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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아이 뜀틀
문학과지성사 | 부모님 | 2026.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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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무릎을 접었다 펴며 미래에 가까워지는 아이들의 순간을 포착한다. 2024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한 구윤재의 첫 시집 『미래 아이 뜀틀』은 문학과지성 시인선으로 출간되며 55편의 시를 4부로 엮었다.

데뷔 당시 미지의 시간과 감각의 기억을 환기하는 시편으로 주목받은 그는 문지문학상 시 부문 후보에 오르며 꾸준한 관심을 받아왔다. 선선한 감각과 또렷한 시선으로 시절과 대상에 대한 그리움을 새로운 장면으로 구축한다.

가만한 리듬 속에서 단단한 장면을 쌓아 올리는 시편들은 미래와 허무, 기억과 감각을 교차시키며 독자를 이끈다. 청신한 문장과 강단 있는 시선으로 자신만의 시적 세계를 본격적으로 펼쳐 보인다.

  출판사 리뷰

“무릎을 접었다 펴면서
아이들은 미래에 가까워진다”

구름판 위에서 마주한 내일의 낯익은 표정
천진한 다리를 뻗어 뛰어넘는 미래의 허무

가만가만한 리듬 안에서 단단한 장면을 쌓는 구윤재의 첫번째 시집

2024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구윤재의 첫 시집 『미래 아이 뜀틀』이 문학과지성 시인선 632번으로 출간되었다. 데뷔 당시 “누군가에 대한, 어떤 시절에 대한, 미지의 시간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감정이 결국 선명한 감각의 기억일 수밖에 없”(문학평론가 조연정)음을 선선히 환기하는 시편들을 발표하며 “그다음은, 그다음은 기대하면서 따라 읽게 만드는 힘”(시인 임승유)을 입증한 구윤재는 바로 그다음 해 문지문학상 시 부문 후보로 선정되는 등 꾸준한 주목과 사랑을 받고 있다. 뚜렷한 강단과 청신한 문장으로 써 내려간 55편의 시를 총 4부로 나누어 묶은 이번 시집은 그가 오래도록 골몰해온 시적 모티프에 본격적으로 천착한다.

아이들이 달린다.
 
장소를 떠날 때마다 떠난 장소에 나의 부분을 두고 왔다는 생각이 든다. 각각의 장소에서 수많은 내가 여전히 자신의 일을 반복하며 순간순간을 살아내고 있을 것만 같다. [……] 파편이 되어 내가 더 이상 나일 수 없는 그 어딘가에서. 그들이 존재하고 있을 것만 같다.

그렇게 아이들이 달린다.
 
때때로 너무 많은 아이를 두고 왔다는 생각이 든다. 달리면 숨보다 웃음이 먼저 차오르는 아이들에게. 아무도 땅을 외치지 않아서 준비 자세만 반복하던 아이들에게. 이제는 시작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2024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 수상 소감’에서

“달리는 아이들을 보”는 시인의 눈자리는 짐짓 “슬프”지만 그가 정말 “하고 싶은 건 슬픔에 잠기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곁에서 함께 뛰는 것”(2024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 수상 소감)이므로, 그는 ‘땅!’ 하는 구령 소리에 힘찬 첫발을 뗀 『미래 아이 뜀틀』의 아이들과 부지런히 보폭을 맞춘다. “내가 아이가 된다면 모르는 아이를 더 이해할 수 있게 될까”(「ETA」) 하는 섬세한 마음을 안고서.
누군가를 따라잡거나 추월하기 위해 또는 어딘가에 “도달하기 위해”(「모루와 노루」) 달리는 것이 아닐지언정, 아이들의 뛰는 발은 시간의 흐름이라는 필연한 조건 아래 완전한 무목적이 될 수 없다. 그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자각하든 자각하지 않든 “시간과 함께 자라고 있”(「계란후라이는 독립적인 메뉴가 아니다」)는 아이의 달리기는 미래로 향하는 달음질이 된다. 이때 달려오는 아이를 지켜보고 있는 저 앞의 무수한 내일은 ‘뜀틀’을 닮았다. 차곡차곡 포개어진 나무틀의 개수를 세면 뜀틀의 높이와 착지점을 가늠할 수 있듯, “아이의 과거를” 헤아리면 어느새 그 “아이의 미래까지 알 수 있”(「ETA」)기 때문이다. “왜인지 다 보고 온 것만 같”(「팽오레쟁 팔미에 쇼송오폼」)은 미래는 아직 도래하지 않았을 뿐 미지가 아닌 기지의 영역에 있고, “멀리가 그렇게 멀리 있지 않다는”(「티피」) “생각만으로도 어제에 가까워지는 내일”(「목욕」)은 앞을 향해 뛰어나가는 아이의 무릎에 막연하고도 확정적인 “생채기를 낸다”(「유리새」, p. 33).
“이왕이면 그들이 상처라는 걸 모르는 세계에서 살기를 바”(「모델 빌리지」)라지만 아이들의 달리기가 결국 뜀틀을 향한 도움닫기일 수밖에 없음을 아는 시인은 ‘미래 있음’이 그들의 무릎에 남긴 “미래의 흉터를” 깨끗한 “백색의 붕대”(「잔의 형상」)로 감싼다. 환부를 “쓰다듬”고 마무하는 “오목한 손”(「투명한 손길」)의 “희미한 온기” 아래 아이들은 붕대의 “흰을 안고 곤히 잠”(「겨울은 양쪽에서 온다」)든다. 아직 “내일을 믿는” 아이도, “내일의 존재를 믿는” 아이도, “내일이란 게 달라질 거라고 믿는”(「모델 빌리지」) 아이도 잠에서 깨고 나면 이렇게 말하며 다시금 달릴 수 있을 것이다. “내일 만나요”(「당신이 당신에 대해서 모르는 것」).

“가장 완벽한 환영을 갖고 싶어”
―사각 꼴의 가상공간 너머 잔류하는 외로움 발견하기

[……] 지민이는 정글짐을 오가며 여러 방을 만들었어. 아무도 자라지 않고 누구도 떠나지 않아도 되는 집을. 집으로 돌아갈 필요가 없는 집을. [……] 지민이가 성 안에서 귀를 막고 있으면 시소가 기울고 저 멀리 노을이 지고, 어른들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어. 아이들은 방을 두고 골목을 가로질러 집으로 돌아갔어. 실내화 주머니를 휘두르며. 아이들이 다 돌아가고 나면 지민이는 성에서 나와 아이들이 만든 방을 끌어안았어. 인형으로, 여름의 소음으로, 떨어지는 유성으로 가득한 방을. 정글짐은 하나의 성이 되어 성에서 나온 지민이와 가상의 아이들은 승희의 방을, 민주의 방을, 성우의 방을 구경했지. 참 멋진 방이다! 구름 같은 얼굴을 가진 아이들이 말했어. 성우야 너는 정말 늠름하다! 승희야 나도 잠자리채 한번 휘둘러봐도 돼? 지민이는 민주의 인형을 꼭 끌어안고 인형에 고개를 파묻었어. 모두가 웃었어. 정글짐을 돌고 또 돌면서.
모험이 끝나지를 않았어.
그런데 왜 운동장에는 늘 주인을 알 수 없는 실내화 주머니가 남아 있었던 걸까?
―「정글짐」 부분

구윤재의 시에서 아이들은 종종 무언가를 창조한다. 아이는 “원목 엄마? 아빠?/이왕이면 원목 여동생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도끼 쥔 손”으로 “원목 가정”(「원목 연습」)을 만들어내고, “운동장”의 “정글짐”마저 “하나의 성”으로 바꾸어내어 “가상의 아이들”과 함께 “인형으로, 여름의 소음으로, 떨어지는 유성으로 가득한 방을”(「정글짐」) 탐험한다. 아이들은 그것들을 “가진 적 없”기 때문에 외려 그 모든 것을 “만들 수 있다”(「킨츠키 만들기」).
그러나 “무엇 같다는 건 결코 그것일 수 없다는”(「모델 빌리지」) 반증이다. “원목”으로 만든 것들은 머지않아 “썩어버”리거나 “텅 비어버”(「원목 연습」)리고, “저마다의 알 수 없는 방이 되는”(「정글짐」) “네 개의 꼭짓점 그 안에서” 상상으로 만들어낸 친구들의 “이목구비를 찾으려면 한참을 헤매야”(「달리는 미술관」) 한다. 이내 “너를 빚는 연습”(「원목 연습」)을 하는 아이들의 손끝을 바라보던 구윤재의 시선은 금세 허물어짐으로써 찰나의 위안마저 박탈하는 가상의 사각 공간 바깥, 현실이라는 “운동장에” 늘 남게 되는 “주인을 알 수 없는 실내화 주머니”(「정글짐」)에 닿는다. 문학평론가 홍성희가 시집의 해설에서 짚고 있듯 이러한 시인의 눈길은 “환상의 성을 만드는 마음과 그것의 고립을 보는 마음이 중첩하는 상실의 자리”, 즉 “사각형의 사각지대”에 놓인 고립과 결핍을 들여다본다.

“지금의 나나는 아직 몰라. 그러나 미래의 나나는 안다”
―천천히 둥글린 공(空)을 아이에게 넘겨주기

때때로 나나는 등굣길에도 미숙의 미용실에 들른다. 그때 미숙은 어머 얘 봐 또 깔깔 웃으며 나나의 머리를 예쁘게 땋아준다. 미숙은 늘 우리 딸도 너만 할 때가 있었는데 말하고 나만 할 때는 뭘까 미숙의 손길에 꾸벅꾸벅 졸며 나나는 생각한다. 나나는 미숙의 딸이 되고 싶다. 그러나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되는 걸 알 만큼 나나는 영특하다. 슬픈 아이들은 모두 빨리 자라므로. 나나는 미숙과 있을 때 잘 웃지 않고 아니 그냥 나나는 잘 웃지 않는데 때때로 미숙은 나나를 가만히 바라보며 너는 쪼끄만 게 죽상이야? 말한다. 이 말을 할 때 미숙 역시 나나처럼 웃지 않는다. 나나가 죽상이 뭔데요? 물으면 그제야 미숙은 다시 웃으며 너도 애다 애. 그러고서는 다시 작은 텔레비전에 나오는 화난 여자들을 본다.

미숙의 미용실에 가면 나나는 늘 졸리고 조금은 슬픈 마음이 되는데 왜 그럴까. 지금의 나나는 아직 몰라. 그러나 미래의 나나는 안다. 미숙에게는 늘 슬픈 일이 일어날 조짐이 조금씩 보여서 미숙에게 슬픈 일이 일어날까 봐 슬펐던 것이라는 걸. 미숙에게 정말 슬픈 일이 일어날까? 나는 그런 것은 쓰고 싶지 않아. 미숙이 나나를 바라볼 때 하는 생각은 잘 자랐으면 좋겠다 이 아이가 오래 모르는 것이 있으면 좋겠다 하는 것이고 그것은 잘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지금의 나나를 바라보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생각은 전부 미숙의 생각이고 나는 모르는 나나를 데리고 와 나나의 머리를 잘 빗어주고 예쁜 끈으로 묶어주고 싶다. 때때로 미숙이 코에 비밀을 부치며 나나에게 믹스커피를 타주듯이.
―「재앙으로 시작해서 재앙으로 끝나는 영화」 부분

시인은 “순식간에 깨어질 만큼 취약한 방식으로나마 혼자의 시간을 견디는 이들”을 포착하는 데서 나아가 “정글짐의 사각형들과는 달리, 한 사람이 시공간을 완전하고 아름답게 통제하는 방식으로 연결되지 않는”(문학평론가 홍성희) 새로운 장소를 구상한다. 그곳에서 아이인 ‘나’는 주위 어른들의 얼굴을 통해 한때 아이였던 ‘나’, 즉 ‘나’의 “한 갈래 미래로서”(「나나에서 나나에게」)의 ‘나’와 조우한다. 다만 “나라는 호칭에는 너무 확실한 자아가 있”기에 “나는 나를 다르게 부르기로 한다 이를테면//나나”(「레몬 열차를 타고 떠나」).
‘나’에 ‘나’가 덧붙은 이름의 나나. “해가 지면 혼자가 되어버린다는 것을” “그 어떤 미래보다도 먼저 알”(「나나에서 나나에게」)게 되는 나나. “나나를 마주치면 어른들은 나나를 불러 세”워 “스카치캔디”나 “홍삼캔디”(「더 좋은 기회」) 같은 동그란 알사탕을 쥐여 주고, “나나의 친구”인 미숙은 둥글게 말린 종이컵에 “믹스커피를 타” 내놓는다. 어른들이 나나에게 각자 가지고 있는 둥근 것을 내미는 까닭은 그것이 “지금의 나나를 바라보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나”와 “미래의 나나”(「재앙으로 시작해서 재앙으로 끝나는 영화」)는 “손과 손을 옮겨 가”(「당신이 당신에 대해서 모르는 것」)는 동그라미의 곡면을 따라 잠시나마 서로 만나고, 어김없이 “늘 이렇지, 그럼 그렇지”(「계란후라이는 독립적인 메뉴가 아니다」) 싶은 미래에서도 아무튼 나나는 나나로서 살아가리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아이가 “‘내일’로부터 오는 박탈감”과 “허공을 감싼 외피”를, 그 “둥ㅤㄱㅡㄻ”을 “공처럼 쥐고 던지면서 ‘종결’되지 않는 상실을 일상처럼 돌”(문학평론가 홍성희)볼 수 있도록 시인은 “발끝으로 굴러온 공을/멋쩍은 얼굴로 건”(「당신이 당신에 대해서 모르는 것」)넬 순간을 기다린다. 한 시절과 또 한 시절이 어렴풋하게 교차하는 ‘모래밭’에서, ‘미용실’에서, ‘스포츠센터’ 또는 “모든 것이 이름”인 “이름 없는”(「이름 없는 개」) 어떤 장소에서. 이토록 다양한 형태의 ‘여기’에서. “안녕을 비는” 간곡함을 담아 “발치로 날아온 공을 날려”(「티피」)줄 수 있을 때까지, “너희를 다 구할 때까지” 시인은 바로 “여기 있을”(‘시인의 말’) 것이다.

[……] 이 돌은

나의 고양이를 닮았군 나의 고양이를 닮았다 나의 고양이는 길에서 1년 정도 생활한 것으로 추정되는 아름다운 고양이로 자외선 차단 능력이 없어 삼색으로 곱게 타버린 그러나 살성이 말랑하여 만지면 주르륵 흘러내리던 그 고양이는 해를 너무나도 좋아하여 커튼을 쳐도 커튼 속에 들어가 햇볕을 쬐던 고양이인데 그 고양이는 그렇게 되었다 어느 날 녹아버려 창틀이 되어버린 그리하여 나로 하여금 열 수 있는 창문을 앗아 가버린 못된 삼색 고양이를 닮았다 지금 내 밑에서 꾸벅꾸벅 조는 이 돌을

한참을 보다가 다리가 저릿저릿하여 고개를 떨어뜨릴 수밖에 없는 나의 마음을

그러거나 말거나 돌은 내가 만든 이 그늘이 좋은 모양 떨어지는 물방울이 못내 간지러운 모양 양옆으로 조금씩 굴러 눈을 비비는 돌을 나는 조심스레 내 손바닥 위에 올려 손끝으로 살살 쓰다듬는다 찢어지게 하품을 하는군 내심

마음이 좋아진 내가 서서히 일어나 돌과 함께 걷는다 돌이 깨지 않도록 천천히 걷는 내 발걸음을 그러거나 말거나 상관 않는 돌이 그늘 밑에서 기지개를 켜더니 잘 준비를 마쳤다는 듯 눈을 완전히 감아버린다 나는 돌이 녹지 않도록 고개를 숙인 채로 살금살금 그림자와 함께 돌을 데려간다
―「흔들려 움직이는」 부분

너의 목덜미를 타고 흐르는 땀을 길이라고 하자
그 땀을 타고 떨어지는 물방울이 너의 어딘가에 고였다고 하자
너의 다리를 비추는 거울에서 무언가 태어났다고 하자 물속이라고 하자
꿈속에서 만난 다정한 여름처럼
너의 무의식에 숨어 자란 그것이 네가 웅덩이를 밟은 오후에 깨어났다고 하자
파란 우산에 달라붙은 물방울을 아이라고 하자
데구루루 굴러떨어지듯 태어나는 게 아이의 본질이라서 네가 그 아이들을 줍느라 많은 생을 써버려야 했다고 하자
구름에 몸을 뉘었다고 하자
누워 있는 너의 베개 위로 아이들이 뛰어들고 발밑을 뛰어다니며 웃다가 별안간 울음을 터뜨렸다고 하자
너는 그것이 슬프고 괴롭지만 그만두고 싶지는 않았다고 하자
[……]
아이들이 너의 이불을 고쳐 덮어주고 너의 가르마를 정갈하게 내어주고 손톱과 발톱을 깎아주고 오래 자장가를 불러주었다고 하자
네가 겁먹지 않고 잠들 수 있도록 옛날이야기를 해주었다고 하자
자기들의 슬픈 결말을 바꿔 썼다고 하자
네가 늘 아이들의 입에서 나온 꿈을 꾸었다고 하자
아이들이 동화를 쓰기 시작한 이후로 늦은 새벽 머리가 젖은 채 깨어나는 일은 없었다고 하자
네가 머리를 그러모아 손등으로 목덜미의 땀을 훔쳤다고 하자
그 순간 모든 길이 동시에 닫히고 골목에 갇힌 아이들이 눈을 감았다고 하자
우수수 쏟아지며 너의 선택을 감내했다고 하자
―「그 아이들을 우연히 만났다고 하자」 부분

나는 은수와 구겼던 골목을 펼쳐
방에 걸어놓는다

철봉에 거꾸로 매달린 아이들이
앞니 빠진 자리를 드러내며 웃는다

운동장은 점거 상태다

MISSING
은수를 기다리는 나의 상태:

모르는 사람의 엉덩이 밑에 깔린 겉옷의 마음을 누가 헤아리리

은수 없이도 계절은 바뀐다 그것은 끔찍하지만 삶을 중단하게 하지는 않는다 문틈에 찧은 손가락처럼 모두가 그 고통을 알지만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은수는 사라진 것이 아니다 사라졌다는 말은 홀연히라는 부사를 불러오므로 그러나 은수는 홀연히 사라지지 않았다 내가 여기에 있다

전단지가 해질수록 은수를 잃어버렸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나는 실종 상태로부터 은수를 꺼내 오기 위해 전단지를 붙인다

전단지는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잃어버림을 공표하기 위해 필요하다

은수는 잠정적으로 실종 상태다

은수가 돌아올 때까지 이것은 잠정적이다 그러나 달리 써볼 수 있다

은수가 오래 기억되길 바란다고
―「잠정 진리」 전문

  작가 소개

지은이 : 구윤재
2024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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