자 신학자로서 그는 『니케아로의 길』과 『니케아 신앙』와 같은 책으로 대표되는 그리스도교 신학의 형성을 다시 검토하는 책을 내놓은 바 있다. 『그리고 신학이 시작되었다』는 그러한 작업을 압축해 보여주는 요약판임과 동시에 그러한 작업이 지향하는 바를 드러낸 책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존 베어는 신학이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는가를 두고 오늘날의 신학 전반에 조용하지만 날카로운 물음을 던진다.
그에 따르면 현대 주류 신학은 대체로 이렇게 움직인다. 삼위일체론과 그리스도론이라는 신학공식을 먼저 주어진 것으로 놓고, 성서를 창조에서 타락, 구원사의 전개, 성육신, 수난, 부활, 재림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시간적 서사로 읽는다. 이 구도 안에서 십자가는 일종의 중간 사건이 되고, 성육신은 수난보다 앞서는 독립적 출발점이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베어는 멈추어 서서 묻는다. 과연 이것이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사유한 방식인가? 그들은 신학적 사유를 이러한 방식으로 전개해 나갔는가? 더 나아가 이것이 신학적 사유를 하는 올바른 길인가?
그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답한다. 제자들은 예수와 함께 걷고, 기적을 목격하고, 변화산에서 그 영광을 바라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수난의 순간 모두 그를 떠났다. 심지어 베드로는 그를 알지 못한다고 부인했다. 그들이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로 알게 된 것은 수난 이후였다. 부활하신 주님이 엠마오로 가는 길에 두 제자 곁에 다가왔을 때, 그분은 모세와 모든 예언자로부터 시작하여 그리스도에 관한 성서의 말씀들을 풀어주셨고, 빵을 나눌 때 비로소 그들의 눈이 열렸다. 그리고 그분은 곧 사라지셨다. 이 장면이 신학의 원형이라고 베어는 말한다. 신학은 수난을 출발점으로 삼아, 뒤를 돌아보며, 그 분으로 성서를 다시 읽는 행위로부터 시작된다.
신학은 수난의 빛 안에서만, 그것도 뒤를 돌아보는 방식으로만 올바르게 이루어진다고 그는 강조한다. "성육신"이라는 말도,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이가 하느님의 아들임을 알게 된 것도, 수난 이후의 고백이다. 십자가와 부활은 두 개의 사건이 아니라 하나의 신비이며, 그리스도의 신비란 바로 이 역설, 죽음 속의 생명, 약함 안에 드러난 권능, 종의 형상으로 나타난 하느님의 영광을 가리키는 말이다.
베어는 이 통찰을 순교자 이그나티우스, 리옹의 이레네우스, 테르툴리아누스, 니사의 그레고리오스, 사르디스의 멜리톤, 오리게네스, 고백자 막시무스, 오리게네스와 같은 교부들과의 치밀한 대화 가운데 펼쳐낸다. 성서 해석과 교의학, 전례학과 성상학을 가로지르며,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일관된 신학적 시선으로 수렴됨을 보여준다. 그 시선은 곧 십자가에 달리신 분, 그분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이다.
신학이 파편화된 오늘, 성서학과 교부학과 조직신학이 각자의 언어로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는 이 시대에, 베어는 그 모든 분열의 뿌리가 출발점의 상실에 있다고 진단한다. 그리고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신학함(성서를 그리스도의 수난이라는 렌즈로 읽고, 그 안에서 하느님의 변모시키는 능력을 성찰하는 것)으로 돌아갈 것을 제안한다. 이는 복고가 아니라 회복이다. 근대 이전의 통찰을 신중하게 재전유함으로써, 오늘의 신학이 잃어버린 통합과 생명력을 되찾으려는 시도다.
『그리고 신학이 시작되었다』는 신학이 어디서 시작하는지를 다시 묻는다. 그리고 그 답을 찾는 과정에서, 신학이란 무엇인지, 성서를 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에 관한 오래된 물음들이 새롭게 살아난다. 신학을 처음 배우는 이에게도, 신학의 길에 지쳐 출발점을 잃어버린 이에게도, 이 책은 엠마오로 가는 길 위의 낯선 동행자처럼 불쑥 다가와 말을 건넨다. "그리스도가 마땅히 이런 고난을 겪고서, 자기 영광에 들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처음 세 편의 복음서, 즉 공관복음은 그리스도의 삶과 그분이 제자들을 어떻게 대하셨는지 묘사한다. 거기서 가장 놀라운 부분을 꼽자면 한동안 그리스도와 동행했으면서도, 그분이 기적들을 일으키고 다볼산에서 변모한 모습을 보았으면서도, 그분에게 온갖 거룩한 가르침을 들었으면서도, 그분이 십자가에 달리시자 모든 제자가 그분을 버렸다는 사실이다. 요한복음서에서는 사정이 좀 다르나(이 차이점은 이 장 끝에서 다시 다룬다) 마태오, 마르코, 루가가 전하는 공관복음에서 제자들은 그리스도를 버린다. 베드로는 심지어 그를 알지도 못한다며 부인한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제자들은 예수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던 것일까?
제자들이 두려움에 떨며 은밀히 모임을 이어 가자 다른 이들은 그리스도를 박해했던 대로 그들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박해자 중에서도 가장 열을 낸 인물은 훗날 사도 바울이 된 사울이었다. 사도행전은 사울이 다마스쿠스로 가던 중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전한다. 그는 번쩍이는 빛을 보고 쓰러졌고 이런 음성을 들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사도 9:4)
사울이 누구냐고 묻자 목소리는 답한다.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사도 9:5)
여기서 예수는 자신을 박해받는 교회, 곧 자신의 몸과 동일시한다. 그리고 예수를 심판하고 못 박는 이들에게 희생자인 그분이 구원자로서 되돌아오는 것과 같이, 사울은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로서 박해받던 아나니아를 통해 다시 보게 되고 세례를 받는다. 이후 그는 사도 바울로서 선교 여행을 떠나 그리스도를 선포한다.
복음서 저자들이 복음서를 쓰기도 전에 기록된 사도 바울의 편지들에는 그리스도 신앙에 관한 가장 이른 진술들이 담겨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중대히 여길 만한 진술을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에서 찾아볼 수 있다.
나도 전해 받은 중요한 것을 여러분에게 전해 드렸습니다. 그것은 곧,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과, 무덤에 묻히셨다는 것과, 성경 말씀대로 사흗날에 살아나셨다는 것과, 게바에게 나타나시고 다음에 열두 제자에게 나타나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1고린 15:3~5)
여기서 가장 중요한 표현은 사도 바울이 두 번이나 반복한 “성경대로”라는 말이다. 이 표현은 너무나 중요하기에 모든 정교회 세례성사 예식과 성찬 때 낭송되는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
경에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경대로 죽으시고 부활하셨나이다.
여기서 말하는 ‘성경’은 마태오, 마르코, 루가, 요한복음서가 아니다. 바울이 이 진술을 남겼을 때 네 복음서는 쓰이지 않았다. 즉, 이때 성경은 오늘날 우리가 구약이라고 부르는 율법, 시편, 예언서다.
제자들은 수년 동안 그리스도와 함께 지내며 가르침을 받고 놀라운 행적도 보았으나 그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스도가 누구이며 무슨 일을 하셨는지 그들이 깨달은 시점은 그분의 수난, 곧 십자가 처형과 부활 이후였다. 그리고 그들은 성경으로 되돌아감으로써 이를 깨달았다.
당신의 거룩한 자를 무덤 안에서 썩어 가도록 버려두지 않는(사도 2:25~32, 시편 16:10) 하느님께서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옹호하신 일은 십자가 위에서 치러진 예수의 죽음을 시야에서 치워주거나 제쳐 놓도록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죽음을 주님께 속한 죄 없는 종이 자발적으로 이룬 자기 봉헌으로, 동정녀가 낳은 분이 십자가 위에서 죽음을 정복하는 사건으로 볼 수 있게 해 준다. 빈 무덤은 십자가 위에서 이루어진 승리를 확증한다. 이사야가 말했던 받들어 높임, 곧 그리스도가 영광 가운데로 들어 올려지는 일은 곧 살펴볼 요한복음서의 진술에 담겨 있듯 바로 그분이 십자가에 달리는 일이다. 이미 언급했듯 십자가 처형을 담은 초기 도상들은 십자가 위에서 살아 계시는 승리의 주님을 그리는데, (『라불라 복음서』 속 도판과 같이, 그림 1(33쪽) 참조) 빈 무덤곁에 경비병들이 기절해 있는 모습과 부활한 그리스도가 몰약을 든 여인들을 맞이하는 순간으로써 넌지시 가리켜지는 부활을 한 화면에 함께 묘사한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그린 도상들(이에 관해서는 나중에 더 이야기할 것이다)이 나타나기 시작하고서도 한 세기 이상이 지난 9세기가 되어서야 그리스도는 십자가 위에서 죽어있는 사람답게 묘사되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그릴 때조차 비잔틴 성화에서는 십자가 위 명패를 “영광의 주님”으로 바꿔 적는 경우가 많았다. 말하자면 성주간의 다양한 예식들, 또 십자가 처형과 부활을 그린 성화들이 주님의 수난이 발하는 순백의 빛을 굴절시켜 다채로운 색으로 드러낼지언정, 파스카가 기념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십자가 위에서 이룬 이 승리인 셈이다. 그 시기를 지내며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죽음으로 죽음을 짓밟으셨
다고 끊임없이 노래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죽음으로 죽음을 정복하신다. 다른 길은 없다.
사람들은 흔히 이 구절을 하느님의 특별한 계시나 올바른 신학없이 오직 ‘자연’ 그 자체를 통해 하느님을 아는 지식에 닿을 수 있다는 ‘자연 신학’의 근거로 여기곤 한다. 하지만 바울이 끌어내는 결론은 정반대이다. 자연은 하느님께 이르는 통로가 아니라 “핑계를 댈 수 없”(로마 1:20)게 하는 고발장이다. 그들은 자연을 통해 하느님을 알 수 있었음에도 창조주가 아닌 피조물을 떠받들었다는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오직 지나온 과거를 되짚어 볼 때에만 피조 세계 전체에 아로새겨진 하느님의 권능을 십자가의 형태로 알아볼 수 있다. 순교자 유스티누스Justin Martyr가 지적했고 숱한 이들이 반복했듯 십자가의 형태는 로마 군대의 깃발이나 인간 얼굴의 구조를 비롯해 온 세상 어디에나 있다.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역사 한가운데서 당신을 드러내신 바로 그 순간, 곧 십자가 수난의 자리에 서서 지나온 시간을 되짚어 볼 때에만 피조 세계는 오직 그분에 의해, 그분을 위해 창조되었으며 세상의 모든 역사가 그분의 섭리 아래 이끌려 왔다고 고백할 수 있다. 신학의 언어로 말하자면, 창조와 역사는 그리스도의 수난에서 시작된다. 단번에 영원히 이루어진 이 활동에서 출발해 뒤를 돌아보고 앞을 내다볼 때, 만물을 십자가의 빛에 비추어 바라볼 때 우리는 저 수난 활동이 만물을 새롭게 빚어내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존 베어
영국의 정교회 사제이자 신학자, 교부학자. 그리니치 대학교 런던 템즈 폴리테크닉에서 공부하고, 칼리스토스 웨어 주교의 지도 아래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동방 그리스도교 연구로 석사M.Phil.를, 리옹의 이레네우스와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Ph.D.를 받았다. 이후 1995년부터 성 블라디미르 신학교에서 교부학을 가르쳤으며 2001년 사제 서품을 받았다. 2020년 애버딘 대학교 레기우스 인문학 석좌교수로 임명받아 현재도 활동 중이다. 성 블라디미르 신학교 출판부에서 펴내는 교부 총서Popular Patristics Series 편집장을 20년간 맡았으며 2025년에는 교부 연구에 관한 업적을 인정받아 영국 학술원 회원으로 선출되었다.그리스도론, 삼위일체론 등의 교리가 4세기 공의회에서 갑자기 출현한 것이 아니라,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수난 사건을 통해 구약성서를 새롭게 읽어 나간 초기 공동체의 성서 해석 실천 가운데 점진적으로 형성되었음을 논증했으며, 이 관점에서 쓴 그리스도교 신학의 형성The Formation of Christian Theology 시리즈는 영어권 교부학 연구의 표준 도서로 자리 잡았다. 또한 그가 영역한 오리게네스의 『원리론』On First Principles과 니사의 그레고리우스의 『하느님의 인간의 형상에 관하여』On the Human Image of God 역시 권위 있는 영문 비평판으로 평가받는다. 앤드루 라우스, 데이비드 벤틀리 하트와 더불어 현재 영미권을 대표하는 정교회 신학자로 손꼽힌다.주요 저술로 그리스도교 신학의 형성 시리즈에 속한 『니케아로 가는 길』The Way to Nicaea과 『니케아 신앙』The Nicene Faith, 『리옹의 이레네우스』Irenaeus of Lyons, 『신학자 요한과 그의 부활 복음』John the Theologian and His Paschal Gospel등이 있다.
목차
약어표
서문
1. 십자가를 통하여 - 그리스도와의 만남
죄 없는 희생자의 자발적 고난
십자가를 통해 드러난 하느님
대립하는 것들의 일치
요한복음서
2. 성경들을 탐구하다
과거와 현재의 혼란
성경대로 복음을 이루는 정경과 전통
가설과 잣대
정경, 영감을 받은 성경
사도 전승과 계승
탐구를 이어 가며
3. 이를 위하여 우리는 창조되었다
창조와 구원
창조를 되짚어 보기
“내 능력은 약한 데서 완전하게 된다.”
“이 사람을 보라.”
4. 동정녀 어머니
동정녀 어머니인 교회
교회의 상징인 마리아
무덤과 태 - 성육신의 신비
5. 몸으로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라
몸의 양가성
정념의 양가성
“하느님은 창조하시고, 인간은 창조된다.”
후기: 근대 이후 시대를 위한 근대 이전의 신앙
인물 색인 및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