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유년기의 옹이들을 돌아보고, 그 경험들로부터 의미를 재구성하며 슬픔과 상실, 보람과 희망을 담아내는 성장소설. 우한용 교수의 장편 성장소설 『내 유년의 콜라주』가 푸른생각의 '푸른소설선'으로 출간되었다. 한국전쟁의 포연이 짙게 남아 있던 그 시절에도 왕성한 호기심과 상상력으로 세상을 배우며 자라나는 한 소년의 이야기이다.
출판사 리뷰
책머리에 중에서인간은 시간의 단층으로 분리되어 있다. 좀 천박하지만 세대 갈등이라 해도 상관이 없을 듯하다. 그런데 세대 갈등을 현실로 이해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어쩌면 그게 성장의 의미일지도 모른다. 성장통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아픈 만큼 성장한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아픔만으로 성장하지 않는다. 겪은 아픔을 성찰해야 한다. 되돌아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 아픔이 성장으로 변형된다.
성장은 내 주변의 세계를 수용하는 과정이다. 세계를 수용하는 방법은 단일한 궤적을 그리지 않는다. 세계에서 가해오는 압력을 받아들이기도 하고 맞서기도 한다. 맞서서 스스로 파괴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위험하다. 그러나 아무런 부담이나 위험이 없는 성장은 없다.
할아버지가 너에게 전해줄 수 있는 경험은 아주 협소하다. 그리고 지금부터 자그마치 70년 전의 일들이다. 지금 시각으로 보면 엉뚱하고 황당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도 어린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은 이전과 비슷한 데가 있다. 경험 내용이 같을 수는 없다. 그러나 경험이 축적되고 자기화하는 과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생각되기도 한다.
인간 성장의 한계는 없다는 게 할아버지의 기본적인 생각이다. 오늘의 나를 이룩한 유년의 의미를 돌아보는 것은 오늘의 나에 대한 성찰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나에 대한 성찰을 계속하는 것은 내 성장이 아직 멈추지 않았음으로 뜻한다. 네가 성장하는 만큼 할아버지가 성장한다면, 할아버지와 대화는 계속될 수 있지 않겠나. 내가 너에 대해 기대를 갖는 것처럼 너 또한 할아버지에게 소망을 가져보기 바란다.
작품 세계성장한다는 것은 모르는 것을 알게 되고, 할 수 없던 것을 할 수 있게 되며, 미숙한 상태에서 성숙한 상태로 나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성장의 도정이란 흔쾌하고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어린 존재는 세상에 불합리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죽음이나 질병의 괴로움을 알게 되고, 뜻대로 되지 않는 일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럴 때마다 떼를 쓰고 울어보아도 그것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일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렇게 어린 존재는 어른이 되어간다.
(중략)
『내 유년의 콜라주』는 개인의 삶이 어떻게 역사와 만나고 역사를 이루며 성장해 가는가를 탐구하고자 한다. 삶의 시간은 단선적으로 흐르는 듯하지만 우리의 의식 속에서 계속해서 회귀와 전진과 재구성을 반복하며 두터워지고 변색되며 새로운 의미로 재탄생하기도 한다. 시간의 편린들이 축적되어 이룬 ‘나’의 안과 밖에는, 무수한 타자들의 말과 경험이, 거대한 시대의 소용돌이가 함께 새겨져 있다. ‘나’를 설명하자면 그 넓고 깊고 오랜 연원을 실타래 감듯 거슬러 올라가며 더듬어볼 수밖에 없다. 그렇게 구성된 ‘나’의 이야기는 다시 가깝거나 먼 미래로 던져져 ‘옛날에… 어느 마을에… 어떤 아이가 있었는데…’로 시작되는 낯선 세계의 지평이 될 것이고, 이 세계에 새로 당도한 어린 누군가의 삶의 경험이 되어 새로운 생각과 의식을 만들어내며 미래의 형상을 만들어가게 되기도 할 것이다. 그렇게 할아버지 ‘선재’의 유년 이야기는 손주인 ‘선재’의 기억이 되고 또 그렇게 이어지고 또 이어지며 ‘인간이란 무엇인가’, ‘나는 어디서부터 왔는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고 하는 고래(古來)의 질문들에 답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하나의 참조점으로 작동하게 되는 것이다.
― 오윤주(수일여중 교사, 소설가) 평설 중에서
출판사 리뷰소설가이자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인 우한용 작가의 『내 유년의 콜라주』는 한국전쟁의 포연이 짙게 남아 있던 그 시절에도 왕성한 호기심과 상상력으로 세상을 배우며 자라나는 한 소년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장편 성장소설이다.
선재는 유난히도 매사가 궁금하고 알고 싶은 것이 많은 아이이다. 이념 대립으로 인한 혼란과 전쟁의 포연 속에서도 선재는 왕성한 호기심과 상상력으로 저 나름대로 세상을 배워간다. 전쟁이 나고 탱크가 들어오면 신나겠다고 철없는 소리를 하던 아이도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으면서 세상은 불합리하게 돌아갈 때도 있다는 것, 마음 먹은 대로 되지 않는 일이 많다는 것, 떼를 써도 해결되지 않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죽음의 공포와 질병의 고통도 겪는다. 그러면서 소년은 성장해간다.
작가는 머리말에서 손자 ‘선재’에게 유년 시절의 이야기를 해주겠다고 말한다. 그런데 작품 속 소년의 이름 또한 ‘선재’이다. 소년 ‘선재’가 노인이 되어 다시 손자 ‘선재’에게 그의 기억과 경험을 전달하는 것이다. 그렇게 한 사람의 삶은 이야기가 되고, 이야기는 역사가 된다는 것을, 이 소설은 현재의 독자에게 70년 전을 살아가는 또 다른 우리의 모습을 통해 보여준다.

옆에서 귀를 세우고 듣고 있던 선재가 제 엄마 치맛자락을 놓고 앞으로 나섰다.
“아줌마, 우리 동네 탱크 언제 들어온대요?”
“왜 탱크 들어오면 만세 부를라구 그러냐? 제 에미랑 똑같구먼. 저것도 애비 탁한 것이여.”
진봉득은 끔찍한 여자들 속에 둘러싸여 있었다. 남편이 지서에 끌려간 것을 이들은 사상이 볼온해서 그렇다는 듯이 이야기를 늘어놓는 중이었다.
“엄마, 나 탱크 구경하러 갈래?”
“탱크 들어오면 너는 죽어, 이노무 자식아.”
“탱크놀이 얼마나 재미있는데… 쿠르릉 콰광! 엄마 탱크 보러 가자아. 엄마 안 가면 나 혼자 갈래.” 선재는 제 엄마 치맛자락을 붙들고 늘어져 발을 굴렀다.
벼가 누렇게 익은 논두렁길을 걸어가는 동안 선재는 잠시도 쉬지 않고, 이야길 늘어놓았다. 전에는 이건 무슨 풀이야, 이 돌은 왜 동그래, 저 산은 왜 쌍둥이야 그런 질문을 해댔다. 그런데 묻는 게 수준이 달라졌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선재는 무언가 이야기를 끊임없이 옮기고, 또 이야기를 만드는 눈치였다.
“선재야, 그래 유치원이 그렇게 좋으냐?” 선재는 대답 대신, 어른들은 왜 유치원에 안 가는가 물었다.
“어른들은 배울 거 다 배워서 그런 데 안 가도 된단다.”
“쌩이야, 어른들은 무관심해서 뭘 못 배운대….”
작가 소개
지은이 : 우한용
충남 아산 출생. 서울대학교 국어교육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국어교육학과 교수, 국어국문학회 대표이사, 현대소설학회 회장, 한국작가교수회 회장, 한국학술단체총연합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이다. 저서로 『한국근대작가연구』(공저), 『문학교육론』(공저), 『한국현대장편소설연구』, 『한국현대소설구조연구』, 『채만식 소설 담론의 시학』, 『문학교육과 문화론』, 『창작교육론』, 『한국 근대문학교육사 연구』, 『소설장르의 역동학』 등을 간행했다. 장편소설 『생명의 노래 1, 2』, 『시칠리아의 도마뱀』, 『악어』, 『심복사』, 『소리 숲』, 『그래도, 바람』 등, 소설집 『초연기-파초의 사랑』, 『도도니의 참나무』, 『사랑의 고고학』, 『붉은 열매』, 『아무도, 그가 살아 돌아오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수상한 나무』, 『시인의 강』, 『왕의 손님』 등, 시집 『청명시집』, 『낙타의 길』, 『검은 소』, 『내 마음의 식민지』, 『만화시초』, 『나는, 나에게 시를 가르친다』 등, 픽션 에세이 『떠돌며 사랑하며』를 간행했다.
목차
■ 작가의 말
1부
무논에서
산 넘어오는 포성
주재소 가는 할머니
아니, 이 사람아
동생이 생겼다
이사 가는 날
도적골
2부
겨울 햇살
눈 오는 날에
별이 내리는 언덕
송홧가루
팔려간 아이
땅밑에 여우가
3부
마른 꽃의 기억
말집 아이
쥐꼬리와 멍멍이
엄마는 하나다
멍덕이 보내는 날
닭을 몰고 학교로
새로 시작하는 길
■ 평설 │ 시간은 어떻게 ‘나’의 형상이 되는가 _ 오윤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