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신태범 소설가의 두 번째 소설집이다. 표제작 「당신 가슴에 품을 칼」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가슴속에 품고 있는, 타인을 향한 본능적이고도 방어적인 ‘적대 의식’을 은유한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그 감각은 우리의 내면을 조용히, 그러나 날카롭게 가르고 있다.
이 작품집은 무한 경쟁과 각자도생의 논리가 지배하는 시대를 배경으로, 점점 거칠어지고 황폐해지는 인간 군상의 모습을 집요하게 포착한다. 서로를 밀어내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 그 속에서 뒤틀리고 파열되는 존재의 내면과 삶의 균열을 날카롭게 그려낸다.
동시에 이 책은 단순한 고발에 머무르지 않는다. 무너진 공동체의 자리에서 다시 윤리와 연대의 가능성을 탐색하며, 황폐해진 인간성의 회복을 향한 미약하지만 끈질긴 움직임을 담아낸다. 독자들은 이 작품들을 통해 개인화·고립화·파편화된 삶 속에서 자신의 위치와 감각을 되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타인을 밀어내는 대신 다시 바라보는 시선, 그 작은 전환의 가능성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냉혹한 현실을 정면으로 응시하면서도, 그 속에서 인간과 공동체의 의미를 다시 묻는 이 소설집은 오늘의 우리에게 깊은 성찰과 여운을 남긴다.나는 병들고 썩어빠진 이 세상을 아주 당연한 듯, 태연하게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밉고 싫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는 듯, 평온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행색이나 표정이 정말 밉고 싫었다. 그 위선이, 그 무감각함이, 너무너무 싫고 미웠다. 그 미움과 싫음이 참을 수 없을 만큼 뱃속에 차오르면 나는 무작정 뛰쳐나가 세상에 불을 지르고 싶었다. 나는 상상했다. 대형 방화를 일으켜 세상을 경악과 공포에 사로잡히도록 만든 다음 나는 자수한다. 신문과 방송사 기자들이 떼로 몰려와 앞을 가로막고 취재에 혈안이 될 것이다. 나는 당당하게 말할 것이다. 내가 세상과 대적하기 위한 최후의 방법이 이것뿐이었다고. 대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달콤하고 깊은 잠에 빠져 오로지 자기 속에만 갇혀 사는 세상 사람들에게 경고할 방법이 이것밖에 없었노라고. 나는 외치고 싶었다. 세상 사람들아, 영문 모를 불길이 타오르니까 좀 놀랬냐? 좀 무섭고 불안하지? 너희들 집 담장 안으로도 머지않아 불쏘시개가 던져질지도 몰라. 정신 좀 차리는 게 좋을 거야. 당신들 옆에 누가 살고 있는지 한 번쯤은 되돌아보는 게 좋을 걸. 나 같은 방화범이 당신들의 곁에도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 줬으면 좋겠어. 성폭행범이나 유괴범만 무서워할 것이 아니라고. 그렇게 외치고 싶었다. 드디어 나는 방화를 실천하기로 작심했다. ― 「불 지르기」 부분
작가 소개
지은이 : 신태범
1942년 일본 홋카이도 탄광촌 광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광복과 함께 부산 ‘귀환동포수용소’를 거쳐 경남 벽촌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6.25 전쟁 이듬해 부산으로 내려와 10번 이사 끝에 지금의 거처에 20년째 살고 있다. 1969~2001년 부산시 공무원으로 재직하며 문화예술 분야의 기획지원 업무를 오래 맡았다. 덕분에 지역 문화계의 어른들을 자주 만나는 영광을 누렸다. 1963년 21살에 ≪사상계≫ 제5회 신인문학상 입상으로 문단에 얼굴을 내밀었으나, 군복무와 취업이 이어지며 글쓰기를 포기했다. 1973년 한 선배의 권유로 문인협회에 가입해, 여기저기 지면을 얻어 쓰다 말다 반복하다 오늘에 이르렀다. 2000~2001년 한 일간신문에 ‘신태범의 부산문화 야사’를 연재했다. 다수의 무용극 대본과 전국연극제 대상 작품 희곡 「노인 새 되어 날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축전 뮤지컬 「들풀」 대본 등을 썼다. 1979년 극단 <레퍼토리 시스템>을 창단해 잠시 대표를 맡았다. 2002~2005년 <요산김정한기념사업회> 초대 상임이사로 생가복원, 문학관건립 실무를 집행했다. 소설집 『수탉이여 영원하라』가 있다.
목차
당신 가슴에 품은 칼
불 지르기
무사한 사람들의 축배
그 많던 아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온몸으로 살아가기
작가의 말
또 한 권의 소설집을 보태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