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서호식 시인은 2020년 『한겨레문학』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만세, 연못에 들다」로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그대에게 물들기도 모자란 계절입니다』(2021)가 있으며, 『꽃이 지는 문으로 피는 너』는 그의 두 번째 시집으로, 나태주 시인은 “서호식 시인의 시는 한국인의 정서를 한국어로 가장 아름답게 표현한 작품들”이라고 평한 바 있다.겨울이 독 속에서 시어빠져 갈 때저만치 피는 봄이 더 추운 건시작이 어렵기 때문이다겨울의 끝자락은 더 시리지만 냉이 향이 난다보리 싹이 목말라서 비가 내리고밑동이 부실해서 바람은 분다저 길 따라 가면봄 보다 먼저 핀너 거기 있겠지얼었다 녹고 또 얼고 알싸해진 봄이더 맛있는 건 염치없는 겨울이 준 선물이다같이 웃다보면 추위도 데워지지돌아가기 싫을 때 쯤 옷소매를 붙잡는 너는나를 피운 가장 아릿한 한 줄꽃 지는 문으로 향기 홀로 서성일 때간절한 이름 문틈 속에 다독여 넣고가슴 한 자락 베어 틈 메꾸며평생 두고 필 너를 본다더디게 가라는 바람자주 올려다보라는 하늘봄, 그리면 다시 피는 너라는 봄— 「꽃이 지는 문으로 피는 너」 전문
발이 많아서 천천히 멀리가도 지치지 않는통일호는 어디나 서며누구든 내려주고 아무라도 태웠다완행열차를 통일호라고 이름 지은 것은통일은 더디 와도 된다는 걸까자정너머를 깨워간이역마다 지친 잠들이 내리고종착역에는 부스스한 다음날이 내렸다간이역은 가난하고 고루한 기차만 서는 곳인지작고 더딘 사람만 내리는 역인지내리고 싶지 않은 기차는 제 몸뚱이를길게 철로 위에 널어두고바람만 달려 보내기도 한다사라진 간이역이 골목 어귀에 문을 열었다驛시,빨리 걷는 세상에 채인 하루살이들이 골목으로 모여든다외롭지만 슬프지 않은 사람들이 두고 간노고의 부스러기가 안주되고 꺼리가 되는 곳꼬인 걸음이 되어서야 퇴근을 확인하는 후미진 간이역오늘도 하차 시간은 연착이다— 「간이역에 사는 사람들」 전문
작가 소개
지은이 : 서호식
1958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났으며, 2020년 『한겨레문학』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만세, 연못에 들다」로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그대에게 물들기도 모자란 계절입니다』(2021)가 있으며, 현재 전북 익산에 40여 년째 거주하고 있다. 그는 ‘별빛정원’ 대표, ‘시암문화원’ 원장으로 활동 중이며, ‘늘봄도서관 시 교실’을 운영하며 지역 문학 활성화에 힘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