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시드니의 푸른빛 아래, 끝내 사라지지 않은 것들에 대하여. 『시드니 블루』는 호주 시드니에 정착한 지 스물여섯 해가 된 수필가이자 시인 유금란의 두 번째 산문집이다. 단순한 이민 체험담도, 이국의 풍경을 기록한 여행기도 아니다. 떠나온 땅과 살아가는 땅 사이, 어느 한 쪽에도 완전히 소속되지 못한 채 형성된 삶의 감각을 문학적으로 길어 올린 기록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끝내 지워지지 않는 것들-언어, 사람, 노동, 기억, 감정-을 붙잡아낸 흔적이다. 유금란의 문장은 꾸미지 않는다. 대신 감각적이고 정확하다. 한 그루 벚나무를 바라보다 문득 늙음을 떠올리고, 오래된 시집 속에서 모국어의 숨결을 다시 듣고, 이름 하나를 통해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되묻는다.
출판사 리뷰
시드의 푸른빛 아래, 끝내 사라지지 않은 것들에 대하여 『시드니 블루』는 호주 시드니에 정착한 지 스물여섯 해가 된 수필가이자 시인 유금란의 두 번째 산문집이다. 이 책은 단순한 이민 체험담도, 이국의 풍경을 기록한 여행기도 아니다. 떠나온 땅과 살아가는 땅 사이, 어느 한 쪽에도 완전히 소속되지 못한 채 형성된 삶의 감각을 문학적으로 길어 올린 기록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끝내 지워지지 않는 것들-언어, 사람, 노동, 기억, 감정-을 붙잡아낸 흔적이다. 유금란의 문장은 꾸미지 않는다. 대신 감각적이고 정확하다. 한 그루 벚나무를 바라보다 문득 늙음을 떠올리고, 오래된 시집 속에서 모국어의 숨결을 다시 듣고, 이름 하나를 통해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되묻는다. 그의 문장은 설명하기보다 체감하게 하고, 정리하기보다 흔들리게 한다. 그 솔직함이 이 책의 첫 번째 힘이다.이 책의 중심에는 ‘경계에 선 삶’이 놓여 있다. 그것은 단순히 국경의 문제가 아니라, 언어와 문화, 노동과 일상, 소속과 비소속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는 존재의 방식이다. 이민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한 쪽을 떠났다는 의미라기보다, 어느 한 세계에도 완전히 고정되지 못한 채 두 개의 좌표를 동시에 감각하는 일에 가깝다. 파통가, 빌핀, 카우라, 아웃백, 블루마운틴으로 이어지는 호주의 지형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익숙함과 낯섦이 교차하며 새롭게 의미화되는 문학적 공간이다. 작가는 풍경을 소비하지 않고, 기억과 감정을 겹쳐 놓으며 삶의 좌표를 계속해서 미세하게 조정한다. 그 과정에서 장소는 지명이 아니라 체험의 언어가 된다. 특히 3부 「DSA 사람들」은 이 책의 가장 생생한 결을 보여준다. 13년째 이어온 장애인 고용 현장에서의 일상은 설명이나 분석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일하고 함께 살아내는 관계의 기록이다. 서로 다른 속도와 감각이 충돌하고 조율되는 현장은 때로는 불안정하지만, 그 안에는 분명한 생활의 윤리와 유머가 존재한다. 동료들은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매일의 노동 속에서 서로를 조정하며 균형을 만들어가는 사람들로 그려진다. 후반부로 갈수록 글은 점차 내면의 기록으로 이동한다.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 사이의 거리, 시간이 만들어내는 균열, 그리고 끝내 놓지 못하는 모국어의 결이 겹치며 개인의 삶은 더 넓은 문화적 기억으로 확장된다. 이때 드러나는 것은 결론이 아니라 질문이다. 어디에 속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상태를 어떻게 견디며 살아갈 것인가라는 물음이다. 유금란의 산문에는 오래 버틴 사람의 단단한 담백함이 있다. 삶을 해석하기보다 통과시키는 문장들은, 우리에게 낯섦과 공감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시드니 블루』는 시드니라는 도시를 배경으로 하지만, 결국은 서로 다른 세계 사이를 건너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완전히 소속되지 못한 자리에서조차 삶을 포기하지 않고, 자기 언어로 세계를 견디는 사람들의 기록이다. 그리고 그 치열한 과정 속에서 피어난, 지극히 세련되고 활달한 목소리의 산문집이다.
흘러가면서도 남는 것들
시드니에 머문 지 어느덧 스물여섯 해가 되었다. 계절은 수없이 바뀌었고 나 또한 많이 변했다. 리듬이 전혀 다른 언어 속에 살면서 끝내 놓지 못한 것은 모국어였다. 오래전에 떠나왔어도 나는 여전히 한국어로 슬픔을 견디고, 장소를 기억하며, 사람을 붙들었다.
이번 두 번째 개인 산문집 제목을 『시드니 블루』라 붙였다.
블루(Blue)는 내게 단순한 색이 아니다. 시드니의 산과 바다, 하늘을 떠올리게 하는 색이자 마음 깊은 곳에 가라앉은 감정의 빛깔이다. 멀리서 바라본 블루마운틴 능선은 언제나 푸른 안개 속에 잠겨 있었다. 가까이 가면 더 선명해질 것 같았으나 정작 그 안으로 들어가면 푸른빛은 어느새 흩어졌다. 돌아갈 수 없는 시간과 쉽게 닿지 않는 마음도 그랬다. 시드니의 눈부신 햇살 속에서도 사람들은 저마다의 그늘을 품고 살아간다. 나 또한 그 그늘 속에 서 있는 한 사람이다.
떠나온 곳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고 새로 건너는 시간 역시 온전히 내 것이 되지 못했다. 나는 그 사이 어딘가에 오래 머무는 중이다.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흔들리는 날들이 두려웠지만 나를 살게 한 것 또한 그 흔들림이었다.
물살을 거슬러 헤엄치듯 살아온 시간이었다. 장애인 지원 현장의 일은 하루하루가 가팔랐다. 낯선 언어와 결이 다른 사람들을 마주하는 일은 생각보다 단단한 마음을 요구했다. 내 흔들림을 풀어 놓을 틈은 없었다. 웃음으로 하루를 견뎠고, 아무 일 없다는 얼굴로 마음의 금을 덮었다.
돌아보면 누군가의 눈빛이 나를 잡아 주었다. 작은 웃음이, 깊은 신뢰가, 더러는 침묵이 내 글의 밑바닥을 이루었다.
이제야 조금 알 것도 같다. 어차피 거스를 수 없는 파도라면 어느 순간에는 물결 위에 몸을 누여야 한다는 것을. 하이게이트 플레이스 7번지의 작은 창가에 앉아, 나는 거슬러 오르기만 하던 지난날을 가만 내려다보았다. 흘러가도록 내버려두는 일이 포기만은 아니라는 것을 늦게 배웠다.
문체는 단순한 글쓰기의 습관이 아니라 한 사람이 지나온 세월의 무늬였다. 이 산문들은 7년에 걸쳐 쓰였다. 불규칙한 결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글마다 제각각인 문체는 그때그때 다르게 살아온 증거이기에 크게 손대지 않았다.
흘러가면서도 남는 것들을 담았다. 이제는 낯섦에서 벗어나 온기가 된 사람들과 내게서 사라지지 않는 언어에 관한 이야기다. 잊으려 해도 불쑥 떠오르는 얼굴들, 스쳐 갔지만 지금도 마음에 앉아 있는 풍경들이다.
나는 여전히 흔들린다. 그 흔들림을 붙잡기 위해 썼고, 지금도 쓰고 있으며, 앞으로도 쓸 것이다.
지친 저녁 늦게, 새벽과 아침 사이, 때로는 출퇴근 트레인 안에서 원고를 붙들었다. 차창 밖으로 시드니의 아침이 스쳐 갈 때 나는 이 도시와 내가 닮아 있음을 느꼈다. 밝지만 쓸쓸하고, 넓고도 고독한 이 도시의 기록이 당신 마음에 조용히 닿길 바란다.
2026년 5월, 체리브룩에서
유금란
작가 소개
지은이 : 유금란
강화에서 출생, 인천에서 성장했다. 미술을 하고 싶었으나 부모님 반대로 국문학을 선택했다. 졸업 후, 잡지사에서 기자 생활을 하다가 결혼하면서 글쓰기와 결별했다. 2000년 1월, 남편 직장을 따라 시드니로 이주했다. 이즈음 모국어에 대한 집착 증상이 나타났고, 문학 언저리를 다시 어슬렁거렸다. 2009년, 2014년 두 차례 재외동포문학상에 입상하면서 수필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몇 년 뒤 『시드니에 바람을 걸다』와 5인 공저 『바다 건너 당신』을 출간했다. 2021년 동주해외신인상을 받으며 시인이 되었고, 2025년 시산맥시문학상을 받았다. DSA(Disability Services Australia)에서 13년째 장애인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문학동인 캥거루와 수필U시간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문학과 시드니』 주간, 계간 『웹진시산맥』 편집위원을 맡고 있다.
목차
책머리
흘러가면서도 남는 것들 5
1부 반반의 영혼
시가 된 윈더미어호 14
우는 벚나무 19
돈 콜 미 베이비 24
슬픈 목가와 스마트폰 사이 29
와인이 되려다 장미가 된 33
블루가 있는 그림 한 점 38
족발 권력 43
반반의 영혼 49
잃어버린 성(姓)을 찾아 54
2부 색으로 건너온 시간
파통가 증언 62
하나식품과 조선오이 66
시드니에서 부르는 靑山別曲 71
오차 안에 머물던 시간 81
보라 86
빌핀, 초록이 덮지 못한 것 95
카우라, 노랑이 덮은 것들 101
아웃백 개론 106
3부 DSA 사람들
회식 보고서 120
리카의 주근깨 128
소금 반, 후추 반, 설탕 한 스푼 133
넝과 20달러 138
98℃ 기류 143
에드나에게 바치는 항복 선언 148
뒷담화, 그 치명적인 달콤함에 대하여 153
그냥 158
12월이기 때문입니다 162
4부 돌아보니 거기
바다의 기척 168
다정한 유산 173
그 많던 오빠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178
굽을 내리다 183
잿빛 통증 188
중간 날들 192
굴뚝 197
5부 언어의 농도
언어의 농도 204
진실은 그런 거라네 208
죽음을 도모하고, 삶을 완성하다 213
이유가 있는 문학제 217
거리의 미학 222
패밀리 팩 226
하이게이트 플레이스 7번지 230
에필로그
성실한 실패작들에게 _나의 문학세계를 말한다 2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