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김혜형은 노동하고 관찰하고 기록하는 사람이다. 한때 편집자였으나 지금은 농부로 살며 자연을 관찰하고 글을 쓴다. 자연의 순리에 따라 ‘흙일’을 하며 산 지 20년, 스물일곱 마지기 벼농사는 그의 삶의 토대다. 한 송이 벼꽃이 한 알의 쌀알로 영글어 밥상에 오르기까지, 벼포기에 바치는 농부의 노고와 분투, 논에 사는 생명체들의 신비한 생존력, 병충해와 기후 위기를 견뎌낸 강인한 알곡의 이야기를 책에 담았다. 먹고사는 토대로서의 농사, 인간과 자연의 생태적 연결망, 삶을 떠받치는 ‘손발 노동’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이 책은 매일 밥상에 올라오는 쌀밥의 서사이자 논물에 발을 담그고 사는 농부의 분투기다. 벼농사와 인간사가 긴밀하다 보니 기후변화와 사람의 정치도 함께 짚었다. 원고를 쓰며, 밥심으로 사는 많은 이에게 벼 베는 들판의 구수한 나락 냄새를 부쳐 주고 싶었다. 새봄의 볍씨가 내미는 예쁜 촉, 못자리에서 자라는 파릇한 어린모들, 태풍과 병충해를 이겨 낸 황금빛 알곡도 보여 주고 싶었다. 벼 외에도 얼마나 많은 생명체가 논에 사는지 알려 주고 싶었고, 공손히 들여다보아야 보이는 덤덤하고 무심한 벼꽃도 자랑하고 싶었다. 여러분의 밥이 한때 꽃이었다고, 벼꽃이 바로 밥꽃이라고 속삭이고 싶었다. 밥 한 술에서 꽃 한 다발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머리말)
볍씨 한 가마가 이루어 낼 가을의 성과를 상상하는 일은 직장인일 때 가졌던 연봉의 기대감과 사뭇 다르다. 소득이 노동력 투여량에 비례하지 않고, 자연재해의 불확실성과 맹목의 정치에 영향을 받으며, 최선의 노력이 최선의 결과로 이어질지 미지수인 직업이 농부지만, 그럼에도 한 해 농사를 앞두고 볍씨를 매만지는 마음은 설렌다. 이것은 살아 있는 생명체, 장악하고 경쟁하고 앞서려는 강박 없이 오직 보살피고 아끼고 북돋는 과정이 농사니까. 그래서일까. 볍씨가 이룰 가을의 성과는 통장의 숫자가 아니라 쌀밥의 무게로 온다. 이 심리적 든든함을 남들이 이해할지 모르겠다.
작가 소개
지은이 : 김혜형
노동하고 관찰하고 기록하는 사람이다. 출판 편집자로 밥벌이하다 농사짓고 글 쓰는 삶으로 이동했다. 혼자 일하고 혼자 놀고 혼자 궁리하기를 좋아한다. 식물과 비인간 동물에 관심이 많다. 짧고 덧없는 것들을 사랑한다. 근근이 먹고사는 삶에 별 불만이 없다. 쓴 책으로, 에세이 《자연에서 읽다》, 어린이책 《암탉, 엄마가 되다》, 《일기 쓰기 싫어요!》, 《열일곱 살 자동차》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