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김여정 시인은 1933년 경상남도 진주 출생으로 성균관대학교, 경희대학교 대학원 졸업하여 1968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하였다. 시집 『화음』, 『해연사』, 『바람의 안무』 등 15권, 시선집 『흐르는 섬』 등 3권을 출간하였다. 이번 추모집에는 김여정 시인 화보와 가족 친지의 글, 추모시, 추모산문, 김여정 시인의 삶과 문학에 관한 글, 김여정 시인의 시와 산문이 수록되었다.
출판사 리뷰
김여정 시인(1933~2024)의 추모집
김여정 시인은 1933년 경상남도 진주 출생으로 성균관대학교, 경희대학교 대학원 졸업하여 1968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하였다. 시집 『화음』, 『해연사』, 『바람의 안무』 등 15권, 시선집 『흐르는 섬』 등 3권을 출간하였다. 이번 추모집에는 김여정 시인 화보와 가족 친지의 글, 추모시, 추모산문, 김여정 시인의 삶과 문학에 관한 글, 김여정 시인의 시와 산문이 수록되었다.
어머니 김여정 시인은 1968년에 시인으로 등단하셔서 1969년 첫 시집 화음을 발간하시고 88세 미수(米壽) 기념 시집 바람의 안무를 2020년에 펴내셨습니다. 그리고 90세 때 계간 ≪문예운동≫ 육필시 원고 청탁을 받아 「라벤다 꽃밭에 들다」를 직접 원고지에 친필로 쓰셔서 보내셨습니다.
십 대 시절부터 시를 쓰시며 평생 문학의 길을 걸으신 어머니에게 문학은 ‘내가 내 삶을 지켜내는 길’ ‘나를 벼랑에서 지켜내는 작업’이었습니다. 등단할 때 시인 신석초 선생님이 어머니에게 주신 필명 ‘여정(汝貞)’은 ‘너는 곧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어머니는 꿈을 이루기 위해 숱한 난관을 헤치며 개척자의 길을 가셨고, 옳다고 생각하시는 삶의 길에서 그 뜻을 굽히지 않고 곧은 삶을 사셨습니다.
고난과 고통의 가시밭길 삶에서도 네 자녀와 가족이 있어서 행복한 삶이셨고, 또 문학이 있어서 행복한 삶이셨다고 고백하셨습니다. 파란을 헤치며 걸어오신 어머니의 인생과 문학의 길에 따뜻한 마음으로 함께 기쁨과 슬픔, 희망을 노래하셨던 문인 선생님 여러분과 지인 여러분께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어머니는 만 35세부터 네 자녀의 가장이 되셔서 어머니, 시인, 교사로 혼신을 다하여 사시면서 우리의 울타리가 되어주시고 바람막이 되셔서 장성한 나무들로 자라도록 눈물의 씨를 뿌리고 사랑의 햇빛을 비춰주셨습니다. 그 나무들이 가지를 뻗고 자라서 어머니의 여덟 명의 손주와 다섯 명의 증손주가 한국과 독일에서 튼실한 나무들로 자라고 있습니다.
우리의 어머니, 할머니, 증조할머니 그리고 인생과 문학의 선배 되시는 김여정 시인의 삶과 문학 여정을 기억하고 기념하여 우리를 위해 헌신의 삶을 사신 그 은혜와 사랑을 우리 후손들이 잊지 않고 감사하며, 어머니의 곧은 개척자의 삶을 배우며 살도록 이 추모집을 펴내게 되었습니다.
바쁘신 중에도 소중한 추모 원고를 보내주신 한 분 한 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선생님들이 보내주신 옥고(玉稿) 덕분에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였던 어머니의 문학 여정과 삶의 발자취를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지난해 6월 4일 소천하신 어머니의 마지막 가시는 길에 함께 해주시고 조문오셔서 사랑과 정성으로 우리 남은 가족을 격려해 주시고 어머니의 영원한 안식과 평안을 위해 기도해 주신 모든 분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 추모집을 펴내며
큰 누님 김여정 시인을 추모하면서
김근규
김여정 시인은 2녀 1남 남매 중 저의 큰 누님으로 이제 두 분 누님 모두 작고하시고 저는 홀로 남은 막내 남동생(1943년생)입니다.
큰 누님은 고향 경남 진주에서 출생, 진주여고를 1953년 24회로 졸업하신 후, 서울에서 성균관대학교와 경희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셨습니다. 사회 첫 직장으로 한국일보사와 영어 구문론을 출간한 경문사를 거쳐 1961년 고향으로 내려와 모교 진주여고에서 교직 생활을 시작하셨습니다. 남해중학교, 산청 단성중학교로 옮기셨다가 서울로 상경하시어 국제교육진흥원 교육연구사와 여러 학교를 거쳐 1998년 세륜중학교 교장으로 정년 퇴임하셨습니다.
1968년 ≪현대문학≫에 시 「화음」, 「편지」, 「남해도」로 등단하셔서 첫 시집 화음(1969)에서 바람의 안무(2020)까지 시집 15권, 김여정 시전집 2권, 흐르는 섬 등 시선집 3권, 신앙시집 그대 꿈꾸는 동안 등 2권, 수필집 3권, 시 해설집 2권 등을 출간하셨습니다.
대한민국문학상, 월탄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공초문학상, 동포문학상, 남명문학상, 성균문학상, 시인들이 뽑은 시인상 등을 수상하셨으며 한국시인협회 고문, 한국문인협회 자문위원, 국제PEN한국본부 회원, 한국여성문학인회 자문위원, 한국가톨릭 문인회회원, 하남문인협회 초대 회장 및 고문을 역임하셨습니다.
특히 성균관대학교 학창 시절, 유명한 소설가이신 월탄 박종화 교수님의 수제자이셨고 큰 누님의 결혼식에서도 당시 주례를 서 주신 것으로 기억합니다. 1980년대 중반쯤 월탄문학상 심사위원으로도 활약하셨고, 서울 시내 인사동에서 원로급 문단 남녀 회원들의 모임인 인우회(仁友會)와 문학 아카데미 회원, 한국시인협회, 한국여성문학인회 등 문인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셨으며, 토지(1994년 완성)를 집필하신 소설가 박경리(1926~2008, 진주여고 17회) 선생님과는 진주여고 7년 선후배 사이로 자주 교류하셨습니다.
1961년 모교인 진주여고에서 교직 생활을 시작하셨을 때, 진주에서 1949년 11월 영남예술제로 창시되어 1950년은 6.25동란으로 개최되지 않고 1959년 제10회 때부터 개천예술제(매년 양력 10월3일 개천절부터 일주일간 개최)로 개칭되어 현재까지 이어져 오는 개천예술제의 창시자 설창수 시인의 부인 김보성 소설가와 같이 모교에서 교직 생활하며 교류하셨습니다.
슬하에 2녀 2남을 두셨으며 장녀인 유한나 시인은 1986년부터 거의 40년간 독일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면서 수필가로도 활약 중입니다. 차녀 최보은은 한겨레 신문사 기자와 ≪씨네 21≫ 편집장으로 일하였습니다. 장남과 차남 최세용, 최인용 내외는 큰 누님 마지막 떠나시는 날까지 지극한 효성으로 섬겼던 효자, 효부입니다.
저의 큰 누님은 세 남매 중 제일 명석하시고 학구열이 남다르게 강하셔서 진주여중, 진주여고 재학시절에 거주하는 방과 공부하시는 방 사이의 벽과 천정이 맞닿는 부분 구멍 사이로 백열전구 한 개로 공부하시기에 어두워서 호롱불을 켜서 열심히 공부하셨습니다. 진주여고 졸업 후에는 아버님이 대학 진학을 만류하시는데도 아버님에게는 말씀드리지 않고 어린 저에게는 귀띔만 하시고 홀로 집을 떠나 당시 한국전쟁으로 서울에서 부산으로, 임시로 옮겨져 있던 성균관대학교에 합격, 진학하셨습니다. 후에 이를 아신 아버님이 큰 누님을 적극적으로 밀어주셨으며 대학 졸업식에 어머님과 함께 참석하시어 축하해 주셨습니다.
우리나라 일류 원로 시인이 되셨으며 더 오래 생존해 계셨을 텐데 2023년 초부터 병환으로 약 일 년 반 동안 집에서 일상 생활하시면서 투병하신 후에 2024년 6월 4일 새벽, 아름답고 편안한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큰 누님 김여정 시인을 추모하며 명복을 빌고 저의 명(命)이 다하는 날까지 큰 누님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마지막 식사 ― 김여정 시인에게
강우식
1.
같은 대학, 같은 과의 선배이면서
나는 그녀가 내 누님 벌 되는
연세인 것도 신석초 문하생의 시인인 사실도
박제천이의 소개로서 처음 알았다
나름 자기 시 세계와 색깔이 뚜렷한
시인들이 모여 ‘무명회’라는 이름을 짓고
시인 김여정을 좌장 격으로
일 년에 한두 번씩 술자리를 가졌다
선배도 후배도 가릴 것 없는
시로써 둘째가라면 서러울 제제다사(濟濟多士)들
박제천, 윤석산, 박상천, 이상호, 김경희, 장순금,
최영규, 정미소, 김여정, 그리고 강우식이었다.
그사이 나는 그녀의 시집에
‘존재의 비상과 정착’이라는 해설도 썼고
어쭙잖게 조선일보 사옥의 호텔파티*에서
몇 마디 축사를 하는 세월이 갔다
그리고 내 가난한 인생도
산만큼 늙고 죽음이 발밑에 와서
바깥출입이 어렵게 되고
지팡이 짚어야 견디는 늙은이가 되었다
내가 지팡이에 의지한 늙은이인데
김여정이라고 멀쩡했겠는가
두문불출(杜門不出)한 지도 한두 해가 아니었다
시인 김여정과의 이승에서의 마지막 만남은
강남의 모 백화점의 음식점이다
소설가 박순녀와 김여정, 강우식이 함께한 자리였다
나는 이 식사 자리에서 인생 말년에
발표하는 김여정의 시가 너무 좋다는
덕담을 건넨 적이 있는데
시가 좋다는 그 한마디에 얼굴이 환해지는
그 모습을 영영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녀는 천생 시인인 여자였다
2.
한국분단전쟁 때 이북에서
혈혈단신으로 내려와 소설을 쓴 박순녀와
진주 태생으로 남에서 시인이 된 김여정은
북과 남의 여자로서 친구다
나는 이 두 시인, 소설가가
나이와는 상관없이 가깝게 만나는 것을
마치 휴전선처럼 가운데서 보며
분단된 국토도 저리 하나가 되었으면 한다
어찌 두 분이라고 평탄히 살았겠는가
남으로 피난 갈 때 일주일이면
늦어봐야 열닷새면 돌아온다고 장담하며 고향을 등진
늘 가슴에 분단의 강이 흐르던 박순녀다
말을 늘어놓으려면 강이 되고
산이 되었을 문인들이었는데도
늘 가깝게 웃으며 만나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바람이 있었다면 두 시인, 소설가가
살아생전에 통일이 되는 것을 보고
그래서 꿈에 그리던 박순녀의
북의 고향도 같이 가보고 하는 것이었다
그 간절한 소원이 극적으로
꿈처럼 이루어지는 것이었는데
그 감격의 순간이 와서
둘이 손잡고 기뻐하는 것이었는데
오호, 애재라. 통재라.
두 분 중 손바닥이 닳도록 박수를 쳐줄
김여정 시인 먼저 다른 세상으로 갔구나.
목차
김여정 육필시ㆍ9
추모집을 펴내며ㆍ10
제1부
가족 친지의 글
—
김근규 큰 누님 김여정 시인을 추모하며ㆍ16
허진숙 하현 달과 별과 어머니ㆍ20
김혜숙 이별과 완성ㆍ25
최상훈 하남 할머님을 기억하며ㆍ31
유한나 하늘에 띄우는 편지ㆍ34
제2부
시
—
강우식 마지막 식사ㆍ42
김귀희 기억ㆍ46
김선영 작별ㆍ48
이지엽 아직도 들리는 소리ㆍ50
주경림 능소화빛 노을이 지다ㆍ53
추경희 환한 미소ㆍ59
제3부
산문
—
김복순 한국 문단의 큰 별, 김여정 시인ㆍ62
김영식 김여정 시인의 시를 가곡으로ㆍ65
김창현 진주가 낳은 대시인, 김여정 님을 추모하면서ㆍ67
류인혜 한마디의 울림ㆍ72
박상천 종이처럼 하얗게 생을 마감하신 선생님ㆍ76
양왕용 친구의 누님이자 남강문학회 선배이신 김여정 시인의
‘남해도’체험ㆍ83
이명재 첫인사와 인우회ㆍ94
장베드로 어머니, 시인, 개척자의 숭고한 삶을 사신 분ㆍ98
최금녀 장거리 마라톤을 마치시다ㆍ103
최원현 언제나 해맑은 미소 간직하셨던 분ㆍ107
제4부
김여정 시인의 삶과 문학에 관한 글
—
홍윤숙 1998년 8월에 쓰는 편지ㆍ112
주경림 가슴으로 못을 박으시던 선생님ㆍ116
윤병로 역경 감내한 패기 있는 시작(詩作) 생활ㆍ120
이정호 연하(年下)의 선배ㆍ124
강우식 김여정 시전집 간행사ㆍ130
정미소 캄캄한 포구의 등대 아래 선 겨울나그네ㆍ133
김민정 김여정 시인의 시 「파도는 갈기를 날리며」ㆍ137
김남희 그 가진 자리가 끝까지 분명했던 시인 김여정ㆍ142
제5부
김여정 시인의 시와 산문
—
시
화음ㆍ152
대쪽 같이ㆍ153
봄 들판에서ㆍ155
석류나무 한 그루ㆍ157
호박덩이ㆍ158
할머니, 노력해 봐ㆍ159
부뚜막ㆍ161
미랭이로 가는 길ㆍ163
아버지의 흰 두루마기 자락ㆍ171
80킬로로 달리는ㆍ173
감사송(感謝頌)ㆍ175
라벤다 꽃밭에 들다ㆍ176
산문
내가 나를 지키는 길ㆍ177
나 김여정은 누구인가ㆍ179
파란을 헤쳐온 인생과 문학의 길ㆍ181
김여정 시인 연보ㆍ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