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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 벨로 2
현대문학 | 부모님 | 2026.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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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노벨문학상, 퓰리처상, 세 차례의 전미도서상을 수상한 솔 벨로의 자선 중단편집이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으로 국내 최초 출간되었다. 그동안 발표한 세 권의 단편집과 마지막 작품 「세인트로렌스 강가에서」까지 수록해 반세기에 걸친 대표 중단편을 집대성한 결정판이다.

1951년부터 1995년까지 발표한 13편의 작품은 미국 이민자들의 삶과 현대 지식인의 정신적 불안, 노년과 죽음, 사랑과 상실이라는 인간의 보편적 비극을 아우른다. 철학적 사색과 사회 비평, 유머와 기억이 교차하는 솔 벨로 특유의 문체를 통해 인간에 대한 이해와 현대 문화에 대한 섬세한 분석을 보여준다.

지성과 속물성, 가족과 사회, 기억과 죽음을 넘나드는 작품들은 시대의 소음과 허무 속에서도 인간 정신의 존엄과 삶의 본질을 끝까지 탐구한다. 현대 미국 문학의 거대한 성취를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중단편 선집이다.

  출판사 리뷰

★노벨문학상 수상★ ★퓰리처상 수상★ ★전미도서상 3회 수상★

가장 세속적인 인간을 가장 고결한 지성으로 껴안은
현대 미국 문학의 보물,
솔 벨로 자선 중단편집 국내 최초 출간!

“나는 현대 산문의 모든 기준을 그의 문장으로 삼았다” _제임스 우드

노벨문학상, 퓰리처상, 그리고 세 차례의 전미도서상 수상을 석권하며 현대 미국 문학의 거대한 이정표가 된 솔 벨로. 그의 50여 년에 이르는 문학 여정과 정수를 한데 모은 자선 소설집 『솔 벨로』(전 2권)가 마침내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42, 43권으로 독자들을 찾아온다. 그동안 국내에서 솔 벨로는 문학상 수상작인 장편소설 위주로 소개되었으나, 그의 문학적 진가는 중단편의 응축된 형식 속에서도 빛을 발한다. 단일한 주제를 따라 절제된 구성을 추구하는 일반적인 단편과 달리, 벨로의 단편은 인물의 내면과 사유의 흐름을 따라 유연하게 전개되는 것이 특징으로, 철학적 사색이나 사회 비평, 농담, 기억이 자연스럽게 교차하며 마치 ‘지적으로 압축된 장편’을 읽는 듯한 인상을 남긴다. 실제로 그의 단편 가운데 상당수가 중편에 가까운 분량이다.
이번에 출간된 세계문학 단편선 『솔 벨로』는 작가가 반세기 동안 치열하게 써 내려온 대표 중단편을 빈틈없이 집대성한 결과물로, ‘솔 벨로’라는 거대한 문학적 우주를 온전히 조망하게 한다. 앞서 발표한 세 권의 단편집 『모즈비의 회고록 外』(1968), 『해선 안 될 말을 한 남자 外』(1984), 『나를 기억하게 해줄 것들』(1991)에서 초기작 2편을 제외한 모든 작품이 포함되었을뿐더러 마지막으로 집필한 1995년작 「세인트로렌스 강가에서」까지 실려 솔 벨로 단편의 결정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51년부터 1995년까지 발표순으로 수록된 총 13편의 작품은 시카고의 거리를 누비던 청년기의 날카로운 감각이 인생을 관조하는 노년의 깊은 성찰로 익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의 시선은 거대 도시의 소음과 역사적 격동의 한복판을 가로지르고, 미국 이민자들이 마주해야 했던 삶의 궤적과 현대 지식인의 깊은 정신적 불안, 나아가 노년과 죽음, 사랑과 상실이라는 인간의 보편적 비극을 남김없이 아우른다.
2001년 미국 출간 당시 《뉴욕타임스》는 “포크너가 천둥이라면 벨로는 번개다”라 평하며 “인간 존재의 본질을 순간적으로 명징하게” 비추는 그의 문체를 극찬했고, 《커커스리뷰》 또한 “미국 최고의 소설가가 남긴 영구 보존본”이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외에도 “응축된 문장의 선명함과 사유의 깊이라는 점에서 경이로운 선집” “최고의 이야기꾼이 빚어낸 리얼리즘 문학의 최고 성취” 등의 연이은 호평이 이어졌다. 이처럼 『솔 벨로』는 단순한 단편집을 넘어 20세기 인간 정신의 연대기이자 미국 문학이 도달한 눈부신 성취 중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

지성과 속물성의 기묘한 공존:
고결한 정신 이면에 숨겨진 현대인의 결핍과 고독에 관하여

솔 벨로는 1915년 캐나다 퀘벡주의 러시아계 유대인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아홉 살 때 시카고로 이주했으며, 인류학과 사회학, 영문학을 전공한 후 여러 대학에서 오랫동안 인류학과 문학을 강의했다. 유대인이라는 민족성과 다양한 언어 환경, 급격하게 변화해가던 20세기 미국 사회, 대학을 중심으로 한 지식인‧예술가 공동체는 벨로의 작품세계 전반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이민 경험과 정체성, 도시성, 지적 자기의식, 가족 갈등 등을 미국 현대 문학의 핵심 주제로 끌어올린 데는 개인적 경험이 상당한 역할을 했다.
이 책에 실린 작품들에서 자주 눈에 띄는 것도 화자를 비롯한 주요 인물들의 특징이다. 그들은 대개 유대인이자 미국인이며, 부유하거나 유명한 지식인 남성이다. 일상적으로 철학·예술·정치·역사적 주제를 떠올리고 다양한 외국어와 속어를 섞어 농담을 즐기지만, 삶을 제대로 들여다보면 가족 내에 문제가 있거나 과거에 사로잡혀 지내거나 고독에 빠져 있고, 진지하게 고민하는데도 상황은 종종 희극으로 치닫는다. 벨로는 이들을 통해 지성을 찬양하면서도 동시에 가차 없이 조롱하는데, 우아한 문체로 생생하게 빚어진 이 인물들은 기이하면서도 절묘하게 현실적이다.
가령 「해선 안 될 말을 한 남자」는 이러한 거장의 인간 탐구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작품이다. 화자인 해리는 현란한 독설과 통제되지 않는 ‘말의 과잉’으로 주변의 모든 관계를 파괴하고 스스로를 고립시킨 음악학자다. 그는 자신이 남들보다 지적으로 우월하다는 오만함에 사로잡혀 거침없이 독설을 쏟아내지만, 그 수다스러운 참회록의 이면에는 타인에게 인정받고 연결되고 싶어 하는 현대인의 지독한 고독과 결핍이 숨어 있다. 벨로는 지식인의 화려한 달변을 찬양하는 듯하다가도, 그것이 파멸을 부르는 순간을 신랄하고 유머러스하게 폭로하며 독자에게 지적 쾌감과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지성의 허위의식과 실존적 불안은 다른 작품들에서도 다채롭게 변주된다. 「오늘 하루 어땠나요?」에서는 세계적 석학인 빅터 울피와 그의 내연녀인 카트리나의 관계를 통해 학문적 고결함 뒤에 감춰진 인간의 속물성과 허영을 들춰낸다. 고매한 정신적 가치를 논하는 빅터 울피는 연인과의 관계에서조차 지적 권위와 자기중심성을 내려놓지 못하고, 지적 세계로의 신분 상승을 꿈꾸는 카트리나 역시 세속적인 욕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폭설로 고립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두 사람의 심리전은 고상한 학문적 성취 뒤에 숨은 인간의 가식적인 초상을 뼈아픈 코미디로 승화시킨다.

“삶의 가치는 성공이 아니라 품위에 있다”
인간에 대한 이해와 현대 문화에 대한 섬세한 분석

20세기 후반의 수십 년을 다룬 이 단편집에는 전후의 혼란 속에서 세계 최고의 강대국으로 떠오른 역동적인 국가이자 인종과 문화의 혼성 공간으로서 미국 사회가 묘사되어 있다. 이민자들의 나라, 비슷하면서도 다른 종교, 범죄와 갈등으로 얼룩진 도시, 물질주의와 소비문화의 확산 속에서 피상적 존재가 되어가는 인간, 확고해진 냉전 체제, 기존의 가치가 해체되는 이 시기가 작품 곳곳에서 다양한 각도로 조명된다.
이런 양상은 작품 속에서 대표적으로 가족이나 친척 간 갈등으로 나타난다. 가부장적이었던 유대인 대가족은 미국 사회에 동화되는 정도에 따라 극심한 세대 갈등을 겪고, 끈끈한 유대를 잃고 흩어져서 서로를 속이고 이용하는가 하면, 그럼에도 여전히 서로를 아끼고 돌보는 모순이 공존한다.
「사촌들」은 전통적 유대가 해체되어 가는 현대 사회에서도 지독하리만치 강한 결속을 요구하는 유대인 공동체의 초상을 그린다. 폭력조직의 일을 봐주다 수감된 사촌을 위해 탄원서를 써달라는 요청을 받은 주인공의 딜레마는 세속화된 미국 사회에서도 결코 끊어낼 수 없는 혈연의 사슬을 질문한다. 이러한 혈연의 애증은 「은접시」에서 정점을 찍는다. 우디에게는 불우했던 어린 시절, 자신을 아껴준 은인의 집에서 은접시를 훔치던 아버지를 막아서며 처절한 육탄전을 벌인 기억이 있다. 이 강렬한 기억은 세월이 흘러 예순이 넘은 우디가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는 병실로 이어지는데, 죽음이라는 절대적 단절 앞에서도 아버지를 필사적으로 붙잡으려는 아들의 먹먹한 연민은 가족이라는 운명의 복잡성을 깊이 있게 드러낸다.
또한 벨로는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현대 사회에서 점차 자리를 잃어가는 이념의 문제를 논하기도 하고, 전위적인 탐색을 시도하는 당대 문학과 예술에 대한 의견도 피력한다. 작품 곳곳에는 20세기 후반을 뒤흔든 정치가와 문화예술계의 거장이 실명으로 거론되기도 하는데, 이는 소설적 허구를 넘어 당대 지식인 사회의 지형도를 생생하게 복원해내는 효과를 낳는다. 이처럼 천연덕스럽게 시대의 명암을 가차 없이 파헤치면서도 특유의 냉소와 위트로 사회를 간파하는 솔 벨로의 통찰은 “인간에 대한 이해와 현대 문화에 대한 섬세한 분석”을 보여주었다는 노벨문학상 수상 사유를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삶은 곧 기억이다”
: 죽음을 앞두고도 냉소와 허무에 지지 않는 정신

솔 벨로는 61세인 1976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후에도 지치지 않는 창작열을 보여주는데, 왕성한 노년은 그의 작품 전반에서 중요한 문학적 자양분이 되었다. 여러 단편에서 주요 인물은 노인이고, 친밀한 이들의 죽음을 여러 차례 목도했거나 본인이 죽을 위기를 간신히 넘긴 처지다. 은퇴 이후 관계가 축소되고 고립된 처지에 놓인 이들은 육체는 비록 쇠약해졌음에도 정신은 여전히 건재하다. 죽음 이후에 무엇이 남을지를 고뇌하며 삶의 의미를 집요하게 찾으려 하고, 죽음을 예감하면서도 욕망을 드러내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상대를 끊임없이 갈구한다.
이러한 노년의 실존적 고투는 작가가 시간을 다루는 미학적 장치와 맞물릴 때 한층 더 깊은 울림을 준다. 솔 벨로는 기억의 서사를 통해 시간의 길이를 자유자재로 압축하고 확장하는데, 일례로 노년의 화자가 성인이 된 외아들에게 들려주는 회고담 형식의 「나를 기억하게 해줄 것들」에서는 대공황 시절 어머니의 임종을 둘러싼 ‘단 하루’가 고스란히 담기는 반면, 홀로코스트의 상흔과 망각을 다룬 「벨라로사 커넥션」에서는 ‘수십 년의 생애’가 몇 개의 굵직한 에피소드와 장면들로 요약된다. 이처럼 현재의 서사 속으로 불쑥 틈입하는 회상들은 비록 이미 결말이 정해진 과거의 편린이라 하더라도, 노년의 주인공들이 오랜 시간을 지나 다시 되돌아볼 때 비로소 삶의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결국 솔 벨로가 노년에 이르러 치열하게 복원해낸 이 기억의 서사들은 단순한 과거의 회고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시대의 소음과 죽음이라는 절대적 허무에 맞서는, 인간이 지닌 고유의 정신적 빛과 존엄성을 끝끝내 증명해내려는 거장의 필사적인 분투이다. 늙어감과 소멸의 과정을 이토록 품위 있고 생동감 넘치게 그려낸 그의 후기작들은 사라져가는 시간 속에서 우리가 끝내 기억하고 붙잡아야 할 삶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독자들에게 엄숙하게 묻고 있다.

■ 수록 작품 소개


「사촌들」(1984)
법조계 출신 유명인사 아이자는 사촌 유니스로부터 폭력조직의 일을 봐주다가 형을 살게 된 사촌 탱키를 위해 판사에게 탄원서를 써달라는 요청을 받게 된다. 세상의 온갖 유대가 해체되어가는 와중에도 유대가 너무 강한 유대인 가족. 사촌이 너무 많다!

「어떤 도둑질」(1989)
여성 패션 분야의 저널리스트이자 출판사 임원이며 네 번째 결혼생활 중인 클라라는 오래전에 사귄 이시얼에게서 받은 에메랄드 반지를 잃어버리고 엄청난 상실감을 느낀다. 둘이 합쳐 일곱 번의 결혼이 이어지는 동안 서로의 곁을 맴도는 두 사람의 편력기.

「벨라로사 커넥션」(1989)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가 홀로코스트 생존자 폰스타인과의 만남을 회상한다. 절름거리는 다리로 나치를 피해 달아나야 했던 폰스타인은 의문의 인물에게 도움을 받아 목숨을 구하는데, 쇼 비즈니스 업계의 탕아인 빌리가 수많은 유대인을 구출했다고?

「나를 기억하게 해줄 것들」(1990)
노인이 된 화자가 평범하게 돌아가던 일상에 균열이 생긴 날을 회상하면서 아들에게 전하는 이야기. 공부도 그저 그렇고 인기도 없던 소년은 임종이 가까운 병든 어머니에게 인사를 건네고 집을 나서는데, 평소처럼 시작된 하루에 차마 웃지 못할 시련이 닥쳐온다.

「세인트로렌스 강가에서」(1995)
죽음의 문턱에서 간신히 살아난 나이 든 비평가 로브 렉슬러가 강연을 위해 맥길 대학에 가는 길에 고향 라신에 들른다. 모든 것이 변해버린 세인트로렌스 강가로 그가 돌아온 이유는 무엇일까.

탱키 본인은 살인자가 아니었다. 그는 도프먼의 사업 담당자, 법률과 재정 관련 문제를 다루는 팀 소속이었다. 하지만 그는 협조가 늦거나 빚을 제때 갚지 않는 사람들을 협박하는 일도 했다. 그는 말끔하게 정리된 책상 위에 담배를 비벼 끄고, 아내와 아이들 사진이 든 액자를 부쉈다(이건 어떤 경우에는 꽤 좋은 생각인 것 같았다). 수백만 달러가 얽힌 일이었다. 그는 사소한 일을 두고 폭력을 행사하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호파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당연히 상처가 될 것이다. 탱키는 호파가 실종된 사정을 아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자료들을 많이 읽어본 나는 (그 일에 관련된 사촌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다) 호파가 디트로이트에서 ‘화해’ 모임에 참석하려고 차를 탔다는 이야기가 설득력 있다고 생각했다. 즉시 머리를 강타당하고 쓰러진 그는 아마도 뒷좌석에서 살해되었을 것이다. 시신은 분쇄기에 갈아서 소각로에서 태워버렸다.
탱키의 표정에서, 부은 그 얼굴에서—치명적인 비밀들이 담긴 부종이었다—그가 그런 일들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 보였다. 그런 것을 알고 있어서 그는 위험했다. 그런 이유로 그는 교도소에 가게 될 것이다. 조직은 그가 변절하지 않았음을 확신하고 돌봐줄 것이다. 그가 내게 원하는 건 판사에게 개인적으로 편지를 하나 써주는 것뿐이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미국정부 대 라파엘 메츠거 사건의 피고인을 위해 이 탄원을 제출하는 바입니다. 피고인의 가족이 법정조언자인 제게 선처를 호소해달라고 부탁했고, 저는 배심원들이 본 사건을 훌륭하게 처리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럼에도 저는 재판장님이 너그러운 판결을 내려주시도록 설득하려고 애를 쓸 것입니다. 메츠거의 부모님은 점잖고 선한 분들로…” 그리고 “저는 그를 어린 시절부터 잘 알고 있었습니다”라든가 “저는 그가 할례를 받을 때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같은 말을 덧붙일 수도 있을 것이다. _「사촌들」

그는 본인의 문제로 슬픔에 빠지는 것을 싫어했다. 그리고 너무나 정돈된 사람이었다—마치 고전적으로 균형이 맞는 본인의 얼굴처럼 말이다. 그 한 쌍의 눈이 특별한, 심지어 잘 관리된 자제력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이시얼은 본인에게 가혹할 때도 있었다. 그는 클라라는 물론 실패한 결혼에 대해서도 스스로를 책망했는데, 거기에는 당시의 결혼생활도 포함되었다. 하지만 그가 했던 선택들을 보면 그 역시 무모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는 고도의 정중함과 짜임새, 혹은 질서를 중시했다. 하지만 여자 문제에 있어서는 자신의 운을 시험해보았고, 도박꾼이었으며, 어딘가 무정부주의자 같은 면모가 있었다. 양쪽 모두 무정부 상태의 혼란이 있었다. 그럼에도 그의 애착, 그녀에 대한 감정은—본인도 놀랐는데—영원했다. 그녀를 존중하는 그의 마음은 마치 몇십 년에 걸쳐 서서히 떠오르는 달처럼 계속 커져갔다.
“둘이 합쳐서 일곱 번의 결혼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사랑하네.” 그녀가 말했다. 십 년 전이었다면 그런 말은 위험했을 테고, 그의 내면에 한바탕 두려움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도 동의할 거라고 그녀는 확신했고, 과연 그랬다. _「어떤 도둑질」

필라델피아의 므네모시네 학원 설립자로서, 이 일에 종사한 사십 년 동안 나는 많은 경영자와 정치인, 방위업체 직원들을 훈련시켰고, 이제 능력 있는 아들의 손에 학원 운영을 맡기고 은퇴했으니 암기에 대해서는 잊고 지내고 싶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명제였다. 황혼에 접어들어 장갑을 벗어 걸고 나면(혹은 칼을 칼집에 넣고 나면) 평생 해왔던 일을 계속하고 싶지 않게 된다. 이제 변화, 변화, 변화를 위한 왕국이 된다. 변호사는 의뢰인들에게서 멀어지고, 의사는 환자들에게서 멀어지고, 장군들은 도자기를 칠하고, 외교관들은 낚시에 관심을 가진다. 나의 경우는 다르다. 타고난 기억력 덕분이었다. 내가 세상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타고난’이라는 표현은 정말로 중요한 모든 것에 담긴 숨은 원천을 일컫는 교묘한 말이다. 내가 고객들에게 말했듯이, “삶은 곧 기억이다”. 내가 지도했던 국가안전보장회의 회원들에게 간결한 방법으로 인상을 남기기에 좋은 말이었지만, 이제 그 말이 나를 불편하게 하고 있다. 기억이 곧 인생인 삶을 살아왔다면, 죽음이 아니고선 은퇴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_「벨라로사 커넥션」

  작가 소개

지은이 : 솔 벨로
1915년 캐나다 퀘벡주 라신에서 러시아계 유대인 부부의 사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고, 아홉 살 때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로 이주했다. 시카고대학교, 노스웨스턴대학교, 위스콘신대학교 등에서 인류학과 사회학, 영문학을 수학한 뒤 여러 대학에서 오랫동안 강단에 섰다. 1941년 첫 단편 「두 개의 아침 독백」을 발표하며 문단에 데뷔한 그는 평생 현대인의 고립과 소외를 유려한 문체와 날카로운 지성으로 파헤치며 20세기 미국 현대 문학의 정점에 올랐다. 『오기 마치의 모험』(1953), 『허조그』(1964), 『샘러 씨의 행성』(1970)으로 전미도서상을 세 차례 수상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고, 『험볼트의 선물』(1975)로 퓰리처상을, 1976년에는 “인간에 대한 이해와 현대 문화에 대한 예리한 분석”을 인정받으며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그의 위대한 문학적 위상은 선 굵은 장편뿐만 아니라 인간 내면의 격정을 현미경처럼 들여다보는 중단편 소설의 완벽한 성취에서 비롯되었다. 평론가들로부터 “벨로의 단편 하나가 다른 작가의 장편보다 훨씬 더 강력한 정서적 타격감을 선사한다”는 극찬을 받을 만큼, 그는 짧은 분량 안에서 인간 본성의 지독한 모순을 압축해 보여주는 데 독보적이었다. 뉴욕에서의 단 하루를 무대로 현대인의 파산과 영적 구원을 그린 중편 『오늘을 잡아라』(1956)로 미국 중편 소설의 최고봉이라는 찬사를 받았고, 지식인의 냉소와 고독을 위트 있게 다룬 『모스비의 회고록 외』(1968)을 통해 단편의 거장다운 완숙미를 증명했으며, 1984년에는 인간의 소통 불가능성을 날카로운 유머로 파헤친 명작 단편집 『해선 안 될 말을 한 남자 외』를 출간하며 문단에 거대한 지적 파장을 일으켰다. 이후에도 현대 남녀의 성적 역학과 감정의 과잉을 풍자한 『어떤 도둑질』(1989), 홀로코스트의 기억을 다룬 『벨라로사 커넥션』(1989) 등을 잇달아 발표하며 후기 단편의 황금기를 구가했다. 오헨리상, 말라파르테문학상, 세인트루이스문학상과 더불어 단편소설 부문의 권위 있는 펜/맬러머드상을 수상했고, 국가예술훈장과 전미도서재단 공로훈장 등을 수훈했다. 이처럼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미국 문학의 최전선을 지키며 독보적인 족적을 남긴 그는 2005년 4월, 매사추세츠주 브루클라인의 자택에서 89세를 일기로 영면했다.2001년 『솔 벨로 단편집』이 출간되었을 때 뉴욕타임스는 “포크너가 천둥이라면 벨로는 번개”라며 사물을 순간적으로 명징하게 시각화하는 그의 날카로운 단편 스타일을 극찬했다. 거장의 60년 문학 인생이 담긴 이 책은 인간 영혼의 가장 깊은 심연을 비추는 눈부신 유산으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

  목차

세계문학 단편선 43 『솔 벨로 2』
사촌들 · 7
어떤 도둑질 · 111
벨라로사 커넥션 · 231
나를 기억하게 해줄 것들 · 51
세인트로렌스 강가에서 · 400
작가 후기 · 422
옮긴이의 말 · 430
솔 벨로 연보 · 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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