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조선 시대 전라 감사 이서구(1754~1825)는 새만금 일대가 앞으로 뭍으로 변한다고 예언했다. 그는 ‘수저水低 30장丈이요, 지고地高 30장丈이라’고 했다. 군산과 변산의 앞바다가 30장(약 90m) 깊이로 해수가 빠지고, 해저의 땅이 30장丈 위로 솟구친다는 뜻이다. 호남인들은 새만금 방조제로 바다가 육지로 변하게 되자 이서구의 예언이 맞았다고 놀라워한다.
- ‘새만금 고군산 군도’ 중에서
간물 때였다. 시나브로 바닷물이 빠져나가고, 제부도 들어가는 구불구불한 S 자 포장길은 갈회색 갯벌 위로 은박의 띠처럼 반짝거린다. 바닷물을 상실한 섬은 뭍의 한 팔이 되어 마치 연꽃을 쥐고 있는 듯, 아름다운 풍경이다. 섬은 화성 송교리 해안에서 1.8㎞ 서쪽 지점에 있다. 제부도는 예부터 뭍에서 아득히 바라보이는 섬이란 의미로 ‘저비섬’ 또는 ‘접비섬’으로 불리었다. 조선조 중기 무렵부터 송교리와 제부도를 이어주는 갯벌 고랑을 어린아이는 업고, 노인은 부축해서 애면글면 건넌다는 뜻의 ‘제약부경濟弱扶傾’이라는 말이 전해 왔다. 여기서 ‘제濟’ 자와 ‘부扶’ 자를 따와 ‘제부리濟扶’로 개칭되었다 한다.
이 섬은 하루에 두 차례 바닷길이 열리는, 이를테면 ‘모세의 기적’이 나타난다. 그러나 40년 전만 해도 제부도 사람들은 장화를 신고 갯벌에 빠지면서 뭍으로 건너가곤 했다. 그 뒤 갯벌에 돌다리가 놓이고, 한동안 그렇게 다니다가 1988년 지금과 같은 시멘트 포장길, 즉 바닷속 찻길이 되었다.
-‘뭍에서 아득히 바라보이는 제부도’ 중에서
감금실을 둘러본다. 일제 강점기 시대에 병원장은 징계검속권이라는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환자들을 통제했다. 병원장은 재판 없이 환자들을 감금할 수 있었고 출소 시에는 단종 수술을 시행했다. 암울한 과거사다.
1935년에 건축된 옆의 검시실로 간다. 방 한가운데 돌로 만든 검시대가 놓여 있다. 한센병 환자가 죽으면 누구든지 이곳에서 검시 절차를 거쳐 화장장으로 옮겨졌다. 입구의 넓은 방은 검시실, 안쪽 방은 영안실로 사용됐다. 그래서 소록도 한센병 환자는 일생에 세 번 죽는다고 한다. 한센병이 확진되면 한 번 죽고, 검시실에서 해부하면서 두 번 죽고, 그 후 화장을 하면서 세 번을 죽는다고 한다. ‘태어나지 마라, 죽기가 괴롭다. 죽지 마라, 태어나기가 괴롭다’는 어느 고승의 전언이 귀를 파리하게 한다. 그러한데 한 생에 세 번씩이나 죽었으니, 얼마나 괴로웠겠는가.
-‘슬픈 작은 사슴의 섬, 소록도’ 중에서
작가 소개
지은이 : 김찬일
영남대학교 철학과와 영남대 교육대학원, 계명대학교 정책대학원을 졸업하고 중등학교 교장으로 퇴직했다.[문학사랑]에서 시·수필 부문으로 신인상을 받으며 창작활동을 시작했다.지은 책으로는 시집 『꽃지에서 몽산포까지』 등 3권과 수필집 『살아있는 유적』, 『숨쉬는 맥박』이 있으며, 교원문학상과 무일불교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매일신문에 여행 답사기를, 영남일보에 ‘김찬일의 방방곡곡 길을 걷다’를 6년째 연재하고 있으며, 현재 대구힐링트레킹 회장으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