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식민지 조선 사회에서 사회주의는 혁명가들의 이념만은 아니었다. 사회주의(마르크스주의)는 단순히 현실 지향의 이념뿐만이 아니라 “근대적 합리성과 과학성, 체계성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근대의 적자”라고도 할 수 있다. 많은 이들에게 민족, 정신이라는 비과학적 대상이 아니라, 사회, 경제, 하부구조 등을 중요한 분석틀로 제시하는 마르크스주의의 방법론은 근대성의 표상으로 다가왔다고 할 수 있다. 한국 근대문학에서 사회주의는 근대성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문학과 예술을 추구하는 청년들은 누구보다도 더욱 민감한 감각을 가진 자들이다. 문학을 통해 보편성을 추구하던 청년 문인들은 식민지 현실과 동족의 고난에 아파하며 그들의 해방을 위한 정치로서의 문학을 적극적으로 추구했다. 이 책에서는 사회주의 사상을 받아들인 식민지 청년들, 그중에서도 문학과 예술 분야에서 활동한 조선 청년들의 문화적 실천을 카프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출판사 리뷰
카프를 ‘딛고 넘어’
한국 근대문학에 미친 사회주의의 영향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하여
한국문학·예술사에서 카프를 빼고는 논하기 힘들다. 그만큼 카프가 한국 사회주의문학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압도적이다. 그런데 바로 그 때문에 사회주의문학이 카프를 통해서만 논의되었고, 이는 사회주의가 한국 근대문학에 끼친 영향을 단순화해버렸다. 다시 말해, 카프는 한국 사회주의문학에 대한 논의에서 해명해야 할 가장 중요한 조직인 동시에 그 존재 자체가 사회주의문학의 다양한 스펙트럼에 대한 논의를 가로막는 장애가 되어왔다. 따라서 한국의 근대문학·문화에 끼친 사회주의의 영향에 대한 온전한 이해는 카프를 ‘딛고 넘어갈’ 때에만 가능하다.
이 책은 카프 소속 작가의 비평론과 작품을 중심으로 한 단선적인 문학사 서술이 아닌, 프로문학의 토대라고 할 수 있는 카프 조직에 대해 그 창립 과정 및 당대 실천운동과의 관련성 속에서 종합적으로 살펴본다. 또한 사회주의 여성문학과 동반작가를 포함하여 당대 사회주의‘들'의 다양한 문화적 실상까지 파악한다. 총 5부로 이루어진 구성에서 제1부는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 즉 카프의 성립 과정을 검토하고, 제2부에서는 조선공산당의 설립 및 재건운동과 그 궤적을 함께한 카프에서 헤게모니를 두고 여러 분파가 경합하고 대립한 일을 살펴보며, 제3부에서는 카프의 예술 대중화 논쟁과 연극·영화 분야에서 검열을 돌파하고자 한 다양한 시도를 검토한다. 제4부에서는 카프 중심성에 의해 가려졌던 당대의 사회주의 여성문학을 살펴보고, 제5부에서는 이른바 ‘동반작가’인 유진오의 사례를 통해 카프를 중심으로 한 위계적 인식과 서술을 재고한다.
카프의 문예 대중화 실천
서울을 넘어 지방으로, 문학을 넘어 연극·영화·강연으로
그동안 카프에 관한 연구 및 도서는 문학의 영역에만 치중되었으며, 지역적으로는 경성과 일본지부를 중심으로 서술된 측면이 크다. 대표적인 사례로 카프 동경지부의 임화와 경성 본부의 김기진 사이에서 벌어진 카프 대중화 논쟁에 대한 인식이다. 이 논쟁은 식민지 사회주의 문예운동의 조건과 그 가능성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되었는데, 이를 두고 ‘검열’과 ‘시장’의 관계로만 파악한다면 사회주의 문예운동의 대중화에 대한 논점을 출판 시장과 관련된 문학 영역으로 제한하게 된다.
카프가 경성과 도쿄를 중심으로 하는 활동상을 보이긴 했으나, 다양한 지역 지부들뿐만 아니라 중국과 소련 등 한인 사회주의운동과의 관련 속에서 문화 실천을 수행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식민지 시기 서울은 물론이고 각 지방에서 많은 예술인들이 극단을 설립하고 소규모의 이동극으로 노동 현장에서 검열에 맞선 활동을 해나갔다. 또한 1920년대에는 사회주의적 문화 실천의 한 양식으로 강연회도 활발하게 개최되었다.
이 책은 1930년대의 카프가 모색했던 사회주의 문예 대중화의 핵심적인 실천적 현장이었던 연극 부분의 변화상을 살펴본다. 특히 진보적인 지방 극단 운동과 ‘신건설사’의 설립 등을 통해 알아본다. 문학 중심, 그리고 서울 문단 중심의 카프 연구의 시야를 영화와 연극 등의 장르로 확장하고, 대구·평양·함흥·개성·원산 등 각 지방의 도시에서 이루어진 실천적 활동을 함께 아우른다.
카프 중심성에 가려졌던 사회주의 여성문학
여성작가의 사회주의문학과 실천
식민지 시기 최대의 예술단체인 카프는 사회주의적 문학 실천에서 매우 중요한 조직이 틀림없지만, 사회주의 문예가 카프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남성 중심적 카프 조직의 특성 속에서 타자화되고 주변화된 여성작가들의 글쓰기와 고투에 대해 이 책은 주목한다. 제4부의 8장과 9장이 바로 그 내용이다.
세브란스병원 간호부양성소 출신의 간호사이자 산파 자격증까지 갖춘 정종명은 고려공산청년회의 조직원이면서 북풍회의 창립 멤버였고, 정우회의 성원이기도 했다. 그는 식민지의 독립과 무산자의 해방을 위한 사회주의운동의 대의에 동참한 적극적인 활동가였는데, 글을 통해 자신의 사상을 전달하는 문필가라기보다는 직접적인 접촉과 강연을 통해 대중을 설득하고 선동한 활동가였다. 1920년대 사회주의운동이 활발히 벌어졌을 때 대중에게 이 사상을 전파하는 강력한 문화적 실천의 한 형식으로 강연을 펼친 것이다. 신문기사로만 확인되는 정종명의 강연 횟수만 해도 70여 회에 이른다.
한국 근대문학사는 남성 중심이었고 여성은 보조적이고 보완적인 존재로 묘사되었다. 사회주의문학에서도 마찬가지였으며, 카프 조직에서도 여성은 군소 작가이거나 스캔들의 소비 대상으로만 소비되었다. 하지만 사회주의 여성작가들은 사회주의운동과 문학의 일선에서 이탈하고 전향한 ‘오빠들’이 떠난 자리에서 마음속 신념을 고수하는 작품을 써갔다. 1930년대 초반 오빠인 임택재와 함께 일련의 사상운동에 참여했고 그 오빠의 죽음 후에는 소설 창작과 비평을 지속했던 임순득은 그 사례에 드는 작가이다. 또한 카프 서기장 임화의 아내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그 자신도 사회주의적 사상을 지니고 실천 활동에도 나섰던 소설가 지하련도 같은 사례의 작가이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정종현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식민지 후반기 한국문학에 나타난 동양론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교토대학 인문과학연구소에서 박사후 연수를 한 후,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HK연구교수와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HK교수를 거쳐 현재 인하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동양론과 식민지 조선문학』(창비, 2011), 『제국대학의 조센징』(휴머니스트, 2019), 『특별한 형제들』(휴머니스트, 2021), 『검열의 제국』(공저, 2016, 푸른역사), 『대한민국 독서사』(공저, 서해문집, 2018) 등이 있고, 역서로는 『제국대학』(공역, 아마노 이쿠오 저, 산처럼, 2017)이 있다.
목차
‘한국 사회주의사상·문화사’ 총서를 출간하며
서론
제1부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KAPF)의 성립
1장 염군사와 파스큘라
2장 나카니시 이노스케와 식민지 조선의 ‘프로문학’
3장 카프 성립 초기의 강령과 조직
제2부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과 조선공산당(재건)운동
4장 엠엘파의 당재건운동과 카프의 변화
5장 ‘서상파’의 당재건운동과 『군기』 사건
제3부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의 해소와 ‘전향’
6장 ‘신건설사 사건’과 카프 해산
7장 식민지 전향소설과 ‘감상록’의 전향 서사
제4부 사회주의 여성문학과 강연이라는 실천
8장 어느 여성 사회주의자의 운동과 ‘돌봄’의 삶
9장 사회주의 여성문학: 오빠들이 떠난 자리
제5부 사회주의‘들’의 문학과 학술
10장 ‘동반작가’, 혹은 복수(複數)의 사회주의문학
11장 식민지적 아카데미즘과 사회주의 학술 402
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