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198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 부문에 「전리」가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창동은 4년 뒤인 1987년 첫 소설집 『소지』를 출간하며 1980년대 대표 작가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5년 만인 1992년에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을 표제작으로 한 두번째 소설집 『녹천에는 똥이 많다』를 펴내며 확고한 자신만의 색을 보여주었던 그는, 1997년 「초록물고기」를 통해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뒤 영화에 전념하면서 자연스레 소설 발표를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소설가 이창동이 세상에 내놓은 소설집 두 권. 『소지』와 『녹천에는 똥이 많다』가 40년 안팎의 시간을 거슬러, 나란히 2025년에 다시 독자들을 찾아왔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영화감독 이창동 이전에 유망한 소설가 이창동이 있었다. 그가 등단한 1983년은 이른바 ‘5·18세대’의 등장 시기로 일컬어진다. 임철우의 「사평역」이 발표되고 황지우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가 출간된 해였던 것이다. 이창동의 데뷔작 「전리」도 그 연장선에 있었다. 개정판 『소지』의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김형중은 이 작품의 제목을 두고 “죄의식과 자기혐오를 불러일으키는 영원한 저주로서의 전리”라고 설파하며, 이창동의 등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이창동의 글쓰기는 죄의식과 함께 시작되었다. 1983년이었고, 작가의 나이 스물아홉이었다.”영화감독으로 자리를 옮겨 발표한 「초록물고기」 「박하사탕」 「오아시스」 「밀양」 「시」 「버닝」 등의 영화에서도 이창동이 소설에서 보여준 시선을 느낄 수 있다. 개정판 『녹천에는 똥이 많다』의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김영찬은 「초록물고기」의 ‘막동’과 「박하사탕」의 ‘영호’를 언급하며 “『녹천에는 똥이 많다』의 등장인물은 어떤 측면에서 그들의 문학적 원형이다”라고 역설한다. 그러면서 “이창동의 소설이 보다 집중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정치가 아니라 벌거벗은 생명의 기억과 정신에 내면화되고 육체화된, 보이지 않는 정치의 작용”이라고 말한다. 또한 “희망적인 결론과 손쉬운 도식을 멀리”하고 “과거의 청산과 포스트모던으로 가던 문학적 대세와 발맞추지 않았”던 이창동의 문학이 반시대적이었음을 지적하고, 그리하여 그가 ‘탁월한 동시대인’이었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4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이창동의 소설이 여전히 유효한 이유다.
출판사 리뷰
“그 시대의 이야기가 오늘을 사는 독자들에게도
살아 있는 이야기로 다가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시간의 무게를 이겨내고,
정직하고 정확한 현실의 언어로 살아 있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이창동 소설을 다시 만나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 보여주고 싶은 것을 보여주는 영화와 달리, 소설은 언어를 통해 독자가 상상하게 만든다. 그러니까 소설의 세계는 그 자체로 완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각자의 상상력으로 완성하는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소설의 언어는 정직해야 하고 정확해야 한다. 여기에 실린 내 소설에 그런 정확성과 정직함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 시대의 이야기가 오늘을 사는 독자들에게도 살아 있는 이야기로 다가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아무쪼록 그렇게 되기를 소망해본다.
―2025년 ‘작가의 말’에서
198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 부문에 「전리戰利」가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창동은 4년 뒤인 1987년 첫 소설집 『소지』를 출간하며 1980년대 대표 작가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5년 만인 1992년에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을 표제작으로 한 두번째 소설집 『녹천에는 똥이 많다』를 펴내며 확고한 자신만의 색을 보여주었던 그는, 1997년 「초록물고기」를 통해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뒤 영화에 전념하면서 자연스레 소설 발표를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소설가 이창동이 세상에 내놓은 소설집 두 권. 『소지』와 『녹천에는 똥이 많다』가 40년 안팎의 시간을 거슬러, 나란히 2025년에 다시 독자들을 찾아왔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영화감독 이창동 이전에 유망한 소설가 이창동이 있었다. 그가 등단한 1983년은 이른바 ‘5·18세대’의 등장 시기로 일컬어진다. 임철우의 「사평역」이 발표되고 황지우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가 출간된 해였던 것이다. 이창동의 데뷔작 「전리戰利」도 그 연장선에 있었다. 개정판 『소지』의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김형중은 이 작품의 제목을 두고 “죄의식과 자기혐오를 불러일으키는 영원한 저주로서의 전리”라고 설파하며, 이창동의 등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이창동의 글쓰기는 죄의식과 함께 시작되었다. 1983년이었고, 작가의 나이 스물아홉이었다.”
영화감독으로 자리를 옮겨 발표한 「초록물고기」 「박하사탕」 「오아시스」 「밀양」 「시」 「버닝」 등의 영화에서도 이창동이 소설에서 보여준 시선을 느낄 수 있다. 개정판 『녹천에는 똥이 많다』의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김영찬은 「초록물고기」의 ‘막동’과 「박하사탕」의 ‘영호’를 언급하며 “『녹천에는 똥이 많다』의 등장인물은 어떤 측면에서 그들의 문학적 원형이다”라고 역설한다. 그러면서 “이창동의 소설이 보다 집중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정치가 아니라 벌거벗은 생명의 기억과 정신에 내면화되고 육체화된, 보이지 않는 정치의 작용”이라고 말한다. 또한 “희망적인 결론과 손쉬운 도식을 멀리”하고 “과거의 청산과 포스트모던으로 가던 문학적 대세와 발맞추지 않았”던 이창동의 문학이 반시대적이었음을 지적하고, 그리하여 그가 ‘탁월한 동시대인’이었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4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이창동의 소설이 여전히 유효한 이유다.
전쟁과 분단의 기억은 마치 끊어내도 끊어내도 끊어지지 않는 탯줄과 같아서 아직도 한국인이 꾸는 기나긴 악몽의 재료이자 망상과 편집증의 원동력이다. 이창동이 쓴 분단 소설의 현재성이 여기에 있다. 그는 분단의 문제를 체제론으로, 혹은 역사학적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그의 소설은 5·18을 겪고, 1987년을 겪고, 김대중과 노무현을 겪고, 세월호를 겪은 후에도 ‘장기 지속’ 하는 분단 후 증후군에 대한 심리학적 보고서에 가깝다.
―김형중, 개정판 『소지』 해설 「끊지 못한 끈」에서
이창동 소설의 현재적 의미는 우리나라를 넘어 아시아와 미국의 문학 시장에서까지 인정을 받았다. 2020년에서 2023년 사이, 중국과 대만에서 두 권의 소설집이 각각 출간되며 좋은 반응을 받은 것이다. 2023년에는 『녹천에는 똥이 많다』의 일본어판도 출간되어 화제가 되었다. 특히 중국에서 출간된(간체판) 『소지』와 『녹천에는 똥이 많다』를 합한 인세가 3만 달러를 훌쩍 넘기면서 독보적인 성과를 나타내기도 했다. 동아시아 독자들을 사로잡은 이창동의 소설은 올해(2025년) 2월, 미국 펭귄 출판사에서 “Snow Day and Other Stories”라는 제목의 선집으로 출간되었다. 표제작인 「눈 오는 날」을 포함하여 「불과 먼지」 「전리」 「용천뱅이」 「녹천에는 똥이 많다」 「소지」 「하늘 등」까지 일곱 편이 실린 이 책은 출간 전부터 여러 유명인의 추천사로 그 기대감을 드러냈다.
숨 막힐 듯한…… 이미 이 작가의 정확하면서도 다층적인 영화 이미지를 창조하는 기이한 능력에 익숙한 독자라면 이 책에서 그 인상적인 기술을 발견할 것입니다. 그러한 인식, 그러한 공감은 이 작가의 영화 애호가들을 문학적 팬으로 바꾸어놓을 것이고, 당연히 그의 국제적 입지를 확대할 것입니다.
―셸프 어웨어나스Shelf Awareness 출판사
저항에 대한 감동적인 이야기 모음. 이창동은 사람들이 이상을 지키기 위해 하는 희생을 효과적이고 극적으로 탐구합니다. 이 강력한 이야기들은 흔적을 남깁니다.
―『퍼블리셔스 위클리Publishers Weekly』
변혁의 직전에 있는 한국을 탐구하는 단편소설. 이 이야기들은 때때로 육체적 폭력으로 치닫는 감정적 폭력으로 가득 차 있으며, 좋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에서 캐릭터들을 공감적으로 탐구합니다. 한국의 최근 역사에 대한 참혹하지만 냉정한 시각.
―『커커스 리뷰Kirkus』
이창동은 뛰어난 작가입니다. 이러한 놀라운 이야기에서나 유명한 영화에서나 말입니다. 이 컬렉션은 한국의 최근 역사의 격동하는 유령으로 불길하게 뛰고 있지만, 나는 특이한 희망을 느꼈습니다. 그의 캐릭터들이 구원을 찾는 방식은 여전히 나를 경외하게 합니다. 잊을 수 없습니다.
―아야드 아크타르Ayad Akhtar(Homeland Elegies와 McNEAL 작가, 퓰리처상 수상)
이런 이야기들이 마침내 영어로 번역된 것은 정말 선물과도 같습니다! 이창동은 결론이 나지 않는 이야기의 거장이자, 인물들이 처한 상황에 절망적으로 작아지고 입을 다물게 하는 풍경의 뛰어난 건축가입니다. 비극적이고 애처로운 아이러니가 가득하고, 진정으로 선동적인 정치적 분노로 불타오르는 이창동의 이야기는 그의 영화와 같은 복잡한 즐거움을 줍니다.
―아리 애스터(「미드소마」와 「유전」 감독)
이창동은 어떤 형태로든 스토리텔러 거장입니다. 그의 초기 작품으로 구성된 이 컬렉션은 얼마 전의 한국에서 있었던 인간 이야기를 깊고 냉엄하게 보여줍니다. 읽을 선물입니다.
―스티븐 연(미국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
여전히 끊어지지 않는 기억으로 생생히 살아 있는 우리의 지난 역사와 그 속에서 속수무책으로 허물어지는 도시 소시민의 삶은 이제 한국을 넘어 세계인이 기다리는 이야기가 되었다. 이창동의 영화에 매료되었던 오늘의 관객들은 이제, 1980년대를 문학으로 치열하게 살아낸 젊은 소설가 이창동에게 새롭게, 다시 한번, 독자로서 빠져들게 될 것이다.
“왜 너만은 아직 도덕적이고 고상하게 살고 있냐?”
비참과 허망 속에서 속수무책으로 허물어지는
도시 소시민의 삶을 곡절하게 파헤쳐내는 작가
이창동 두번째 소설집 『녹천에는 똥이 많다』
『녹천에는 똥이 많다』의 수록작들은 한국 현대사의 격동과 비극 위에서 드러나는 다양한 삶의 곡절을 적나라한 시선으로 그려낸다. 생존만이 유일한 삶의 방향인 ‘벌레’와 같은 삶을 벗어나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으려는 안타까운 의지가 어떻게 왜곡되고 굴절되어 결국 또 다른 감옥 속에 갇히고 마는지 극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 소설집의 처음부터 나란히 놓여 있다. 「진짜 사나이」의 장병만은 정치적으로 무지한 삶을 살다가 6월항쟁 시위에서 우연히 연행된 이후 놀랍도록 빠르게, 각성한 정치적 주체로 변신하는 인물이다. 이러한 비약은 과도한 무모함과 폭력의 과잉으로 나타나는데, 이를 바라보는 화자의 태도에서 지식인적 시선의 자기모순과 배제의 논리가 드러나고, 이는 또다시 자신의 온몸을 내던져 고통을 감내하는 장병만의 모습과 대비되어 독자를 전율하게 한다. 한편 하지도 않은 간첩질을 했다고 주장하는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아들의 이야기 「용천뱅이」에서도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존재인 용천뱅이의 길을 스스로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가 어떻게든 그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절망적인 시도를 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재산을 노리고 거짓으로 아들 행세를 한 주인공이 자신이 속이려고 접근한 사람이 진짜 아버지임을 확인하지만 결국 그 누구도 믿어주지 않는 상황으로 치닫고 마는 전쟁고아의 기막힌 운명을 담은 「운명에 관하여」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이자 표제작인 「녹천에는 똥이 많다」는 ‘벌레처럼’ ‘단순히 살아 있음’의 상태에 안주하는 주인공 앞에 그와는 정반대의 이복형제가 나타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복동생의 등장으로 인해 주인공의 서글픈 자기만족이 균열되며 삶이 통째로 흔들린다. 주인공은 지독한 가난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등바등 버티며 간절히 꿈꿨던 안온한 생활이 한갓 쓰레기 더미 위에 지어진 허약한 허구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지만, 그것이라도 지키고자 동생을 밀고한 주인공은 결국 똥구덩이에 처박히는 비참한 상황을 맞이하고 만다. 그러나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되새긴다.
한편 자신이 알고 있는 올바른 삶을 살아갈 용기도 힘도 없는 젊은 여성이 도피한 곳에서 다른 이의 모함을 받아 거짓 자백을 강요하는 잔혹한 고문을 당하는 「하늘 등」도 생생한 묘사가 돋보이는 수작이다.
정말이지 그것은 인간의 모습이라곤 할 수 없었다. 땅바닥에 드러누운 채 질질 끌려가는 그의 모습은 마치 땅을 기면서 리어카를 끌고 있는 한 마리 짐승의 모습을 연상시켜주었다. 이상한 것은 다른 노점상과 달리 그는 한마디도 입을 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단지 눈을 부릅뜬 채 마치 무서운 고통을 감수하고 있는 수도자처럼 아무런 저항도 없이 끌려가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온몸으로 흐르는 전율을 느꼈다. 그는 지금 끌려가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스스로 끌어가고 있었다. 온몸을 맨바닥에 던져 이 세상의 무게를 혼자 힘으로 떠밀어 가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그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_「진짜 사나이」
“그래서, 그래서 말입니다. 이제 용천뱅이가 그만 되겠다는 말입니까. 용천뱅이의 삶을 벗어나겠다는 것이 그래 고작 간첩죄를 뒤집어쓰는 것이란 말입니까. 그것이 아버지의 지나간 삶을 구제할 단 한 가지의 길이라는 겁니까. 그렇지만 그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런다고 지금까지 살아온 아버지의 삶이 바뀌어집니까. 그것이야말로 아버지의 삶을 철저히 속이고자 하는 바보짓이 아니고 무엇이냔 말입니다. 그건 제가 생각하기엔 미친 짓에 불과합니다. 또 다른 용천뱅이가 되는 것이란 말입니다.”_「용천뱅이
아내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민우 녀석의 말대로 집을 나가겠다는 생각을 포기하고 나는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 앞으로는 날 어떻게 대할까? 모든 것을 없었던 것으로 하고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처럼 살아갈 것인가? 그리고 민우는 어떻게 될까?
물론 민우 녀석은 이제 오랫동안 이 사회와 격리될 것이다. 하지만 생을 압류당한 채 살아가야만 하는 것이 어찌 민우 녀석뿐이겠는가. 이 거대한 오욕의 세상, 이미 모든 순결함과 품위를 잃어버린 이곳에서 나 또한 살아야 하는 것이다. 가자, 하고 그는 어둠 속을 바라보며 자신을 설득했다. 이 어마어마한 쓰레기의 퇴적층 위, 온갖 오물과 증오와 버려진 꿈 들을 발아래 두고 저 까마득한 허공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23평짜리 내 보금자리를 향해._「녹천에는 똥이 많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이창동
1954년 대구에서 태어나 경북대학교 사번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했으며 198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 부문에 「전리戰利」가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소지』 『녹천에는 똥이 많다』 등이 있으며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했다. 또한 1997년 「초록물고기」를 통해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후 「박하사탕」 「오아시스」 「밀양」 「시」 「버닝」 등의 영화를 발표했으며. 제40대 문화관광부 장관을 역임했다.
목차
진짜 사나이
용천뱅이
운명에 관하여
녹천에는 똥이 많다
하늘 등燈
초판 해설 | 진정한 가치를 향한 소설적 탐구_성민엽
개정판 해설 | 벌거벗은 생명의 생태학_김영찬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