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우리는 모두 한때 어린이였는데도 어린이에 대한 어른의 시선은 여전히 편협하다. 어린이는 순진무구하고 밝으며 무해한 존재로 비춰지기도 하고, 우리 사회를 이어받을 ‘미래의 희망’으로 불리기도 한다. 반면 ‘노키즈존’을 만들 정도로 성가시고 부족한 존재로 여겨지기도 하며, 유튜브와 스마트폰에 중독된 이해할 수 없는 존재로 보여지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 여기를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어린이들은 어른들의 추상적인 상상을 벗어나 오롯이 존재한다.어린이 앞에 붙는 어떤 수식어는 익숙하지만, 어떤 수식어는 낯설다. 가족 구성원 중에 어린이가 있지 않은 한 우리는 어린이를 잘 모른다. 그래서 뉴스나 텔레비전에 등장하는 어린이를 보며 순수하고 무해한 어린이 혹은 나쁘고 못된 ‘금쪽이’를 막연히 상상한다. 하지만 현실의 어린이들은 그런 어른들의 이분법을 벗어나 입체적이고 주체적으로 존재한다. 만일 어린이가 천사나 악마처럼 보인다면 그 속에는 분명 복잡한 맥락이 있다.어린이는 ‘작은 어른’이 아니라 한 명의 인간이며, 어린이들이 모인 교실은 ‘작은 사회’가 아니라 그냥 하나의 사회이다. 어린이들의 세계에는 비-어린이들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욕망과 법칙과 힘의 역학과 관계가 존재한다. 어린이들은 각자의 취향과 욕망을 가진, 자신들의 사회를 꾸리고 또 사회의 영향을 받는, 어쩌면 누구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개별적인, 생생히 살아 있는 존재다. 이 책 속에 담긴 것은 저자가 학교에서 그런 어린이와 연루되고 휘말리며 ‘진짜로’ 관계 맺은 이야기들이다.
출판사 리뷰
“시민이자 사회 구성원인 어린이를 더 알고 싶었다.
어른들에게 필요한 덕목은 어린이를 인정하는 용기다.
규정하거나 설명하려 하지 않고 다채로운 어린이를 받아들이는 용기.”
마냥 순수하고 무해하고 다정한 어린이도,
무지막지한 ‘금쪽이’나 ‘잼민이’도 아닌
어른이 정해둔 이분법 바깥의 다채로운 어린이 이야기
2013년부터 초등학교 교사로 어린이를 만나온 오유신 작가가 쓴, 어린이에 대한 이분법을 넘어 오늘을 사는 어린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본 기록.
우리는 모두 한때 어린이였는데도 어린이에 대한 어른의 시선은 여전히 편협하다. 어린이는 순진무구하고 밝으며 무해한 존재로 비춰지기도 하고, 우리 사회를 이어받을 ‘미래의 희망’으로 불리기도 한다. 반면 ‘노키즈존’을 만들 정도로 성가시고 부족한 존재로 여겨지기도 하며, 유튜브와 스마트폰에 중독된 이해할 수 없는 존재로 보여지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 여기를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어린이들은 어른들의 추상적인 상상을 벗어나 오롯이 존재한다.
귀여운 어린이. 다정하고 순수한 어린이. 못되고 이기적인 어린이. 마라탕과 탕후루를 좋아하는 어린이. 아이돌 포토카드를 모으는 어린이. ‘찐따’ 어린이. 어딘가 좀 이상한 어린이.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어린이. ‘금쪽이’ 어린이. 세월호 참사를 배우는 어린이. 건물주가 꿈인 어린이. ‘학군지 키드’ 어린이. 선생님을 믿지 않는 어린이. 일베 용어를 쓰는 어린이. 학교폭력 가해자인 어린이…. 어린이 앞에 붙는 어떤 수식어는 익숙하지만, 어떤 수식어는 낯설다. 가족 구성원 중에 어린이가 있지 않은 한 우리는 어린이를 잘 모른다. 그래서 뉴스나 텔레비전에 등장하는 어린이를 보며 순수하고 무해한 어린이 혹은 나쁘고 못된 ‘금쪽이’를 막연히 상상한다. 하지만 현실의 어린이들은 그런 어른들의 이분법을 벗어나 입체적이고 주체적으로 존재한다. 만일 어린이가 천사나 악마처럼 보인다면 그 속에는 분명 복잡한 맥락이 있다.
어린이는 ‘작은 어른’이 아니라 한 명의 인간이며, 어린이들이 모인 교실은 ‘작은 사회’가 아니라 그냥 하나의 사회이다. 어린이들의 세계에는 비-어린이들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욕망과 법칙과 힘의 역학과 관계가 존재한다. 어린이들은 각자의 취향과 욕망을 가진, 자신들의 사회를 꾸리고 또 사회의 영향을 받는, 어쩌면 누구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개별적인, 생생히 살아 있는 존재다. 이 책 속에 담긴 것은 저자가 학교에서 그런 어린이와 연루되고 휘말리며 ‘진짜로’ 관계 맺은 이야기들이다.
이상하고 괴상하고 불편하고 예측 불가능한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만큼 알게 된
스스로 판단하고 욕망하고 행동하는 ‘불순한’ 어린이들
학교는 학생과 교사, 상식과 예외, 규정과 규범, 공적인 역할과 개인적인 관계의 경계가 나뉘어 있다가도 어느 순간 허물어지는 곳이다. 그렇기에 서류에 기재되는 단어들로는 설명되지 않는 어린이들이 학교 안에 선명히 존재한다. 저자는 학생과 교사라는 역할 사이에 그어진 선을 넘나들고, 교육과 존중 사이에서 무수한 맥락을 짚으며 구체적이고 주체적인 어린이들을 바라본다.
저자는 어린이 시절 빈곤과 방임을 경험했다. 그렇기에 어른이 되고 교사가 된 후에도 ‘이상하고’ ‘불편하다’고 여겨지는 어린이들에게 더 눈길이 갔다. 어린이를 이상적으로 묘사하거나 낙관적으로 예찬하는 일을 경계했고, 어른들이나 또래로부터 소외되는 어린이의 마음을 유심히 들여다봤다. 그렇게 어린이들과 ‘조금 다른’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학기가 끝날 때까지 결국 이해하지 못하고 헤어지는 어린이가 있는가 하면, 이유 없는 무한한 애정을 주는 어린이도 있다. 적나라한 표현으로 선생님을 욕하는 쪽지를 몰래 주고받는 어린이들이 있는가 하면, 어른이 할 수 없는 방식으로 현명하게 연대하고 서로를 돌보는 어린이들도 있다. 남들과 다르다는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축구를 좋아하는 여자 어린이와 걸그룹 춤을 추는 남자 어린이가 있다. ‘찐따’나 ‘금쪽이’로 불리며 세상으로부터 소외되는 어린이가 있다. 저자가 응시한 어린이들은 몇 개의 단어로 규정하기 어려운, 그렇기에 오히려 길게 이어지는 스펙트럼 같은 존재였다. 수많은 어린이들을 만나며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만큼 알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저자가 어린이들과 맺은 관계는 다정하고 안온한 관계가 아니라, 안도할 수 없는 관계였다. 어린이들은 무조건 어른들의 말을 잘 듣거나 반항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기준과 생각에 따라 판단하고 욕망하고 행동했다. 저자는 ‘순수함’이나 ‘어린이다움’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귀여워하거나 흐뭇해하는 시선으로는 드러낼 수 없는 어린이들을 ‘불순한 어린이’라고 규정하고 글을 썼다. ‘불순물’이라는 뜻이 아니라, 순조롭지 않은 삶의 단면들을 드러내고 싶어서다. 또한 독자에게도 그 ‘불순함’을 함께 들여다보기를 요청한다.
학교폭력 가해자 어린이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어린이들에게 세월호 참사를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
무균실이 아닌, 사회 속 어린이를 바라보고 관계 맺는 법
우리가 쉽게 이해하거나 납득하기 어려운 어린이들도 분명 존재한다. 학교폭력 가해자인 어린이가 있다. 일베 용어를 사용하는 어린이가 있다. ‘건물주’와 ‘돈 많은 백수’가 꿈이라고 외치는 어린이가 있다. 세월호 참사를 배우며 그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어린이가 있다. 어떤 어른들은 그런 어린이들을 손가락질하며 ‘요즘 애들’의 세태를 걱정한다.
하지만 어떤 가해자 어린이는 자신의 가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일베 용어를 쓰는 어린이를 들여다보면 반사회적인 표현에 이끌리는 어린이들을 매혹시킨, ‘놀이’로 변질된 지금의 온라인 혐오 문화가 있다. 건물주라는 장래희망의 맥락 속에는 오랫동안 노동의 가치를 중요시하지 않아왔던 우리 사회가 있다. 세월호 참사를 글로 배우며 심각성을 체감하지 못하는 어린이에게 사회는 도덕적이며 국가는 우리의 안전을 보장할 것이라며 ‘가만히 있어도 된다’고 거짓말을 하는 세상이 있다.
우리와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어린이들은 사회의 어둠이나 병폐와 무관한 무균실 속의 존재가 아니다. 어린이들은 흔히 ‘꿈나무’나 ‘미래’로 불리지만, 그들이 자라나기 위해 뿌리를 박고 있는 시공간이 ‘지금 여기’라는 사실을 우리는 자주 잊는다. 저자는 자신이 목격한 어린이들의 어두운 면을 생생히 보여주면서도, 그 이유와 맥락이 어른들이 만들고 유지해온 사회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짚는 의무를 잊지 않는다. 나아가 어른들이 어린이를 위해 어떻게 행동하고 변화하며 함께 살아가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이 책은 지금까지 사회가 어린이를 규정하는 편협한 이분법적 도식을 넘어, 이토록 다양하고 다채로운 입체적인 어린이들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또한 우리가 시민이자 사회 구성원인 어린이를 미래로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함께 살아가는 동료로서 관계 맺을 수 있도록 만들어줄 것이다.
어린이들이 나오는 영화나 소설은 러닝타임과 쪽수가 정해진 닫힌 세계라서 안도감이 든다. 하지만 내가 어린이들과 맺은 관계는 안도할 수 없는 열린 관계였다. 앞으로 무슨 일을 겪을지 모르며, 떨어지는 운석에 맞듯 교실에서 사건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기만하고 싶지 않았다. 이만큼이나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어린이 ‘전문가’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어린이들을 낭만적으로 보거나 미래의 희망이라며 오늘에서 밀어내고 싶지도 않았다.
노골적인 혐오 발언을 하거나 친구에게 폭력을 가한 적 있는 나쁜 어린이. 다른 어린이들과 달라 ‘금쪽이’나 ‘찐따’라며 냉대받는 어린이. 솔직한 욕망에 빠져드는 어린이. 내가 본 어린이들은 다양했다. ‘순수함’이나 ‘어린이다움’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어린이들이었다. 귀여워하거나 흐뭇해하는 시선으로는 드러낼 수 없는 어린이들을 ‘불순한 어린이’라고 규정하고 글을 썼다. 어른들의 상상을 넘나드는 어린이들의 이야기로 어린이를 다르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너 탄핵 찬성이야 반대야?” “뭐가 찬성이고 반대인데?” “윤석열 대통령 좋아하면 탄핵 반대고, 싫어하면 찬성이야.” “난 그럼 찬성.” 정치에 별 관심 없어 보였던 두 어린이의 대화였다. 사회를 뒤흔든 중요한 소식은 어린이에게도 중요한 소식이었다. 어린이들도 대통령 이야기를 했다. 탄핵 선고 생중계를 교실에서 함께 보자고 했고, 자신이 다다음 대통령 선거에 투표할 수 있는지 계산해보았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오유신
2013년부터 초등학교 교사로 어린이를 만났다. 어린이에게 말 걸고 말 들으며 어린이를 조금씩 배웠다. 교실 밖의 삶까지 가져오는 어린이들 덕에 고민을 자주 한다. 평범한 사람들의 소중한 이야기를 담아 《사이렌과 비상구》를 썼다.
목차
프롤로그 불순한 어린이들의 이야기를 시작하며
1장 교실 문을 열면 다른 세계가 있었다
아침 교실, 기다리는 마음
어린이의 하루는 쌓인다
귀엽다는 말 참기
체육하는 몸과 마음
좋아서 하는 일
모르는 채 두기
어린이 스펙트럼
무서운 게 딱 좋아
정치하는 어린이들
욕 쪽지
어린이라는 세계지도
2장 불순한 어린이들
이상한 어린이들에게 시선이 향하는 이유
나쁜 것을 욕망하기
쌉가능, 억까, 힘숨찐, 에바
머글과 덕질 사이
표현하는 어린이들
학생 선수는 매일 배운다
그래서 같이 달렸다
어린이와 혐오 표현
'금쪽이'를 위한 변론
선생님 몇 단지 살아요?
건물주가 꿈이에요
가해자들
다른 세계를 상상하기
3장 어린이와 연루되기
연루된 몸들
아이와 어린이
서로에게 스며들기
유머의 기술
돌봄에 대하여
문어의 꿈
학군지 키드의 세계관
스승의 날들
상실과 애도
다른 몸을 상상하기
세월호 참사를 가르치는 일
어린이들이 미래의 주인공
과거는 갔고 미래는 몰라
에필로그 어둠의 어린이들을 변호하며
어린이와 부대끼며 살아가는 어른들에게 드리는 짧은 당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