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201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김상규 시인의 첫 시집 『존 그리어 보육원의 불량소년들』이 시인동네 시인선 253권으로 출간되었다. 김상규의 시를 읽을 때는 그가 다의성, 다성성, 중층성의 창안에 매우 능한 시인이라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김상규의 시는 고통의 바닥까지 내려가 어느 순간 그것과 한 몸이 된 무녀처럼, 비대칭으로 구멍 난 세계의 비애를 건드린다. 그것은 두터운 은유와 상징으로 무장한 채 개인과 세계, 소서사와 거대서사를 동시에 관통한다. 그의 언어가 그렇게 세계를 뚫고 지나갈 때, 슬픔과 고통의 다양한 현들이 깊이 떨린다. 김상규의 언어는 마치 촉이 여러 개 달린 화살처럼 다양한 각도로 세계의 아픔들을 건드린다.지나간 모든 것을 단번에 잊기 위해수만 번 날갯짓하는 불새를 아시나요?단 한 번 날아오르면 끄지 못할 섬광 같은저 불티 잡아다 가슴에 품겠다고몇몇은 빛을 따다 가지에 올렸지요실패한 이야기들이 그물처럼 쌓였지만우는 자의 밤이란 빈 새장 속 온기입니까?텅 빈 줄 알았지만, 끝인 줄 알겠지만아직도 두근거리는 나목 위의 심장들― 「불새잎눈」 전문
불을 끌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외따로이 서 있는 눈먼 자의 행보보다자신을 보지 못하는 눈뜬 자를 살피세요비밀마저 가려지는 진짜 어둠입니다누구도 오지 않고 아무도 찾지 않는시간의 흐름마저 끊긴 영원불멸한 고독나에게 집중하세요, 타인은 없습니다어디로 갈지 모르는 깡마른 고아는모슬린 커튼을 닫고 흐느끼고 있으니― 「소멸」 전문
남몰래 여동생이 유언장을 보여준다나는 훌쩍이다 벽장에서 잠이 들고도망간 거위 떼들이 돌아오는 하짓날일기장에 적혀 있는 이름을 다 외우면또다시 태어난단 마법을 믿는 나이그런데 아버지는 왜, 토끼장에서 주무세요?살릴 것이 없어서 죽일 것도 없던 그해근사미를 삼키고도 살아 있던 할머니는변소에 보살이 있다며 똥통을 휘젓고찍습니다, 속(俗)에서 더 가파른 속(俗)으로온갖 종의 족보가 시취로 꽉 찼듯이관을 진 소라게들이 죽음 이훌 찾듯이― 「가족사진」 전문
작가 소개
지은이 : 김상규
1984년 제주에서 태어나 제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201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조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제42회 중앙시조신인상을 수상했다.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재학 중. 2025년 서울문화재단 창작지원금을 수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