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폴 오스터 ‘그리고’ 시리 허스트베트”
두 사람이 함께 만든 43년의 시간, 그 마지막 기록폴 오스터와 시리 허스트베트, 이 두 지성의 결합은 문학사에서도 보기 드문 ‘상호 보완적 우주’였다. 폴이 독자를 매료시키는 이야기꾼이었다면, 시리는 철학, 신경과학, 예술사를 넘나들며 인간의 심연을 해부하는 정교한 관찰자다.
작가 폴 오스터가 세상을 떠난 2024년, 전 세계는 애도에 잠겼다. 이제 그가 남긴 빈자리를 가장 치열하게 기록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 43년의 세월을 아내이자 문학적 동지로 함께한 시리 허스트베트뿐이다. 《유령 이야기》는 폴 오스터의 마지막 순간에 대한 애틋한 회고이자, 기억과 존재의 의미를 묻는 시리 허스트베트 특유의 날카로운 지성이 빛나는 산문집이다. 시리는 그가 떠난 자리에서 시리는 상실의 고통을 정교한 언어로 해부하기 시작한다. 이 책은 한 작가가 다른 작가에게 바치는 가장 내밀한 작별 인사이며, 죽음 이후에도 이어지는 삶의 흔적에 관한 철학적 탐구다.
처음 공개되는 폴 오스터의 다정한 편지와 메모, 손자를 위해 남긴 미완성 원고 <마일스에게 보내는 편지>는 이 두 작가의 삶이 얼마나 지독하게 아름다운 친밀함으로 엮여 있었는지 보여준다. 또한 미공개 편지들과 투병 기록을 통해 우리는 ‘인간 폴 오스터’의 가장 부드러운 속살을 만나는 동시에, 그를 떠나보내며 홀로 빛을 발하는 시리 허스트베트의 깊은 사유와 마주하게 된다.
문학적 동반자로 함께한 삶이 책은 한 사람의 죽음 이후를 다루지만, 그 중심에는 끝이 아니라 ‘시간의 지속’이 놓여 있다. 폴 오스터와 시리 허스트베트는 43년 동안 함께 읽고 쓰고 살아온 문학적 동반자였다. 둘 다 시인으로 문단에 등단한 후, 폴은 소설가이자 영화감독으로, 시리는 소설가이자 인문학자로 문학적 지성을 단단히 구축해왔다. 행복과 즐거움이 많았지만 예기치 않은 사건과 그로 인한 깊은 고통도 감내해야 하는 삶이었다. 두 사람이 함께 통과한 그 시간이 이 책에서 하나의 결로 드러난다.
허스트베트는 폴의 부재를 설명하거나 강조하지 않는다. 대신, 그와 함께한 시간의 층위를 천천히 드러낸다. 같은 공간에서 나누었던 대화, 서로의 문장을 읽어주던 습관, 말없이 공유되던 일상의 감각들. 그 결과 이 책은 ‘떠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함께 존재했던 시간’에 대한 기록이 된다. 한 사람의 생은 끝났지만, 그와 함께 만들어진 세계는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폴 오스터라는 유령에 관하여폴은 유령이 되어 돌아오고 싶다고 말했다. 이제 시리는 폴과 함께 만든 집에 남아,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어쨌든 현재에는 없는 그럼에도 방마다 깊숙이 배어 있는” 그 유령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로 대변되는 멜빌의 고집스런 서기 바틀비의 성정을 닮은 사람, 정직하다 못해 눈치 없음으로 종종 타박을 받고, 팬들의 열광에 늘 당황해하고, 좋아하는 영화를 DVR에 담아놓고 몇 번을 봐도 똑같이 감동하고, 시가를 사랑했고, 빨간색 팬티는 싫어하고, 병석에서도 뉴욕 메츠의 스프링 캠프 시작 소식에 눈빛을 반짝이고, 아들에 대한 무한한 희망/딸과 사위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감추지 못하는, 그 자신 ‘블루 팀’이자 모든 사람을 그 기준으로 판단한, 들어줄 만한 사람이면 누구에게든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꺼내 읽어주길 좋아했던 사람. 손으로 써서 타자기로 옮기며 글을 썼고, 소통의 기재는 팩스와 집전화에 멈춘 채 모든 걸 지면과 머릿속에서 뽑아냈고, “지면에 피를 쏟듯 단어 하나하나를 써”낸 작가, 가장 좋아하는 서재에서 농담을 하며 죽고 싶어 했던, 죽어서도 유령이 되어 시리가 어떤 글을 쓰는지 돌아와 보고 싶어 한 사람. 이 책에는 한집에서 오랫동안 함께한 삶의 동반자만이 알 수 있는 폴의 모습들이 유머러스하고 절절하게 담겨 있다.
애도를 넘어, 시간과 존재를 사유하는 글쓰기《유령 이야기》는 슬픔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대신, 그 감정을 둘러싼 시간과 기억의 구조를 천천히 따라간다. 허스트베트의 문장은 감정을 설명하기보다, 그것이 남긴 흔적을 포착한다. 몸에 새겨진 기억, 반복되는 감각, 그리고 사라지지 않는 관계의 여운. 시리 허스트베트의 특기인 지성, 관찰력, 언어의 밀도가 문장마다 집약되어 빛을 발한다.
“나는 폴과 내가 함께 만든 ‘우리’라는 이름의 유령이 깃든 집에 살고 있다.”라는 고백은,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인식이기도 하다. 여기서 ‘유령’은 부재의 상징이 아니라, 여전히 현재에 영향을 미치는 존재 방식이다. 사라진 이후에야 비로소 드러나는 시간의 깊이, 그리고 사랑의 지속.
이 책은 애도의 기록을 넘어, 인간이 시간을 어떻게 경험하고 기억하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유의 형식이다.
서로의 문장을 읽어온 두 작가의 마지막 텍스트 폴 오스터와 시리 허스트베트는 40여 년 동안 서로의 글을 읽고 의견을 주고받으며 살아왔다. 이 책은 그 오랜 공동 작업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허스트베트는 여전히 폴의 목소리를 듣는다. 문장을 고치고, 표현을 다듬고, 서로의 생각을 교환하던 시간은 그의 부재 이후에도 계속된다. “이것은 출간 전에 폴이 읽지 않은 나의 첫 번째 책이 될 것이다”라는 문장은, 이 책이 지닌 고유한 위치를 드러낸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한 사람이 혼자 쓴 기록이면서도, 동시에 두 사람이 함께 만든 마지막 텍스트다.
서로의 내면을 읽고, 문장을 통해 관계를 이어왔던 두 작가의 시간은 이 책 안에서 여전히 살아 있다. 그리고 그 시간은, 읽는 이에게도 조용히 이어진다.
이 책에서 애도는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유령 이야기》는 애도를 드러내기보다, 남아 있는 시간을 바라보는 책이다. 함께 보낸 시간의 결들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고, 사랑을 말하기보다 사랑이 어떻게 기억되는지를 보여준다. 한 사람의 부재는 사라짐이 아니라, 남아 있는 것들을 다시 보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한 사람을 오래 사랑한다는 것, 그리고 그 시간을 끝까지 지켜본다는 것. 이 책은 그 조용하고도 깊은 기록이다. 슬픔을 감정이 아니라 사유로 밀어붙이는 시리 허스트의 압도적인 시선 덕택에, 눈물 나는 책이 아니라 읽고 나면 정신이 또렷해지는 책이 되었다.

이곳은 우리가 한 층에서 다른 층으로 서로를 부르던, 거실의 녹색 의자에 앉아 서로의 원고를 소리 내어 읽던, 정원에 나가 앉아 있던, 그가 깜빡 잊고서 그 순간을 놓칠까 두려워 막 봉오리를 터뜨리는 튤립이나 활짝 만개한 장미를 내가 손가락으로 가리켜주던 집이다. 그가 없는 지금 장미가 다시 피고 있다. 그가 없이도 분홍 장미꽃들이 흐드러지게 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우리가 짧거나 긴 대화를 나누던, 논쟁을 벌이거나 사랑을 선언하던, 우리가 통제하거나 막을 수 없었던 일들 때문에 고뇌하던 집이다. 벼락이 내리친다. 또 다시 내리친다. 사소하거나 중대한 사안들을 놓고 길게 이어지는, 이제는 끝나버린 대화를 나누던 집이다.
나는 처음 만났을 때의 당당하고 멋지던 젊은 폴을 그리워하는 게 아니다. 나는 항암치료로 짓눌리기 전의 늙은 폴이 간절히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