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초록 개구리 한 마리가 초록빛 잎이 무성한 나뭇가지에 걸터앉아 있다. 안경을 끼고 바지를 입고, 어딘가 남달라 보이는 개구리는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 자꾸만 나무 아래를 흘긋거린다. 개구리는 무얼 하고 있는 걸까?
정답은 ‘편지’를 기다리는 중이다. 이 책을 읽는 어린 독자 가운데 편지를 쓰거나 받아 본 적이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아직 어려서 기회가 없었다고 한다면, 어른이 되기까지 몇 통의 편지를 쓰고 받을까?
오늘날 편지는 이메일에게 자리를 내어 준 지 오래이다. 편지지나 우표를 따로 살 필요가 없고, 손이 아프게 글을 쓸 필요도 없으며, 보낸 즉시 상대방에게 전달할 수 있고, 사진이나 그림을 따로 뽑아 동봉할 필요도 없으니 그 이유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그러나 편지는 그 모든 번거로움과 수고를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다.
직접 문방구에 나가 예쁜 편지지를 고르고, 받는 사람을 떠올리며 한 줄 한 줄 정성들여 글을 쓰다가 지우기를 반복하고, 빨간 우체통을 찾아 편지를 부치고는 하루하루 조바심 내며 답장을 기다렸던 기억이 있는 사람들에겐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편지를 주세요>는 이러한 편지의 즐거움과 설렘을 태어나서 처음 편지를 쓰게 된 개구리의 모습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개구리, 우편함으로 이사 오다
아침마다 무화과나무에 걸린 우편함에 편지가 왔는지 확인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까까머리 주인공. 어느 날 아침, 그 우편함으로 개구리 한 마리가 (허락도 없이) 이사를 온다. 우편함의 주인인 주인공 앞에서 도리어 집주인 행세를 하는 개구리. 심지어는 귀찮다는 듯 우편함을 들여다보는 주인공을 내쫓는다. “미안하지만 오늘은 이사를 하느라 너무 바빠. 다음에 놀러 오라고.” 참으로 맹랑한 녀석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요즘 대세인 ‘나쁜 남자’처럼 어쩐지 밉지 않은 캐릭터이다. 앞으로 개구리가 펼칠 이야기가 기대를 모은다.
편지는 이름이 쓰여 있는 사람이 주인
안하무인 개구리 씨, 이제는 주인공 앞으로 온 편지까지 마음대로 읽고 자기 거라며 생떼를 부린다. 그러나 편지는 당연히 이름이 쓰여 있는 사람이 주인인 법. 개구리는 어쩔 수 없이 주인공에게 편지를 내준다. 그런데 이 편지란 것, 꽤 재미있다. 개구리는 문득 질문을 던진다. “어떻게 하면 나도 편지를 받을 수 있지?” 그리고 편지를 받고 싶다는 욕심이 개구리에게 직접 편지를 쓰도록 이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쓰는 편지는 어떤 느낌일까?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까지 개구리의 두근거림이 전해지지는 않을까?
편지를 주세요
‘누군가’에게 편지를 보낸 개구리는 이제 답장을 기다린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답장이 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개구리야, 답장이 왔니?” “아니, 아직. 머지않아 오겠지, 뭐.” 자존심 강한 개구리는 애써 태연한 척해 보지만 하루하루 속이 바짝 타들어 가는 건 어쩔 수 없다. 십분 이해가 되고도 남는 장면이다. 누군가의 답장을 애태워 기다려 본 적이 없더라도 자연스레 개구리와 함께 마음을 졸이게 된다. 만약 답장을 받으면 개구리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기쁨을 감추고 ‘뭐, 이 정도쯤이야.’ 어깨를 으쓱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시시한 결말은 원하지 않는다.
유쾌한 반전의 반전
결국 답장을 받지 못한 개구리는 우편함을 떠나 버린다. 그리고 텅 빈 우편함을 청소하던 주인공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개구리가 편지를 쓰고 답장을 기다린 사람이 바로 자기라는 사실! 주인공은 서둘러 답장을 쓰지만 떠나 버린 개구리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이야기는 이렇게 끝을 맺는 듯하다. 그러나 또 한 번의 기발한 반전이 독자를 기다리고 있다. 개구리가 자신에게 편지를 쓴 사실을 몰랐던 주인공처럼 독자 또한 마지막 장을 읽고서야 비로소 이 책이 자신에게 띄우는 주인공의 편지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누군가 그 개구리의 주소를 안다면 저에게 편지를 주세요. 부탁합니다!”
<편지를 주세요>는 온통 싱그러운 초록색으로 가득 차 있다. 책장을 펼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상쾌해지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속에 상징적으로 자리한 빨간 우편함. 작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보낸 편지, 태어나서 처음으로 받은 편지를 마법과 같은 세계로 표현하며 그 매력을 초록과 빨강으로 그려 냈다고 한다.
“어린이의 편지는 좋다. 특히 글자를 막 익힌 어린 아이의 편지는 아주 놀랍다. 연필이 부러질 정도로 힘껏 쓴 자유롭고 구김살 없는 편지를 받으면, 하루 종일 가슴에 군고구마를 안고 있는 것처럼 따뜻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보낸 편지, 태어나서 처음으로 받은 편지. 그것은 마법과도 비슷한 흥분의 세계일 것이다. 그 이상한 매력을 녹색 세계 속의 빨간 우편함으로 상징화시켜 이 그림책이 탄생되었다고나 할까.”
작가 소개
저자 : 야마시타 하루오
1937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다도해 지역인 세토나이카이의 노우미 섬에서 보냈습니다. 이후 교토대학 불문과를 졸업한 뒤, 출판사에서 어린이책을 만들다가 창작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바다를 달리는 백마>로 노마아동문예상을, <절반 줘>로 소학관문학상을, <바다의 박쥐>로 아카이시마문학상을, <갈매기의 집>으로 로보우노이시문학상을 받았습니다. 그 밖에 <시마히기 도깨비><풍덩 해수욕>을 비롯한 여러 작품을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