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아흔의 연치(年致)에 이른 시인이 세 번째 시집 >돌아라 물레야<를 세상에 내놓는다. 두 권의 시집을 통해 생의 마디마디를 기록해온 노시인은 이제 쉰네 편의 시를 통해 멈추지 않는 시간의 수레바퀴와 그 안에서 순수히 걸러진 생의 정수를 노래한다.
시인에게 ‘물레’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회전하며 실을 뽑아내듯, 기억과 망각, 만남과 이별이 교차하며 하나의 거대한 운명을 직조해가는 신성한 생의 상징이다. 아흔이라는 숫자가 주는 경외감은 이 시집에서 어떤 비장함이 아닌, 모든 날카로움이 풍화되어 사라진 뒤에 남은 투명한 관조로 승화된다.
이 시집은 세 번째라는 무게감만큼이나 담백하다. 억지로 꾸며낸 수사나 젊은 날의 치기는 증발하고, 오직 사물의 뼈대와 시간의 무늬만이 선명하다. 쉰네 편의 시어들은 인생의 모진 풍파를 견디고 살아남은 단단한 씨앗들이다. 시인은 말한다. 아직 걸어야 할 길이 많이 남았다고. 그래서 이 펜을 도무지 놓을 수가 없다고.
출판사 리뷰
"아흔 번의 사계절을 통과했음에도 다시 걸어야 할 길”
생의 끝자락에서 길어 올린 낮고도 선명한 생의 찬가
아흔의 연치(年致)에 이른 시인이 세 번째 시집 >돌아라 물레야<를 세상에 내놓는다. 두 권의 시집을 통해 생의 마디마디를 기록해온 노시인은 이제 쉰네 편의 시를 통해 멈추지 않는 시간의 수레바퀴와 그 안에서 순수히 걸러진 생의 정수를 노래한다.
시인에게 ‘물레’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회전하며 실을 뽑아내듯, 기억과 망각, 만남과 이별이 교차하며 하나의 거대한 운명을 직조해가는 신성한 생의 상징이다. 아흔이라는 숫자가 주는 경외감은 이 시집에서 어떤 비장함이 아닌, 모든 날카로움이 풍화되어 사라진 뒤에 남은 투명한 관조로 승화된다.
이 시집은 세 번째라는 무게감만큼이나 담백하다. 억지로 꾸며낸 수사나 젊은 날의 치기는 증발하고, 오직 사물의 뼈대와 시간의 무늬만이 선명하다. 쉰네 편의 시어들은 인생의 모진 풍파를 견디고 살아남은 단단한 씨앗들이다. 시인은 말한다. 아직 걸어야 할 길이 많이 남았다고. 그래서 이 펜을 도무지 놓을 수가 없다고.
그가 건네는 시편들은 순수하게 묻는다. 당신의 물레는 지금 무엇을 잣고 있는가. 이 투명한 기록은 소멸조차 생의 한 조각으로 품어 안는 구순 시인의 거대한 긍정이다.
출판사 리뷰
시인의 책을 엮은 몇 달, 나는 호사를 누렸다. 어쩌면 내 평생 누리지 못했을 수도 있을,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떤 조부의 존재를 감히 상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으므로 이 경험은 과히 호사라고 말해도 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와의 첫 조우를 떠올린다.
아직 봄이 오기 전이었다. 찬찬히 열리는 유리문을 나는 곁눈질로 살폈다. 아, 무슨 일이실까. 안녕하세요, 라는 인사 대신 여기는 어쩐 일이신지를 나는 먼저 물었다. 책을 사러 오신 손님이 아니라는 느낌, 무언갈 묻고자 잠시 들어온 행인으로 인식했기 때문이었다. 실례합니다, 여기는 뭐 하는 곳인가요? 여긴 서점입니다. 불현듯 그들은 여기서 책을 엮어줄 수 있는지 물었고 얼떨결에 나는 그렇다고 답했다. 곧장 그는 품에서 자필로 쓴 시 수십 장을 꺼내 들었다. 부탁합니다, 나는 이 사건이 이 책을 엮게 된 가장 우연적인 계기가 될 줄은 그땐 결코 상상하지 못했다.
그가 내 앞에 앉았다. 나는 그에 관한 그 어떤 것도 가늠하지 못했다. 미수(米壽)의 나이, 그리고 나의 나이, 그리고 어떤 세월의 차이만을 가늠했다. 나는 처음 대면한 그에게 아무것도 묻지 못했다. 고작 물었던 것은 마치 이력서를 확인하는 어떤 면접관처럼, 평소 무엇을 하면서 지냈으며, 그 전에는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에 관한 피상적인 물음뿐이었다. 물음에 대한 답 대신, 그는 자신이 시를 쓰는 이유,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 말했다.
시상이 떠오르면 그는 잠을 잘 이루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 곧장 시란 무엇인가, 시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에 대한 배경이 수없이 스쳤으나, 그의 말대로 시를 쓰는 사람의 마음이란 그의 말 그대로, 그것을 꼭 써야만 한다는 영혼의 부름으로 발현된 것이리라, 이내 이내 부끄러웠다. 언제나 나는 여느 시인의 말을 해독하려고 애쓰는 독자일 뿐이었으므로, 참뜻을 알지 못해 머리채를 부여잡던 과거의 모습이 순간 기억에 스치기도 ㅤㅎㅒㅆ다. 돌연 시인은 말했다, 나는 이 사람 없이는 살지를 못해.
요즘 우리 애써 걷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먼저 간 벗들 대신
내 할멈과 둘이
이렇게 걷는 것이다
…
>하얀 발자국< 부분, 18p
그는 언제나 아내와 함께였다. 그녀는 마스크를 끼고 있었고, 시인의 말로는 그녀가 귀가 어둡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의 다리가 성치 못하다고 말했다.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로, 단 한 사람을 남기는 일처럼 한 인간이 꿈꿀 수 있는 궁극의 지향을 그는 이루어내고 있었다. 그는 평생 크게 가진 것 없이 살았다고 말했지만, 내 눈에는 모든 것을 가진 사람처럼 보였다.
그들의 어떤 귀갓길, ‘애써 걷는’ 시인과 아내의 뒷모습을 사진에 담았지만 사진 한 장에 담는다고 어찌 그들의 인생을 담을 수 있으랴. 저 장면은 미래의 나나 당신이 되고 싶은 어떤 모습, 멀다 못해 분리되어 있는 느낌일 뿐일 그 모습에도 나는 코가 시큰했다. 가장 안전한 길을 골라 걸어야 했을 노인의 길, 건강 때문에라도 ‘애써’ 걸어야 했을 이 길, 그들이 살아온 어떤 길을 상상했다. 여느 젊은이에게 매우 짧은 이 길에 행여 눈이나 비가 올지 문득 걱정했던 몇 달이었다.
이 시인으로부터 나는 무엇을 느꼈을까. 그것은 인간의 물리적 생존 양식, 생로병사가 아니었다. 그의 표정에서 감지되는 생의 희로애락, 젊음과 나이듦을 초월한 어떤 기쁨과 슬픔이었다. 비록 극히 짧은 시간 동안 그의 생애를 살펴보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그가 세상에 시로써 적어 온 모든 텍스트를 우연히, 전부 살펴보더라도 말이다. 그나마라도 간신히 그의 생애를 가늠해볼 수 있었던 매개는, 그의 외연적인 모습인 말씨와 글씨, 그리고 표정뿐이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이 시집을 엮는 일에는 차고 넘쳤다. 시인의 책을 엮는 사람에게 다른 것은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그가 팔을 뻗은 소주병과 내 잔에 차오르는 술처럼 과분했다.
이윽고 미수를 지나 아흔이 된 시인에게 어떤 슬픔을 찾는 일이란 어쩌면 무의미한 일일 테다. 그는 비로소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쓰고 싶은 말을 거침없이 쓸 수 있는 것을 생의 가장 큰 기쁨으로 몸소 깨달은 것처럼 보였다. 지나온 과거에 슬픔은 분명 떨어져 있었지만 그는 그것을 손에 쥐고자 뒤돌아 걷지 않고, 그저 고개만 돌릴 뿐, 후회하지 않는다. 이것이 초연함인가, 스스로 깨닫지 않고서는 결코 배울 수 없는 미지의 그것, 생의 어떤 일면을 결코 알 수 없을 것 같다는 막연함과 동시에 찬란과 경이를 느꼈다. 빛난다, 생을 논하는 것보다, 아직도 말하고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그 표정과 눈을 나는 조용히 관찰한다.
짧다면 짧은 이 편집 기간, 나는 오가며 더 많은 장면을 포착할 수 있었다. 누려왔던 젊음의 권력을 상기한다. 그리고 뾰족한 한 부분을 깎아낸다. 젊음을 한참이나 지나온 한 인간이 그리는 꿈, 그리고 우리에게 남기고 온 여름, 그 뜨거움으로 여전히 따듯한 것을 남기는 그들의 눈과 입, 누군가에게 빼앗긴 내면의 권력에 가슴을 치는 일보다는 그저 내어주는 일을 기쁨으로 여길 뿐일 그들의 포근함과 따듯함을, 세상이 깨닫게 될 기회가 더욱 많아지기를.
생전 입에 대지 않았던 추어탕과 미꾸라지 튀김을 나는 잊지 못할 것이다. 그가 스스럼없이 내준 술의 힘을 빌려 나는 이 책의 후기를 쓴다. 그들은 아직도 내게 무엇을 어떤 대가 없이 내어놓는다.
깨보숭이 친구를 만나면 어떨가
너무 반가워 눈만 껌벅이고 있지 않을가
오늘은 누가 고향 소식 전해주려나
마음 한 조각 떼어 꿈길에 접어놓고
잠을 청한다
<골말골짜기> 부분
커다란 미군용 스푼을 꺼내 들고
취사반 배식대에서
양재기에
김치 한 쪽 얹은 밥 한 그릇
국 한 그릇을 받아 들고 먹을 때
납작 보리쌀을 섞은
흰밥이긴 했는데
죽은 쌀벌레 범벅이던 밥
국에 말으면 둥둥 뜬 벌레 시체들
<병정놀이> 부분
떨어지는 낙엽을 머리에 이고
땅에 닿는 건 발로 차며
구부정 걷는 내 할멈은
가랑잎 요정이다
울긋불긋한 숲길에
고고한 요정이다
<가랑잎 요정> 부분
작가 소개
지은이 : 김학명
미수(米壽)를 지난 시인.갈내(現 용인시 기흥구)에서 나고 자랐다.아차산 인근에서 40년 꽃가게를 했고, 8년 전 넘겨주었다.가벼운 술 한잔으로 시작한 하루를 아내와 함께 보내며, 어쩌다 시를 쓴다.과거, 이야기 시 >달맞이 꽃< >낭뎅이에 도깨비< 두 권의 시집을 냈다.
목차
시인의 말 / 술잔 / 택호 / 가을들에서 / 참나무의 상처 / 닭울음 / 하얀 발자국 / 골말골짜기 / 아차산 소묘 / 세상일 / 추억의 한 가닥 / 그때 그랬어야 했다 / 찔레꽃 연정 / 뇌성벽력 / 세월 / 낙엽이 된다 / 우리는 춥다 / 눈 / 비목 / 소풍날 / 옹헤야, / 이어도 사나 / 병정놀이 / 가랑잎 요정 / 폭풍에 언덕 / 돌아라 물레야 / 애기똥풀 / 꿈마루 / 꽃보다 아름다워 / 겨울나무 / 이태원의 변고 / 발길 / 겨울비 소묘 / 회상 / 돌뿌리 / 마지막 잎새 / 나의 살던 고향은 / 탱자나무 울타리가 있는 마을 / 그 밭 이야기 / 자연인을 말하다 / 개구리의 망행가 / 좁쌀 개미집 / 밤길 / 물방구리 / 장작개비 / 삶 / 푸념 / 가능소리 / 어둠 속에 그리는 그림 / 공원의 늪지 / 동막골을 말하다 / 저승으로 가는 길 / 오늘날에 선녀와 나무꾼 / 독백 / 소망 / 편집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