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근본이 없다는 것은 낙담이 아닌, 새로운 정치적 가능성이다.대표적인 포스트마르크스주의자인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의 사상을 체계적·종합적으로 소개하고 재해석한 교양서. 책의 제목이기도 한 ‘근본 없는 민주주의’는 ‘Radical Democracy’에 대한 저자의 번역어다.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라클라우의 사상은 ‘담론환원주의와 정치적 상대주의’라는 이유로 지속해서 비판받아 왔다. 하지만 그의 사상을 고정된 정답이나 절대적인 토대가 없다는 반본질주의, 곧 ‘근본 없음’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새로운 지평이 열린다. 근본이 없다는 것은 실망이나 낙담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연대하며 새로운 대안을 끊임없이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정치의 역동성과 가능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러한 반본질주의 관점을 바탕으로, 그간 단편적으로만 소비되던 라클라우의 핵심 이론들을 내재적 논리 구조로 새롭게 재조직한다. 저자는 라클라우 사상의 핵심을 ‘존재론적 차원((정치적 존재론)’과 ‘존재적 차원(정치 이론과 전략)’으로 구분해 분석함으로써, 라클라우의 기획이 기존 마르크스주의의 해체가 아니라 현대 사회의 복잡한 사회운동과 결합할 수 있는 정치철학적 토대임을 증명해 낸다. 오늘날 급진 정치의 과제는 정교한 기획을 앞서 확보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기존 정치 구조의 바깥에서 제기되는 이름 없는 요구들을 정치의 장으로 호출하고, 정치 언어의 경계를 확장하는 데 있다. 《근본 없는 민주주의》는 바로 이러한 가능성을 사유할 수 있는 이론적 토대를 제공할 것이다.
지금 왜 민주주의의 ‘근본 없음’을 주장하는가책의 제목이기도 한 ‘근본 없는 민주주의’는 ‘Radical Democracy’에 대한 저자의 번역어다. 여기서 ‘근본이 없다’라는 표현은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다. 저자는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의 사상을 빌려, 민주주의의 토대나 사회적 정체성은 미리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반(反)본질주의적’ 성찰을 제안한다. 즉, 사회의 마주침과 정치는 봉합되거나 완결될 수 없는 개방적인 과정이며, 어떤 것도 선험적으로 결정되어 있지 않다는 뜻이다. 기존의 정치가 ‘계급’이나 ‘역사적 필연성’, 혹은 ‘인간 본성’과 같은 단 하나의 주춧돌 위에 사회를 건설하려 했다면, 라클라우는 그러한 주춧돌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환상임을 폭로한다.
이처럼 결정된 근본이 없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절망이 아닌, 도리어 역동성과 희망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고정된 정답이나 가야 할 길이 명확하게 정해진 세상을 바라는 이들, 혹은 정치를 이미 정해진 철칙을 수행하는 과정으로만 보는 이들에게 라클라우 사상은 유효하지 않거나 위험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자명하다고 믿어 왔던 자신의 입장을 성찰하고, 근본적인 토대가 없는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도 실망하지 않는 이들에게 이 책은 좋은 나침반이 된다. 지금 시대에 ‘근본 없는 민주주의’가 필요한 이유는 낙관적이고 희망적인 태도로 현실에 개입해 새로운 출발을 고민할 수 있는 ‘정치의 가능성’을 옹호하기 때문이다. 토대가 없기에 오히려 우리는 새로운 정치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
20세기 반본질주의 철학이 도달한 성취를 정치학의 언어로 통합하다이 책을 관통하는 라클라우 사상의 핵심 기둥은 ‘반본질주의’다. 저자는 라클라우가 구축한 반본질주의 정치가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것이 아니라, 20세기를 뒤흔든 철학적·지적 혁명의 흐름을 이어받은 결과물임을 증명한다. 흔히 라클라우의 사상적 배경을 루이 알튀세르나 에티엔 발리바르 같은 프랑스 마르크스주의 내부의 비환원론적 이데올로기 논쟁에서 찾으려 하지만, 그뿐 아니라 라클라우의 사유가 더 넓은 현대 철학의 영토와 맞닿아 있음을 짚어 낸다.
특히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언어 게임 개념이 라클라우의 반본질주의 체계에 끼친 영향에 주목한다. 비트겐슈타인이 언어의 고정된 본질이나 보편적 중심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언어는 단지 구체적인 맥락과 실천 속에서 유동적으로 작동할 뿐이라고 보았듯이, 라클라우 역시 사회와 정치를 고정된 중심이 없는 열린 언어 게임의 과정으로 파악했다. 고전 마르크스주의처럼 주체의 성격을 단 하나의 본질(계급)로 환원할 수 없다는 선언은 바로 이러한 20세기의 철학적 전회와 궤를 같이한다.
여기에 깊이를 더하는 것이 바로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자크 라캉으로 이어지는 정신분석학과의 연관성이다. 라클라우는 사회가 완전히 봉합되거나 안정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라캉의 ‘결여’와 ‘실재’ 개념을 적극 도입했다. 인간의 주체성이 본래 결여를 품고 있기에 끊임없이 욕망을 통해 다른 기표들을 쫓아다니듯이, 사회적 구조 역시 채워질 수 없는 근원적 결여(탈구)를 마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적대 세력에 맞서 ‘등가의 사슬’을 묶어내는 정치적 상상력이나 특정 기표를 중심으로 집단적 정체성이 강렬하게 결집하는 현상은 이처럼 사회적 주체들의 심층에 자리 잡은 무의식적 욕망과 결여를 자극하는 정신분석학적 메커니즘을 통해서만 설명될 수 있다.
결국 이 책은 라클라우의 반본질주의가 마르크스주의 내부의 성찰을 넘어,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과 라캉의 정신분석학이라는 20세기 지적 전위들이 도달한 성취를 정치학의 언어로 가장 정교하게 통합해 낸 결실임을 보여준다.
단편적 연구를 넘어 ‘라클라우 사상의 인식적 지도’ 그리기한국 사회에서 라클라우의 이름이 수용된 지는 어느덧 30년이 넘었지만, 그간 독립된 단일 주제의 학위논문이나 단행본 분량의 체계적인 연구는 전무하다시피 했다. 기존의 국내 연구나 소개서들은 대개 라클라우와 샹탈 무페의 공저이자 대표작인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이나, 그의 후기 사상을 대변하는 《포퓰리즘 이성》의 일부 내용을 단편적으로 다루거나 타 사상가와 비교하는 방식에 그쳤다. 따라서 사상 전반을 관통하는 뼈대와 맥락은 늘 공백으로 남아 있었다. 반면, 《근본 없는 민주주의》는 특정 저작이나 단편적 개념에 매몰되지 않고 1960년대부터 2010년대에 이르는 라클라우의 사상 전반을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설명한다. 저자는 프레드릭 제임슨의 표현을 빌려 이 책을 라클라우 사상에 대한 일종의 “인식적 지도 그리기”라고 규정한다.
특히 저자는 라클라우 사상의 핵심을 ‘존재론적 차원’과 ‘존재적 차원’이라는 두 가지 층위로 구분해 책 전반에 입체적으로 녹여낸다. 저자는 마르틴 하이데거 철학의 영향을 받아 정립된 초월론적인 ‘존재론적 차원(정치적 존재론)’을 통해, 사회적 주체와 정치가 구성되는 근원적인 원리와 조건들을 파고든다. 그리고 이에 머물지 않고, 우리가 발 딛고 있는 구체적인 현실이자 경험적 영역인 ‘존재적 차원(정치 이론과 전략)’을 결합한다. 책은 이 두 가지 차원을 씨실과 날실처럼 엮음으로써, 라클라우 사상이 단순히 추상적 사유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정치적 실천과 전략으로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서술한다. 이처럼 존재론적 층위와 존재적 층위를 종합적으로 다룬 접근은 기존 한국 사회가 라클라우 사상을 경제결정론 비판의 맥락에서만 협소하게 읽었던 한계를 넘어선다.
‘담론환원주의’와 ‘정치적 상대주의’라는 통념을 넘어서이 책의 1부는 “한국 사회는 어떻게 라클라우를 읽어 왔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된다. 저자가 라클라우의 이론을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기에 앞서, 이처럼 낡아 보이는 ‘한국에서의 수용사’를 짚고 넘어가는 이유는 국내 비판적 인문사회과학 지식사회의 뿌리 깊은 지적 관행과 패러다임이 라클라우에게 덧씌운 통념을 걷어내기 위해서다. 한국 학계에서 라클라우 사상은 제대로 된 연구가 이루어지기도 전에 정치 구도 속에서 곡해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족쇄가 바로 ‘담론환원주의’와 ‘정치적 상대주의’라는 비판이었다.
비판자들은 라클라우가 ‘모든 것은 담론이다’라고 선언하자, 그가 물질적 현실이나 경제적 구조, 혹은 민중의 구체적인 고통을 무시하고 오직 언어적 세계나 텍스트의 세계로 정치를 환원시켰다며 ‘담론환원주의’의 낙인을 찍었다. 그러나 저자는 라클라우가 말한 담론이 협소한 언어가 아니라 물질적 실천과 사회적 제도 전체를 포괄하는 의미화의 체계임을 꼼꼼하게 규명해 낸다. 동시에 사회의 절대적인 객관적 토대가 없다는 주장은 허무주의적 ‘정치적 상대주의’로 오도되기도 했다. 하지만 저자는 라클라우가 고정된 정답의 부재를 선언한 이유가 규범의 파괴가 아니라, 도리어 선험적 토대가 없기에 우리가 현실에 개입해 새로운 출발을 고민하며 민주적인 헤게모니를 스스로 책임지며 만들어 가야 한다는 사실을 역설하기 위함이었음을 밝혀낸다.
이 책은 이러한 비판들이 라클라우를 마르크스주의 수호라는 정파적 관점에서 성급하게 밀쳐내기 위해 발생한 오해였음을 지적한다.
포스트마르크스주의 역사상 가장 급진적인 시도의 재해석이 책은 라클라우의 사상을 고전 마르크스주의의 경제결정론과 계급환원론을 근본적으로 극복하려 했던 포스트마르크스주의의 길 위에 위치시킨다. 마르크스주의 역사에서 라클라우의 사상은 기존 이론의 몇 가지 오류를 수정하거나 보완하는 수준을 넘어, 마르크스주의의 존재론적 토대 자체를 ‘탈구축’하려는 이론적 전환점이자 대담한 시도였다.
라클라우는 1970년대 알튀세르 학파의 비환원론적 이데올로기 설명에서 출발했으나, 토대가 상부구조를 최종심급에서 결정한다는 논리는 단호히 거부했다. 1980년대 들어 그는 무페와 함께 고전적 역사유물론이 지닌 본질주의적 목적론을 종식시켰다. 나아가 1990년대 이후에는 단순한 마르크스주의 비판을 넘어, 우리 삶을 규정하는 ‘정치적인 것의 일반적 존재론’으로 사유를 넓혔다.
이 책은 노동과 생산이라는 경제적 영역에 지나치게 의존하며 스스로를 가두었던 기존 마르크스주의의 한계를 해체하고, 정치적 실천이 가질 수 있는 자율성과 역동성을 확보하려 했던 포스트마르크스주의 역사상 가장 급진적인 시도를 오늘날의 언어로 재해석하고 있다.

이 책은 일반적인 이론/사상 연구의 문법과 달리, 라클라우의 특정 저작이나 개념에 천착하기보다 1960년대부터 2010년대에 이르는 사상 전반을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설명하는 데 중점을 둔다. 이러한 서술 전략을 채택한 이유는 앞으로 한국에서 사상을 다양하게 해석하고 활용하기 위해서는 일종의 준거점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프레드릭 제임슨(Fredric Jameson)의 표현을 빌자면, 이 책은 라클라우 사상에 대한 일종의 “인식적 지도 그리기(cognitive mapping)”라고 할 수 있다.
라클라우의 사상은 알튀세르와 그람시로 대표되는 서구 마르크스주의 전통뿐 아니라 다양한 비마르크스주의 철학과 이론의 영향을 받는다. 이러한 영향은 특히 1990년대 이후의 작업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라클라우는 자신의 사상이 20세기 서양철학에서 전개된 반본질주의 운동으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다고 강조한다. 반본질주의 운동은 분석철학, 현상학, 구조주의 철학 전통에서 핵심 개념들의 형이상학적 토대를 탈구축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이 운동은 사물 자체에 매개 없이 직접 접근할 수 있다는 직접성의 환상(illusion of immediacy)을 비판하고, 실재에 대한 모든 접근이 언어와 담론을 통해 매개된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전통적으로 실재를 재현하는 이차적이고 부차적인 차원으로 여겨지던 언어와 담론은 실재를 구성하는 일차적이고 근본적인 차원으로 재정립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