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그동안 『물음표의 사슬』과 『침묵의 비망록』 등과 같은 작품으로 제주4·3항쟁의 아픈 역사를 문학적으로 형상해 온 고시홍 작가의 신작 소설집이다. 고시홍 작가는 이 소설집에서 “오른손잡이냐 왼손잡이냐 하는 언어의 분칠, 아귀다툼”의 자리를 비켜난 곳, 이념적 대립과 가해와 피해의 이분법을 벗어난 자리에서 우리 안의 공동체의 윤리적 책임의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한다.
출판사 리뷰
그동안 『물음표의 사슬』과 『침묵의 비망록』 등과 같은 작품으로 제주4·3항쟁의 아픈 역사를 문학적으로 형상해 온 고시홍 작가의 신작 소설집이다. 고시홍 작가는 이 소설집에서 “오른손잡이냐 왼손잡이냐 하는 언어의 분칠, 아귀다툼”의 자리를 비켜난 곳, 이념적 대립과 가해와 피해의 이분법을 벗어난 자리에서 우리 안의 공동체의 윤리적 책임의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한다.
소설집의 표제작 「동백꽃 무덤」에서 작가의 시선은 4·3의 상징인 동시에 여순사건의 상징이기도 한 ‘동백꽃’을 매개로, 여수 만성리 형제묘와 제주의 섯알오름 학살터(백조일손묘)를 거울처럼 마주 보게 한다. 반공국가 건설 과정에서 ‘국민’으로 승인받지 못한 채 ‘빨갱이’라는 이름으로 박멸되어야 했던 민중들의 잔혹사. ‘국민’과 ‘비국민’을 가른 그 분류의 가장 가시적 표지가 바로 제주와 여순의 동백꽃이다. 동백꽃이 제주에서 여수로, 다시 더 너머로 이어진다는 사실은, 한국 죽음정치의 작동이 지역의 경계를 넘어 한반도 전체에 그물망처럼 깔려 있었음을 보여준다. 『동백꽃 무덤』에서 4·3의 기억은 추상적 관념이 아니라, 소설 속에 등장하는 곤을동, 삼밭구석, 무등이왓, 자리왓 등의 지명은 단순한 비극의 공간이 아니라, 국가가 의도적으로 폐기한 공간, 강제로 추방당한 공간이다.
「할마님의 땅」에서 작가는 101세로 종명한 할머니 김여정의 부고와 함께 곤을동 초토화 마을 터를 호명한다. 주인공인 김나무는 제주 4‧3유적지로 관리되고 있는 ‘곤을동’을 “치욕스런 이름의 4·3 유적지!”로, “부끄럽고 불명예스러워 들짐승 사체처럼 내버린 동네”로 인식한다. 이 치욕의 땅이 할머니의 유언을 통해 손자 김나무에게 상속되는 순간 죽음의 공간은 삶의 공간으로 반전된다.
「무등이왓의 똥돼지」는 주권 권력에 의해 폐기되어버린 죽음정치의 문제를 보다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고교 시절 제자였던 서정남을 만난 나는 안덕면 동광리 일대를 답사하면서 “잃어버린 마을”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한다. “분실된 게 아니라 폐기한 땅이니까.” 분실이 아니라 폐기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고시홍 작가는 제주의 장소를 죽음권력이 가장 적나라하게 작동한 공간으로 인식한다. 몸이 사라지고, 정치적 주권이 망실되고, 고향마저 빼앗긴 땅. 그 땅의 복원을 위해 고시홍 작가는 신체적 감각을 동원한다.
「문전제門前祭」는 제주 4‧3이 가해와 피해의 서사로 구분될 수 없는 대단히 복잡한 ‘사건’임을 보여준다. 소설의 제목인 ‘문전제’는 제주에서만 행해지는 제례의식이다. 제주 남선비 신화는 남선비와 그의 아내, 일곱 형제는 죽어서 집안을 지키는 문전신이 되는데 특이한 것은 신화 속에서 그들과 대립했던 노일저대까지 문전신으로 모신다는 것이다. 신화 속에서 불구대천의 원수라고 하더라도 문전신으로 기린다는 이 신화적 요소는 제주4․3 당시 가해자를 기억하고자 하는 아내 화옥의 발화로 표면화된다. ‘문전본풀이’ 신화를 차용하는 것은 단순히 가해자를 용서하고 포용하는 ‘화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제주4․3 당시 주권 권력이 ‘국민과 비국민’을 구획하면서 폭력적인 절멸을 행사했음을 감안하면 이 소설은 그 폭력적 구분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는 적극적 의지이자, 죽음정치의 작동을 거부하는 신화적 대항의 시도이다.
「왕돌거리의 늙은 폭낭」은 죽음세계 안에 갇힌 신체가 의례조차 허락받지 못할 때 자기 의지의 마지막 행사가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비극적으로 보여준다. 수용소에 갇힌 동료 교사들을 석방시키는 대가로 토벌대 중대장과 강제 결혼을 해야 했던 여교사 김길영의 삶. 그녀는 끝내 왕돌거리의 늙은 팽나무에 목을 매 자살함으로써 폭력의 사슬을 끊어낸다. 그것은 죽음 세계 안에 갇힌 살아있는 시체가 마지막으로 행사하는 자기 의지의 표현이자, 죽음정치를 거부하는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청춘다방」과 「족보」 역시 제주4·3의 기억을 다양한 시선으로 복원한다. 이처럼 『동백꽃 무덤』에 수록된 작품들은 학살과 이산의 상처, 사라진 마을과 공동체의 기억, 그리고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트라우마를 제주 특유의 역사와 문화의 토양 속에서 녹여내고 있다.
『동백꽃 무덤』의 가장 큰 미덕이자 4·3 문학사적 도전은 피해와 가해의 이분법을 넘어 공동체 내부의 윤리적 책임을 묻고 있다는 점이다. 4·3을 선과 악, 가해자와 피해자의 단순한 이분법으로 환원하지 않는다. 형이 아우를 죽이고, 살기 위해 가해자와 혼인하는 누이를 용인하고, 여교사가 토벌대장과 강제 결혼해야 했던 한국 죽음정치의 가장 잔혹한 메커니즘을 작가는 보여주고 있다. 작가의 이러한 시선은 가해와 피해 어느 한편에 서서 피해자성을 강조하거나 가해자에 대한 역사적 면죄부를 주기 위함이 아니다. 오히려 진실의 복합성을 직시함으로써, 진실이 무엇인지를 묻기 위한 방법론이다.
소설집에서 작가가 가장 강조한 것은 가해와 피해를 가른 것이 결국 국가권력이었다는 사실이다. 형제가 형제를 죽이도록, 누이를 노리갯감으로 바치도록, 여교사가 토벌대장과 강제 결혼하도록 만든 것은 1948년 11월의 계엄령과 그것이 작동시킨 죽음정치의 분류 체계였다. 공동체 내부의 가해 서사를 드러내는 행위는 결코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피해자들끼리 서로를 죽이게 만들고 살아남기 위해 또 다른 죽음에 가담하게 만드는 죽음정치의 가장 야만적 작동 방식을 폭로하는 일이다. 동시에 그 폭력이 살아남은 공동체 내부에 남겨놓은 윤리적 매듭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일이다. 이것이 소설집 『동백꽃 무덤』이 4·3 문학사 안에서 수행하는 가장 결정적인 역할이다.
작가는 후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여전히 오른손잡이냐, 왼손잡이냐 하는 언어의 분칠, 아귀다툼은 가시지 않은 세상이우다. 언제면 이념의 녹조현상, 적조현상이 걷히고 양손잡이가 지배하는 날이 올 것인고마씀.” 이 말은 단순한 화해의 제스처가 아니다. 그것은 해방공간의 죽음정치가 여전히 현재형으로 작동하는 한국 사회를 향한 서늘한 진단이며, 고정된 정체성·국적·시민권에 묶이지 않고, 상호 취약성과 이동성을 공유하는 존재로서 인간을 사유하자는 제안이다. 우리와 그들의 이분법적 적대정치와 죽음세계에 맞서는 공통의 세계 만들기인 것이다.
고시홍 작가의 글쓰기가 바로 이 자리에 놓여 있다. 그는 학살의 객관적 사실을 정리하는 거대 담론의 건조한 언어를 신뢰하지 않는다. 그 언어 자체가 이미 한국 죽음정치의 문법에 오염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는 다른 언어를 택한다. 살아남은 자들의 파편화된 구술, 제례의 한복판에서 터져 나오는 피울음 섞인 독백, 그리고 무엇보다 제주어의 질감을 구체적으로 들려준다. 『동백꽃 무덤』에서 제주어는 단순한 지역적 색채가 아니다. 그것은 한국 죽음정치가 표준어와 공식 담론을 통해 봉인한 산송장들의 언어를, 그 봉인의 문법 자체를 비틀어 되살려내는 재현적 글쓰기 그 자체이다.
고시홍 작가의 소설집 『동백꽃 무덤』은 4·3을 ‘항쟁의 정당성’이라는 거시 서사 안에 안주시키지 않고, 그 거시 서사 안에서 끝내 호명되지 못한 미시적 진실들을 다시 응시함으로써, 4·3을 한국 죽음정치의 끝나지 않은 시험대로 자리매김하는 작업이다. 고시홍 작가에게 제주4·3은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평생의 문화적 화두이자 소설창작의 원천이었다. 오랜 세월 제주4‧3의 진실을 기록하고 증언을 채록하며, 문학을 통해 역사적 상처를 기억하는 작업을 이어왔다. 『동백꽃 무덤』은 그러한 작가적 문제의식이 집약된 작품집으로 망각에 맞서는 문학의 역할과 기억의 윤리를 다시금 환기시킨다.
특히 이번 소설집은 제주와 여수 두 지역의 비극을 연결함으로써 지역의 역사를 넘어 한국 현대사의 보편적 상처를 성찰하게 한다. 동백꽃처럼 붉게 피어났다 스러진 희생자들의 삶을 애도한다. 그러면서 오늘의 독자들에게 기억과 공존, 그리고 진정한 화해의 의미를 묻고 있다.
『동백꽃 무덤』은 역사적 진실을 향한 집요한 탐구와 인간에 대한 깊은 연륜이 어우러진 작품으로 제주4·3 문학의 새로운 성과이자 우리 시대가 반드시 읽어야 할 기억의 서사이다.
작년 봄, 법복을 벗고 Y그룹 법무팀에 합류했다. 김훈종 선배는 대놓고 비아냥거리며 핀잔했다. 나무야, 회사 대변인 역할을 하는 변호사 생활이 어떠냐. 변호사는 양심을 팔아 먹고사는 직업이라고 하던데…. 할머니가 알면 낙담하겠다는 말도 고명처럼 얹었다.
할머니가 큰심방처럼 애잔한 가락에 덕담과 넋두리를 버무린 사설을 늘어놓은 것은 최종 사법고시 합격통지를 받았을 무렵이었다. 아이구, 장허다, 장해. 김나무가 볶은 콩에서 돋아난 금나무가 됐구나. 할머니는 가족들이 지켜보든 말든 아랑곳없이 내 손을 붙든 채 촛농처럼 눈물을 흘리며 감격스러워했다. 느네 하르바님도 총명허고 인물이 훤해나신디…. 기영헌디 나무야. 벌써 예순 해가 넘어섰구나마는… 이제 법관이 되시난 하나 부탁헐 일이 있저. 묻지 마라 갑자생 허는 식으로 죄 없는 사름덜 꿩사냥허듯, 돗추렴허듯 헌 피젱이들을 이제라도 몬딱 심어당 감옥에 가둬시민 한이 읏이켜. 옛날엔 대역죄를 지은 사름은 젓을 담강 산에 뿌리거나 죽은 사름 무덤을 파헤ㅤㅊㅕㅇ 유골을 가루로 멘들어 강이나 산에 날려버리기도 했댄 이야길 들어신디… 기영까진 못 해도 법이 밝은 세상 아니가…. 할머니는 눈물, 콧물을 손으로 훔치며 치맛자락으로 옮겼다. (「할마님의 땅」 중에서)
순환버스가 석교동정류소 앞을 지나갔다. 내가 사는 동네 입구였다. 무등이왓 들머리와 엎드리면 코 닿을 곳이었다.
“저 밀감밭 사이로 보이는 빨간 함석지붕이 내가 칩거하는 곳이야.”
퇴임하자마자 귀향해 무등이왓을 선산 묘역으로 삼아 마련한 보금자리였다.
“왜 무등이왓이라 했죠.”
“무등을 탄 어린애가 춤을 추는 형국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래.”
지적도를 축소한 도면으로는 가뭄으로 거북등이 된 논바닥이었다. 북녘 둔덕에서 남으로 비탈과 평지를 이루고 있다. 무등이왓 들머리의 ‘뒷동산’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2001년에 세워진 ‘무등이왓’ 표석 앞이었다.
“여기는 4·3사건의 와중인 1948년 11월 21일 토벌대 방화로 사라진 동네…. 약 1700년경 관의 침탈을 피해 숨어든 사람들이 화전을 일궈 살면서 마을이 형성…. 주민들은 주로 조, 메밀, 콩 등을 재배했고, 교육열이 높아 일제 때에는 광신사숙과 2년제 동광간이학교가 세워졌다. 그런데 4·3사건으로 폐촌 후 주민들은 도너리오름 앞쪽의 큰넓궤에 숨어드는 것을 시작으로 눈 덮인 벌판을 헤매다 유명을 달리했다. 어느 할머니는 그 후 평생 ‘난 돗통시에 숨언 살앗수다…. 나만 혼자 살아낫수다.’ 하는 맷돌노래를 불렀다 한다….”
나는 손도장 찍듯 검은 대리석판에 음각된 글자를 짚었다.
“여기 이 ‘어느 할머니’란 분은 그 당시 바로 이웃에 살았어.”
‘개똥이 할망’이었다. 나보다 서너 살 아래였던 개똥이. 녀석은 청상과부였던 할망과 단둘이 살다가 어른들 틈에 끼어 비명에 갔다. (「무등이왓의 똥돼지」 중에서)
아내가 쏘아 올린 공포탄은 ‘문전제’였다. 그림자 같은 친구 장례를 치르고 나서부터였다. 끼니때가 다가오면 ‘문전제 준비해야겠구나’, ‘밥 먹읍서, 식사헙서’가 ‘오랑 음복헙서’를 입에 달기 일쑤였다. ‘문전제, 문전제’ 하며 잠꼬대를 하거나 한밤중에 일어나 앉아 문전제 타령을 했다. 처음엔 우스갯소리인 줄 알았다. 입이 걸쭉하기로 소문이 자자한 아내였다.
뒤늦게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단했다. 경찰순찰차가 지나가거나 앰뷸런스, 소방차의 숨가쁜 경고음이 들리면 고양이처럼 몸을 숨겼다. 집에서는 방으로, 식당이나 찻집에서는 화장실로, 거리를 걸어갈 때는 아무 곳이나 문을 열고 들어갔다. 파출소로 뛰어든 적도 있었다. 그리고 미용실, 약국, 은행, 우체국, 꽃집, 양품점, 이발소, 공인중개사 사무실, 공설시장으로…. 그러고 나서도 아내는 태연했다. 무표정, 침묵으로 일관했다. 절경으로 이름난 ‘큰엉’으로 데리고 가서 동반 낙하할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아주 잠깐…. (「문전제門前祭」 중에서)
작가 소개
지은이 : 고시홍
제주에서 나고 자라 일하다. 1983년 『월간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하고 소설집 『대통령의 손수건』, 『계명의 도시』, 『물음표의 사슬』, 『그래도 그게 아니다』, 『동백꽃 무덤』과 장편소설 『침묵의 비망록』, 공저 『고려사 탐라록』 등이 있다. 제4·3희생자 추가진상조사 자문위원, 제4·3 70년 『어둠에서 빛으로』 편집위원장 등을 지내고 탐라문화상을 수상하다.
목차
할마님의 땅 / 7
무등이왓의 똥돼지 / 37
문전제門前祭 / 65
왕돌거리의 늙은 폭낭 / 89
청춘다방 / 117
족보 / 147
동백꽃 무덤 / 173
*해설
죽음세계의 안에서, 죽음세계 너머로_김동현(문학평론가) / 301
*작가의 넋두리 / 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