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영국 최고의 논픽션상 ‘새뮤얼 존슨상’ 수상
★〈가디언〉 〈더 타임스〉 올해의 책 선정
★전 세계 28개국 출간, 현대 논픽션의 걸작
★2026년 크리에이티브 오스트레일리아 국제 번역 지원사업 선정작
“역사상 가장 완성된 감시국가, 동독.
그곳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남았는가?”
베를린 장벽의 그늘, 슈타지 요원으로서 살아간 이들과
슈타지에 저항한 이들의 기억으로 복원한 자유와 존엄의 의미
모든 것이 기록되고 추적되는 시대, 다시 읽어야 할 감시국가의 기억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며 냉전의 종식이 선언되었을 때, 세계는 환호했다. 거대한 이념의 장벽은 사라졌지만, 통일이라는 거대한 서사의 스포트라이트 뒤편에는 40년 넘게 지속된 철권통치의 잔해가 인간의 영혼을 갉아먹은 채 방치되어 있었다.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저널리스트 애나 펀더는 통일 직후의 베를린에서 역사 뒤편에 숨겨진 기묘한 침묵을 감지했다. 그것은 세계 역사상 가장 철저하고 잔인했던 감시국가, 동독의 비밀경찰 ‘슈타지’가 남긴 깊은 상흔이었다. 펀더는 따뜻하지만 예리한 저널리스트의 시선으로 이 거대한 비밀 권력의 폭력성을 고발한다.
《슈타지랜드》는 저자의 집요하고 심층적인 인터뷰를 바탕으로 구축된 하나의 거대한 드라마틱 서사다. 펀더는 감시당했던 피해자들과 체제의 부속품이었던 가해자들을 직접 찾아가 그들의 숨소리와 눈빛, 떨리는 목소리를 텍스트로 복원해냈다. ‘이방인’인 작가의 시선은 오히려 선입견 없이 인물들의 내면 깊숙한 곳까지 파고드는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덕분에 독자들은 첩보 영화보다 더 극적이고, 어떤 소설보다 더 가슴 아픈 잔혹한 현실의 드라마를 마주하게 된다.
《슈타지랜드》는 출간 즉시 전 세계 문단과 언론의 찬사를 받으며 전설적인 르포르타주의 반열에 올랐다. 2004년 영국 최고의 논픽션상인 새뮤얼 존슨상(현 베일리 기포드상)을 수상했으며, 전 세계 28개국에 번역 출간되어 수백만 명의 독자에게 충격을 안겼다.
감시는 인간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가
―비극 속에서도 빛나는 인간의 존엄성과 강인함 장벽이 무너진 뒤, 독일 매체들은 동독을 ‘역사상 가장 완성된 감시국가’라고 불렀다(95쪽). 당시 동독의 인구는 약 1,700만 명이었으나 슈타지가 운용한 정식 요원은 9만 7,000명에 이르렀고, 그 외에도 17만 3,000명 이상의 정보원이 국민들 사이에 존재했다. 시간제 정보원까지 포함할 경우 시민 6.5명마다 한 명의 정보원이 있을 정도였다. 이는 악명 높은 나치의 게슈타포나 소련의 KGB마저 뛰어넘는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밀도였다. “슈타지는 당신을 찾아오는 손님이 누구인지, 당신이 어디에 전화를 거는지, 심지어는 당신의 아내가 바람을 피우는지 아닌지까지 알았다.”(20쪽)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상대방이 ‘그들’의 일원일 수도 있다는 사실에 좌우되었다. 모두가 모두를 의심했고, 그렇게 자라난 불신이 사회적 존재의 토대가 되었다.”(54쪽) 침실에서의 대화, 편지의 내용, 친구와의 가벼운 농담까지 국가의 통제 아래 있었던 시대. 《슈타지랜드》는 그 숨 막히는 감시 사회의 메커니즘을 생생하게 고발한다.
책 속에는 독재 사회의 광풍에 휩쓸려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빼앗기고도 묵묵히, 그러나 강인하게 살아가는 피해자들의 얼굴이 등장한다. 열여섯 나이에 ‘국가의 적’으로 낙인찍혀 두려움 끝에 탈출을 시도했으나 수감되어 지독한 고문을 당했던 미리암, 중병에 걸려 장벽 너머 서독 병원에 있는 자신의 어린 아들을 다시 보지 못할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낯선 이를 보호하기로 선택한 파울 부인, 동독을 떠나든지 아니면 슈타지에게 장단을 맞추라는 제안을 거절하고 뮤지션으로서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겼지만 결국 자신의 음악을 이어가고 있는 클라우스 등이 그들이다. 그들은 국가라는 거대한 괴물에게 발목을 잡히고 사랑하는 이를 잃기도 하지만, 기억을 증언함으로써 권력에 저항한다. 펀더는 이들의 고통을 자극적으로 소비하지 않고, 비극 속에서도 빛나는 인간의 존엄성과 강인함을 처연하도록 아름답게 그려낸다.
펀더의 시선은 가해자들의 모습 역시 다각도로 비춘다. 시민을 향한 감시와 통제를 ‘적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서였다며 당당하게 말하는 전직 슈타지 고위 간부, ‘다른 누군가보다 한 수 위에 있다는 치졸하고 깊은 만족감’을 느끼며 형편없는 보수에도 이웃을 밀고했던 정보원들, 그리고 체제가 붕괴한 후에도 과거의 영광을 그리워하는 전직 요원들의 모습은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괴물이 된 인간과 괴물에게 끝내 굴복하지 않은 인간의 대비는 독자들에게 양심과 용기란 무엇인가를 묻는다.
모든 것이 기록되고 추적되는 시대,
《1984》가 현실이 된 세상을 증언한 ‘새로운 고전’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수십 년이 흘렀고, 우리는 이제 냉전은 책 속의 역사가 되었다고 믿는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슈타지랜드》는 오늘의 한국 독자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통제와 검열, 사상 검증이 더욱 정교한 방식으로 만연해진 현대 사회의 거울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과거의 슈타지가 이웃의 눈과 귀, 편지 검열을 통해 국민을 통제했다면, 현대 사회는 ‘알고리즘’과 ‘빅데이터’ ‘CCTV’라는 합법적이고 세련된 도구로 인간의 사유를 검열한다.
스마트폰의 위치 추적, 인터넷 검색 기록의 데이터화, SNS를 통한 자발적 사생활 노출과 이에 대한 대중의 상호 감시는 동독의 슈타지마저 부러워할 만한 ‘완벽한 파놉티콘’을 완성했다. 게다가 정치적 올바름이나 진영 논리에 따른 사상 검증과 마녀사냥은 연일 온라인 공간을 뜨겁게 달군다. 국가 혹은 보이지 않는 거대 자본과 대중 권력이 개인의 삶을 통제하려 드는 21세기에, 《슈타지랜드》는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인 위협에 대한 강력한 경고다.
또한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가인 한국의 독자들에게 이 책은 남다른 무게로 다가온다. 우리 역시 안보라는 명목하에 민간인 사찰과 사상 검증, 연좌제의 아픔을 겪었던 역사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베를린에서 동독과 서독을 갈라놓았던 물리적 장벽은 사라졌지만 ‘머릿속의 장벽(Mauer im Kopf)’은 여전히 굳건히 남아 있다. 동독 주민들이 겪었던 불신과 상처, 통일 이후에도 쉽게 해소되지 않는 사회적 갈등은 언젠가 우리가 마주하게 될 미래이기도 하다. 애나 펀더의 문장을 따라 읽어 내려가는 과정은 결국 국가 폭력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폭력 속에서 개인이 어떻게 자신의 존엄을 지켜낼 수 있는지를 뼈아프게 학습하는 과정이다. 이 책을 통해 장벽 너머 숨죽여 울었던 이들의 기억과 마주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자유의 진짜 무게를 실감하게 될 것이다.

슈타지는 정부가 통제를 유지하기 위해 둔 내부 군대였다. 그 기관의 임무는 스스로 선택한 어떤 수단이든 가리지 않고 사용해 모든 사람에 관한 모든 것을 알아내는 것이었다. 슈타지는 당신을 찾아오는 손님이 누구인지, 당신이 어디에 전화를 거는지, 심지어는 당신의 아내가 바람을 피우는지 아닌지까지 알았다. 그것은 동독 사회 전체에 퍼져나가는 하나의 관료 체제였다. 어느 학교나 공장이나 아파트 단지나 술집에든 동료들과 친구들에 대해 슈타지에 보고하는 누군가가 있었다. 세부에 집착하던 슈타지는 공산주의의 종말을, 그리고 그것과 함께 찾아올 국가의 종말을 예견하는 데 완전히 실패했다. 1989년과 1990년 사이 슈타지는 완전히 뒤집혔다. 어제는 스탈린주의 첩보 조직이던 것이 오늘은 박물관이 되었다. 40년 동안 ‘조직’은 중세시대 이후로 독일 역사상 존재했던 모든 기록에 맞먹는 분량의 자료를 만들어냈다. 슈타지가 자국의 남자들과 여자들에 대해 남긴 기록들을 똑바로 세워 늘어놓으면 180킬로미터나 되는 선이 만들어질 것이다.
_1장 〈베를린, 1996년 겨울〉
미리암에게 과거는 찰리가 죽었을 때 멈췄다. 피크닉이나 요리, 휴가처럼 자신의 진짜 삶에 관한 기억들은 ‘미리암’이 ‘우리’였던 때의 기억이고, 그 일들은 그와 찰리가 함께 했던 일들이다. 마치 찰리의 죽음 이후의 시간들은 중요하지 않기라도 한 것 같다. 그 시간들은 시간이 아닌 시간, 역사가 아닌 역사를 쌓아온 시간이었다. 미리암은 용감하고 강인하면서도 동시에 부서져 있다. 그가 말하는 동안, 그의 존재는 마치 그 자신에게 그 자체로는 더 이상 실재하지 않는 것 같다. 그보다는 한때 존재했던 삶에 바치는 살아 있는 묘비명에 가까운 것 같다.
_ 4장 〈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