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부모님 > 부모님 > 소설,일반 > 에세이,시
길어온 길 걸어갈 길 이미지

길어온 길 걸어갈 길
시와사람 | 부모님 | 2025.05.15
  • 판매가
  • 15,000원
  • S포인트
  • 750P (5% 적립)
  • 상세정보
  • 15x22.5 | 0.460Kg | 354p
  • ISBN
  • 9788956657660
  • 배송비
  • 2만원 이상 구매시 무료배송 (제주 5만원 이상) ?
    배송비 안내
    전집 구매시
    주문하신 상품의 전집이 있는 경우 무료배송입니다.(전집 구매 또는 전집 + 단품 구매 시)
    단품(단행본, DVD, 음반, 완구) 구매시
    2만원 이상 구매시 무료배송이며, 2만원 미만일 경우 2,000원의 배송비가 부과됩니다.(제주도는 5만원이상 무료배송)
    무료배송으로 표기된 상품
    무료배송으로 표기된 상품일 경우 구매금액과 무관하게 무료 배송입니다.(도서, 산간지역 및 제주도는 제외)
  • 출고일
  • 1~2일 안에 출고됩니다. (영업일 기준) ?
    출고일 안내
    출고일 이란
    출고일은 주문하신 상품이 밀크북 물류센터 또는 해당업체에서 포장을 완료하고 고객님의 배송지로 발송하는 날짜이며, 재고의 여유가 충분할 경우 단축될 수 있습니다.
    당일 출고 기준
    재고가 있는 상품에 한하여 평일 오후3시 이전에 결제를 완료하시면 당일에 출고됩니다.
    재고 미보유 상품
    영업일 기준 업체배송상품은 통상 2일, 당사 물류센터에서 발송되는 경우 통상 3일 이내 출고되며, 재고확보가 일찍되면 출고일자가 단축될 수 있습니다.
    배송일시
    택배사 영업일 기준으로 출고일로부터 1~2일 이내 받으실 수 있으며, 도서, 산간, 제주도의 경우 지역에 따라 좀 더 길어질 수 있습니다.
    묶음 배송 상품(부피가 작은 단품류)의 출고일
    상품페이지에 묶음배송으로 표기된 상품은 당사 물류센터에서 출고가 되며, 이 때 출고일이 가장 늦은 상품을 기준으로 함께 출고됩니다.
  • 주문수량
  • ★★★★★
  • 0/5
리뷰 0
리뷰쓰기
  • 출판사 리뷰
  • 작가 소개
  • 회원 리뷰

  출판사 리뷰

내 고향 프까실(草枝마을)

사람은 누구나 태어난 고향이 있으며 그 고향 마을을 못내 그리며 살아가고 있다. 그곳의 흙과 물이 내 몸이 되었고 드높은 하늘과 맑고 깨끗한 공기가 내 영혼에 불을 밝히었다. 어린 시절 꿈을 꾸었던 곳, 그러나 고향을 떠나 객지에서 젊음을 보냈기에 고향은 더욱 그립고 가보고 싶은 곳이 되었다. 어머니 숨소리가 들리는 듯 꿈에도 잊힐 리 없는 고향 마을, 장성군 황룡면 금호리 107번지, 바로 ‘프까실[草枝]’이다.

우리 마을 프까실[草枝]은 야트막한 산자락이 병풍을 두른듯하여 평온하고 인심이 후한 마을이다. 밀성 박씨가 자작일촌 했던 마을이다.
행정구역상 장성군 황룡면 금호리이며 3개 자연부락으로 이루어져 있다. 금동, 초지(프까실), 여절이다.
여름에는 둘러친 듯한 산허리가 태풍을 잘 막아주고 큰 홍수가 없어 농사를 그르치지 않게 하였고, 밀성 박씨 600년의 역사가 숨 쉬고 있는 제실[狐山齋閣]과 15대 선조 정혜공貞惠公 중시조의 백비白碑묘가 있어 청백리淸白吏 정신의 본고장 마을이기도 하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된 축령산이 지척에 있으며, 누런 강의 깊은 물에서 황룡이 살았다는 전설에서 유래된 황룡강의 비단 물결이 휘감아 흐르고 있는 고장이다.
가까운 필암마을에는 하서河西 김인후 선생의 필암서원이 자리하고 있다.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관직을 버리고 장성으로 낙향하여 후학을 양성한 하서 김인후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서원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자 호남 유일의 서원이다.
근처에 홍길동 테마파크를 비롯하여 노송과 배롱나무 군락으로 유명한 요월정 원림을 가까이 두고 있으며, 일제 강점기에는 한지 공장이 세워져 한지의 명맥을 이어 오기도 했다.
또한 북쪽으로는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과 인접하여 고창 사람들과 교류가 많았던 길목이기도 하다. 이로 인해 나의 외가댁外家宅은 고창군 성송면 학천리 안동 권씨 자작일촌 마을이 되었다.

청백리 박수량(朴守良) 묘소를 찾아서

봄이 멀지 않았음을 차창 밖의 풍광이 일러주고 있었다. 양지 쪽 언덕에는 눈 속을 헤치고 야생초가 수줍은 듯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고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보리밭 이랑에서는 푸른 파도가 밀려오듯 들녘은 푸른색으로 색칠을 해가고 있었다. 봄의 경치를 만끽하며 백비를 찾는 즐거움이 겨울 추위에 움추렸던 가슴에 모닥불을 지피고 있었다.

박수량(1491년~1554년)의 묘소가 있는 곳은 장성군 황룡면 금호리이다. 좌청룡 우백호의 지형이 한껏 신비감을 불러일으키는 밀성 박씨 돈재공파 제실을 바라보면서 우측으로 계단을 따라 조금 올라서면 450여 년의 세월 속에 그 빛을 발하고 있는 묘소가 나타난다. 묘소에 올라서면 도시인의 답답한 체증을 내려 주려는 듯 널따란 벌안이 반겨준다. 주위의 벌송들은 묘소를 향해 도열 한 듯 봄기운을 하늘로 밀어 올리고 잘 가꾸어진 잔디가 포근한 양탄자를 깔아놓은 듯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둘레석은 허리띠를 두르고 있는 듯 단아하고 고풍스러우며 봉분 또한 둥그런 보름달을 옮겨 놓은 듯 주위의 조용하고 아늑한 풍광을 거느리고 있어 명당임을 말해주고 있다.

커다란 봉분 앞에 서면 백비白碑 하나가 뭇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글자 한 자가 새겨지지 않은 흰 비석이 옛 풍상을 이기고 고고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묘소 옆의 오래된 안내판이 다행스럽게도 백비의 궁금증을 해소해 주고 있다.

이 비는 조선 명종 때 의정부 우참찬이자 청백리로 유명한 정혜공凊惠公 아곡莪谷 박수량이 죽자 나라에서 하사한 것이다. 왕은 그의 부음 소식을 듣고 ‘수량의 청백한 이름은 이미 세상에 알려 진지 오래이다’라고 하며 비를 하사하라고 명하는 한편 그 비에는 한 글자도 쓰지 말라고 하여 그 맑은 덕을 기리게 하였다. 박수량의 청백함을 알면서 새삼스럽게 그 실상을 새긴다는 것은 오히려 그의 청백함에 누가 될지 모른다고 생각을 하여 이런 백비가 세워지게 된 것이라고 하였다.

묘소 오른쪽에는 김인후 선생이 지은 묘비명이 서 있다. 커다란 풍채만큼이나 위압감을 주지만 공의 조정에서의 활동을 후세에 잘 전해주고 있다.

‘공은 평생을 통해 몸가짐이 간결하고 엄중하였으며 조심하고 빈틈이 없었으며 모든 행동을 예법에 맞게 하되 자신을 극복하는 데 더욱 힘썼다. 공의 성품은 겸퇴謙退하여 행동에 근신하였고, 체질은 약하여 마치 의복 무게를 이기지 못할 듯 보였다. 문장이 있으나 겉으로 드러나지 아니하고, 주량은 한정이 없었지만 자제하여 지나치지 않았다. 그가 담양 부사로 있을 때에 모친이 이질 병에 걸려 중태에 이르자, 몸소 탕약을 달이며 옷에 띠를 풀지 않은 적이 수십 일이었고, 대변의 곱똥 까지도 맛을 보아 병의 차도를 알아보았다. 그는 조정에서 벼슬한 38년 동안에 경상卿相의 지위에 이르렀으나 두어 칸의 집도 없었다’ 라고 밝히고 있다.
역사적인 사실을 알아보기 위해 기록을 찾아보게 되던 중 특히 인상적이었던 한시漢詩 한 편을 발견하였으니 강릉 경포대에서 읊은 작품이다.

鏡浦臺

鏡面磨平水府深
只鑑人形未鑑心
若使肝膽俱明照
應知臺上客罕臨
거울인양 평평하고 수심 깊은데
단지 사람 모습만 비추고 사람 마음은 비추지 못하네.
만약 속마음을 몽땅 환하게 비춘다면
응당 알겠거니와 경포대 위에 머물 사람이 드물 것이네.

경포대의 맑은 물속에 속마음이 비친다면 누가 과연 경포대에 오르겠는가? 공은 경포대에 와서도 자연 경치를 즐기기보다는 청렴을 생각하였다. 중종, 명종 시절에는 부정부패가 극심한 시대이었기에 읽는 이의 마음을 대쪽으로 후려치는 듯하다.
명종실록 1551년 10월 24일 기록에 의하면 부정부패가 만연한 전라도 관찰사로 부임하게 된 공은 1551년 10월 전라도 백성을 구제할 약제를 보내 달라고 조정에 요청한다.

“가을부터 따뜻하고 무더운 것은 봄여름의 환절기 같기도 하고, 강풍과 폭우에다가 우박이 내리고 눈이 날리는 등 한랭한 기후는 겨울 같기도 하며, 짙은 안개가 사방에 깔려 아침 내내 걷히지 않기도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절후가 순조롭지 못할 때에는 사람들이 병에 걸리기 쉬운데 임신부는 더욱 병에 걸리기 쉽습니다. 약제藥劑를 내려보내 이 백성의 목숨을 널리 구제하게 하소서”

이 해는 여느 해와 달리 가을 날씨가 지극히 불순하여 사람들이 병에 걸리기 쉬웠다. 특히 임산부는 위험하였다. 박수량은 이런 상황을 조정에 보고한 것으로 보아 참으로 애민하는 목민관이었음을 알 수 있기도 하다.
공의 묘소 앞 백비의 가르침은 그 뜻이 잊히지 않고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우리 기억 속에 살아있는 한 공은 우리 이웃으로 길이길이 살아남아 계실 것임에 틀림없다.

오늘날처럼 정국은 혼란스럽고 여야는 사생결단의 심정으로 싸우고 있으며, 국민 여론은 분열되어있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보신다면 과연 어떤 말씀을 하시게 될지 궁금해진다. 450여 전의 말씀이 지금도 살아있는 듯 마음을 숙연케 함은 나만의 심정일까?
찾는 이들의 속마음을 맑고 밝게 비추어주는 거울로 남아 있기를 바라며 봄 햇볕의 따뜻한 여운을 뒤로하고 돌계단을 내려오니 내 마음 또한 거울에 비친 양 부끄러워짐을 어찌할 수 없었다.

하늘이 열리다

나는 아버지께서 마흔이고 어머니께서는 서른여덟 살이던 병술년(1946년 음 9월 22일) 5남매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의 연세로 보면 늦은 때인지라 집안의 경사인 것은 분명했다. 다른 집에 비하면 우리는 형제자매 수가 적은 편이었다. 우리 마을은 일곱이나 여덟 명의 자녀들을 기르는 가정이 많았다. 농경시대에는 형제 수가 많아야 노동력이 있어 부를 창출하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아들의 출생은 그야말로 경사 중의 경사였다.

아버지께서는 일제 강점기인 1939년 일본으로 징용을 가시어 6년 동안을 이국 땅에서 보내시게 된다. 이런 연유로 바로 위 매씨와는 팔 년 터울이 생기게 되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으로 해방이 되자 바로 귀국선에 몸을 싣고 꿈에 그리던 고국 땅을 밟으셨다. 내가 철이 들 무렵에는 일본에서 지내셨던 일에 대해서는 별로 말씀이 없으셨기에 겪으신 고통이나 위험에 대해서는 잘 알 수 없었기에 궁금하기도 했다. 생활 공간이 외부와 차단이 되어 비밀에 휩싸인 곳이 아니었나 짐작을 해보곤 한다.
몸에 지니고 오신 것은 오로지 입으신 헌 옷과 신발뿐이었다고 한다. 조그만 가방 하나도 챙기지 못하고 빈 몸으로 나오시게 되었다. 다행히 목숨만이라도 살아오셨으니 어머니의 반가움이야 오죽했으리오마는 6년여 만에 고향에 오신 아버지는 빈손으로 나타나셨으니, 그 서운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살아생전 어머니께서 늘상 하시던 말씀이었다. 미안한 마음이 있으셨던 아버지께서는 “기차 안에서 화장실 가는 바람에 옆 사람에게 맡겨둔 가방을 잃어 버렸다”며 곤욕스러움을 모면하셨다고 한다.

어두움 속에서 새어 나온 햇빛이 더 밝고 강렬하듯이 아버지께서 귀국한 이듬해 내가 출생하게 된 것이다. 아들이 귀하던 우리 집에는 경사가 난 셈이었다. 막내로 얻은 아들을 어머니께서는 믿고 응원하시며 어려운 농촌 살림살이를 버텨나가셨다. 구름이 걷히고 맑은 하늘이 나타나듯 내가 커가면서 살림은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고 조금씩 나아지게 되었다.

우리 집은 동네 외진 곳이었다. 뒤쪽에서는 산자락이 내려와 소나무 숲을 이루었고 밤나무가 많아 가을이면 새벽에 일어나 알토란 같은 알밤을 주워 담느라고 호주머니가 미어지는 즐거움이 있었다. 앞쪽으로 넓은 들녘이 들어와 풍년을 기약하였고 먼발치에는 문필봉이 솟아 호기심이 마음을 들뜨게 했다. 집 뒤란에는 가을이면 키가 큰 노오란 국화 송이가 보름달을 닮은 듯 집안을 환하게 밝혀 주었고, 마당 한쪽에는 살구나무가 있어 열매가 익는 철이면 동네 꼬맹이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논두렁 길을 달리고 뒷산을 오르내리며 나의 감성은 자라기 시작했으며 내 꿈과 호기심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아버지께서는 생사고비를 넘기고 돌아오신 분답게 모든 일에 대범하게 대처하셨으며, 예의 바르고 점잖은 풍모를 잃지 않으셨다. 말씀을 아끼셨고 술은 입에 대지 않으셨기에 ‘법 없이도 사는 분’이라는 주위의 평판을 듣게 되었다. 반면 어머니께서는 진취적이고 활동적으로 일을 만드시는 분이셨다. 이런 성격 차이로 집안 분란이 끊이지 않기도 했다. 농촌에서는 일머리가 많기에 삶의 십자가를 싣고 자갈밭 길을 누비는 잔잔한 수레바퀴의 울림처럼 시골집의 적막을 울타리 밖으로 내몰아가고 있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박내섭
춘산 春山 박내섭 朴來燮✽출생 및 학력・1946년 장성 출생・광주수창초, 광주서중, 광주제일고등학교 졸업・광주교육대학 졸업・한국방송통신대학 초등교육과 졸업・광주교육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과학교육 석사)✽교육경력・교육경력 39년(교감 정년)・전문상담교사✽상훈・전라남도교육감 표창장(1977년)・교육부장관 표창장(2000년)・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장 표창장(2001년)・광주교육대학교 총장 상장(2003년)・전라남도지사 표창장(2005년)・홍조근정훈장(2008)✽사회활동・《동산문학》 수필 신인상(2023년)・자원봉사영예인증서 금장(사) 광주시자원봉사센터)

  회원리뷰

리뷰쓰기

    이 분야의 신상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