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작가 탄생 90주년을 맞아 간행된 『하근찬 문학 전집』의 일환으로, 단편적으로 알려졌던 하근찬의 문학세계를 장편까지 확장해 조명한다. 45년간 이어진 문업과 단편집 7권, 장편소설 14편을 아우르며, 원본에 충실한 편집과 발굴 작품, 연보 정리를 통해 전체 문학세계를 복원하려는 기획이다.
1977년부터 연재된 작품을 개제한 장편 『제복의 상처』는 한 소녀의 삶을 따라 사랑과 배신, 상실의 과정을 그린다. 어머니를 잃고 새어머니를 맞이하는 과정에서 느낀 균열, 미술 교사와의 관계, 결혼과 임신을 거치며 삶은 점차 흔들린다. 결국 얼굴에 남은 상처는 개인의 사건을 넘어 시대와 관계가 남긴 흔적으로 확장된다.
제목이 가리키는 상처는 단순한 흉터가 아니라, 사회가 부여한 역할과 관계 속에서 새겨진 내면의 흔적이다. 하근찬은 가족의 균열과 금지된 사랑, 제도 속 삶을 담담한 필치로 그려내며, 한 시대를 살아간 개인의 상실과 고통을 깊이 있게 보여준다.
출판사 리뷰
★2021년 작가 탄생 90주년 기념 <하근찬 전집> 최초 출간★
★2026년 하근찬 전집 6차분 발간★
사랑과 배신 사이, 한 소녀의 상처를 그린 장편소설
제20권 『제복의 상처』
단편적으로 알려졌던 소설가 하근찬,
그의 문학세계를 새롭게 조명하다
한국 단편미학의 빛나는 작가 하근찬의 문학세계를 전체적으로 복원하기 위해 ‘하근찬문학전집간행위원회’에서 작가 탄생 90주년을 맞아 <하근찬 문학 전집>을 전 24권으로 간행한다. 한국전쟁 이후 한국소설의 백미로 꼽히는 하근찬의 소설 세계는 단편적으로만 알려져 있다. 하근찬의 등단작 「수난이대」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으로 이어져온 민중의 상처를 상징적으로 치유한 수작이기는 하나, 그의 문학세계는 「수난이대」로만 수렴되는 경향이 있다. 하근찬은 「수난이대」 이후에도 2002년까지 집필 활동을 하며 단편집 7권과 장편소설 14편을 창작했고 미완의 장편소설 2편과 산문집 1편을 남겼다. 하근찬은 45년 동안 문업(文業)을 이어온 큰 작가였다. ‘하근찬문학전집간행위원회’는 하근찬의 작품 총 24권을 간행함으로써, 초기의 하근찬 문학에 국한되지 않는 전체적 복원을 기획했다.
원본과 연보에 집중한 충실한 작업,
하근찬 문업을 조망하다
하근찬 문학세계의 체계적 정리, 원본에 충실한 편집, 발굴 작품 수록, 작가연보와 작품 연보에 대한 실증적 작업을 통해 하근찬 문학의 자료적 가치를 확보하고 연구사적 가치를 높여, 문학연구에서 겪을 수 있는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하근찬 문학전집은 ‘중단편 전집’과 ‘장편 전집’으로 구분되어 있다. ‘중단편전집’은 단행본 발표 순서인 『수난이대』, 『흰 종이수염』, 『일본도』, 『서울 개구리』, 『화가 남궁 씨의 수염』을 저본으로 삼았고, 단행본에 수록되지 않은 알려지지 않은 하근찬의 작품들도 발굴하여 별도로 엮어내어 전집의 자료적 가치를 높였다. ‘장편 전집’의 경우 하근찬 작가의 대표작인 『야호』, 『달섬 이야기』, 『월례소전』, 『산에 들에』뿐만 아니라, 미완으로 남아 있는 「직녀기」, 「산중 눈보라」, 「은장도 이야기」까지 간행하여 하근찬의 전체 문학세계를 조망한다.
20권 『제복의 상처』
얼굴에 새겨진 상처, 시대가 남긴 흔적
하근찬의 장편소설 『제복의 상처』는 1977년 10월부터 1980년 2월까지 《국제식량농업》에 「외기러기」로 연재된 후 제목을 바꾸어 간행된 작품이다. 작품은 소설가인 화자가 다락 속 자료들을 정리하다 발견한 세 권의 노트로부터 시작된다. 그 노트들은 몇 년 전 한 여인이 자신이 쓴 소설이라며 읽어봐 달라고 가져온 것이다. 얼굴에 흉터가 있는 그 여인은 화자가 그때 살던 집에서 이사를 가기까지 다시 찾아오지 않았고, 화자는 이 소설을 그냥 묵혀둘 수 없다는 말과 함께 이야기가 시작된다.
주인공 양혜선은 고등학교 2학년이다. 교통사고로 어머니를 잃은 혜선은 아버지, 남동생과 함께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새어머니를 데려온다는 소식을 듣고, 매사에 적극적이고 활기차던 그녀는 점차 우울에 잠식된다. 아내를 잃고 슬픔의 날들을 보내며 셋이서 재미있게 살자고 하던 아버지가 돌연 새로운 여자를 만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혜선은 깊은 배신감을 느낀다.
미술에 재능이 있던 혜선은 야외 수업 중 미술 선생이자 화가인 주상운과 가까워지게 되고, 스승과 제자의 선을 넘게 된다. 주 선생은 혜선에게 자신의 그림 모델이 되어 달라고 요청하고, 그녀는 매주 그의 집을 드나들며 스승과 제자 그 이상의 감정을 키워나간다. 그 사이 친구 미애의 사촌 오빠인 두현의 관심을 받기도 하지만, 주 선생의 방해로 일단락된다. 결국 혜선은 임신을 하게 되고, 주 선생과 결혼식을 올린다. 무자녀주의였던 주 선생이 혜선의 임신을 달갑게 여기지 않던 터에, 전처마저 찾아오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어긋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만취해 귀가한 주 선생과 싸우던 중 깨어진 거울에 혜선은 얼굴에 상처를 입는다. 남편에게 두려움을 느낀 혜선은 친정에서 지내면서 아이를 낳고, 주상운은 부산 여행 중 배 사고에 연루되어 뜻하지 않게 사망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소설의 제목인 ‘제복의 상처’는 단순히 혜선의 얼굴에 새겨진 흉터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사회가 여성에게 덧씌우는 역할과 관계의 굴레, 그 안에서 새겨지는 내면의 상처를 함께 담아낸 표현이다. 하근찬은 한 소녀가 가족의 균열, 금지된 사랑, 그리고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서 겪는 상실과 고통을 섬세하고도 담담한 필치로 그려내며, 억압된 시대를 살아간 여성의 삶을 깊이 있게 조명한다.
어느 날, 다락 속에 쌓여 있는 헌책이랑 잡지 나부랭이, 혹은 신문 뭉치 같은 것을 정리하다가 나는 서류 봉투에 든 세 권의 노트를 발견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여인은 그 소설을 나에게 놓고 사라져 버린 셈이다.
결국 그 세 권의 노트는 서류 봉투에 넣어진 채 우리 집 다락 구석에 헌책 나부랭이와 함께 처박히는 신세가 되었고, 내 뇌리에서 도 사라져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오륙 년 만에 그 세 권의 노트를 발견한 나는 그것을 어떻게 처리했으면 좋을지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헌 잡지나 신문 나부랭이와 함께 싸잡아서 고물장수에게 팔아 치워버릴 것인지, 아니면 그대로 계속 보관하고 있을 것인지……. 남은 애써 쓴 것을 휴지로서 팔아 버린다는 것도 좀 뭐하고, 그렇다고 주인이 나타나지도 않는 것을 언제까지나 보관하고 있다는 것도 우스웠다.
그래서 생각한 끝에 나는 그것을 잘 고치고 다듬어서 널리 사람들에게 읽히기로 했다. 어쩌면 그런 결과를 기대하고 그 여인이 그것을 나에게 놓고 사라져 버렸는지도 모를 일이니까…….
아무튼 그냥 없애 버리기에는 어딘지 아쉬움이 남는 그런 가련한 한 여인의 이야기인 것이다.
“무슨 사색을 그렇게 하고 있었지?”
“…….”
나는 절로 또 얼굴이 화끈했다. 마치 내가 주 선생 자기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던 것을 알고서 묻는 것 같았다.
“내가 한 번 알아맞혀 볼까?”
그러면서 주 선생은 야릇한 장난기 같은 것이 담긴 눈웃음을 웃었다. 그리고 내 곁에 털썩 앉는 것이 아닌가.
나는 약간 당황했다. 그러나 결코 싫지는 않았다. 무의식중에 아무도 없는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고는 조금 비켜 앉았다.
남자와 단둘이 이런 호젓한 장소에 나란히 앉아 보기는 난생처음이었다. 그것이 비록 학교 선생이기는 하지만 남자임에는 틀림없고, 더구나 요즘 와서 이상스럽게 곧잘 내가 남몰래 머리에 떠올리곤 하는 주 선생이 아닌가. 나는 기분이 묘하고 야릇하기만 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하근찬
1931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나 전주사범학교와 동아대학교 토목과를 중퇴했다. 195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수난이대」가 당선되었다. 6·25를 전후로 전북 장수와 경북 영천에서 4년간의 교사생활, 1959년부터 서울에서 10여 년간의 잡지사 기자생활 후 전업 작가로 돌아섰다. 단편집으로 『수난이대』 『흰 종이수염』 『일본도』 『서울 개구리』 『화가 남궁 씨의 수염』과 중편집 『여제자』, 장편소설 『야호』 『달섬 이야기』 『월례소전』 『제복의 상처』 『사랑은 풍선처럼』 『산에 들에』 『작은 용』 『징깽맨이』 『검은 자화상』 『제국의 칼』 등이 있다. 한국문학상, 조연현문학상, 요산문학상, 유주현문학상을 수상했으며 1998년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2007년 11월 25일 타계, 충청북도 음성군 진달래공원에 안장되었다.
목차
발간사
프롤로그
바다가 보이는 언덕
스승의 화실에서
최초의 뜨거움
나의 계절은 겨울
비밀, 그리고 수치감
가랑비가 내리는 날
19세의 허니문
거울은 깨어지고
기러기 한 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