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걷는사람 시인선 150번째로 출간된 문저온의 두 번째 시집 『머리 없는 해바라기가 서 있다』는 무너진 중심과 결핍의 상태를 존재의 방식으로 기록한다. 몸을 기억과 충돌의 현장으로 탐사해 온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신체를 해체하고 재조립하며, 부재와 결핍을 ‘있음’의 증거로 전환하는 시도를 보여 준다.
시집은 타자와의 경계, 상흔의 수용, 신체의 기계적 변형, 죽음과의 동행까지 이어지며 존재의 감각을 확장한다. 몸은 기억의 저장고이자 구조적 골조로 변주되고, 상처와 결핍은 삶의 고유한 무늬로 받아들여진다. 상실 이후 남은 것들의 간격을 가늠하며, 흔들리는 상태로 오늘을 견디는 존재의 태도를 조용히 드러내는 시집이다.
출판사 리뷰
걷는사람 시인선 150
문저온 시집 『머리 없는 해바라기가 서 있다』 출간
“사라져버린머리를생각하자
생각할머리가없다는난처함으로”
무너진 중심, 잘려 나간 머리, 그럼에도 견디며 서 있는 몸들
현실의 통증을 존재로 받아 적는 문저온의 두 번째 시집
문저온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머리 없는 해바라기가 서 있다』가 걷는사람 시인선 150번으로 출간되었다. 그간 문저온의 시는 “몸”을 “기억의 퇴적물이 쌓이는 저장고이자, 타자와 부딪히며 자아를 구성하는 격동의 현장”(허희 평론가)으로 다루어 왔다. 이번 시집 『머리 없는 해바라기가 서 있다』는 그간의 탐사에서 나아가 신체를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파격적인 시도를 보여 준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듯한 부재의 상태가 정점에 이를 때 시인은 오히려 그 결핍을 ‘있음’의 증거로 삼아 흔들리면서도 쓰러지지 않으려는 존재의 모습을 기록한다.
나는 주머니를 뒤적였다
내가 수집한
네 나라 말과 풍습과 산과 들에서 난 것과
꽃과 꽃씨가
주머니에서 쏟아졌다
이것은 이 영토의 것이니 돌려주겠다
─「순간의 영토」 부분
시집의 전반부에서 시인은 몸이 타인과 마주치며 서로의 경계를 가늠하는 방식에 집중한다. 「순간의 영토」에서는 타자를 하나의 독립된 “국가”나 “영토”로 상정하여 그들 사이의 접점을 함부로 침범하지 않는 ‘정중한 여행’의 과정을 그려 낸다. 이러한 시선은 자기 몸에 남겨진 상흔을 대할 때 더욱 깊어진다. 「기스라는 말」에서는 “기스”를 감추어야 할 오점이 아니라, 삶이 새겨 넣은 “나의 무늬/나의 요철”이라 쓰며 긍정한다. 규격화된 가치나 타인의 시선으로는 결코 매길 수 없는 존재만의 고유한 결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부서진 흔적마저 삶의 정직한 무늬로 승화시키는 과정이 시집의 전반부를 채우고 있다.
인류는 척추를
스프링으로 바꾸기로 한다
흔들
흔들
걷고 앉고 포옹하는
노출 공법 스프링
─「몸, 스프링」 부분
2부에 이르러 신체는 유기적 연결성을 잃고 개별 부품이나 물리적 수치의 영역으로 환원된다. “생각의 진동을/상쇄하는 파동을/생성하는 데 실패한” 인류가 자신의 척추를 인공 스프링으로 대체하기로 한 결정은 감당하기 어려운 사건들을 기계적 장치로 보완하려는 절박한 선택이다. 이때 몸은 고통의 서사가 흐르는 통로가 아니라, 오직 구조적으로 견뎌 내야 하는 물리적 골조로 기능한다. 나아가 “핏속에/체온계를 꽂고/걸어 다”니거나 “팔뚝에/개폐기를 박은 채로/서 있”(「몸, 맨드라미」)는 주체의 모습은 몸이 마치 유량을 정밀하게 제어하는 기계 시스템처럼 변화된 세계를 우리 앞에 펼쳐 보인다.
제 발로 제 골을 퉁기며 가오
(혹은 발이 혹은 골이 더욱 아프오)
해골은 영영 굴러가 버리지 않아서 좋소
허연 빗물 같은 땀을 흘리오
─「보폭」 부분
시집의 후반부는 죽음과 소멸을 삶의 보폭에 맞추어 걷는 동행자의 형식으로 형상화한다. 여기서 죽음은 거창한 종말이 아니라, 사내가 자신의 해골을 공처럼 “티그르르” 차며 도로 위를 무심하게 걸어가는 일상적인 풍경이 된다. 해골이 영영 굴러가 버리지 않고 발밑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모습은 죽음이라는 운명을 인식할 때 비로소 자신의 보폭을 가늠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드러낸다. 질식할 것 같은 하루를 틀어막고 있던 이물질을 “십 원짜리” 동전으로 환치하여 던져 올리는 순간(「하임리히」)은 삶의 비루함 속에서도 짧은 초월이 가능함을 보여 준다.
머리를 잃은 해바라기는 태양을 향해 고개를 돌릴 수 없다. 그러나 비어 버린 중심이 도리어 남은 형상을 또렷하게 만들듯, 시인은 상실을 딛고 남은 것들 사이의 간격을 조용히 가늠한다. 다 낫지 않아도 괜찮다고, 흔들리는 채로 오늘을 견뎌 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이 시집은 그렇게 말을 건넨다.
여행자 수첩을 꺼내야 하는 사람처럼
나는 주머니를 뒤적였다
내가 수집한
네 나라 말과 풍습과 산과 들에서 난 것과
꽃과 꽃씨가
주머니에서 쏟아졌다
이것은 이 영토의 것이니 돌려주겠다
말하고 그것들을 흙에 묻었다
내 나라에서는 그것을 안녕, 이라고 적는다
안녕
이웃 사람이여
이마의 불을 끄고 차갑게 환하라
―「순간의 영토」 부분
너는 올 것이다
눈꺼풀만 남은 적막하고 우묵한 곳으로
마른 꽃투성이 눈알을 가져올 것이다
이걸 찾았어!
길에서 알사탕을 주운 아이처럼
바닷가 모래 틈에서 용연향을 발견한 어부처럼
달려오며 소리칠 것이다
나의 가장 병들고 버려진 그것을 두 손에 들고
외칠 것이다
너에게 줄게!
내 검고 깊은 구멍에 가져다 넣을 것이다
기억이 유령처럼 살아 있는 곳에
그러나 눈이 없었다면
애초에 너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열에 들뜨고 단추처럼 대롱거리는
두 눈을 손에 받쳐 들고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너는
―「검은 말」 부분
머리없는해바라기가서있다 누런파이프에서쉭쉭숨이나온다 숨은당황한다 돌아들어가야할까 머리없는해바라기가목구멍을오므린다 두통이그에게는남아있을까 잘린가스배관처럼그가서있다 이야기가끝날때까지서있어야한다 사라져버린머리를생각하자 생각할머리가없다는난처함으로 마른손을비비며빈마이크를불어야한다 늦여름공기에섞여사라지는목소리 머리없는해바라기를위해나는 머리없는해바라기가쓰러졌다고쓴다
―「몸, 머리」 전문
작가 소개
지은이 : 문저온
2015년 《발견》 신인문학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치병소요록』, 합동시집 『시골시인-Q』가 있다.
목차
1부 순간의 영토
들어간 사람
양
순간의 영토
달래
생일 축하합니다
모과 버리기
기스라는 말
편도
검은 말
바구미처럼
블랙아웃
키다리 풍선 맨
우리의 주머니
검은 말 2
2부 머리 없는 해바라기를 위해
몸, 스프링
몸, 날
몸, 저 배는 구멍을 닫을 수 없다
몸, 머리
몸, 쇼트 트랙
몸, 눈
몸, 물을 쏟고
몸, 발목
몸, 맨드라미
몸, 아이스 댄싱
몸, 댄서와 복서
몸, 인공호흡
몸, 틈입
몸, 높이뛰기
3부 손대지만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내 개
출구
묵이
두 개의 토르소가 있는 방
알루미늄 캔보다 허술한
안전 요원
투어
파 규
아보카도 아보카도
멍
자기 고독
핀셋
구의 완성
무화과나무
4부 해골은 영영 굴러가 버리지 않아서 좋소
새로 쓰는 동화
도미
어요
우무
껍데기
보폭
하임리히
그러나 죽은 입들은
게발선인장의
목내이
작약 같은
덩굴과 자전거
돌멩이
해설
몸의 고고학에서 실존의 기하학으로
허희(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