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당대 한국 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을 선정, 신작 시와 소설을 수록하는 월간 『현대문학』의 특집 지면 <현대문학 핀 시리즈>의 쉰다섯 번째 소설선, 박지영의 『복미영 팬클럽 흥망사』가 출간되었다. 2024년 7월호 『현대문학』에 발표한 소설을 퇴고해 내놓은 이번 신작은 문화공간 ‘동네북살롱’에서 자신의 팬클럽을 만든 ‘용맹하고 경솔한’ 복미영이 그녀의 1호 팬으로 낙점된 김지은과 함께 자신의 안티 팬 ‘멍든 하늘’을 위한 역조공 이벤트에 나서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 소설이다. 자신의 삶을 희생하면서도 조롱당하다 마침내 버려지는 ‘이모’들의 삶과 중첩되는 동시에 돈키호테처럼 엉뚱하지만 호쾌한 복미영의 열린 엔딩이 매우 인상적인, ‘동등하게 위대한 채 서로를 보살피는’ 삶의 방식을 선택한 인간상을 그려낸 소설이다.사실 덕질이라는 건 말 이야, 그 헛짓거리를 하려고, 헛짓거리를 열정적으로 몰입해서 하려고 하는 거거든. 허공에다 살을 날리는 거랄까, 꽃으로 치장한 살 같은 걸. 그러니까 좋아 죽겠다, 라는 마음 말이야, 너무 좋아서 죽을 거 같은 그런 저주 같은 걸 나비 날개처럼 투명하고 곱게 접어서 하늘하늘 날리는 거. 세상에 진짜 고결한 거, 숭고한 거, 그런 건 헛짓인 줄 알면서 하는 헛짓거리뿐인 건 아닐까
이렇게 좋은 기운을 남들에게만 퍼주며 살고 있었네. 이제부터는 내가 내 팬이 되어보자. 그러자 복미영은 처음 최애를 발견했을 때와 같은 들뜨고 신나는 마음에 입 안 가득 말간 침이 고이는 것을 느꼈다. 그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죄다 쓰레기였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고 결국엔 쓰레기로 판명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렇다면 설마 나도. 그러나 상관없었다. 이런 것은 다 맥거핀에 불과하다고, 그때의 복미영은 그렇게 생각했다.
“아니, 팬클럽이 있다고 하시니까 궁금해서요. 팬이 있다는 건 어떻든 대단하신 분이라는 건데.”“그건 아니고요.”복미영이 민망해하며 웃더니 바닥에 떨어진 종이를 주워 추스르며 중얼거렸다.“제가 실은 좀, 그래요.”“좀 그렇다니, 뭐가요?“그게, 유명하지도 않고 대단치도 않아요. 그래서요.(……) 그러니까 팬클럽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위대하지 않으니까요. 그러니까 더 필요하잖아요, 팬클럽 같은 게. 그래서 제가 만들었어요, 복미영 팬클럽.”
작가 소개
지은이 : 박지영
2010년 『조선일보』로 등단했다. 소설집 『이달의 이웃비』 『테레사의 오리무중』, 장편소설 『지나치게 사적인 그의 월요일』 『고독사 워크숍』 『컵케이크 무장 혁명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