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자기 ( ) 이론
근래 문화예술계에 부상한 ‘자기이론autotheory’이라는 개념은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기실 서구 백인 이성애자 비장애인 남성을 전제하는) 보편자가 아닌 개별적 주체인 ‘나’의 삶을 재료로 삼아 작업하는 이론적 글쓰기 및 예술의 형태를 가리키는 이 용어는 사소설, 자전적 서사, 오토 픽션 등 자기에 기반한 서사적 창작물을 가리키는 종래의 용어들을 연상시키며 종종 엄밀한 구분 없이 불필요하게 혼용되기도 한다. 여타 개념과 구별되는 자기이론의 핵심이 작은 것과 큰 것, 특수한 것과 보편적인 것을 연결하는 작업이자 자기를 보편화하는 이론화 가능성에 있다고 할 때, 과연 자기이론이라는 개념 및 실천이 동시대 한국 안팎의 문화예술계에서 얼마큼 유효한 것인지 되물을 필요가 있다. 과연 자기이론의 부상은 미디어를 통한 자기 전시와 노출, 자기 PR이 일상화되고 이를 통해 신자유주의적 자기 경영 통치술이 보편화되는 문화적 현상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가? 소수자 정치의 방법론으로써 자기 서사가 강조될 때, 범람하는 자기 서사에 대한 피로감이 단지 보수적인 반응이 아니라 나르시시즘에 대한 피로감이라면 이는 자기이론의 언어로 비판될 수 있을 것인가? 이번 『자음과모음』에서는 보다 거시적인 문화적 현상으로서 이 개념에 접근하되 ‘자기이론’이라는 개념을 둘러싼 이론적 난맥을 정교하게 가다듬고, 구체적인 작업물들을 통해 자기이론의 비평적 가능성을 제대로 타진해보고, 어쩌면 ‘자기이론’ 그 이후의 전망까지도 예감할 수 있게끔 하는 글들을 모아보고자 한다.
출판사 리뷰
자기 ( ) 이론
문예지, 유지원, 김봉곤, 전청림
『자음과모음』 [크리티카] 지면은 ‘자기이론’을 키워드로 삼았다. 로런 포니에의 책 『자기이론』의 공역자이기도 한 문학연구자 문예지의 글은 ‘자기이론’에 처음 다가가는 이들에게 꼭 필요한 지도가 되어 주는 글이다. ‘자기이론’은 어떤 필요와 맞닿아 있는지, 여기서 중요하게 다뤄진 전략은 무엇이고 어떤 맥락에서 섬세하게 다뤄져야 하는지, 자기이론과 그 안팎을 차근히 다루는 그의 글은 자기이론의 어떤 지점에서 모순이 발생하고 그것을 어떻게 껴안는지도 살펴본다.
동시대 미술 현장의 경험들을 차례로 펼쳐 보이는 미술비평가 유지원의 글은, 장르의 차이를 넘어서 ‘자기이론’의 사유가 지닌 힘을 확인하게 한다. 소설가 김봉곤의 글 「바뀌지 않음」은 2020년 7월 이후의 시간을 통과해온 그가, 입장문도, 사과문의 문법도 아닌 방식으로 쓴 글이다. 마지막으로 전청림의 글은 자기이론이라는 구름이 어떤 사유의 지형에서 탄생한 것인지를 가장 멀리서 조망한다. 다른 세 편이 가까운 곳에서 출발해 이론으로 번져갔다면, 이 글은 거꾸로 가장 추상적인 자리, 리글의 단체초상화, 보드리야르, 라투르의 논의를 거쳐 가장 구체적인 손상의 현장으로 도착한다.
제9회 경장편소설상, 제16회 신인문학상 발표
신인문학상 시/문학평론 부문 신설
이번 여름호에는 공고를 내던 순간부터 손꼽아 기다리던 신인들의 글이 실렸다. 새롭게 신설된 시와 문학평론 부문의 첫 수상자가 되어준 시인 공도이와 평론가 전예원, 소설가로서의 첫 행보를 『자음과모음』과 함께하게 된 송희지 작가, 경장편소설상을 수상한 최석규까지, 『자음과모음』을 통해 새로운 시작을 함께하게 된 이들에게 깊은 축하의 마음을 보낸다.
2026 여름, 자음과모음이 선택한 이야기
어듬과 빛, 그 경계 어딘가의 사람들
2026년 여름호 [창작]란 역시 풍성하다. 권승섭, 김유수, 나지환, 연우, 오산하, 조온윤, 홍승택의 시와 박우연, 임선우, 정이현, 최진영의 단편소설이 실렸다. 지난 호에 새롭게 연재를 시작한 최재영의 『오발 청년』이 두 번째 시간을 이어간다.
‘우리’를 만들어가는 소설가 최진영
공연 창작자이자 소리꾼 이자람
[작가] 코너의 주인공은 소설가 ‘최진영’이다. 염선옥 평론가에 따르면 최진영의 소설은 공적 시야에서 지워진 얼굴들, 보호의 대상에서 미끄러진 삶들, 애도에서조차 배제된 위태로운 존재들을 끝까지 추적하는 작업임을 짚는다. “문 앞에서 기다림, 같이 걷기, 혼자 두지 않겠다는 약속, 떠나지 않겠다는 선택”으로 ‘우리’를 만들어가는 최진영의 이야기 곁에 우리 또한 함께 머물러도 좋겠다.
[담: 인터뷰]에는 공연 창작자이자 소리꾼 이자람과의 대화가 실렸다. 한 편의 소설이 이자람을 통과해 판소리가 되는 과정, 그리고 그 안에서 창작자가 겪어내는 일에 관해 김보경과 신예슬이 묻고 이자람이 답했다.
봄과 여름을 함께한 시와 소설
독자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섯 편의 리뷰
『자음과모음』만의 계간평 [시소]에서는 지난 봄호부터 서신을 주고받아온 시인 김리윤과 영화평론가 이보라, 문학평론가 황유지와 황녹록이 밀도 높은 대화를 이어갔다. 서로에 관한 믿음과 기대를 품고 써내려가는 편지라는 형식 안에서 이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보면, 지금의 시와 소설을 만나는 동시에 ‘읽기’가 어디까지 정교해질 수 있을지를 새삼 느끼게 된다.
지난 봄호부터 본지 편집위원 다섯 명이 함께 쓰기 시작한 [독: 봄의 책]에서는 이번에도 다섯 편의 리뷰를 준비했다. 김선오의 『말 꿈 몸』에 관한 아름다운 비평적 대답(김보경)부터, 영화 〈파반느〉와 박민규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다시 읽는 마음(노 태훈), 한로로의 음반 ‘자몽살구클럽’과 동명의 책을 함께 다루며 찾아낸 우리가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배주영), 이서아의 『방랑, 파도』에 발맞추어 방랑해보는 움직임(신예슬), 『영원히 계속 되다가 끝이 난다』 속 좀비의 굶주림을 통해 타자를 먹고 사유하는 일을 생각하는 글(전청림)이 담겼다. ‘힘을 뺀’ 리뷰를 쓰자고 함께 다짐했지만 각별하게 읽은 책 앞에서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마는 것은 역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자기이론autotheory은 이러한 ‘개인적’이고 ‘나르시시즘적인 것’을 향한 폄하와 훼손의 정치에 대응하여, ‘자기’를 숨기지 않고 전면화하는 지적, 미적, 실천적 전략으로 등장한 용어이다. 로런 포니에Lauren Fournier는 자기이론을 “개인적인 것과 개념적인 것, 이론적인 것과 자서전적인 것, 창조적인 것과 비판적인 것을”을 통합하는 예술 실천을 가리키는 용어로 정리하면서, “포스트-1960년대적인 동시대 예술 실천의 양태”로 읽어내기를 시도했는데, 이는 자기이론이 가부장적이고 식민적인 역사에 개입하기 위해 자기의 삶을 드러내는 교차적인 페미니즘의 움직임과 공명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것을 정치적인 것이자 이론적인 것으로 만드는 페미니즘의 역사 안에서, 자기이론은 여성, 퀴어, 트랜스, 흑인, 선주민 등 소수자들이 자신의 경험과 신체를 통해 이론과 지식들을 생성하고, 이를 통해 ‘주체’로서의 자기를 구성해나가는 이중적 행위로 등장한다.
—문예지, 「진실의 가면 쓰기―‘비판적 자기이론’의 가능성」
예술가가 작품의 생산과 전시를 아우르는 전 과정의 지배적인 행위자로 설정되어 있다면, 미술의 확장을 도모하는 일은 이토록 강력한, 이름과 역할을 바꿔가며 존속하는 예술가의 독단을 경계하는 일일 테다. 그러니 일기장 작업은, 적절한 맥락으로 뒷받침 되지 않는 이상 나름의 미덕은 있겠으나 변혁적인 시도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대두된 자기이론 담론은 예술가를 연거푸 특권화하는 퇴행적인 주장으로 오인되기 쉽다. 게다가 그 이름 때문에 ‘자기’는 작가로, ‘이론’은 작업물로 환원되어 작가가 예술적 실천의 중심이 된다는 정도의 협소한 의미에 갇히곤 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 흐름은 예술가의 주도권에 대한 코멘터리에 그치지 않는다. 자기이론 담론은 생기적 유물론과 교차적 페미니즘, 퀴어 및 장애 이론, 죽음정치와 선주민 담론 등을 필두로 전방위적으로 개진되는 (특정한) 인간의 특권적 위치에 대한 도전과 결을 나란히 한다. 관건은 작가가 얼마나 솔직하고 진정성 있게 작업을 했느냐가 아니라 과연 어떤 이들이 세계의 창조자 자격을 인정받았으며, 이를 가능하게 한 조건은 무엇이었는지를 재고하는 것이다.
—유지원, 「동시대 미술 현장과 자기이론―일기장, 불평-비평, 수평적 참조 그리고 그 이후」
우리의 것.
그것은 그날 밤 첸이 썼던 표현이다.
요셉은 작업실 한편에 서서, 그가 손수 한쪽 벽에 줄지어 붙여놓은 네 장의 사진을 보고 있었다. 모두 병원에서 상담받고 나온 직후의 첸을 찍은 것들이었다. 인화지 속에서 첸은 하나같이 어딘가 불편해 보이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마치 그 좁다랗고 각진 방 안에 오래도록 감금된 사람의 얼굴 같았다.
요셉은 알고 있었다. 첸에게 변화의 징조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외려 그의 증세는 상담받을수록 점점 악화하는 듯했다. 병원에 내원하기 시작한 후부터 첸은 지독한 불면을 앓았다. 간신히 잠든 이후에도 매번 심하게 몸을 뒤척거리거나 짐승의 것에 가까운 신음을 내며 고된 밤을 보냈다. 요셉은 그런 첸을 언제나 곁에 두고 지켜보면서, 종종 첸이 이야기해주었던 기묘한 꿈의 내용을 곱씹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첸은, 날마다 이어지는 자신의 꿈에 관해 요셉에게 설명하는 일을 그만두었다. 최근 첸이 꿈속에서 어떤 일을 겪고 있는지 요셉은 조금도 알지 못했다. 그것이 요셉을 몸서리치도록 두렵게 했다.
우리의 것…….
그 말을 꺼낼 때, 첸은 슬픈 눈을 하고 있었다. 요셉은 첸의 슬픔을 이해했다. 첸이 그날 이후 소로를 잃어버린 것처럼, 요셉 또한 그의 소로를 잃었기 때문이다.
—송희지, 「소로」(제16회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 소설 부문 수상작)
목차
머리글
신예슬 너의 이야기를 읽는 나는 우리 자신이라는 말에 도착 하고
크리티카 : 자기 ( ) 이론
문예지 진실의 가면 쓰기―‘비판적 자기이론’의 가능성
유지원 동시대 미술 현장과 자기이론―일기장, 불평-비평, 수평적 참조 그리고 그 이후
김봉곤 바뀌지 않음
전청림 변증법 대신에 삶이 도래했다
시
권승섭 공동상태 외 1편
김유수 눈 외 1편
나지환 소원 외 1편
연우 이음새 외 1편
오산하 날불 외 1편
조온윤 늑대가 나타났다 외 1편
홍승택 무제(한 하늘 아래) 외 1편
단편
박우연 권승희의 어둠과 빛
임선우 위도 500 경도 36
정이현 증명하는 마음
최진영 은인들
장편
최재영 오발 청년 (2)
작가 : 최진영
염선옥 작가론: ‘나’들의 죽음·삶과 윤리로의 나들이
최진영 에세이: 쓰고 싶은 글을 쓰고 싶은 만큼
담 : 인터뷰
이자람 이야기와 소리를 양손에 쥐고
시소
김리윤·이보라 함께 떨어지며 열리는 상자들―시적 사건의 압축, 징후, 이야기
황녹록·황유지 위선적 세계와 위악적 생존―몸들의 기록
독 : 봄의 책
김보경 자기 신화화 혹은 자기이론으로서의 꿈 쓰기―김선오, 『말 꿈 몸』(북다, 2026)
노태훈 유치한 이야기―박민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위즈덤하우스, 2025)
배주영 ‘하찮음’(힝~)을 사랑한다고 외치는 빛나는 청춘에게—한로로, 『자몽살구클럽』(어센틱, 2025)(feat. I love 잉어킹)
신예슬 나는 이 세상 밖으로 떨어질 수 없다—이서아, 『방랑, 파도』(자음과모음, 2026)
전청림 타자를 먹기—앤 드 마르켄, 『영원히 계속되다가 끝이 난다』(송예슬 옮김, 허블,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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