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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블라디 오블라다
삶창(삶이보이는창) | 부모님 | 2026.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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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뒷골목으로 밀려난 인물들의 짧은 서사로 삶의 페이소스를 그려낸다. 배신과 배제, 수모 속에서도 일상을 이어가는 존재들의 사소한 에피소드가 이어지며, 비루함이 자아내는 감정이 독자를 붙든다. 상처를 견디는 강인함과 그 이면의 슬픔이 담담하게 드러난다.

‘작가의 말’처럼 술에 취해 숨어들 듯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반복적 재현에 머물지 않고, 독자가 그 정서에 동참할 자리를 마련한다. 사소해 보이는 사건마다 길게 말하지 못한 서사가 깃들어 있어 읽는 이에게 깊은 여운을 남긴다.

대문자 역사보다 개인의 삶에 집중하며, 소박한 형식과 ‘짧은’ 서사가 잘 어울린다. 욕망과 일상을 관찰하듯 그려내며 해석과 판단을 유보하는 태도를 취한다. 그 결과 독자는 작품 전반에서 지속적으로 페이소스를 감각하게 된다.

  출판사 리뷰

소박한 서정과 짧은 소설의 만남

김석일 작가의 짧은 소설들에는 평범함에도 미치지 못하는, 뒷골목 같은 데로 밀려난 인물들이 주로 등장한다. 나이 들고, 배신당하거나 속임수에 넘어간, 또는 공동체나 일가들에게서 배제된 존재들의 사소한 에피소드들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어떻게든 수모와 슬픔을 견디고 사는 강인함 같은 것이다. 개중에는 자살을 하거나, 끝내 사과 한마디 받지 못하거나, 심지어는 염치도 없이 일상을 살아가기도 하지만 이런 비루함들이 자아내는 페이소스는 읽는 도중 우리 주위를 돌아보게 한다.
‘작가의 말’에서 김석일 작가는 “습관처럼 술에 취해 숨어들 듯 살아가는 상처투성이 사람들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자주 끄집어냈다”고 했는데, 그것은 아마도 작가의 마음 깊숙한 곳에 직접 경험했건 아니면 들어서 기억하고 있건 그런 삶의 모습들이 음각되어 있어서일 것이다. 시든 소설이든 문학 작품은 일차적으로 마음에 새겨진 이런 정서와 이야기들에서 출발한다. 그렇다고 해서 무의미한 반복적 재현에 머물면 작품으로서의 격에 도달하지 못하는데, 최소한 독자로 하여금 그 정서와 이야기들에 동참할 수 있는 옆자리를 제공해야 문학이라고 부름직하다 할 것이다.
김석일 작가의 소설적 장점은, 언뜻 들으면 사소한 내용인 것 같지만, 차마 길게 말하지 못하는 서사를 등장인물마다 가지고 있다는 점에 있다. 예를 들면 「형수」에서 일본 여인과 결혼해 일본에서 사는 막내 경식이 십년 만에 추석 전날 찾아온다. 그런 경식이 못마땅한 춘식의 처 순자의 태도에서 독자들은 진부한 시동생과 형수의 관계를 떠올리기 십상이나, 이들 사이에 아주 깊은 가정사가 어둡게 웅크리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희한한 뭉클함을 느낄 것이다. 김석일 작가는 개인사나 가정사를 무리하게 대문자 역사와 연결시키지 않는다. 물론 「전라도 여자」에서 광주5?18이 그리고 몇몇 작품에서 베트남전 참전 군인의 일그러진 초상이 그려지기는 하지만 소설의 전경에 등장하는 것은 그런 대문자 역사가 아니다. 이런 소박함과 ‘짧은’ 형식은 그래서 잘 어울려 보인다.

페이소스, 페이소스……

한편으로 이번 작품집에는 초로의 남자들이 보여주는 비릿한 욕망을 드러내는 몇 작품이 실려 있는데, 이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관점은 그것의 긍정도 부정도 아니다. 어떻게 보면 일종의 관찰기 같기도 하다. 문제는 최근의 한국소설에서 그저 ‘개저씨’라고만 치부해버리는 남성들의 아름답지 못한 일상 혹은 서사가 거의 전무하다는 사회적 맥락이다. 이런 작품들에서도 작가는 그냥 담담히 그들의 초상을 그려낸다. 아무런 해석도 채색도 없이 말이다. 이런 풍속화적 기법은 어쩌면 이야기꾼의 일차적 덕목일 수도 있는데, 이것은 세태에 대한 야유인지 체념인지 약간 모호해 보이지만 어쩌면 독자들에게 그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 작가의 일차적 의도처럼 보인다. 예를 들면 「작전 실패」, 「개꿈」, 「비의 탱고」 같은 작품들이 그런 경우다. 「비의 탱고」에서 ‘나그네다방’의 얼굴마담 민해자가 나중에 드러내는 천박성은 그녀에게 접근하는 남성들을 비추는 거울의 역할을 하는데, 마지막에 황태복 소장에게 퍼붓는 욕짓거리는 민해자의 거친 삶을 드러내준다. 그리고 작가는 마지막 문장을, “밖에서는 가을비가 장맛비처럼 천둥번개를 동반하기 시작했다”고 처리함으로써 뭔가를 암시하듯 혹은 딴청을 피우듯 하는 전략을 채택한다.
다시 말하면 해석도 채색도 맡지 않음으로써 독자들이 언짢으면 언짢은 대로 우울하면 우울한 대호 관여하지 않는 게 김석일 작가의 기본 태도다. 이런 소설적 전략은 이 작품집에 실린 대부분의 작품에서 채택되는 것이다.
그래서 독자들은 소설 속 인물들에게서 페이소스를 시종 느끼게 된다.

종태를 보자 은영은 마치 기다리던 사람처럼 그윽이 바라보다가 주방으로 들어가더니 생두부 한 모와 막걸리 한 병을 가지고 나왔다. 그러곤 두부를 통째로 건네주며 막걸리를 따라주었다. 의아해하는 종태의 눈길을 피하듯 주방으로 다시 들어가 자신의 잔을 가지고 나왔다. 그러곤 자신의 잔에도 술을 따르곤 부딪치자는 듯 잔을 내밀었다.
“마셔. 많이 고맙고 미안해.”
은영에게서 처음 들어보는 가시가 없는 말투였다. 작지 않은 몸집인데 은영이 마치 자그만 아이처럼 느껴졌다. 잔을 입에 대고 있는 은영은 마시는 막걸리만큼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이건 무슨 상황인가? 당혹스럽기도 하지만 당연한 상황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침묵으로 병을 비우고 일어나려는 종태에게 은영이 눈물을 닦으며 차분하게 말했다.
“자고 가. 그날 이후로 무서워서 한숨도 못 잤어.”

자세히 보지 않으면 잘 표시가 나지 않지만 순자는 한쪽 발목이 가늘고 약간 짧은,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은 절름발이다. 유난히 잔병치레가 심했던 춘식과 순자가 한 동네에 살면서 동병상련 같은 감정으로 연애를 하다가 결혼까지 하게 되었던 것이다. 순자의 착한 심성과 복스러운 인상은 우선 할아버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장손자 명식의 처에게 받은 상처를 순자에게 보상이라도 받을 양, 사랑 또한 남달랐다. 그러나 처음에는 별 트집이 없던 어머니는 춘식이가 결혼 후 같이 살게 되면서 순자의 걸음걸이를 빌미 삼아 매사 구박을 했다. 잘하면 잘하는 대로 못하면 못하는 대로 병신이 육갑을 한다는 식으로 구박의 구실을 삼았다. 너무 심하다 싶으면 할아버지가 엄하게 역정을 내셨지만 오히려 역효과가 날 때가 더 많았다. 그리고 서러움에 뒤란 장독대 옆에 순자가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을 때면 으레 경식이 와서 형수 순자의 어깨를 안으며 나중에 크면 형수를 행복하게 해주고 평생 지켜줄 거라며 약속을 하며 같이 울었었다. 지금 경식이 그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취기가 더 오른 점순이 윤락가 포주 버릇인 듯 거침없는 말 투로 열을 올렸다.
“저 불쌍한 새끼 목매달아 죽게 만든 인간 사내 새끼면 내가 좆대가리를 분질러놓고 계집년이면 가랑머리를 찢어놓을 거다, 씨발. 빈말이 아냐.”
그러곤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 경찰서에 갔던 대장이 돌아왔다.
분위기를 파악하곤 졸개들을 향해 단호하게 말했다.
“야, 누나 집에 데려다주고 와. 그리고 내일 일 나가지 말고,
오늘은 술도 많이 마시지 마. 내일 새벽에 화장터 가야 하니까 알았지?”
점순이를 부축하고 가는 넝마주이를 뒤따라 나온 종기는 비척거리며 끌려가듯 걸어가는 점순의 등에 시커멓고 무거운 사팔이의 영혼이 업힌 듯한 느낌이 들고, 한편 자신이 사팔이의 목에 질긴 나일론 밧줄을 감은 게 아닌가 하는 죄책감이 들었다.
“애숙이 그년, 여러 사람 돈 떼먹고 야반도주 했다더라. 고약한 년.”

  작가 소개

지은이 : 김석일
1949년 수원에서 태어나 자라고 살아왔다. 한신대학교 문예창작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작가』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늙은 아들』 『평택항』 『연화장 손님들』 『울컥하다는 말』이 있다.

  목차

전라도 여자 / 7
마지막 전투 / 17
억울한 인생들 / 25
오월 / 37
연분 / 47
형수 / 57
이별 준비 / 67
서툰 이별 / 77
불편한 의문 / 87
머나먼 고향 / 97
뫼비우스의 띠 / 107
유혹 / 117
작전 실패 / 127
개꿈 / 141
배틀 / 151
오블라디 오블라다 / 159
핏줄 / 171
업보 / 183
어떤 해후 / 195
비의 탱고 / 209

작가의 말 / 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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