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박희영 시집 『눈 내리는 아침』은 『그리움의 방정식』에 이어 출간한 두 번째 시집이다. 박희영의 시편들은 은은한 향내를 품고 있다. 이 향내와 가장 어울리는 단어가 ‘고졸(古拙)’이 아닐까 싶다. 고졸은 “기교는 없으나 예스럽고 소박한 멋이 있는 아름다움”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마치 오래되어 칠이 벗겨진 오래된 절집의 맑은 나뭇결처럼, 시집을 읽는 내내 눈과 손에 마치 향나무 향내 같은 은은한 감정이 묻는다. 그 감정이 지닌 정체는 마치 한여름 오후, 오래된 고향집 툇마루에 앉아 정원에 쏟아지는 햇살을 받는 작고 소중한 것들과의 새로운 만남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 리뷰
박희영 시집 『눈 내리는 아침』은 『그리움의 방정식』에 이어 출간한 두 번째 시집이다. 박희영의 시편들은 은은한 향내를 품고 있다. 이 향내와 가장 어울리는 단어가 ‘고졸(古拙)’이 아닐까 싶다. 고졸은 “기교는 없으나 예스럽고 소박한 멋이 있는 아름다움”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마치 오래되어 칠이 벗겨진 오래된 절집의 맑은 나뭇결처럼, 시집을 읽는 내내 눈과 손에 마치 향나무 향내 같은 은은한 감정이 묻는다. 그 감정이 지닌 정체는 마치 한여름 오후, 오래된 고향집 툇마루에 앉아 정원에 쏟아지는 햇살을 받는 작고 소중한 것들과의 새로운 만남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박희영의 시집에서 풍기는 고졸함의 정취에서 만날 수 있는 또 하나의 목소리가 있다. 『월든』의 저자 소로우이다. 소로우는 명저 『월든』에서 자연이 하나의 대상이나 풍경을 이루는 요소가 아니라, 인간과 분리될 수 없는 관계임을 강조하고 있다. 박희영의 시집에서도 다양한 자연 사물들이 등장하는데, 시적 화자에게 삶을 반추하게 하는 대상인 동시에, 인간과의 관계성에서 양자 동일한 가치 비중과 무게감을 지닌 존재로 상정되고 있다. 이는 주체와 타자가 합일하는 심층생태주의적 사유가 시 세계의 바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고향을 떠나며
늦은 밤에 돌아오는
술 취한 사람의 눈빛처럼
봄은 오는데
아내는 기차 기다리는
역사의 가로등을 바라보고 있다
동냥젖이라도 먹이려고
낮은 산등성이로 아침은 나비처럼 날아오고
작은 골목길은 낡은 적삼 자락을 들어 올리며
붉은 가슴을 보이고 있다
바람이 갯벌을 이고 왔다고
비릿한 바지게를 내려놓고 있다
오래된 이정표는
여기로 가면 눈빛이 센 문학관이 있다며
새롭게 자리 잡은
안내판이 서로 손가락질을 한다
어제도 아프고 지금도 아파도
내일은 아프지 말라고
돌아선 바람도 봄도 불러보는 고향
눈 내리는 아침
산13번지에 눈이 내려 논두렁 지워지겠다
산짐승 서넛 찾아왔다 간 아침
흐린 하늘을 헤치고 오느라 늦은 햇살이
서둘러 나뭇가지를 흔들었다
떨어지는 눈덩이에도 멧비둘기 날지 못하고
밥 짓는 내음에 참새들만 처마 끝으로 모여
제 밥도 내놓으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런 날이면 고드름 길게 맺히고
군고구마 먹던 손으로 고드름 뚝 잘라
칼싸움을 했다
누군가 찾아올 일이 없는데 넉가래로 길을 내고
신작로 저편까지 후하고 입김을 뿜어 보았다
겨울에도 보리밥을 먹었던 산골을 떠나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살았다
이제는 눈을 치우지 않아도 되는 손바닥에
아직도 남아 있는 희미한 굳은살
아 나는 지금도 하얗게 눈이 내리면
그렇게 먹고 싶었던 쌀밥이 떠오른다
기워 신던 양말에 눈이 들어와 발 시린 겨울
모닥불에 녹이다 또 구멍 난 양말
눈 치우던 빗자루에 등짝을 맞아가며
무엇이 그리 좋아 뛰어다니던 눈 내리는 고향
내려놓을 수 없는 그리움
건축물대장 직권말소 사전통지
사람이 살아야 집이라고
산13번지에는
거미줄 너머로 비를 뿌린다
바람이 제멋대로 밟아버린
벽지에는 몇 개의 낙서가
매달려 있고
작은 거울 뒤에는
그 사람이 서 있다
비가 천장을 통해 들어온다
쥐들이 다니던 길을
물어 왔는지
사람의 냄새보다
더 짙은 냄새가 난다
습작하던 원고지가
사람이 살아야 시가 된다며
깨진 유리창을 막고 선다
사전 통지서를
대문 앞에 던져놓고
집 마당을 벗어나기도 전에
내 바지가 흠뻑 젖어 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박희영
충북 음성에서 출생했다. 예덕여고, 예산고등학교 교사를 역임했다. 1998년 <지구문학>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한국문인협회 예산지부장을 지냈다.
목차
● 시인의 말
제1부
수덕사 10
고향을 떠나며 12
자작나무 14
예산역 15
아들의 고향 16
귀향 18
건축물대장 직권말소 사전통지 20
탱자꽃이 필 때 22
눈 내리는 아침 24
8월의 강 26
가을이 문을 두드릴 때 28
5월이 오기 전에 30
이팝나무 아래에 서서 32
숲에서 어둠을 만났을 때 34
바닷가에 서서 35
제2부
비와 낙엽 38
찻잔을 들고 39
후회 40
첫사랑 42
문신 44
갈증 46
푸른 날개 48
늙은 일기장 50
황사 52
기다림 53
그대의 기침 54
봄이 눈을 뜰 때 55
제3부
우울증 58
백석의 시 59
돋보기를 벗고 60
개구리 61
시간 대출 62
오이꽃 63
빈 둥지 64
회초리 66
꽃대를 밀어 올릴 때 67
가을밤 안개 68
폭설 69
불난 갈대밭 70
제4부
사람이 되고 싶다 72
가을이 숨어들 때 73
겨울 고양이 74
첫눈을 기다리며 76
참을 수 없는 행복 78
눈은 아픔의 영혼이다 80
봄 감기 81
달개비꽃 82
가을 83
몽둥이 바람 84
풍선 86
봄꽃 눈물 88
박새의 봄 90
▨ 박희영의 시세계 | 서안나 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