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임흥순 작가의 공공예술 프로젝트 ‘메모리얼 샤워’를 따라가며, 제주 4·3과 재일 디아스포라의 역사, 바다를 건너 이어지는 삶과 죽음, 유품과 몸, 전시와 워크숍이 만들어내는 애도의 공공성을 입체적으로 짚어낸다. 이 책에는 재일과 코리안 디아스포라, 제주와 바다, 여성의 삶과 기억, 관계적 존재론을 연구해 온 필자들이 참여해, 한 예술 프로젝트가 열어놓은 문제들을 더 넓은 역사적·이론적 맥락으로 확장한다.
김동일의 삶과 유품에서 출발한 이 책은 사적인 상실을 공동의 감각으로 전환하는 예술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기억이 어떻게 이동하고 관계 맺으며 오늘의 우리에게 다시 말을 거는지 묻는다. 프로젝트의 기록집인 동시에, 애도와 디아스포라, 바다와 기억의 시학을 함께 사유하게 하는 지적이고 감각적인 지도 그리기 작업이다.
출판사 리뷰
애도를 공동의 실천으로 바꾸는 작업: 유품에서 공공예술로
『애도라는 섬』은 한 개인의 죽음 이후 남겨진 유품이 어떻게 공동의 기억과 감각을 조직하는 공공예술의 매개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서 촉발되었다. 임흥순 작가의 ‘메모리얼 샤워’ 프로젝트는 2017년 타계한 김동일의 유품에서 시작되지만, 그 유품은 단지 한 사람의 삶을 보존하는 사적인 흔적에 머물지 않는다. 전시와 상영회, 워크숍, 장편영화, 게임 등 다양한 형식으로 번역되어 진행된 이 프로젝트는 죽은 자의 흔적을 현재의 공동체가 다시 감각하고 나누는 장으로 확장된다. 이 책은 바로 이 전환의 과정을 세밀하게 보여준다. 여기서 애도는 개인의 내면적 정서에 머물지 않고, 유품이라는 물질적 흔적으로 타인과 관계를 맺고 기억을 나누는 공적인 실천으로 재구성된다. 임흥순의 글에서 김동일의 옷은 “역사 세례”이자 “기억 내림”으로 자신에게 전달된 무엇이며(12쪽), 따라서 그것을 감당하는 일은 곧 공동의 짐을 나누는 일이 된다. 전시장에서 옷은 만지고 냄새 맡을 수 있는 감각적 매개가 되고, 워크숍에서는 다시 다른 사람들의 몸으로 건너가며, 영화 속에서는 상실과 위로를 담은 시적인 물질로 변한다. 이처럼 『애도라는 섬』은 애도를 회고의 언어로만 붙잡지 않고, 유품과 몸, 전시와 나눔, 기억과 공동체를 다시 연결하는 사회적 형식으로 제안한다. 애도의 공공성은 바로 그 자리, 곧 상실이 다시 관계와 나눔의 형식으로 전환되는 자리에서 발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바다가 여는 관계의 정치학: 군도적 상상력과 디아스포라의 기억
김동일의 삶은 제주 4·3의 역사와 재일의 삶이 결코 분리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결절점이다. 제주 4·3 당시 연락책으로 활동했고,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재일의 삶을 산 김동일의 경험은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기억의 축이다. 이 책에 실린 필자들의 글은 이 축을 따라가며, 재일 정체성, 디아스포라적 소속감, 여성들의 저항, 바다를 둘러싼 환경과 생태 문제를 함께 사유한다. 바다는 떠남과 귀환, 이산과 소속, 죽은 자와 산 자, 제주와 일본, 과거와 현재를 잇는 관계적 공간으로 작동한다. 김연희는 〈바다〉를 통해 재일 정체성과 디아스포라적 소속감, 관계적 존재론을 읽어내고, 권준희는 멀리서 떠나는 사람들의 존재 방식을, 윤여일은 제주에서 다르게 살아가는 여성들의 바다를, 이솔은 디아스포라와 바다의 몸을, 히비노 민용은 평범한 자이니치의 삶을 통해 이 문제를 각기 다른 각도에서 살펴본다. 이렇게 각 글은 서로 다른 입장을 취하지만, 공통적으로 바다를 경계와 이동, 차별과 연대, 기억과 생존의 장소로 다시 읽어낸다. 그 결과 제주 4·3과 재일의 역사는 분리된 사건이 아니라, 군도적 상상력 속에서 서로 울리고 이어지는 기억의 장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애도라는 섬』은 디아스포라를 단순한 이주의 경험이나 정체성 정치의 문제로만 다루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경계 너머의 관계를 어떻게 다시 상상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이다. 이 책에서 바다가, 상실된 장소를 대신하는 은유가 아니라 서로 다른 삶들을 연결하고 흔드는 정치적·시학적 장이 되는 것도 그 때문이리라. 임흥순 작가의 프로젝트도 그렇거니와, 이 책도 바다를 매개로 해, 기억이 고정된 장소의 보존이 아니라 끊임없이 이동하고 관계 맺는 형식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기록을 넘어 살아 움직이는 기억으로: 전시, 워크숍, 영화가 함께 만드는 아카이브
『애도라는 섬』은 형식상으로는 프로젝트를 기록한 책이지만, 실제로는 기억을 어떻게 살아 움직이게 할 것인가를 탐구하는 책에 가깝다. 작가 노트와 드로잉, 연구자와 큐레이터의 원고, 프로젝트 타임라인, 전시 《기억 샤워 바다》의 도판 등 글과 자료를 함께 엮은 하나의 확장된 아카이브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아카이브는 과거를 보존하는 저장소가 아니다. 전시와 워크숍, 상영과 대화, 영화와 게임은 끊임없이 다른 방식으로 재가동되는 기억의 장이 된다. 특히 ‘고치글라 Run With Me’ 워크숍에서 김동일의 옷이 사람들의 몸으로 다시 건네지고, 전시와 영화 속에서 다시 새로운 장면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기억이 어떻게 기록을 넘어 현재의 관계 속에서 되살아나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렇기에 『애도라는 섬』은 단순한 기록집이 아니라, 기억을 살아 있는 형태로 남기기 위한 공공예술의 방법론을 탐구한 책으로도 읽을 수 있다.
그렇게 나는 김동일 유품의 관리자 겸 김동일의 한국 유족이 되었다. 김동일의 삶과 옷의 의미가 무엇인지? 어떻게 나누고 함께 할 것인지? 책임이 부여되었다. 그 당시는 햇빛 쨍쨍한 날에 내리는 소낙비라고 생각했다. 피할 수 없는 ‘역사 세례’이자 ‘기억 내림’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어릴 적 함께 지낸 재일 조선인 친구들에 대한 미안함일까? 양심이었을까? 죄책감이었을까?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으면서 왜 이런 활동을 하는지 궁금증이 조금 풀렸다. 바다가 육지와 섬, 섬과 섬을 연결하고 있듯 사람과 사람의 마음 또한 서로 연결되고 이어질 수 있다는 것, 또 그렇게 에토 요시아키의 마음은 파도가 되어 나의 마음으로 철썩하며 흘러 들어왔다.
산 자가 죽은 자에게 하는 말은 들릴 수 있어도, 죽은 자가 산 자에게 하는 말은 들을 수 없다. 죽은 자가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어떤 말들일까? 산 자 안에 움직이는 마음이 있다면 죽은 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말은 아닐까? 죽은 자와 산 자는 함께하고 있는 건 아닐까?
작가 소개
지은이 : 윤여일
제주대학교 공동자원과 지속가능사회 연구센터 학술연구교수로 제주에서 지냈으며, 현재는 경상국립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진주에서 강의하고 있다. 『피뢰침과 스며듦』, 『모든 현재의 시작, 1990년대』, 『물음을 위한 물음』, 『광장이 되는 시간』을 썼다.
지은이 : 임흥순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활동하는 미술가이자 영화감독이다. 주요 개인전으로는 2015년 미국 뉴욕 MoMA PS1에서 열린 《환생》, 2017년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차 시리즈 작가로 선정되어 개최한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 2019년 더페이지 갤러리에서 열린 《고스트 가이드》, 2022년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열린 2022 타이틀 매치: 임흥순 vs. 오메르 파스트 《컷!》, 2023년 제주4·3평화기념관에서 열린 《기억 샤워 바다》 등이 있다. 1998년 <이천 가는 길>을 시작으로 비디오 다이어리 형식의 영상을 비롯해 사진, 설치, 공공미술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드는 작업과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특히 <추억록>(2003), <형제봉 가는 길>(2018), <교환일기>(2015-, 모모세 아야와 공동 연출), <파도>(2022) 등을 통해 다큐멘터리, 실험영화, 퍼포먼스를 아우르는 멀티채널 영상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첫 장편영화 〈비념〉(2012)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총 아홉 편의 장편영화를 연출했으며, 이 가운데 다섯 편이 극장에 개봉되었다. 그의 작품은 국내 주요 미술관을 비롯해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 미국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 카네기 미술관, 노르웨이 스타방에르 미술관, 아랍에미리트 샤르자 아트 파운데이션 등 해외 여러 기관에 소장되어 있다.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한국인 최초로 은사자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가천대학교 미술·디자인학부 회화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이 : 이솔
뉴욕주립대학 스토니브룩 캠퍼스의 미술사학과 부교수로, 근현대 아시아 미술, 탈식민 시각문화, 사회참여적 예술을 중심으로 연구한다. 첫 저서 『The Minjung Art Movement: Decolonization and Democracy in South Korea』(2016)는 1970?80년대 한국에서 전개된 민중미술운동을 탈식민과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역사화한 연구이다. 현재 집필 중인 저서 『Seaweed as Method』는 해조류를 둘러싼 전 지구적 시각문화를 생태적 사유, 탈식민 담론, 그리고 원주민 존재론·인식론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탐구한다.
지은이 : 권준희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새크라멘토 아시안학과 교수다. 듀크대학교에서 문화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북아시아 변경 지역, 냉전 개발주의, 디아스포라와 이주, 생태정치를 주제로 연구하고 가르친다. 책 『Borderland Dreams: The Transnational Lives of Korean Chinese Workers』(2023)로 2024년 미국동아시아인류학회(SEAA)에서 프랜시스 L. K. 쉬 저술상(Francis L. K. Hsu Book Prize)을 수상했다. 이 책은 『이주, 경계, 꿈: 조선족 이주자의 떠남과 머뭄, 교차하는 열망에 관하여』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었다. 현재 재일동포가 고향에 보낸 감귤 묘목과 국가 주도의 냉전 발전주의가 결합하며 제주의 농업, 생태, 경제, 그리고 삶의 조건을 재구성한 과정을 중심으로, 감귤나무의 사회사를 다루는 두 번째 책을 집필하고 있다.
지은이 : 김연희
정치학자, 활동가이자 예술가이다. 시민사회 참여와 평화운동 경험을 바탕으로, 특히 동아시아의 전후 분단 상황 속에서 미학이 정치사상과 교육학적 페다고지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연구한다. 현재 남북 관계의 맥락에서 ‘소외된 노동’이 식민성, 전쟁, 안보, 외교에 관한 담론을 어떻게 매개하는지 탐구하는 단행본 『소외된 매개: 한국 분단의 정 치와 미학(Estranged Mediations: The Politics and Aesthetics of Korean Division)』을 집필 중이다.
지은이 : 안혜경
일상과 사회적 이슈를 예술과 문화로 소통하고자 전시 공간 아트스페이스.씨(Artspace.C)를 2006년 제주시 노형동에 개관했고 2012년 구도심인 중앙로로 이전해 현재까지 느슨하게 전시를 기획하고 있다. 느닷없이 영화 관람, 음악 공연, 강연 등의 특별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한다. www.artspacec.com
지은이 : 히비노 민용
요코하마미술관 학예사로 재직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한반도에서 개최된 《조선미술전람회》에 참여한 일본인 화가들에 관한 학위 논문을 집필했으며, 게이오기주쿠대학 대학원 미학미술사학 전공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2010-2011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인문대학 고고미술사학과에서 교환유학생으로 수학했다. 국립신미술관 재직 당시 주요 담당 전시로 《아티스트 파일 2015》(2015~16)이 있으며, 2025년 12월에는 요코하마미술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의 공동 주최 전시 《いつもとなりにいるから 日本と韓国、アートの80年|로드 무비: 1945년 이후 한·일 미술》을 기획했다.
목차
애도라는 섬 / 임흥순
유골편지 / 임흥순
군도적 만남: 〈바다〉가 그리는 재일 정체성, 디아스포라적 소속감, 관계적 존재론 / 김연희
관객과의 대화 / 임흥순
평범한 자이니치(在日)인 나 / 히비노 민용
미술 하는 사람입니다 / 임흥순
멀리서 떠나는 사람들 / 권준희
심방과의 대화 / 임흥순
제주에서 다르게 살아가는 여성들의 바다 / 윤여일
제주국제공항 / 임흥순
디아스포라에서 바다의 몸으로 / 이솔
메모리얼 샤워 프로젝트
옷으로 연결된 기억의 바다 / 안혜경
《기억 샤워 바다》 전시장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