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읽으면서 웃었다. 덮고 나서야 알았다. 내 얘기였다는 걸.”
연암의 소설은 풍자로 시작해 인간의 민낯으로 끝난다
★ 교과서 속 고전이 아니라, 지금의 인간과 사회를 해부하는 연암 소설 10편 완역
★ 풍속화·궁중기록화·민화·현대 일러스트 29점 컬러 수록
★ 아들 박종채의 기록과 상세 각주로 작품 너머 ‘인간 박지원’까지 입체적으로 복원교과서 속 연암은 대개 ‘실학자이자 풍자 소설가’라는 단정한 설명으로 지나간다. 그러나 실제의 박지원은 훨씬 더 생생하고, 훨씬 더 위험하고, 훨씬 더 오늘에 가까운 작가다. 그는 18세기 조선을 쓴 것이 아니라, 체면과 허세, 공허한 권위와 행동 없는 지식인을 집요하게 해부했다. 그래서 그의 소설은 고전으로 남지 않고, 지금도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양반전」에서 한 부자는 양반 신분을 사놓고, 그 실체를 알고는 겁을 먹고 달아난다. 「호질」에서는 도덕군자인 척하던 유학자가 호랑이 앞에서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는다. 「허생전」에서는 세상을 뒤흔들 만한 통찰을 가진 인물이 끝내 구조 전체를 바꾸지 못한 채 돌아선다. 이야기의 배경은 조선이지만, 읽다 보면 자꾸 지금의 장면이 겹쳐진다. 실력보다 간판이 먼저 통하고, 책임보다 명분이 앞서며, 허울이 알맹이인 양 유통되는 사회. 양반제도는 사라졌지만, 양반의 얼굴은 형태만 바꾼 채 아직도 살아 있다. 그래서 이 책은 250년 전 이야기에 머물지 않고, 지금 우리의 현실을 정면으로 읽게 만든다.
양반제도는 사라졌지만, 양반의 얼굴은 아직 남아 있다
18세기 조선을 넘어 오늘의 인간과 사회를 해부하는 연암 소설 결정판현대지성 클래식 『양반전·허생전·호질 외』는 바로 그 현재성을 가장 입체적으로 되살린 판본이다. 학계가 공인한 박지원 소설 10편을 한 권에 담고, 텍스트만으로는 멀게 느껴질 수 있는 조선 후기의 세계를 29점의 컬러 이미지로 눈앞에 끌어온다. 풍속화·궁중기록화·민화·현대 일러스트가 어우러져, 독자는 텍스트를 따라가는 데서 멈추지 않고 18세기 조선의 장면 속으로 직접 들어가게 된다. 어린이용 컬러판과 어른용 텍스트북 사이에서, 250년 전의 조선 시대를 오롯이 느껴보고 싶은 어른 독자들을 위한 최초의 컬러 정본이다.
또 다른 강점은 작품 바깥의 박지원까지 함께 읽게 한다는 데 있다. 기존에 한데 묶여 있던 작가의 자서를 각 작품 앞에 되돌려 배치하고, 말미에는 아들 박종채의 기록을 실었다. 덕분에 독자는 이야기 한 편과 함께 박지원이 왜 이런 인물을 불러냈는지, 무엇에 분노했고 무엇을 부끄러워했는지, 어떤 삶을 살아 이런 문장을 쓰게 되었는지까지 자연스럽게 따라가게 된다. 이 책은 작품만 모아놓은 선집이 아니라, 문장 뒤에 숨어 있던 ‘인간 박지원’까지 다시 불러내는 글이기도 하다.
낯선 시대를 끝까지 따라가게 하는 장치도 촘촘하다. 연암의 문장은 날카롭고 빠르지만, 배경지식이 없으면 그 속도가 자주 끊긴다. 이 책은 풍속과 제도, 인물과 표현의 맥락을 짚는 418개의 각주를 통해 그 단절을 메운다. 덕분에 독자는 연암의 비웃음과 통찰을 끝까지 놓치지 않고 따라갈 수 있다. 학생 시절 제목만 외웠던 독자에게는 다시 읽는 즐거움을, 한국 고전을 처음 제대로 읽는 독자에게는 가장 친절하면서도 깊이 있는 입문서 역할을 한다.
정조가 문체반정까지 단행하며 경계했던 연암 박지원의 문장, 조선의 체면과 위선을 웃음으로 해부한 그 문장들을 현대지성 클래식으로 한번 읽어보자.
250년 전 연암이 비웃은 얼굴,
오늘도 낯설지 않다우리는 「양반전」, 「허생전」, 「호질」이라는 제목을 안다.
하지만 연암의 소설은 제목만 알고 지나치기에는 너무 생생하다.
양반 신분을 사놓고 그 실체를 알고는 겁을 먹고 달아나는 부자, 도덕군자인 척하다가 호랑이 앞에서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는 유학자, 세상을 읽는 눈은 탁월하지만 끝내 구조 전체를 바꾸지 못하는 지식인.
이 인물들은 조선 후기의 낯선 등장인물이 아니라, 오늘의 회의실에서도, 조직 안에서도, 어쩌면 우리 자신의 마음속에서도 찾을 수 있다. 타이틀은 탐내지만 그 무게는 지기 싫어하는 사람, 정의를 말하지만 자기 욕망 앞에서는 누구보다 초라해지는 사람, 세상을 꿰뚫어 볼 만큼 똑똑하지만 끝내 현실은 바꾸지 못하는 사람.
연암의 소설이 250년이 지난 지금도 힘을 잃지 않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가 꿰뚫어본 것은 조선이라는 시대가 아니라, 시대가 바뀌어도 좀처럼 달라지지 않는 인간의 허위와 욕망이었기 때문이다.
연암이 벗겨낸 것은 양반이 아니라
인간의 허위였다정민 교수는 연암의 문장을 두고 “한 군데 못질한 흔적이 없는데도 꽉 짜여져 빈틈이 없다. 그의 글은 난공불락의 성채다”라고 평했다.
「양반전」은 그 칼날이 가장 또렷하게 드러나는 작품이다. 빚을 갚기 위해 양반 신분을 파는 가난한 양반, 그리고 그것을 사들인 뒤 증서 속 ‘양반의 삶’을 읽다가 질겁하고 물러서는 부자. 이 짧은 이야기 속에서 연암은 신분제 자체를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권위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소비되며, 사람들은 왜 그 허울에 기꺼이 매달리는지를 정밀하게 해부한다. 양반제도는 사라졌지만, 양반의 얼굴은 형태만 바꾼 채 여전히 살아 있다.
「허생전」은 다른 방향에서 같은 질문을 던진다. 허생은 무능한 인물이 아니다. 그는 단돈 만 냥으로 시장을 흔들고, 국가 경제의 허점을 간파할 만큼 뛰어난 통찰을 지녔다. 그런데도 그의 능력은 끝내 세상을 바꾸지 못하고 허공으로 흩어진다. 연암은 아무리 뛰어난 개인이라도 썩은 구조 앞에서는 무력해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구조를 지탱하는 것이 결국 명분과 체면, 권위의 허상이라는 점까지 함께 드러낸다.
「호질」에서는 그 체면이 가장 극적으로 무너진다. 도덕을 입에 달고 살던 유학자가 사실은 욕망과 위선으로 가득 찬 인간이었음이 드러나고, 그는 호랑이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진다. 우습다. 그런데 그 웃음은 오래가지 않는다. 그 장면이 지나치게 낯익기 때문이다. 연암은 이 작품에서 조선을 풍자하는 척하면서, 사실은 인간 전체를 겨냥한다.
세 작품는 길지 않다. 하지만 짧다고 가볍지는 않다. 타이틀 하나에 사람이 왜 쉽게 흔들리는지, 이름뿐인 권위가 왜 실력보다 먼저 먹히는지, 허위라는 걸 알면서도 사회는 왜 그 가면을 계속 떠받드는지, 연암은 몇 장 안 되는 이야기 속에서 그 민낯을 순식간에 들춰낸다. 책을 덮고 나면 문득 남 얘기가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된다. 체면과 허위가 한 겹씩 벗겨지고 나서야, 한 사람의 진짜 알맹이가 무엇인지 묻게 되기 때문이다. 연암의 소설은 바로 그 질문을 독자 마음속에 오래 남긴다.
문장은 차갑게, 삶은 뜨겁게
연암의 문장을 만든 것은 연암의 삶이었다박지원이라는 이름은 익숙하다. 실학자, 천재 문인, 북학파의 수장. 그러나 그 몇 단어만으로는 지금까지도 독자를 멈칫하게 만드는 그의 예리한 문장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설명되지 않는다. 연암은 한양 노론 명문가의 자제로 태어났지만 지배층이 당연하게 여기는 질서를 끝까지 의심한 사람이었다. 그 시선은 사회가 비천하게 여기는 똥거름장수를 ‘선생’이라 부르고, 양반이라는 이름 뒤에 숨은 허세와 욕망을 끝까지 파헤치게 했다.
청나라 사신단에 동행한 후 쓴 『열하일기』는 집필 단계부터 필사본으로 퍼져나가며 조선 지식사회를 뒤흔들었다. 몰락한 명나라에 대한 의리에 기대어 현실을 외면하던 시대에, 연암은 청의 발전을 인정하며 받아들여야 할 것은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조가 그의 문체를 지목해 문체반정을 단행한 것도 그 문장이 시대의 질서를 흔드는 힘을 지녔기 때문이다.
연암의 문장을 더 깊이 이해하려면 작품 바깥의 삶도 함께 들여다봐야 한다. 그의 차가운 문장 뒤에는 뜨거운 삶이 있었다. 그는 세상의 모순을 익숙한 풍경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조의 부름으로 늦은 나이에 관직에 나아가 자신이 주장한 실사구시와 이용후생의 뜻을 실천하려 했다. 굶주리는 백성을 사비로 구제했고, 아내와 사별한 뒤에는 손수 반찬을 만들어 자식들을 먹였으며, 삶을 마무리할 시점에는 장례를 검소하게 치르라 당부했다. 조선도 양반 계급도 아닌 인간 자체를 꿰뚫은 그의 문장은 관념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현실과 맞부딪치며 살아낸 사람이기에 인간과 사회의 민낯을 이토록 정확히 그려낼 수 있었다.
웃음으로 시작해 우리의 민낯과 대면하다
연암을 다시 읽게 만드는 결정판현대지성 클래식은 현실을 꿰뚫는 연암 소설의 힘을 가장 입체적으로 복원하고, 연암을 새롭게 읽는 방식을 제안한다. 무엇보다 연암 이전에는 어디서도 본 적 없었던 독보적인 소설의 근원이 된 그의 삶까지 파악할 수 있도록 구성에 공을 들였다. 기존에 한자리에 묶어 수록했던 작가의 서문을 각 작품 앞에 배치하고, 말미에는 아들 박종채가 기록한 박지원의 모습을 함께 실었다. 소설을 읽어나가다 보면 연암이 어떤 문제의식을 지니고 살았는지, 왜 이런 문장을 썼는지 그 배경까지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또한 낯선 시대의 장벽 앞에서 독자의 호흡이 끊기지 않도록 풍속과 제도, 인물과 표현의 맥락을 짚는 418개의 각주를 촘촘히 달았다. 또한 풍속화·궁중기록화·민화, 연암이 직접 그린 그림과 현대 일러스트까지 담은 29점의 이미지는 문장으로만 머물던 조선 후기의 풍경을 눈앞에서 생생하게 되살린다.
웃으며 읽기 시작한 연암의 문장은 어느 순간 우리를 멈춰 세운다. 그가 해부한 것은 250년 전 조선의 낡은 제도가 아니라 오늘도 여전히 작동하는 인간의 습성이기 때문이다. 그는 간판이 권력이 되고, 허세가 권위를 대신하는 순간을 정확히 포착했다. 그래서 연암의 소설은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 그가 그려낸 인간과 사회의 구조는 지금도 새로운 양반의 얼굴 속에서 반복되고 있다.

세상은 권세와 이익만을 좇아 벗을 사귄다. 일찍부터 이런 꼴불견을 증오했던 아버지는 아홉 편의 글을 지어 세태를 풍자했다.
- 박종채, 『과정록』(過庭錄) 제1권
선비란 날 때부터 존귀한 존재요, 선비의 마음이 곧 뜻이라네. 그 뜻은 어떠한가. 권세와 잇속을 멀리해 높고 귀하게 되어도 선비 본색 떠나지 않고, 궁핍해도 선비 본색을 잃지 않네. 이름과 절개를 닦지 않고 가문과 지체를 기회로 삼아 조상의 덕만 사고판다면 장사치와 뭐가 다를까. 이에 양반전을 짓는다.
- 양반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