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우리의 대화는 돌봄이 될 수 있을까? 다양한 영역에서 저마다의 창작과 활동을 이어가는 6인의 필자가 또 다른 활동가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언뜻 인터뷰처럼 보이지만, 기획 단계부터 르포-에세이라는 독특한 형식을 고안하고 집필된 글들은 단순히 질문과 응답을 주고받는 데 그치지 않는다. 청자인 필자들은 자신의 위치를 가감 없이 드러내며 인터뷰이와 적극적으로 얽히기를 시도한다. 인간과 비인간, 가족주의와 소유, 혐오와 배제, 능력주의와 속도, 탈가정과 시설, 인종과 섹슈얼리티를 둘러싸고 저마다의 불안과 긴장감 속에서 전개되는 대화들. 지리멸렬하고 끊임없이 미끄러지고 실패하며 얽히는 돌봄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출판사 리뷰
매끄럽지 않은, 확신 없는,
긴장감 속에서 이어지는 여섯 편의 대화
우리의 대화는 돌봄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다양한 영역에서 창작과 활동을 이어가는 6인의 필자가 돌봄을 주제로 또 다른 활동가들을 만나 대화를 나눴다. 언뜻 인터뷰처럼 보이나 실상 르포-에세이라는 새로운 형식을 고안해 지향하는 이 글들은 청자로서 필자의 위치를 가감 없이 드러낼뿐더러 인터뷰이와 적극적으로 얽히기를 주저하지 않는 글쓰기다.
“더 단단한 자아”보다 “더 정확한 말 걸기와 더 오래 머무르는 서로-듣기”를 추구하는 글쓰기. 필자들은 그러한 태도로 이 글들이 돌봄의 또 다른 양태가 되길 바라고 있다. 추상적이고 거창한 돌봄이 아니라 지리멸렬하고 끊임없이 미끄러지고 실패하는 돌봄에 대해 말함으로써 말이다. ‘싸우는 이’를 ‘돌보는 이’로 바라보는 필자들은 자기 곁의 누군가가 어떻게 싸우고 있는지 듣는다. 서로의 싸움과 소진에 대해 이야기 나눈다.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또 다른 관계와 돌봄으로 나아가는지 기록한다.
인간과 비인간, 가족주의와 소유, 혐오와 배제,
능력주의와 속도, 탈가정과 시설, 인종과 섹슈얼리티를 둘러싸고
흔들리는 질문으로 서툴게 말 걸기
6인의 필자는 저마다 다른 돌봄의 경험과 사유를 품고 있지만, 한 가지만은 뚜렷하게 공유한다. 곁의 삶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사람은 돌보는 사람일 수밖에 없다는 것. 필자들은 “누군가를 죽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세상이 오길 바라며” 싸우는 일을 투쟁 이전에 돌봄으로 본다. 그래서 이들이 인터뷰를 청한 이들 또한 동물권, 장애운동, 청소년 인권운동, 성노동자운동 등 다양한 영역의 활동가들이다.
인간과 비인간, 가족주의와 소유, 혐오와 배제, 능력주의와 속도, 탈가정과 시설, 인종과 섹슈얼리티…… 조금씩 다른 관심사 속에서 ‘당신과 대화하고 싶다’며 서툴게 말 걸어 나눈 대화들의 기록은 결코 매끄럽지도, 편안하지도 않다. 흔들리는 질문 속에 이어지는 대화에서는 줄곧 긴장감이 느껴지고, 때로는 ‘인터뷰이를 놔두고 이렇게 자기 얘기로 빠져도 되나?’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질문하는 이와 질문받은 이가 서로를 흔들며 지면이 물결치듯 문장이 이어진다.
구체적인 돌봄(싸움)의 현장들
: 생추어리, 집, 용주골, 광장, 암스테르담, 길거리
이 책에 담긴 돌봄(싸움)의 현장들을 보자. 희음의 글에서는 축사 안 ‘돈방’이 냄새로 훅 끼쳐온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병한 지역의 돼지들이 ‘집단 살처분’된 축사에 동료 활동가 혜리와 함께 방문한 희음은 당장이라도 몸을 돌려 도망치고 싶을 정도로 냄새에 압도당한다. 그런 자신과 달리 돼지들이 머물렀던 흔적을 전부 다 보고야 말겠다는 듯 바삐 축사를 돌던 혜리의 모습은 희음에게 무거운 메시지처럼 다가왔다. ‘돼지고기’라는 보편의 문법을 의심하기 시작한 희음은 생추어리에서 돼지 ‘새벽’을 돌보는 혜리와의 대화를 통해 자본주의 및 종차별주의에 기반한 착취와 수탈 시스템을 비판적으로 돌아본다. 김누리의 글에서 돌봄의 현장은 ‘집’이다. 전주에서 나고 자라 학업을 위해 서울에서 지냈던 필자는 10여 년 만에 전주로 간다. 그곳에서 지역 커뮤니티 공간 ‘지향집’과 숙소 ‘모악산의 아침’을 운영하는 모아를 만나 가족 아닌 이들과 다시 살아가는 집에 대해 이야기 나눈다.
윤은성의 현장은 2023년 1월부터 성매매 집결지 폐쇄를 위한 행정대집행이 강행된 용주골이다. 그곳에서 용주골 종사자들과의 연대에 가장 앞장섰던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활동가 여름을 만난다. 둘의 대화는 성노동을 둘러싼 구조적·역사적 문제와 ‘탈성매매’ 및 ‘성노동은 불법’이라는 납작하고 시혜적인 시각을 되돌아보게 한다. 한편, 같은 성노동 담론을 다루면서도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입양된 해외 입양아이자 암스테르담에서 성노동자로 일하는 주리와의 대화를 기록한 김혜수는 인종, 이주, 섹슈얼리티의 교차성을 통한 우정과 연대로 또 한번 질문을 확장한다.
최예린은 동료 활동가 한나, 몰라와의 대화로 다양성, 장애, 동물이 만나는 지점을 모색한다. 특히 아픈 몸과 마음을 중심으로, 광장에 설 수 없는 몸들의 취약성을 어떻게 책임감의 부족으로 오해하지 않으면서 함께 감당할 수 있을지 사유한다. 마지막으로 보란의 글은 교사로서 학교에서 만난 학생 가을(가명)과의 관계를 수평적인 돌봄관계로 인지하지 못했던 경험을 회고하며 청소년 인권활동가 한낱과의 대화를 연다. 길거리에서 탈가정 청소년들을 만나며 지원한 한낱과 대화로 얽혀들며 인식적 전환을 느끼게 되는 보란은 청소년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아픈 부모 돌봄에서 겪은 여러 경험들 또한 되돌아보며 존재의 고유성에 감응하는 몸과 더 나은 돌봄의 미래를 상상하기 시작한다.
결국은 관계와 돌봄에 대한 이야기
필자들은 한목소리로 말한다. “‘독립’이란 상상된 개념에 지나지 않는다”고. 단단한 홀로서기가 ‘좋은 삶’의 기본으로 여겨진 지 오래지만 이 책은 우리 인간이 “한 번도 독립한 적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며, “각자도생의 이데올로기가 만든 근사한 가짜 그림”을 지우고 그 자리에 관계와 돌봄을 불러오자고 청한다.
그렇게 불려나온 관계와 돌봄에 대한 이야기들은 거칠고, 불안하고, 고민한다. 그런 와중에도 계속 시도한다. 관계 맺기를, 돌봐지고 돌보기를, 이야기를 듣고 받아 적고 반응하기를. 여섯 편의 대화를 경청한 끝에 독자 또한 자신의 자리에서 치밀어오르는 돌봄 이야기를 참을 수 없어지기를 필자들은 바란다. 그것이야말로 이 책이 세상에 나온 이유이기 때문이다. 지나치도록 소란스럽게 돌봄을 떠들자. 그렇게 무한히 얽히는 돌봄의 촉매로 이 책이 읽히기를 희망한다.
글들은 이 끈질김의 시간을 듣고 상상하고 이어받아 고백하는 시간 가운데서 쓰였다. 생추어리 활동을 통해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를 온전히 새롭게 재구성해보려는 시도와 그 곁에서 같은 꿈을 꾸기, 가족주의와 소유를 넘어 다른 집의 형태를 함께 모색하고 감각하는 실험, 혐오 정치와 배제의 제도 속에서 끝없이 밀려나는 성노동자와 연대자로서 더 힘껏 서로의 곁에 있는 일, 각자의 기억을 나누고 엮으며 사회운동에 내재한 조건을 처음부터 다시 묻는 대화, 이주 성노동자의 이야기와 숨을 직접 들으며 인종화된 몸에 대해 돌아본 기록, 탈가정 청소년과 함께, 또 반듯하지 않은 얼굴로 얽혀왔던 가족과 함께 보호와 자유 사이의 균형을 모색하는 고백의 기록. 이 모든 글은 인터뷰이와 인터뷰어가 함께 듣고 함께 쓰고 함께 살기 위한 지난한 시도다. (프롤로그)
그런데 혜리는 달랐다. 망설임이 없었다. 축사의 문을 재빠르게 열어젖히고는 흐르듯 축사 안으로 들어갔다. 축사는 똑같이 생긴 여러 개의 돈방으로 이뤄져 있었는데, 틀린 그림 찾기라도 할 요량처럼 혜리는 그 돈방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빠짐없이 들여다봤다. 돼지들이 머물렀던 모든 구석과 틈새의 흔적이란 흔적은 다 보고야 말겠다는 듯, 혜리는 거의 뛰어다니다시피 하며 축사를 돌았다. 그 움직임은 마치, 집단 살처분 현장에 고여 있는 깊은 침묵을 가만두지 않으려는 몸짓처럼 보였다. 구석구석을 살피는 그의 걸음에 따라, 비어 있는 축사가 감추고 있던 것들이 조금씩 드러나는 듯했다. (이토록 갈라진 세계에서)
집에 머무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바깥을 떠돌며 몸과 마음이 넝마가 되어갔다. 그럴수록 모아가 살아온 시간이 더 궁금해졌다. 나는 이제 고통만을 주는 집과 연결되어 이다음을 살아갈 자신을 잃었으니까. 그 미래를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으니까. 언젠가는 꼭 물어보고 싶었다.
모아는 왜 그 집으로 돌아갔을까. 그 집의 어떤 것이 모아를 부르게 되었을까. 어떻게 스스로 그 집을 지키겠다고 다짐할 수 있었을까. 그 집에서 또 무엇을 모아가고 있을까. (여기 우리에게도 아침은 오고 있으니까)
작가 소개
지은이 : 희음
여러 불안정 노동을 하며 르포와 시, 에세이를 쓴다. 동물 및 동물화된 존재들의 목숨과 시간을 마음대로 주물러온 오랜 질서가 끝나기를 바란다. 르포 《공장이 사라지고 남은 얼굴들》, 시집 《치마들은 마주 본다 들추지 않고》 등을 펴냈다.
지은이 : 윤은성
기후·생태 현안을 중심으로 활동한다. 개와 고양이들의 체온을 나눠 받고 산다. 시집 《주소를 쥐고》, 《유리 광장에서》, 《여름, 연루》(공저)를 출간했다. 성노동자들을 애정한다. 예술은 정치적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지은이 : 보란
중등 화학 교사. 어쩌다 부모를 돌보게 된 이야기를 쓰면서 매번 실패하는 중이다. 동료 덕분에 실패를 사랑하게 되었다. 공저로 《우리 힘세고 사나운 용기》, 《다름으로 환대하며 존재로 가르치는》을 썼다.
지은이 : 최예린
활동명은 기린(祺潾), 동물·생태·평화를 말하는 이들에게 기대어 지낸다. 식민지기 축산업을 다룬 연구를 했으며, 비교문학 공부를 이어나가고 있다. 모든 존재가 각자에 맞는 시간과 리듬으로 살아가는 세상을 꿈꾼다.
지은이 : 김누리
전주에 살며 읽고 쓰고 노래한다. 모두가 집을 잃거나 빼앗기지 않을 세상에 머물 수 있는 삶을 꿈꾸고 실천하기 위한 기록활동을 한다. 돌봄과 연결의 힘에 기대어 앞으로 더 정확히 비관하고 구체적으로 낙관하고 싶다.
지은이 : 김혜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포르노 영화제를 공동 기획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이성애규범적 서사에 반하는 변태적 관계성, 퀴어한 친밀감, 난잡한 돌봄을 꿈꾼다. 미친 여자를 애정하고 연대한 몸은 함께 괴물이 된다고 믿는다.
목차
프롤로그
이토록 갈라진 세계 앞에서
: 돌봄활동가 혜리에게 기대어 잇고 엮은 이야기 희음
여기 우리에게도 아침은 오고 있으니까
: 가족 아닌 이들과 다시 살아가는 집 김누리
여름에 만난 여름과 나
: 성노동자 해방운동과 연대 이야기 윤은성
각자의 리듬과 속도에 맞게 살아가는 세상을 꿈꾸며
: 다양성, 장애, 동물이 만나는 지점을 한나 그리고 몰라와 함께 이야기하다 최예린
늙은 창녀들의 수다 떠는 집에서
: 인종, 이주, 섹슈얼리티의 교차성을 통한 우정과 연대 김혜수
지금 여기에서, 함께 뿌리내리기
: 존재의 고유성에 감응하는 몸을 배우며 더 나은 돌봄의 미래를 상상하기, 전 엑시트·자립팸 활동가 한낱과의 대화 보란
에필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