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머릿속에서 내가 통과했던 모든 아침을 소환한다 옷을 입고 밖으로 걸어 나가면 너 아니면 나를 고발하는 핸드마이크 소리가 귀를 때린다 한 치의 틈도 없이 꽉 찬 아침을 들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길을 건너온다 사건 사고와 분쟁으로 거침없이 타오르는 사람들이 교차로에서 들끓는 아침을 내게 건네준다 이제 내가 만드는 아침을 전할 차례이다
― 「내가 만드는 아침」 부분
현관문을 열고 들어선다 텅 빈 복도에서 잠시 마음을 내려 놓는다 방으로 들어가 정해진 역할을 입기 전 나의 일부를 벗어두는 곳 복도엔 서둘러 가는 시간의 나사를 조금 풀어주는 느슨함이 있다 방과 방 사이에서 잠시 길을 잃거나 순간 벽 속으로 숨어들고 싶은 나를 받아주기도 한다
(…중략…)
복도는 계속된다 복도의 끝에서 다시 반대편으로 돌아서는 내 발길이 먼 곳을 향하고 있다 내 꿈이 복도를 서성이는 동안 창밖 여윈 라일락 나무의 봉우리가 환해지고 가늘게 가늘게 벼린 시간들을 보랏빛으로 꽃피우는 복도의 마음이 있다
― 「복도」 부분
닫힌 내 마음이
한 장의 느티나무 잎사귀로 내려앉는
간밤의 꿈속에서 소용돌이치던
내 가계의 유전자를 씻어내고
나는 바닷가 바위에 눕는다
철썩이는 바닷물에 손을 내려뜨린다
세포 안에 살아있는 너의 엽록체로
내 살이 햇빛을 받아
비치도록 투명해진다
심장 속에 푸른 불꽃이 점화된다
― 「Homo Elysia Chlorotica」 부분
작가 소개
지은이 : 백현
1987년 『심상』으로 등단.시집 『세상의 쓸쓸함들을 불러모아』, 『어제의 나는 내가 아니라고』.제18회 서정시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