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책머리에
2016년 어느 화창한 봄날 아침, 집 가까이 있는 금강공원을 산책하고 있었다. 벚꽃은 흐드러지게 피었고 목련도 새악시 같은 자태로 활짝 웃고 있었다. 봄꽃에 취해 걷고 있는데 휴대폰에 문자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열어보니 공무원 연금공단에서 ‘자서전 쓰기’를 개강한다는 알림이었다. 5월 30일에 시작하여 10월 31일까지 주 1회로 20차 강의였다.
내가 무슨 자서전을 쓰나? 무슨 유명인사라도 되는가? 나에겐 상관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에는 우리 교회에서 열었던 <문예교실>에서 글쓰기를 배우기는 했으나 나는 열매를 거두지 못했다. 남편은 이번 기회에 다시 시작하여 흘러간 이야기들을 불러 모으라고 권했다. 어렵다고 생각하지 말고 가까운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한 글자 한 문장을 적어가면 한편의 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게도 할 이야기는 있을 것 같아 용기를 내어 수강 신청을 했다. 개강하는 날, 좌천동 상록회관 10층 ‘연금 가족 아카데미’에는 30여 명의 지원자가 모였다. 지도교수는 부경대학교 박양근 교수님과 김정화 선생님. 교제도 받고 ‘내가 나에게 길을 묻다’라는 주제로 공부를 시작했다. 선생님은 수필처럼 쓰면 자서전이 된다고 말했다. 한참 글쓰기 공부를 하다가 ‘내 글을 누가 읽어 볼 거라고?’ 하면서 다시금 뒷걸음질 생각이 들었으나 열심히 하는 동료들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조금씩 생각이 열리고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김 교수님도 우리의 글을 첨삭해주며 자상하게 지도해 주었기에 나는 한편의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글쓰기는 여전히 어려운 작업이었다. 글쓰기는 자기를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한 번도 대면하지 못했던, 웅크리고 있던 자아와 마주치는 순간, 당황스럽고 부끄럽고 혼란스러웠다. 그동안 묻어두었던 가슴 뻐근한 기억들, 지금은 아련한 그리운 시절의 이야기, 여기까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마침내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그동안 써온 수강생들의 글을 한편씩 모아 내가 나에게 길을 묻다라는 문집도 만들어주었다. 내가 쓴 글이 들어간 책이 나오다니! 생각하면 내가 살아왔고 살아가는 모든 것은 주님의 은혜였다. 나는 누구인가? 오늘도 나는 길을 묻는다. 길을 묻는 것은 인생을 살아가는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해방둥이인 내가 벌써 팔순을 맞았다. 그동안 써 놓은 글들을 한데 모아 조그만 책으로 펴낸다. 돌아보면 기쁘고 즐겁고 슬프고 보람찬 날들-묻어두어야 할 부끄러운 흔적들을 ‘자서전 쓰기’의 핑계로, 팔순이란 나이를 앞세워 여기에 옮겨놓는다.
2025년 7월 10일
강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