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민병도의 시조는 천둥소리로 와서 백지 앞에 머문다. ‘백지’는 모든 것이 “헛”(「헛,」)되다는 시적 니힐리즘의 최종 단계이자 언어보다 더 멀리 나아가려는 궁극의 목적지다. 시로써 세상을 울리려고 했던 자신의 노력이 헛되다는 것을 깨닫고 무를 의욕하기보다는 차라리 더 이상 아무것도 의욕하지 않는 최후의 시가 ‘백지’로 남는다. 이처럼 그의 시조는 도달할 수 없는 것에 도달하려는 노력이다. 언어를 비판했지만 말을 포기하지 않았던 장자처럼, 그는 침묵을 추구하면서 끝까지 시를 포기하지 않는다. 말로써 침묵에 닿으려는 모순을 그의 시조는 기꺼이 감행한다. 그것은 언어를 넘어서는 언어, 즉 언어가 천둥소리로 돌아감으로써 ‘침묵하는 천둥’이라는 화해 불가능한 단어끼리의 결합을 이룸이다. 요컨대 민병도의 시조가 가리키는 거기에 ‘달’이 있다. 아니, ‘달’이라는 불가시不可視의 공간이 떠오른다.
-신상조의 「작품 해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