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정용기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으로, '빗방울 농사', '무궁화꽃이 피었습니까', 'A4 자서전' 등 58편이 실려 있다.
빗방울 농사경칩 지나 봄비 오시는 날차창에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저 빗방울들,뿌리쳐도 따라붙는 저 난생(卵生)의 결사대,꼬리를 길게 끄는 저 끈질긴 올챙이 떼,눈물방울 같은 저 올챙이들을복장뼈 안쪽에 고이고이 모셔다가봄밤을 보낼 밑천으로 농사를 지어야겠다.춘분 청명 어름에는 먹을 것도 지천이라조팝나무 이팝나무가 차려 내는 수만 그릇 하얀 쌀밥아침저녁으로 챙겨 주면서 잘 키워야겠다.날름날름 받아먹으며 뒷다리가 자라고,앞다리가 생기고, 꼬리가 떨어져 나가고,봄밤의 들판에 저 양서류들 방생을 하면울음주머니 부풀려 한 바가지씩 밤새 노래를 쏟아 낼 터이니저 갸륵하고 다소곳한 후렴구들로봄밤은 울울창창 소리의 꽃밭이 될 터이니.
무궁화꽃이 피었습니까나는 늘 등을 보이는 술래입니다.가위바위보, 늘 지기만 하는 술래입니다.늘 방심하고 늘 허술합니다.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무궁화꽃이 피었다고 믿고 늘 뒤늦게 돌아섭니다.그사이에 검은 그림자가 서서히 다가옵니다.또다시 무궁화꽃이 피었다고 믿고 돌아섭니다.내가 못 본 사이에 어둠이 더 가까이 죄어 옵니다.무궁화꽃이 피었다고 거듭 믿고 또 믿는 그사이에더러운 손아귀들이 내 등을 덮칩니다.불온한 덩굴손이 내 목을 조입니다.날카로운 송곳니가 내 목덜미를 물어뜯습니다.천기(天氣)를 어지럽히는 자들이보이지 않는 곳에서 환락의 축제를 벌입니다.등 뒤에 칼을 숨긴 자들이 내 등을 노리고 있습니다.음모는 늘 등 뒤에서 발자국 소리도 없이 다가옵니다.나는 오늘도 술래입니다.내 등이 위태롭습니다.무궁화꽃이 피었습니까?
작가 소개
지은이 : 정용기
2001년 [심상]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시집 [하현달을 보다] [도화역과 도원역 사이] [어쨌거나 다음 생에는] [주점 타클라마칸] [나비 떼가 나를 자꾸 불러내고]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