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만 번의 그리움 속 터지는 봄』은 용접사이자 시인인 위인환의 첫 번째 시집이며, 그가 그리는 삶의 풍경집이다. 1부 〈이팝나무〉에 18편, 2부 〈장마〉에 17편, 3부 〈티끌〉에 17편, 4부 〈친구의 지갑〉에 19편 등 총 71편의 시가 실려 있다.
위인환 시인의 시집 『만 번의 그리움 속 터지는 봄』은 하루아침에 피어나는 꽃처럼 순간의 감동을 전달하되, 그 뿌리가 얼마나 깊은 흙 속에 박혀 있는지를 보여준다. 위인환 시인은 “독자와 시인의 마음이 껌딱지처럼 이어지길” 바란다고 고백하며, 활어처럼 팔딱거리는, 생생한 시를 추구한다.
위인환 시인의 시집 『만 번의 그리움 속 터지는 봄』은 ‘노동, 아픔, 자연’이라는 세 가지 축을 중심으로 한 독특한 미학을 구축한다. 시집 『만 번의 그리움 속 터지는 봄』을 통해 본 위인환 시인의 시 세계는 현실의 거친 풍경을 직시하면서도, 그 속에서 일어나는 미적 순간들을 예리하게 포착해 내는 데에서 빛난다. 가난과 노동의 고통을 소재로 삼되, 그것을 단순한 고발의 차원을 넘어 예술적 상상력으로 재탄생시키는 것이 그의 시가 지닌 가장 큰 힘이다. 이 시집의 특징은 크게 다음 세 가지 측면에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시집 『만 번의 그리움 속 터지는 봄』에서는 노동의 신성화와 일상의 시학이 두드러진다. 위인환의 시에서 노동은 생존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근본적 조건으로 다뤄진다. 막노동, 용접, 빚과 같은 소재가 반복적으로 등장하지만, 이는 단순한 현실 고발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노동의 현장을 신체적·정신적 경험의 장으로 승격시킨다. 예를 들어, 노동의 흔적이 신체에 각인되는 과정을 “철근처럼 야물어진 손”과 같은 이미지로 형상화하면서, 노동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동시에 그 안에서 빛나는 인간적 존엄을 발견한다. 이는 고통을 아름다움으로 전환하는 변증법적 시선이라 할 수 있다.
둘째, 『만 번의 그리움 속 터지는 봄』은 ‘자연 이미지를 통한 고통의 승화’가 특징적이다. 이 시집에서 꽃, 별, 불꽃, 귀뚜라미 소리 같은 자연 요소는 노동의 현실과 대비되거나 결합하며 ‘삶의 비의미를 의미로 채우는 장치’로 작용한다. 특히 불꽃을 “찰나꽃”이라 명명하거나, 가난한 삶 속에서 피어나는 이팝나무 꽃을 노동자의 운명과 겹쳐 보는 상상력은, 덧없는 순간을 영원한 예술로 응고凝固시키는 시적 전략이다. 이는 ‘일상의 비극을 숭고함으로 전환’하는 위인환 시인의 시학을 잘 보여준다.
셋째, 『만 번의 그리움 속 터지는 봄』은 ‘순간의 미학과 저항적 아름다움’이 돋보인다. 그의 시에서 아름다움은 항상 ‘덧없지만 강렬한 순간’으로 포착된다. 용접의 불꽃, 지는 동백꽃, 귀뚜라미의 울음 같은 소재들은 모두 일시적이지만, 그 순간들이 지닌 강렬함을 통해 삶의 고통을 초월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이는 현실의 무게를 견디는 시적 저항이자, 삶의 비의미 속에서 의미를 찾는 인간적 투쟁의 기록이다.
결론적으로, 이 시집은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예술적 언어로 승화한 사례다. 그는 노동의 현장을 단순한 고통의 공간이 아니라 미적 경험이 일어나는 장으로 재탄생시킴으로써, 문학이 현실을 어떻게 견디고 초월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의 시에서 아픔은 결국 꽃이 되고, 불꽃은 별이 된다. 이는 고통을 예술로, 일상을 시로 바꾸는 위인환 시의 핵심적 가치라 할 수 있다. 이 시집은 노동의 아픔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느끼고 싶은 사람, 일상의 소소한 풍경을 시적 이미지로 만끽하고자 하는 사람,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에 공감하는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는 작품집이다.
■ 출판사 서평
위인환 시인의 시집 『만 번의 그리움 속 터지는 봄』은 노동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현대 사회의 풍경을 담아내면서도, 인간 내면의 섬세한 감정을 자연 이미지와 결합해 독특한 시적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시인의 언어는 구체적이고 생생하며, 고통과 아웃사이더의 삶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면서도 시적 상상력으로 이를 변주하는 특징을 보인다.
시인은 일상의 노동 현장과 사회적 약자의 삶을 날카롭게 포착한다. 육체노동의 고통, 경제적 궁핍, 사회적 소외 같은 무거운 주제들을 다루지만, 이를 단순한 고발이나 비판에 머무르지 않고 시적 이미지로 승화시킨다. 특히 용접 작업에서 나오는 불꽃을 별빛에 비유하거나, 가난을 썩은 동아줄로 표현하는 등 구체적인 생활 경험을 독창적인 비유로 전환하는 능력이 돋보인다.
시 전반에 걸쳐 꽃, 나무, 구름, 계절 등 자연 이미지가 풍부하게 등장한다. 이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간의 정서를 투영하는 매개체로 기능한다. 예를 들어, 시적 화자는 봄꽃이 피고 지는 과정에서 자신의 삶을 투영하거나, 장마철 비를 사회적 억압의 상징으로 재해석한다. 이러한 자연 이미지의 활용은 시인의 현실 인식을 더욱 풍부하고 다층적으로 만들어준다.
시어 선택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은 구체성과 감각적 생생함이다. 노동 현장의 소재들을 시적 언어로 끌어들여 독특한 이미지를 창조하는가 하면, 때로는 직설적이고 거친 표현을 서슴지 않는다. 자유로운 행갈이와 입체적인 비유는 시인의 내면 리듬을 잘 반영하며, 독자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다. 다만 일부 작품에서는 비유가 과도하거나 반복적인 소재 사용으로 단조로움을 느낄 수도 있다.
시 전반에 흐르는 화자의 목소리는 투쟁적이면서도 회한에 찬 성격을 띤다. 사회적 약자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부조리에 저항하는 동시에, 개인적 상처와 고립감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특히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세대 간의 단절을 다룬 부분에서는 애틋함과 분노가 공존하는 복잡한 정서를 읽을 수 있다.
시집 『만 번의 그리움 속 터지는 봄』은 노동 문학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기존의 노동시와는 차별화된 지점을 보인다. 육체노동의 현실을 직시하되 이를 예술적 형상화로 승화시키는 방식은 시인의 독창성을 보여준다. 또한 사회적 소외감과 개인의 정체성 문제를 다루는 방식에서 현대인의 보편적 고민을 포착해 내고 있다.
특히 시인은 힘든 현실 속에서도 시적 상상력을 잃지 않는 시인의 면모를 보여준다. 구체적인 생활 체험을 바탕으로 한 생생한 이미지와 정직한 감정 표현이 강점이며, 이는 시인만의 독특한 시적 서정을 구축하고 있다. 첫 시집인데도 예술적 완성도가 높으며, 현실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시인의 잠재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향후 더 다양한 소재와 다듬어진 기교로 발전해 갈 가능성을 기대하게 만드는 시집이다.
가난해서 심은 이팝나무에
꽃 뜸이 파도처럼 인다
천직이 된 막노동
귀천 없는 밥이 부끄럽지 않아
봄밤도 환해졌다
용접기에 예열된
술밥처럼 익기까지
천둥 벼락 맞길 수십 번,
찌그러진 계절을 맞대고 지지는 동안
손 마디는 철근처럼 야물어갔다
반주처럼 내리는 비에
이밥 단내 풍길 때
나무에 돋는 삶의 조감도
층층이 쌓여간다
- 「이팝나무」 전문
이 시는 노동자의 삶과 자연의 상징적 결합을 통해 고된 삶 속에서도 피어나는 아름다움과 인내를 그린다. 「이팝나무」는 가난한 삶 속에서도 꽃피우는 존재로, 노동자의 삶과 동일시된다. 시인은 막노동이라는 천직을 부끄럽지 않게 여기며, 노동의 고통과 아름다움을 병치해 계층적 차이(“귀천”)를 넘어선 인간적 가치를 강조한다. 표현 기법과 상징성으로는 파도와 꽃의 이미지, 역설적 표현 등이 두드러진다. “꽃 뜸이 파도처럼 인다”에서 자연의 풍요로움과 노동의 리듬을 중첩시킨다. 파도는 고된 삶의 연속성을, 꽃은 그 속에서 피어나는 순간적 아름다움을 상징한다. 역설적 표현으로 “천직이 된 막노동”에서 ‘천직’과 ‘막노동’의 대비를 통해 노동의 존엄성을 강조한다. “손 마디는 철근처럼 야물어갔다”라는 신체적 이미지는 노동의 흔적을 강철에 비유해 인내와 단련을 상징한다. “찌그러진 계절”은 힘든 시간을, “봄밤도 환해졌다”는 고통 끝의 깨달음이나 위로를 암시한다.
“용접기에 예열된 술밥처럼 익기까지”에서 촉각과 시각을 결합해 노동의 고통과 성숙 과정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층층이 쌓여간다”는 삶의 경험이 쌓여 성장하는 과정을 공간적으로 형상화하고 “반주처럼 내리는 비”는 노동의 리듬을 빗소리에 빗대어 표현한다. 이 시에서 시인은 노동의 소외감을 넘어 자연과의 유사성에서 위안을 찾는다. 이팝나무가 꽃 피우듯, 노동자도 고통 속에서 아름다운 가치를 생성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특히 “귀천 없는 밥”은 계급을 초월한 생존의 본질을, “삶의 조감도”는 고난을 겪으며 얻은 삶의 통찰을 상징한다. 이팝나무는 생명력, 희망, 노동자의 정체성을 동시에 나타낸다. 이는 시인이 상징의 다층성을 생각하면서 시를 썼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부끄럽지 않아”처럼 간결한 표현으로 감정을 절제하며 내면의 긍정을 드러낸다. “천둥 벼락 맞길 수십 번”은 사회적 억압을, “환해진 봄밤”은 극복의 순간을 암시하며 계층적 해석을 하고 있다.
이 시는 노동의 고통과 아름다움을 자연 이미지와 결합해 섬세하게 풀어낸 작품이다. 이팝나무는 노동자의 삶을 상징하며, 시인은 힘든 현실 속에서도 꽃피우는 인간의 존엄성을 노래한다. 계급과 고통을 넘어선 생의 지속성을 강조하는 이 시는 현대 사회의 노동자 문학으로서도 의미를 지닌다.
용접을 하면서 풍장 치른 불씨를
찰나꽃이라 명명하겠어요
도화선은 꼬리별
북두칠성처럼 길 밝히지 않았어도
시리우스처럼 화려하지 않아도
가장 아름다운 유성으로 살다 간
아버지
투둑
동백꽃으로 졌어요.
- 「불씨」 전문
이 시는 용접 작업 중 발생하는 불씨를 소재로, 아버지에 대한 추모의 정신을 형상화하고 있다. 시적 화자는 용접의 불꽃을 "찰나꽃"이라 명명하며, 순간적으로 타오르고 사라지는 불씨를 통해 생의 덧없음과 아버지의 죽음을 연결한다. “도화선은 꼬리별/ 북두칠성처럼 길 밝히지 않아도”는 용접의 불꽃이 북두칠성처럼 영원히 빛나지는 않지만, 일시적이면서도 강렬한 아름다움을 지닌다는 의미이다. 이는 아버지의 삶이 비록 길게 빛나지는 않았지만, 의미가 있었다는 암시이다. “가장 아름다운 유성으로 살다 간 아버지”는 유성은 짧지만 강렬하게 빛나는 천체. 아버지의 삶을 덧없지만 아름다운 존재로 승화시킨 표현이다.
화자의 감정과 정서는 슬픔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상태이다. 용접의 불꽃(찰나꽃)과 유성 이미지는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애도이면서 동시에 아버지 삶의 찬탄으로 해석된다. 화자는 아버지의 죽음을 비통해하지만, 그를 “아름다운 유성”으로 기억하며 아름다운 추억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투둑/ 동백꽃으로 졌어요.”에서 “투둑”은 물방울이나 물체가 떨어지는 의성어로, 눈물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동백꽃”은 아버지의 죽음을 의미하는데, 동백꽃이 떨어질 때 꽃잎 전체가 통째로 떨어지는 특징이 있어, 생명의 완결성을 상징한다. 또한, 붉은 동백꽃은 희생과 열정을 의미하기도 하여, 아버지의 삶에 대한 경의를 담은 표현으로 보인다.
화자의 직업은 용접공으로 추정된다. 용접의 불꽃은 강렬하지만 순간적이며, 일과 노동의 흔적을 남긴다. 이는 아버지의 삶과 유사하게 해석된다. 아버지도 노동자였을 가능성이 높다. 유성처럼 “살다 간” 아버지의 모습은 평범하지만 강렬한 삶을 상징한다. 용접의 불꽃이 새로운 것을 만드는 창조의 상징이라면, 아버지의 삶도 가족을 위한 희생과 노동으로 이어졌음을 암시한다. 동백꽃은 한국 문학에서 죽음, 순결, 영원한 사랑을 상징한다. 떨어질 때 꽃잎이 통째로 떨어지는 특징으로 미루어 보면 아버지의 죽음이 급작스럽거나 완결된 삶이었음을 의미할 수도 있다. “졌어요”라는 표현은 시적인 완결감을 주며, 여기에서 죽음을 자연스러운 순리로 받아들이려는 화자의 태도가 느껴진다.
이 시는 용접의 불꽃을 통해 아버지의 죽음과 삶을 회상하는 작품이다. 화자는 아버지를 유성, 동백꽃 등 덧없지만 아름다운 이미지로 형상화하며, 노동의 가치와 생의 의미를 승화시킨다. 마지막의 동백꽃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애도이자, 아버지의 삶에 대한 경의를 담고 있다.
석순같이 가난한 덧살을 갈아 내면
별은 독촉장처럼 떨어진다
먹물처럼 번져가는 빚
별처럼 반짝이는 불면의 밤
도둑고양이 눈처럼 번득인
용접 파편 같은 대출금이 눈병이 됐다
알람은 범종처럼 울었고 나는
서리맞은 풍경처럼 떨었던
늦가을 알밤 떨어질 때 귀뚜라미 울어
화롯불에 익어 가는 가을밤
타닥대고 있다.
- 「귀뚜라미」 전문
「귀뚜라미」 의 주제와 정서는 가난, 빚, 불안, 고독이라는 현대인의 소외된 삶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데에 있다. “가난한 덧살”, “독촉장”, “빚”, “대출금”과 같은 단어들은 경제적 압박과 사회적 고통을 암시하며, “불면의 밤”, “서리맞은 풍경”과 같은 이미지는 내면의 공허와 불안을 표현한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귀뚜라미”는 외로움과 시간의 흐름을 상징하며, “화롯불에 익어 가는 가을밤”은 삶의 고통 속에서도 존재하는 미묘한 온기를 암시한다.
이 시에서도 은유와 상징은 빛이 난다. “석순같이 가난한 덧살”은 가난을 자연물(석순)에 빗대어 표현했다. 석순은 천천히 자라지만 결국 단단해지는 특성이 있다. 가난도 서서히 삶을 잠식하는 힘으로 묘사한 것이다. “별은 독촉장처럼 떨어진다”라는 표현은 별(자연의 아름다움)을 독촉장(사회적 압박)으로 전환하여 아름다운 것마저 위협으로 느껴지는 현실을 표현하고 있다. “용접 파편 같은 대출금”은 금속적이고 차가운 이미지로 경제적 부담을 구체화한 표현이다. 이 시에서 두드러진 것은 감각적 이미지이다. “먹물처럼 번져가는 빚”, “도둑고양이 눈처럼 번득인” 등은 어둠과 불안의 확산을 시각적 이미지로 강조한 것이다. “알람은 범종처럼 울었고”, “귀뚜라미 울어” 등의 청각적 이미지는 불안을 깨우는 소리와 자연의 소리가 대비되며 고독감을 증폭하고 있다. “별처럼 반짝이는 불면의 밤”과 “서리맞은 풍경”은 대조적 구도로 아름다움과 고통이 공존하고 있음을 표현했다. “화롯불에 익어 가는 가을밤”은 차가운 현실 속에서도 남은 미약한 온기를 표현하고 있다.
이 시는 현대인의 소외와 경제적 고통을 자연 이미지와 결합해 신화적 차원으로 승화시킨다. “귀뚜라미”는 한국 전통문화에서 가을의 애상과 시간의 흐름을 상징하는데, 여기서는 고립된 개인의 외로움을 반영한다. 또한 “화롯불”은 생존의 끈질김을 암시하며, 고통 속에서도 삶은 계속된다는 염세적이지만 현실 인정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특히 현대적 불안을 자연의 리듬과 결합해 서정적으로 표현함으로써, 개인의 고통을 보편적인 인간 조건으로 확장한다. 이미지의 겹침과 감각적 언어는 독자에게 경제적 압박과 정신적 고통을 더욱 생생하게 체험하게 하며, 마지막 귀뚜라미의 울음은 고독한 현대인에게 남은 마지막 위로처럼 읽힌다. 이처럼 「귀뚜라미」는 현대인의 소외를 자연 이미지로 승화시키는 서정성과 사회적 고통을 은유적으로 드러내는 비판적 시각을 동시에 지닌 작품이다.
반죽된 물컹한 일상에
하루를 파종하면 별꽃이 핍니다
꽃은 파란색이거나 붉은색
희망과 절망이 교차할 때
피는 꽃은 혼색입니다
똑바로 볼 수 없어
가시광선에 각막을 내어 줍니다
피었다 지고 또다시 피어도
씨방은 열리지 않습니다
목 넘김 좋은 술을 마시고
희망을 충전할 때
별꽃은 가장 빛납니다.
- 「용접」 전문
시인이 실제 용접공이었다는 사실은 이 시를 해석하는 데에 결정적인 열쇠를 제공한다. 용접 작업에서 비롯된 구체적 체험이 시의 이미지와 상징으로 녹아들어 있으며, 이를 통해 노동자의 정신적 고통과 희망의 변주를 읽을 수 있다.
이 시는 별꽃과 용접 불꽃의 현실적 비유가 뛰어난 작품이다. 용접 불꽃은 강렬한 빛(청색/적색)을 뿜으며 금속을 접합하는데, 이를 “별꽃”으로 승화시킴으로써 노동의 순간을 시적으로 변환했다. “파란색이거나 붉은색”은 용접 시 발생하는 아크(arc) 빛의 스펙트럼을 정확히 반영한다. “희망과 절망이 교차할 때 피는 꽃은 혼색입니다”는 용접 작업의 위험성(화상, 눈 손상)과 창조성(금속을 새롭게 잇는 행위)의 양면성을 함축한다. “가시광선에 각막을 내어 준다”는 표현에는 직업적 리얼리즘이 깔려 있다. 용접공은 아크 눈(arc eye)이라는 직업병에 시달린다고 한다. 강한 자외선으로 인해 각막이 손상되고, 통증과 일시적 실명을 겪기도 하는 것이다. 이 표현은 노동의 대가를 의미한다. 여기에서 시인은 고통을 감내하며 현실을 직시해야 함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똑바로 볼 수 없어”는 용접 시 눈을 보호하지 않으면 장님이 될 수 있다는 현실과 삶의 진실을 마주보기 어려운 인간의 조건을 중의적으로 나타내는 표현이다.
씨방(자방, 子房)은 꽃의 암술 하부로, 열매를 맺는 결정적 공간이다. 그러나 시인은 “피었다 지고 또다시 피어도/ 씨방은 열리지 않습니다”라고 강조한다. 이는 용접 작업의 반복성과 완성의 부재를 의미한다. 용접공은 금속을 이어 붙이지만, 그 자체로 완전한 창조물이 되지는 않는다. 단지 다른 구조물의 부분이 될 뿐이다. 이 시에는 노동의 소외감도 나타난다. 이는 자신의 작업이 결국 타인의 설계도 아래 종속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용접공은 자신의 이름을 남기는 예술가가 아니다. 이로 인해 정신적 공허감을 느끼기도 하는데, 희망(“별꽃이 빛난다”)과 절망(“씨방이 열리지 않는다”)의 사이클 속에서 자아실현의 좌절을 드러낸다. 노동자에게 술은 육체적 피로와 정신적 억압을 잠시 잊게 하는 매개체이다. 그러나 “희망을 충전할 때 별꽃은 가장 빛이 납니다”에서 알 수 있듯이 일시적인 위안이 노동의 고통을 잊게 하지만, 이는 영속적이지 않음을 암시한다.
이 시의 독특한 양식은 노동 현장의 시학이라고 압축할 수 있겠다. 즉, 산업적 어휘와 자연 이미지의 결합이 압권이다. “용접”, “가시광선” 같은 기술적 용어와 “별꽃”, “씨방” 같은 생명 이미지의 조화로 노동의 잔혹함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포착한 것은 위인환 시인의 시적 성취도가 높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용접공의 육체적 고통(각막 손상, 화상)을 정신적 상징으로 승화시켜 보편적인 인간 조건을 이야기한다. 이 시는 노동의 현장에서 부서지는 자아를 기록한 작품이다. 용접 불꽃을 별꽃으로 비유한 것은 노동의 순간적 아름다움을, 각막 손상은 진실을 마주보는 고통을, 씨방이 열리지 않음은 노동의 소외와 자아실현의 좌절을 의미한다. 시인은 직업적 체험을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적 한계를 드러내며,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피어나는 미약한 희망을 노래한다. 이것이 시 「용접」이 지닌 가장 강력한 메시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