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일제 강점기 조선에 『장한몽』으로 번안 소개되어 ‘이수일과 심순애’ 이야기로 심금을 울렸던 일본 근대 최초의 베스트셀러 소설 『금색야차』가 민음사에서 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되었다. 《요미우리신문》에 연재되며 전 일본인으로 하여금 5년간 아침 신문 배달을 애타게 기다리게 한 이 작품은 청일전쟁의 승리 이후 호황기를 누리며 자본주의의 작동 원리를 체감하기 시작한 근대 일본인의 심상과 풍속을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다.
메이지 30년(1897년), 무사였던 아버지를 여의고 은인인 시기사와 집안에서 살며 학업을 원조받는 학생 하자마 간이치는 그 집 외동딸인 미야에게 푹 빠져 장래를 약속한다. 설날 밤에 열린 어느 놀이 모임에 참석한 미야는 압도적인 미모로 좌중의 시선을 끌고, 부유한 은행가 집안의 아들 도미야마 다다쓰구는 미야를 자신의 신붓감으로 점찍는다. 도미야마로부터 혼담이 오가기 시작하면서 미야의 마음은 갈팡질팡하는 기로에 놓인다.
한편 미야와의 아름다운 미래를 꿈꾸며 학업을 마치면 결혼하리라 굳게 믿었던 간이치는 시기사와 집안과 미야에게 일어난 변화를 서서히 눈치채기 시작한다. 괴로움에 견디지 못한 미야는 어머니와 함께 아타미 온천으로 마음을 정리하기 위한 여행을 떠나고, 뒤늦게 미야를 찾아 아타미를 방문한 간이치는 그곳에서 도미야마와 미야 모녀가 마주치는 장면을 목격하고 마는데….
출판사 리뷰
명대사 ‘김중배의 다이아몬드가 그렇게 좋더냐’로
일제 강점기 조선을 사로잡은
‘이수일과 심순애’ 이야기의 원작
자본주의가 인간의 마음을 재구성하기 시작한
근대 사회의 핵심을 포착한 일본 문학 최초의 베스트셀러
일제 강점기 조선에 『장한몽』으로 번안 소개되어 ‘이수일과 심순애’ 이야기로 심금을 울렸던 일본 근대 최초의 베스트셀러 소설 『금색야차』가 민음사에서 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되었다. 《요미우리신문》에 연재되며 전 일본인으로 하여금 5년간 아침 신문 배달을 애타게 기다리게 한 이 작품은 청일전쟁의 승리 이후 호황기를 누리며 자본주의의 작동 원리를 체감하기 시작한 근대 일본인의 심상과 풍속을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다.
■ “1월 17일이 되면, 반드시 내 눈물이 달을 흐리게 할 테니
간이치가 어디선가 당신을 원망하며 울고 있다고 생각해 주시오.”
메이지 30년(1897년), 무사였던 아버지를 여의고 은인인 시기사와 집안에서 살며 학업을 원조받는 학생 하자마 간이치는 그 집 외동딸인 미야에게 푹 빠져 장래를 약속한다. 설날 밤에 열린 어느 놀이 모임에 참석한 미야는 압도적인 미모로 좌중의 시선을 끌고, 부유한 은행가 집안의 아들 도미야마 다다쓰구는 미야를 자신의 신붓감으로 점찍는다. 도미야마로부터 혼담이 오가기 시작하면서 미야의 마음은 갈팡질팡하는 기로에 놓인다.
한편 미야와의 아름다운 미래를 꿈꾸며 학업을 마치면 결혼하리라 굳게 믿었던 간이치는 시기사와 집안과 미야에게 일어난 변화를 서서히 눈치채기 시작한다. 괴로움에 견디지 못한 미야는 어머니와 함께 아타미 온천으로 마음을 정리하기 위한 여행을 떠나고, 뒤늦게 미야를 찾아 아타미를 방문한 간이치는 그곳에서 도미야마와 미야 모녀가 마주치는 장면을 목격하고 만다.
달빛이 비추는 쓸쓸한 1월 17일의 아타미 해변, 간이치는 그토록 믿었던 미야의 진심을 확인하고자 하고, 미야는 끝내 간이치에게 확답하지 못한다. 이때부터 잔인한 운명의 수레바퀴가 돌기 시작한다. 미야는 사랑하지도 않는 도미야마에게 시집가서 아무런 행복도 느낄 수 없는 결혼생활을 시작하고, 광분한 간이치는 학업도 중단한 채 시기사와의 집을 떠나 고리대금업자의 조수로 살아가며 피도 눈물도 모르는, 돈에 눈먼 ‘야차(夜叉)’가 되고 만다.
■ 책장이 쉼 없이 넘어가는 ‘페이지 터너’이자
근대 최초의 베스트셀러
《요미우리신문》의 신문 연재로 시작된 이 작품은 단행본으로 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연극과 영화로도 수없이 재탄생했다. 당연히 일제 강점기였던 조선에도 이 인기가 전파되어 1913년 《대한매일신보》에 조중환이 번안한 소설 『장한몽』이 연재되고 수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장한몽』의 대히트는 극장으로도 이어져 이른바 ‘신파극’을 탄생시킨다.
재미있는 점은, 사실 『금색야차』에도 원안이 있다는 사실이다. 미타영학교에서 영어를 배워 능통했던 오자키 고요는 19세기 말 영국 여성 작가인 버사 클레이(Bertha M. Clay)의 『여자보다 약한(Weaker than a woman)』에서 대략의 인물과 설정을 가져와서 『금색야차』를 구성했다. 『여자보다 약한』은 당시 유행했던, 여성 독자를 대상으로 저렴한 가격에 팔렸던 ‘다임 노벨(Dime novel)’에 속하는 작품으로, 여성 주인공이 돈 때문에 원치 않는 결혼을 하는 설정은 『금색야차』와 동일하나, 여주인공이 그 불행한 결혼에서 탈출하려는 과정을 담았다는 점에서는 다르다.
이처럼 『여자보다 약한』-->『금색야차』-->『장한몽』으로 이어지는 근대 번역 문학 전파의 과정은 넓게 보아 동아시아 근대 문학 형성 과정의 한 축이기도 했다. 일본 최초의 근대 소설로 일컬어지는 『당대서생기질(當世書生氣質)』의 작가 쓰보우치 쇼요(坪逍遙)도 번역에 몰두했고, 일본 최초 언문일치 소설인 『뜬구름(浮雲)』의 작가 후타바테이 시메이(二葉亭四迷) 역시 러시아 문학을 공부하고 번역하면서 이에 영향받아 소설을 썼다.
서구의 사상과 개념은 동아시아 문화권으로 전달되면서 변이를 일으키는데, 19세기 말 여성의 불행한 결혼생활과 탈출에 초점을 맞춘 『여자보다 약한』은 일본으로 전파된 후 자본이 유교적 질서를 대체하는 차디찬 현실을 담은 『금색야차』가 되었으며, 이것이 아직 유교적 질서가 강하게 남은 조선에 이르자 효(孝)와 권선징악의 테마(가난에 못 이겨 부모의 뜻으로 팔려 가고, 속죄하기 위한 자살 시도 덕분에 해피엔딩을 맞는)를 되살린 『장한몽』이 되었다.
쓰보우치 쇼요로부터 영향을 받아 문학 동인회를 결성하고 본격적인 작가의 길에 들어선 오자키 고요(尾崎紅葉, 1868~1903)는 35세라는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일본 근대 문학의 기틀을 닦은 거인이었다. 그의 위상은 단순히 인기 작가에 그치지 않았다. 당대의 또 다른 거장 고다 로한(幸田露伴)과 함께 ‘고로 시대(紅露時代)’라고 불리는 문학의 황금기를 이끌었으며, 한학의 우아함과 근대 구어체를 절묘하게 버무린 그의 ‘아속절충체(雅俗折衷)’는 일본어가 근대적인 문장으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가장 화려한 꽃을 피운 정점으로 평가받는다. 『겐지 이야기』 같은 일본 중세 문학의 화려한 문장과 세속적 구어체인 언문일치체를 결합한 『금색야차』는 화려하고 우아한 묘사와 심리를 꿰뚫는 긴장감 넘치는 대사로 사건과 사건이 빠르게 이어지면서 책장이 쉼 없이 넘어가는 진정한 의미의 ‘페이지 터너’이자 근대 최초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 “고리대금을 부정하다고 한다면,
그 부정한 고리대금을 만든 사회가 부정한 게 아니겠느냐.”
우리는 흔히 한국의 번안작 『장한몽』 속 심순애를 떠올리며 그녀를 가난과 부모의 강요에 못 이겨 다이아몬드에 팔려 간 가련한 희생자로 기억한다. 하지만 오자키 고요의 원작 속 여성 주인공 미야는 훨씬 냉정하고 현대적인 인물이다. 그녀는 자신의 미모가 가진 교환가치를 본능적으로 자각한다. 또한 간이치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긴 하나, 결혼생활에 대해선 그것과 별개의 생각을 지니고 있다. 미야가 도미야마의 다이아몬드 반지에 흔들린 건 단순한 허영심이 아니다. 그것은 근대 자본주의가 도래하면서 인간의 매력마저 자산으로 평가받기 시작한 시대적 징후였다. 유교적 윤리관인 효(孝)라는 명분 뒤로 숨었던 심순애와 달리, 미야는 자신의 욕망과 시장적 가치를 능동적으로 선택한 근대적 자아의 서늘한 초상이다. 또한 유교적 가치인 의(義)라는 좁은 시야만으로 인생을 재단하는 학생 간이치에 비해, 결혼을 앞둔 미야의 심리와 선택은 현대인의 결혼에 대한 사고방식과 훨씬 흡사하다. 작가는 그녀를 통해 사랑이라는 추상적 가치가 자본이라는 실체적 위력 앞에서 얼마나 무력해질 수 있는지를 냉정하게 관찰한다.
배신당한 엘리트 간이치가 고리대금업자, 즉 ‘야차’가 된 것은 단순한 타락이 아니다. 메이지 유신이 일어난 후 사무라이(무사) 계급은 사족(士族)이라는 이름으로 몰락하며 권력을 잃었고, 사족의 후예이자 고아였던 간이치가 정신적으로 의지할 것은 이제는 사라져 버린 유교적 질서에 속하는 충(忠)과 의(義)의 세계뿐이었다. 그러나 가장 사랑하는 것을 돈 때문에 잃은 그는 그 사상의 대척점이라 할 수 있는 정반대의 길을 걷게 된다. 인간성을 상실한 세상을 향해, 그 세상이 숭상하는 돈이라는 무기로 벌이는 냉소적인 복수다. “인간의 행복은 결코 돈으로 살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절규하면서도, 결국 스스로 고리대금업자가 되어야 했던 그의 모순은 근대화 과정에서 지식인들이 겪었던 실존적 분열을 상징한다.
또한 이 소설에서 가장 자본주의적인 통찰을 보여주는 인물은 고리대금업의 대부 와니부치일 것이다. 그는 아버지의 업(業)을 부끄럽다고 비난하는 지식인 아들에게 이렇게 일갈한다. “고리대금을 부정하다고 한다면, 그 부정한 고리대금을 만든 사회가 부정한 게 아니겠느냐.”
그의 논리는 서늘할 정도로 정교하다. 담보 없는 이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리스크의 대가로 높은 이자를 받는다는 그의 설명은 오늘날의 금융 공학적 시각과도 맞닿아 있다. 와니부치는 도덕이라는 가면 뒤에 숨은 사회의 위선을 폭로한다. 학자가 학문을 탐구하듯 자신은 돈을 벌 뿐이며, 끝없는 욕망이야말로 근대 국가를 움직이는 생명력이라는 그의 선언은 당시 제국주의 일본이 선택한 자본주의의 민낯 그 자체를 보여준다.
『금색야차』가 연재되기 시작한 1897년은 일본이 청일전쟁(1894~1895)의 승리로 거액의 배상금을 챙기며 급격한 산업화와 자본주의의 길로 들어선 후였다. 어제의 무사도 정신이나 유교적 도덕은 당대의 화폐 단위 앞에서 무력해졌다. 전쟁 특수로 생겨난 졸부들이 권력을 휘두르고, 대중은 돈이면 안 되는 게 없다는 배금주의에 매몰되었다. 이 소설은 단순히 한 남자의 복수극을 넘어, 돈이라는 새로운 신(神)이 일본 열도를 습격했을 때 인간의 존엄이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 거대한 사회적 사건이었다.
“내년 1월 17일 밤, 내 눈물로 반드시 달을 흐리게 만들 것이오.”
주인공 간이치가 자신을 버리고 부호를 택한 정혼자 미야에게 내뱉은 이 서슬 퍼런 저주는 일본 근대 문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문장이 되었다. 매일 아침 《요미우리신문》을 통해 전달된 이 절규에 일본 최초의 범국가적 팬덤이 형성되었다. 1월 17일 아타미 해변의 이별 장면은 일본인들에게 일종의 신화적인 풍경이 되었고, 이 저주는 시대의 공포와 환멸을 상징하는 유행어가 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더 이상 다이아몬드 반지 하나에 정혼자를 버리는 것 같은 일에는 그리 경악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딘가의 누군가에게 서슬 퍼런 저주를 퍼붓고 싶을 만큼, 거대한 자본의 힘에 압도당해 살아가고 있다는 점은 여전히 동일하다. 이 소설이 발표된 지 120년이 훌쩍 넘은 지금, 우리는 다시 묻게 된다. 참새에게 한 번에 쌀 한 가마니를 다 먹으라고 하는 것과 같은 과도한 자본의 시대에 우리의 행복은 어디에 머물고 있는가. 간이치의 저주와 미야의 참회는 여전히 우리 곁을 맴돌며 돈보다 소중한 ‘인간의 다정함’이란 무엇인지 묻고 있다.
가운뎃방에 동그랗게 둘러앉아 있는 사람들 속에서 기둥 옆에 자리를 차지한 아가씨는, 무겁게 올린 야회용 머리에 연보랏빛 리본을 장식하고 팥죽색이 도는 쥐색의 비단 하오리를 걸치고 있었다. 그녀는 떠들썩한 주위를 흥미롭다는 듯이 시원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의복을 단정히 하고 있었다. 치장과 용모가 눈에 띄게 빼어나고 심상치 않은 교태를 띠었기에, 그녀를 처음 보는 사람은 누구나 혹시 웃음을 파는 사람이 신분을 거짓으로 꾸민 게 아닐까 하고 의심했다. 첫판의 승부가 끝나기 전에는 미야(宮)라는 그녀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온갖 화려한 차림이 뒤섞여 있었지만, 미야의 옷차림은 겨우 새벽 별빛을 간직한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녀의 흰 피부는 그 어떤 아름다운 염색도 빛을 잃게 했고, 그녀의 단정한 얼굴은 그 어떤 화려한 직물보다 우아했다. 못생긴 사람은 아무리 치장해도 그 추함을 가릴 수 없듯이 그녀는 전혀 꾸미지 않아도 아름다움이 손상되지 않았다.
찻장과 미닫이문 사이의 구석에서 손을 쬐는 작은 화로를 둘러싸고 귤을 까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던 한 사내는 그녀의 옆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신음 같은 소리를 내뱉었다.
“좋다, 좋아, 정말 좋아! 흔히 옷이 날개라고 하지만, 저 아름다움은 옷 때문이 아니네. 그 자체가 아름다운 거지. 옷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 사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아도 되네.”
신사는 나이로 치면 스물여섯이나 일곱 살쯤 되어 보였다. 키가 크고 보기 좋을 만큼 풍채가 좋았으며, 피부는 옥처럼 희고 뺨 언저리에는 옅은 홍조가 돌았다. 이마는 번듯하고 입은 큼직하며, 턱은 좌우로 넓게 뻗어 얼굴 전체가 다소 정사각형에 가까웠다. 느슨하게 물결치듯 파도 모양으로 흘러내린 머리는 왼쪽 귀밑머리에서 일자로 빗어 넘기고, 약간 기름을 발라 정갈하게 매만져 두었다. 진하지 않은 콧수염을 길렀고, 결코 작지 않은 코에는 금테 안경을 걸쳤다. 그는 당당하게 고개를 들어 좌중을 둘러보았는데, 그 모습은 마치 광채를 발산하여 주위를 환히 비추는 듯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오자키 고요
1868년 1월 10일, 현재의 도쿄도인 에도에서 태어났다. 부모와 사별하고 외조부모 밑에서 자랐으며 도쿄부 제2중학교에 진학하여 훗날 작가가 된 고다 로한(幸田露伴)을 동급생으로 만난다. 학교를 중퇴하고 오카 센진의 스이유도에서 한학을, 이시카와 고사이의 에서 한시문을 배웠으며, 미타영학교에서 영어를 배웠다. 1883년 도쿄 대학 예비문에 입학하고, 분유카이, 겐유샤 등의 문학 동인을 결성하여 문예지를 발간하며 본격적으로 문학 창작에 뛰어들었다. 도쿄 제국대학 정치과에 입학했으나 곧 자퇴하고 요미우리 신문사에 입사하여 소설 연재를 시작했다. 『가라쿠라 마쿠라(伽羅枕)』, 『세 아내』, 『다정다한(多情多恨)』 등을 연재하며 높은 인기를 얻었고, 친구인 고다 로한과 함께 메이지 문단의 쌍벽을 이뤘다. 이 시기를 두 사람 이름의 앞글자를 따서 ‘고로 시대(紅露時代)’라고 부른다.메이지 30년인 1897년 1월, 대표작 『금색야차』를 《요미우리신문》에 연재하기 시작했다. 청일전쟁 이후의 사회상을 배경으로 한 간이치와 미야의 사랑과 배신의 이야기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 일본 최초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1903년 『금색야차』의 속편을 연재하던 중, 위암 진단을 받고 10월 30일 자택에서 향년 서른다섯 살의 나이로 별세했다.
목차
전편 7
중편 103
후편 243
속 금색야차 359
속속 금색야차 495
신속(新續) 금색야차 567
작품 해설 600
작가 연보 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