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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거기 김덕룡이 있었다
대한민국 민주화와 개혁의 증언
메디치미디어 | 부모님 | 2026.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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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그때 거기 김덕룡이 있었다》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한국 민주화 운동의 산증인으로 꼽히는 김덕룡 김영삼민주센터 이사장의 회고록이다. 김 이사장이 1960년대 학생 운동을 시작으로 김영삼 전 대통령과 함께한 반독재 민주화 투쟁, 1987년 6월 항쟁, 1990년 3당 합당, 1993년 문민정부 출범과 개혁, 이후 재외동포와 남북화해를 위한 활동에 이르기까지 그의 60년 정치 역정을 정리한 증언록이다.

김 이사장은 책에서 “내 삶 역정의 기록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민주화의 한 시대를 살아온 우리 시대의 증언록”이라고 이 회고록의 의미를 설명한다. 책은 공적인 기록으로서의 의미를 더욱 살리기 위하여 통상적인 연대기적 순서를 과감히 탈피했다. ‘서울대 문리대 학생회장 시절, 김영삼 의원과의 첫 만남’의 장면부터 시작하여 독자들을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뜨거웠던 개혁과 격랑의 현장 속으로 곧장 안내한다.

  출판사 리뷰

격랑의 한국 현대사 속 ‘기록의 공백’을 메우는 김덕룡의 60년 정치 증언록
가장 뜨겁고 장엄했던 역사의 현장마다 김덕룡이 있었다!

《그때 거기 김덕룡이 있었다》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한국 민주화 운동의 산증인으로 꼽히는 김덕룡 김영삼민주센터 이사장의 회고록이다. 김 이사장이 1960년대 학생 운동을 시작으로 김영삼 전 대통령과 함께한 반독재 민주화 투쟁, 1987년 6월 항쟁, 1990년 3당 합당, 1993년 문민정부 출범과 개혁, 이후 재외동포와 남북화해를 위한 활동에 이르기까지 그의 60년 정치 역정을 정리한 증언록이다. 김 이사장은 책에서 “내 삶 역정의 기록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민주화의 한 시대를 살아온 우리 시대의 증언록”이라고 이 회고록의 의미를 설명한다. 책은 공적인 기록으로서의 의미를 더욱 살리기 위하여 통상적인 연대기적 순서를 과감히 탈피했다. ‘서울대 문리대 학생회장 시절, 김영삼 의원과의 첫 만남’의 장면부터 시작하여 독자들을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뜨거웠던 개혁과 격랑의 현장 속으로 곧장 안내한다.

‘YS의 분신’ 김덕룡, 내부자의 시선으로 복원한 현대사 증언록
김지하 ‘양심선언’, YH 사건, YS 단식 투쟁, 신민당 창당의 막후 과정 등
조국의 현실 앞에 울어본 세대의 기록!

《그때 거기 김덕룡이 있었다》는 한 정치인의 개인 회고를 넘어, 민주화 운동과 문민정부 개혁의 현장을 내부자의 시선으로 복원한 현대사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 곁에서 민주화 투쟁과 문민 개혁을 함께한 인물이 남긴 증언이라는 점에서, 한국 보수 정치의 개혁적인 진로를 다시 묻고 있다.
김덕룡 이사장은 1964년 서울대 문리대 학생회장으로 6·3 한일굴욕외교 반대 투쟁을 주도했고, 1970년 김영삼 당시 의원의 비서로 정치에 입문했다. 이후 30여 년간 김영삼 전 대통령을 ‘그림자처럼’ 보좌하며 박정희 유신 체제와 전두환 군사 정권에 맞섰다. 그는 네 차례 투옥을 겪었고, 가택연금과 감시, 미행, 도청이 일상이던 시절 정치권과 재야를 잇는 통로 역할을 했다. 책은 특히 그동안 공식 기록으로 충분히 조명되지 않았던 민주화 운동의 막후를 생생하게 복원한다. 김 이사장은 1975년 재야 민주화 운동의 구심체였던 민주회복국민회의와 신민당을 연결하는 창구 역할을 맡았다. 김지하 시인의 옥중 ‘양심선언’을 배포하다 다시 구속된 일화도 회고록의 주요 장면 가운데 하나다. ‘양심선언’은 고문을 통한 용공 조작이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국내외에 알린 문건이었다.
1979년 유신 체제 말기에는 김영삼 총재가 신민당 당권을 되찾은 5·30 전당대회의 숨은 역할을 했다. 당시 경선 불참론이 적지 않았지만, 김 이사장은 “당권 도전 포기는 민주화 투쟁의 포기”라는 논리로 경선 참여를 설득했다. 그해 YH 사건 이후에는 정권의 폭력성을 알리는 진상 보고서를 배포하다 또 옥고를 치렀다. 1980년대 들어서도 그의 역할은 계속됐다. 민주화 운동을 다시 점화한 1983년 ‘YS의 23일간 단식’을 국내외에 알리는 기자회견으로 다시 투옥되었으며, ‘서울의 봄’ 이후 동교동과 상도동이 함께 참여한 민추협의 산파역을 맡았다. 1985년 2·12 총선을 앞두고는 민주세력 내부의 선거 보이콧 여론 속에서 “합법적 공간을 적극적인 투쟁의 장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참여론을 관철시켰다. 그는 정치활동 규제 중임에도 불구하고 ‘종로·중구 이민우 선거’의 실무 사령탑을 맡아서, 신한민주당이 돌풍을 일으키며 6월 항쟁으로 이어지는 정치적 흐름의 발판을 마련했다.


베일에 싸여 있던 ‘3당 합당 실무 협상’ 전모 최초 공개
대한민국 현대사 속 ‘무혈 민주 전환’을 실현하다!

회고록에는 1990년 정계를 뒤흔든 3당 합당의 막전막후 이야기도 담겼다. 김 이사장은 당시 민정당·민주당·공화당 합당 협상 과정에서 6공 실세들이 내각제 개헌을 추진하려 한 정황을 소개한다. 청와대 실세 박철언이 내각제 도입을 제안하자 그는 “우리를 들러리 세워 장기 집권을 노리는 속셈이라면 합당을 그만두라”며 강하게 반발했다고 회고한다. 이후 김영삼 전 대통령 역시 “내각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고, 대통령 직선제의 틀은 유지됐다. 김 이사장은 논란이 컸던 3당 합당에 대해서 자신의 평가를 밝힌다. 그는 3당 합당이 당시 국민에게 큰 충격을 준 정치적 선택이었음을 인정하면서도, 역사 발전이라는 큰 틀에서 보면 김영삼의 결단은 불가피했다고 말한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 호랑이를 잡는다”는 선택이 있었기에 문민정부 출범과 하나회 척결, 금융실명제 실시, 공직자 재산등록, 지방자치제 전면 실시 등 문민 개혁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세계 정치사에 유례가 드문 군사 정권에서 민주정부로 전환하는 ‘무혈 연착륙’을 실현했다.


문민정부 개혁의 상징 ‘금융실명제’와 ‘경제민주화’의 시원
‘87년 체제’ 주역이 현실 정치에 던지는 고언(苦言)
“승자 독식의 정치를 깨는 개혁에 내 여생의 힘을 보태겠다”

국회의원 김덕룡의 의정활동도 회고록의 중요한 축이다. 1988년 13대 국회에 등원한 그는 재정경제위원회에서 8년간 활동하며 금융개혁과 재벌개혁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매년 국정감사를 앞두고 의원회관 618호의 불이 꺼지지 않았다는 일화는 그의 의정활동을 상징한다. 그는 행정부와 권력기관이 자료 제출을 거부하던 관행에 맞서 국회의 감시 기능을 세우려 했고,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의 논리를 일찍부터 제기했다. 문민정부 출범 이후에는 두 차례 정무장관과 당 사무총장 등을 지내며 개혁 과제의 추진에 참여했다. 김 이사장은 IMF 외환위기로 인해 문민정부의 공과가 충분히 균형 있게 평가받지 못했다고 보고, 출범 30년을 넘긴 지금이 재평가의 시점이라고 말한다. 그 후로도 그는 국민통합, 남북관계 개선, 재외동포 지원, 과학기술과 대중문화 진흥을 주요 과제로 삼아 활동했다. 특히 재외동포 지원 활동에 30년 넘게 심혈을 기울였다.
회고록의 마지막 메시지는 오늘의 정치에 대한 고언이다. 김 이사장은 자신을 “개혁주의자이자 통합주의자”로 규정하며, 극단적인 진영 대립과 승자 독식 정치가 한국 민주주의를 병들게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제왕적 대통령제와 소선거구제가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며, 권력 분산형 개헌과 중대선거구제로의 선거제도 개편을 정치개혁의 핵심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우리 곁을 떠났던 수많은 동지의 모습은 잊을 수가 없고, 잊혀서도 안 될 것이다. 흔히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은 인생을 말할 자격이 없다고 한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조국의 현실을 끌어안고 한 번이라도 울어보지 못한 사람은 민주주의를 말할 자격이 없다고. 서로 보듬고, 울었던 동지들이 있었기에 그 험난한 민주화의 길을 걸어올 수 있었다. 그 고난의 길을 함께한 수많은 동지가 이름도 없이, 제대로 된 예우도 받지 못한 채 우리 곁을 떠났다. 그분들은 살아 있는 우리의 영원한 마음의 빚으로 남아 있다. ─ <회고록을 펴내며> 중에서

젊음의 한가운데서 김영삼이라는 정치 거목을 만나 멀고도 험난한 민주화의 대장정을 함께 걸어가게 되었다. 대학 시절의 작은 인연이 계기가 되어 나의 운명이 결정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 <정치 입문: 정치인 김영삼과의 운명적인 만남> 중에서

내가 구속되자 김 총재는 주변에 “나 대신에 김덕룡이 구속되었다”고 하면서 자주 안타까운 마음을 표했다고 한다. “검찰에 출두하면 김덕룡을 풀어준다”는 고위관리의 말을 듣고 검찰총장실을 직접 찾아가기도 했다. 크리스마스 며칠 앞두고 김 총재가 구치소로 면회를 와서 나를 위로하면서 사식을 넣어주겠다고 하셨다. “총재님, 저는 관식 체질인가 봅니다. 사식은 한 끼도 먹지 않았습니다. 아무 걱정 마십시오”라고 위로를 해드렸다. ─ <정치 입문: 정치인 김영삼과의 운명적인 만남> 중에서

  작가 소개

지은이 : 김덕룡
대한민국의 정치인. 1941년 전북 익산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문리대 학생회장 시절 ‘6·3 대일굴욕외교 반대 투쟁’을 주도하며 첫 옥고를 치르고 제적당했다. 이후 민주화 운동의 최전선에 섰으며, ‘김지하 양심선언’과 ‘YH 사건 보고서’ 배포, ‘YS 단식 투쟁 성명서’ 외신 공표 등으로 박정희·전두환 정권 아래서 총 네 차례 투옥되었다. 1970년 김영삼 의원의 비서로 정계에 입문한 이래 김영삼 총재 비서실장,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 기획조정실장 등을 거치며 ‘YS의 분신’이자 실무 사령탑으로서 2·12 총선 승리와 직선제 개헌 투쟁을 이끌었다. 1993년 문민정부 출범 이후에는 두 차례 정무장관 역임, 집권당 사무총장으로 일하며 문민 개혁의 기틀을 다지는 데 크게 기여했다. 1988년 제13대 국회에 등원한 이후 서울 서초구에서 5선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한나라당 원내대표 등을 역임했다. 정치하는 동안 ‘상생의 정치’를 주창했다. 이후 이명박 정부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대표상임의장, 문재인 정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 수석부의장으로 정파를 넘어 남북 간 화해를 위해 일했다. 아울러 (사)세계한인상공인연합회를 창립하는 등 750만 재외동포의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현재는 (사)김영삼민주센터 이사장 및 (사)민추협 공동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평생 개혁적인 보수정치인으로 통합과 실용의 정치를 추구했다. 이제 치열했던 60년 역정의 기록을 다음 세대를 위해 세상에 내놓는다.

  목차

회고록을 펴내며
회고록에 부쳐

1부 인고의 세월, 치열하게 피어난 저항의 불꽃
1. 정치 입문: 정치인 김영삼과 운명적인 만남
문리대 학생회장 당선 그리고 김영삼 의원과 첫 만남 | 김영삼 의원과 두 번째 만남 | 대일 굴욕외교 반대 투쟁 | 민족적 민주주의 장례식 | 난국타개 궐기대회와 단식 투쟁 | 계엄령 선포와 도피 생활 | 첫 번째 구속 | 굴욕외교 반대 투쟁과 6·3 세대 | 결혼식과 논에 빠진 아내 | 김영삼 의원의 공천 제의 | 3선 개헌과 박정희 대통령 영구 집권 | 김영삼 의원 ‘40대 기수론’ 제창 | 1970년 신민당 대통령 후보 경선과 YS 패배 | 전남 구례로 김영삼 의원을 찾아가다 | 상도동 새내기 시절 | 유신 체제의 등장 | 김영삼 의원 급거 귀국 | 유신 체제와 긴급조치 | 최연소 야당 총재 김영삼 | 유신헌법 철폐 투쟁 | 박정희-김영삼 청와대 영수회담 | 두 번째 구속 | 아내와 아이들 | 김영삼 총재 당권 상실과 비서실장 임명 | 당권 재도전과 방해 공작 | 마침내 승리하다 | 카터 대통령 방한과 김 총재 면담 | YH 사건 | 세 번째 구속 | 김영삼 의원직 제명과 유신 종말 | 갑작스러운 석방 | 12·12 군사반란
2. 1980년대: 가택연금, 단식 투쟁, 그리고 1987년 6월 항쟁의 실무 사령탑
서울의 봄과 안개 정국 | 4월의 혼란 | 5·17 쿠데타 | 김영삼 총재 1차 가택연금 | 《나와 내 조국의 진실》
출간 | 거대한 바다로 흐르는 네 갈래의 강물 | 관제 야당과 11대 총선 | 무교동 ‘사랑방’ | 김영삼 총재 1차 가택연금 해제 | 민주산악회가 탄생하다 | 민주산악회 탄압과 성장 | 민주산악회 발전 | 민주산악회 전성기와 해체 | 김영삼 총재 2차 가택연금 | 단식 투쟁 준비 | 단식 투쟁 시작 | 서울대병원 강제 이송 | 단식 투쟁 중단 | 네 번째 구속 | 야권 통합 추진 | 민주화추진협의회 출범 | 정권 탄압과 돗자리 회의 | 선명 야당 창당 추진 | 신한민주당 창당 | 이민우 총재 종로 공천 | 정치 1번지 종로 선거 | 2·12 총선 혁명 | 마지막 해금 조치 | 1천만 개헌 서명 운동과 정권의 방해 | 5공의 폭압 통치 | 김대중 대통령 불출마 선언 | ‘이민우 구상’ 파문 | 통일민주당 창당 |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4·13 호헌 조치 | 박종철 고문치사 조작과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 출범 | 6·10 민주항쟁 | 6·29 선언 | 6월 항쟁의 의미 | 김대중 불출마 선언 번복 | 후보 단일화 협상 | 부산 수영만 집회 | 김대중 탈당과 후보 단일화 실패 | 대통령 선거운동 | 노태우 후보 대통령 당선 | 야권 통합과 소선거구제 협상 | 13대 총선과 지역주의 고착화

2부 개혁과 시련, 호랑이 굴에서 본 문민의 빛과 그늘
3. 국회 진출: 제도권 정치로의 이행과 의회주의자의 길
서초구 출마와 원내 진출 | 국정감사 | 국회 통일 특위와 통일외교위원회 활동 | 여소야대 정국 | 국내외 정세와 3당 합당 추진 | 3당 합당 실무 협상 | 3당 합당 선언 | 박철언 파동 | 노란 봉투 사건과 내각제 각서 유출 | 김동영 의원 별세 | 14대 총선과 재선 성공 | 민자당 대선후보 선출 | 노 대통령 탈당
4. 문민정부 출범: 하나회 척결, 금융실명제 등 문민 개혁의 설계와 집행
김영삼 후보, 14대 대통령 당선 | 문민정부 출범 | 하나회 척결 | 금융실명제 실시 | 개혁 전도사 | (사)세계한인상공인총연합회 창립 | 세계한민족공동체재단 설립 | 재외동포재단 설립과 재외동포 참정권 운동 | (사)장보고글로벌재단 | 통합선거법, 정치자금법, 지방자치제 전면 실시 | 남북 정상회담과 대북정책 | 국회과학기술연구회 창립 | 6·27 지방선거 | 서울시장 후보 | 지역주의 바람과 선거 패배 | 역사 바로 세우기-일제 잔재 청산과 민주화 운동 재정립 | 역사 바로 세우기-5·18, 12·12 단죄 | 김현철 소장과의 갈등설 | 15대 총선 승리 | 3선 고지 등원 | 서초문화원 확대 개편 | 노동법 파문 | 금융개혁 입법 | 신한국당 대선후보 경선 | 이회창 자녀 병역 비리 의혹과 김대중 비자금 폭로 | 김우중을 대통령 후보로 생각하다 | 한나라당 창당 | IMF 외환위기 | 문민정부의 업적 | 문민정부 과오 | 시대의 빛과 그림자를 넘어선 역사적 복권

3부 고뇌와 소망, 대도무문의 남은 길
5. 문민정부 이후: 나의 의정활동 기록
국회 대중문화&미디어 연구회 | 뉴밀레니엄 위원회 | 16대 총선 | 16대 대선 | 17대 총선과 원내대표 | 원내대표 활동 | 행정수도 이전 논란 | 17대 대선과 의정생활 마무리 | 국민통합 특보 |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 | 18대 대선과 탈당 |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 수석부의장 | 두 차례의 방북 | 남남 갈등 극복과 남북 통일 | UN한반도평화번영재단(UN피스코) 창립 |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와 그의 업적 | 김 전 대통령의 유지 ‘통합과 화합’ | (사)김영삼민주센터 | 손명순 여사 별세 | 나의 신앙생활과 옥한흠 목사 | 정치개혁과 개헌 | 개헌운동 전개 | 개혁 보수의 길과 후배들을 향한 제언

4부 뿌리와 깨달음, 민주주의의 토양을 일구다
6. 유소년 시절: 성장과 정체성의 형성
유년의 뜰 만경강 | 사람 부잣집 | 학예회의 추억 | 중학교 입학과 연극반 | 넓은 세상으로 나가라 | 난생처음 서울 구경 | 경복고 입학과 하숙 생활 | 가회동 셋방과 주인집 딸 | 대입 실패와 재도전
7. 청년 시절: 학생 운동으로 마주한 시대적 소명
4·19 혁명과 5·16 군사쿠데타 | 낭만의 동숭동 | 술 마시기 시합

부록 김덕룡(金德龍)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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