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시골 생활은 돈 들 게 없잖아요. 고기만 사 먹으면 된다면서요?”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이 말. 도시인들이 흔히 하는 오해다. 하지만 실제 시골의 삶은 도시 생활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옷도 사 입어야 하고, 각종 세금도 내야 한다. 심지어 밭에서 나는 채소도, 논에서 나는 쌀도, 그냥 얻어지는 것이 없다. 씨앗부터 농약, 농기계, 연료, 인건비까지, 농사는 많은 돈과 손이 드는 일이다.
김영화 산문집 『시골에서는 고기 살 돈만 있으면 된다면서요』는 ‘겉으로 보이는 시골’이 아닌 ‘살아내는 시골’을 정직하게 그려낸다. 농부의 딸로 태어난 저자는 도시에서의 삶을 접고 고향 산골로 돌아와 초보 농부로서의 첫걸음을 내딛는다. 충북 영동의 작은 마을에서 감과 호두, 쌀을 비롯한 온갖 잡곡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아가씨 농부’의 우당탕탕 시골살이 기록이다.
출판사 리뷰
아버지 돌아가신 후 삼년상 치르는 마음으로 농사를 시작해, 농업기술센터와 농기계 수리센터를 제집 드나들듯 하고 베테랑 농부인 동네 이웃들의 도움을 받으며 초보 농부로 거듭나기까지의 고군분투 영농기를 모아 엮었다.
2025년 대구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이다.
“농사는 기다림이 필요한 일이다. 농부는 생산력을 예측할 수 없다고 하늘을 탓하고 논밭을 탓하지 않는다. 올해 농사가 잘 안 되면 내년에 다시 지으면 된다. 그렇게 생명을 살려 나가는 것이다. 먹거리를 생산한다는 것은 몸은 물론이고 마음까지 채워주는 자랑스러운 일이다.”
낭만과 현실 사이, 때로는 뿌듯하고 때로는 서러운 초보 농부의
사계절 꽉꽉 채운 농사 버라이어티
“시골 생활은 돈 들 게 없잖아요. 고기만 사 먹으면 된다면서요?”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이 말. 도시인들이 흔히 하는 오해다. 하지만 실제 시골의 삶은 도시 생활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옷도 사 입어야 하고, 각종 세금도 내야 한다. 심지어 밭에서 나는 채소도, 논에서 나는 쌀도, 그냥 얻어지는 것이 없다. 씨앗부터 농약, 농기계, 연료, 인건비까지, 농사는 많은 돈과 손이 드는 일이다.
김영화 산문집 『시골에서는 고기 살 돈만 있으면 된다면서요』는 ‘겉으로 보이는 시골’이 아닌 ‘살아내는 시골’을 정직하게 그려낸다. 농부의 딸로 태어난 저자는 도시에서의 삶을 접고 고향 산골로 돌아와 초보 농부로서의 첫걸음을 내딛는다. 충북 영동의 작은 마을에서 감과 호두, 쌀을 비롯한 온갖 잡곡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아가씨 농부’의 우당탕탕 시골살이 기록이다.
이 책은 유쾌하면서도 따뜻한 시골 생활의 생존 보고서다. 감나무 가지치기를 하다 나뭇가지에 콧구멍이 찔려 응급실을 가고, 농약 살포기가 고장이 나 급한 마음에 바가지로 뿌리다 해충약을 뒤집어쓰고, 밤중에 감을 수확하다 도둑으로 오해받고, 애써 지은 농작물을 멧돼지가 다 파헤치고, 닭장에 침입한 매가 무서워 119를 부르는 황당한 일상을 엿보며 웃다가도 짠한 감정이 생긴다.
농협과 면사무소, 농업기술센터를 드나들며 손에 익혀가는 농사의 기술, 예초기가 무서워 헬멧 쓰고 작업하는 저자를 ‘흰색 하이바’라고 사랑으로 놀리는 마을 어르신들과의 정, 사람을 환장하게 만드는 환삼덩굴을 비롯한 잡초와의 한판 승부, 한 해 사계절이 농사라는 틀 안에서 버라이어티하게 펼쳐진다. ‘직업으로서의 농사’는 우리가 상상하는 농사와는 전혀 다른 세계임을 보여준다.
이처럼 책에서는 먹거리를 만들고 땅에서 계절을 느끼며 정직한 노동으로 삶을 채우는 것의 의미를 다정하고도 단단하게 묻는다. 그래서 귀농 체험기라기보다 도시와 농촌, 부모와 자식, 자연과 사람, 그 사이에서 길을 묻고 답을 찾아가는 한 여성 농부의 인생기이자, 계절 따라 마음을 여물게 하는 산문집이다. 시골을 낭만으로만 여기는 이들에게는 삶의 현실을, 귀농을 꿈꾸는 이들에게는 실제적인 길잡이를, 도시에서 지친 마음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본질로 돌아가자는 조용한 메시지를 건넨다.
“시골에서는 고기 살 돈만 있으면 된다면서요?”
“아니요, 시골에서도 돈은 듭니다. 하지만 도시에서는 쉽게 가질 수 없는 단단한 마음과 계절의 손길, 그리고 살아 있음의 본질이 여기에 있습니다.”
겨울은 추워야 한다. 으스스 몸이 떨려야 한다. 춥지 않으면 겨우내 죽어야 할 벌레들이 이듬해에 기승을 부리기 때문이다. 겨울은 농사일의 시작인 계절이다. 봄이 오기 전에 살충, 살균해야 할 것이 천지다.
3월이 오기 전에 감나무, 호두나무에 기계유제를 살포한다. 기계유제의 끈적거리는 기름 성분이 해충의 숨구멍을 막아 해충을 방제하는 효과가 있다. 나무의 새순과 꽃이 올라오기 시작하는 4월 초순경 사용하게 되면 꽃이 피지 못하거나 수정이 되지 않고 세력이 약해지는 등의 약해가 발생할 수 있어 3월이 오기 전에 방제를 마쳐야 한다. (중략)
커다란 물통에 500ℓ 물을 받아놓고 18ℓ 기계유제를 혼합한다. 그러고는 전기식 분무기를 꺼내와 치려는데 기계가 너무 조용하다. 전기는 들어가는데 기계유제가 돌지 않는다. 왜 그러지? 분무기를 이리저리 살펴보니 호스가 들어가는 곳에 균열이 가 있다. 겨울철을 잘못 보낸 걸까? 아님 오래되어서 그런 건가? 잔류농약이 있었던 걸까? 일단 창고에 잘 넣어두었다. 그래도 텃밭에서 사용하는 밀차식 엔진분무기가 있으니 그걸로 치면 되겠지 하고 꺼내온다.
휘발유를 넣고 시동을 걸어 보는데 아무리 시동줄을 잡아당겨도 시동이 안 걸린다. 이를 어쩐담. 가을까지 잘 사용하고 깨끗하게 하여 넣어 두었는데 뭐가 문제지? 팔이 빠지게 시동줄을 잡아당겨 보지만 푸드득푸드득 수탉 홰치는 소리만 들린다. 그래. 이것도 창고에 넣어두자. 날 잡아서 수리센터에 보내는 거지 뭐. 슬슬 기분이 언짢아진다. 다행히 화는 나지 않는다.
어깨에 메고 사용할 수 있는 수동분무기가 있으니 힘들어도 그것으로 쳐 보는 거다. 분무기에 기계유제를 담아서 어깨에 메고 왼쪽 손잡이를 빼내어 압축을 하려는데 펌프질이 안 된다. 이건 또 무슨 일인가? 힘을 주어 펌프질 하다가는 망가질 것 같다. 잘되던 기계들이 파업 선언을 했나? 어쩜 하나도 안 되는 걸까.
하필 일요일이라 대부분의 농기계 수리센터가 쉬는지라 고칠 수도 없다. 기계유제는 물과 혼합해 놓으면 빨리 사용해야 한다고 했는데…. 어쩔 수 없다. 손잡이가 있는 플라스틱물통에 기계유제를 담아서 작은 바가지로 퍼서 나무마다 다니며 뿌린다.
최대한 팔을 길게 뻗어서 포물선을 그린다. 나무의 키를 키우지 않아서 다행이다. 간간히 부는 바람이 좋다. 바람에 기계유제들이 흩날리며 골고루 뿌려진다. 물론 나도 기계유제를 뒤집어쓴다. 눈물인지 기계유제인지 타고 내린다. 얼굴도 머리도 끈적거리지만 그래도 뿌려야 한다. 내 어깨가, 내 팔은 어찌 되어도 상관없다.
물에 빠진 생쥐꼴을 하고서야 살포작업은 끝이 났다. 축 처진 어깨로 터벅터벅 걸어오면서 씩~ 웃음이 났다. 예전 같으면 부아가 치밀기도 하였을 텐데 그냥 웃음이 난다. 그래. 이런 날도 있는 거지. 뭘 해도 안 되는 날이 있어. 하지만 뭘 해도 되는 날은 더 많았으니까. 그걸로 된 거지. 다음부터는 기계 점검부터 먼저 하는 거다. 좋아하는 일을 할 때는 너그러워지는 법이다. 그래, 그런 날이 있어.
- ‘그런 날이 있어’
아버지는 예초기보다는 낫으로 풀을 베었다. 풀이 어느 정도 길게 자라면 손으로 잡고 낫으로 슥슥 베어 퇴비를 만들었다. 내가 농사를 짓게 되면서 풀들은 더 빨리 자라는 것 같았다. 날카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이 많은 나는 낫을 사용하지 못한다. 예초기 사용법을 배워 틈틈이 예초 작업을 하였다. 예초기 돌아가는 소리와 진동, 휘발유 타는 메케한 냄새를 벗삼아 풀을 베었다.
자고 일어나니 손가락이 잘 펴지지 않는다. 어떤 날은 손바닥과 손가락이 연결되는 관절 부위에 통증이 오고, 손가락은 뚱뚱하게 부었다. 손가락을 펴거나 구부리려고 할 때 걸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손가락이 튕기듯 펴지곤 했다. 며칠 고민하다가 찾은 병원에서 받은 진단은 방아쇠수지증후군이었다. 생전 처음 들어본 병명이다. 오랫동안 긴장 상태로 손가락을 구부린 채로 일하는 사람, 손잡이가 달린 기구나 운전대 등을 장시간 손에 쥐는 직업을 가진 사람, 예초기나 드릴처럼 반복적으로 진동하는 기계를 만지는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 많이 발생하는 증상이라고 친절하게 말해준다. 강한 힘으로 쥐어야 하는 기구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면 힘줄이나 힘줄을 둘러싼 건막에 염증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 손바닥에 있는 손가락 관절에 관절염이 발생하는 것이다.
발생 초기이니 주사요법으로도 많이 좋아질 거라며 손가락 관절에 주사를 놓는다. 적당히 아프면 아프다고 소리라도 지를 건데 너무 아프니 소리도 나지 않는다. 눈은 꼭 감기고 입은 벌어진다.
“아픈 주사인데 잘 참으셨네요. 다 나을 때까지 예초기 사용은 하면 안 됩니다.”
병원 다녀와서 풀을 깎아야지 하고 있었는데 이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인지. 집에 와서 예초기를 보다가 손가락에 충격을 덜 받으면 괜찮으려나 싶어서 옷장 속 깊이 있던 스키장갑을 꺼내 든다. 7월의 뙤약볕에 스키장갑이라니. 헬멧 챙기고, 무릎보호대 챙겨서 밭으로 간다. 스키장갑까지 끼고 풀을 깎으니 온몸에 땀이 줄줄이다. 손이 덜 아픈 것 같기도 하다. 작업을 마치고 장갑을 벗으니 손등이 두꺼비 등짝같이 울퉁불퉁하니 벌겋다. 찬물에 씻어도 가라앉질 않는다. 밤이 되니 가려워서 벅벅 긁느라 잠을 설쳤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다시 병원에 갔다. 손등을 보던 의사 선생님은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땀띠네요.”
“손등에도 땀띠가 나나요?”
“도대체 무얼 했길래 손등에 땀띠가 났을까요?”
“스키장갑 끼고 예초기 돌렸지요.”
한심하다는 얼굴인지, 어이가 없다는 얼굴인지. 의사가 나를 바라보았다.
“얼음물에 손을 담갔다가 뺐다가 반복해 주세요. 오래도록 손을 담그지 말고요. 며칠 뒤 자연스럽게 없어질 겁니다.”
진료비도 받지 않았다. 꾸벅 인사하고 나오면서 씨익 웃었다. 그래도 풀을 다 깎았으니 다행이다.
- ‘방아쇠수지증후군’
“시골에서는 땅이 있어야 해. 그래야 어깨 펴고 살 수 있는 거야.”
그 어깨는 언제쯤 펴지는 것이었을까. 평생 잔뜩 좁히고 소처럼 일을 하는데도 수익이 일정하지 않아 계획성 있게 살기가 쉽지 않은 게 농사꾼의 삶이다. 농사가 잘되어도 언제 어떻게 가격이 폭락할지 아무도 모른다. 자연재해와 기후의 갑작스러운 변화로 수요와 공급이 들쭉날쭉이다.
그럼에도 농사는 묘한 매력이 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가슴이 뛰고 설렌다. 때에 맞는 작물을 심고 가꾸며 수확하는 일을 이어간다. 보이지 않는 많은 소비자들이 함께 동행해 준다. 육체노동의 가치가 폄하되고 농민의 삶이 존중받지 못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땀은, 노력은 정직하다는 말을 매일같이 온몸으로 증명해 내고 있다.
- ‘귀뚜라미 등에 업혀 오는 처서’
작가 소개
지은이 : 김영화
충북 영동군 황간면 깊은 산골에 산다.감, 호두, 벼농사까지 짓는 억척스러운 아가씨 농사꾼이다. 들꽃을 닮은 마음으로 시골의 삶을 사랑하고, 땅의 언어를 글로 옮기는 일을 기쁘게 여긴다.〈환경신문〉 수필 부문 공모전 우수상, CJ문학상 동화 부문 동상 등을 수상했다.〈농민신문〉 영농생활수기 공모에 「흰색 하이바」가 당선되며 본격적인 글쓰기를 시작했다.지은 책으로 수필집 『내 마음의 풍경』과 『살맛 나는 이야기』(공저)가 있다.
목차
겨울-소한 추위는 꿔다가라도 한다
홍시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한 것처럼
시골에서는 고기 살 돈만 있으면 된다면서요?
거름을 많이 한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야
눈은 보리의 이불이다
젊은 엄마와 늙은 딸이 민화투 치는 동짓날 밤
소한 추위는 꿔다가라도
농사는 잘 지어야 하고 판매는 더 잘 해야 하고
여기가 노천온천이야?
그런 날이 있어
입동에 시집온 며느리는 복이 있다
봄-청명에는 부지깽이를 꽂아도 싹이 난다
봄은 조용히 와서 바쁘게 간다
우수 뒤에 얼음같이
잠에서 깨어나는 봄의 선율
춘분에 밭을 갈지 않으면
사먹는 것도 좋지만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
부지깽이를 꽂아도 싹이 난다
곡우에 가물면 땅이 석 자나 마른다
이천오백 원의 행복
사랑이라는 이름의 밑비료
여름-하지를 지나면 발을 물꼬에 담그고 잔다
입하 물에 써레 싣고 나온다
밥정
발등에 오줌 싸는 망종
눈치가 있어야 절간에서도 새우젓을 얻어먹는다는데
야반도주
사람을 환장하게 하는 환삼덩굴
복숭아 봉지 씌우기
어정칠월
대서에는 염소 뿔도 녹는다
방아쇠수지증후군
입술에 묻은 밥풀도 무겁다
꽃보다 쌀
쌀 팔러 간다
에어클리너 커버는 어디로 갔을까
가을-입추 나락 크는 소리에 개가 짖는다
개밥보다는 사람밥이 더 비싸야
귀뚜라미 등에 업혀 오는 처서
베개 속에서 호두 구르는 소리
힘 나는 시골살이를 위하여
왼갖 잡새가 날아든다
농사를 하려면 낫질부터 배워야
목화솜 이불 두 채
달콤한 감 먹고 마음까지 달콤하게
농사는 사람과 자연이 함께 하는 일
사는 게 꽃 같네
공부하지 않으면 농사도 못 한다
감 도둑
힘만 들고 돈은 안 된다지만
마무리하며 / 흰색 하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