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루소의 문단 데뷔작으로, 루소는 이 첫 저술에서 학문과 예술의 부흥이 풍습을 타락시켰다는 확신을 이미 표명하고 있다. 이 글과 더불어 비슷한 시기에 쓰인 루소의 초기 저작 〈부(富)에 관하여〉, 〈〈나르시스〉 서문〉을 부록으로 수록해, 문예계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그 문예계를 정면으로 비판한 루소가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면 주장할수록 자기모순이 되는 상황을 극복하고자 한 노력이 어떻게 그의 특유의 자전적 글쓰기로 발전했는지 그 일련의 과정을 엿볼 수 있게 했다.
출판사 리뷰
계몽의 시대에 던진 가장 도발적인 내부 고발
1750년, 무명이었던 장 자크 루소는 디종 아카데미의 현상 공모에서 “학문과 예술의 부흥은 풍속을 정화하는 데 기여하였는가?”라는 질문에 단호히 “아니요”라고 답하며 유럽 지성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
그는 문명이 야기하는 악이 우발적인 부작용이 아니라, 문명의 장점이 가져오는 필연적인 결과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학문예술론》은 단순한 사회비판을 넘어선 ‘계몽 시대에 대한 내부 고발장’이라 할 수 있다. 당연하게도 논문 발표 이후 학문과 예술의 발달을 선도하는 당대의 문인과 학자에게 큰 반감을 사 수많은 논쟁을 촉발했다.
‘소유’보다 ‘존재’를 향한 루소식 정의론의 맹아 〈부에 관하여〉
《학문예술론》 직후에 쓰인 미완성 원고 〈부에 관하여〉를 첫 번째 부록으로 수록했다. 중상주의가 맹위를 떨치며 물질적 풍요가 찬양받던 당시 프랑스 사회에서, 루소는 이른바‘부의 낙수효과’라는 거짓 선동을 정면으로 비판한다. 젊은 루소의 가장 전투적인 필치가 돋보이는 이 글은, 훗날 그의 대표작인 《인간 불평등 기원론》으로 이어지는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초기 통찰을 담고 있다. 소유의 크기보다 존재의 가치를 우선시한 그의 정의론의 싹을 만날 수 있다.
자기모순을 딛고 피어난 자전적 고백의 시작 〈〈나르시스〉 서문〉
문명을 비판한 루소는 자신이 쓴 희곡을 출간하게 됨에 따라 자기모순과 마주하게 된다. 그는 이를 어떻게 극복했을까? 〈〈나르시스〉 서문〉은 바로 이 지점에서 탄생했다. 루소는 비판의 대상이었던 문예계의 지배 구조에 스스로 흡수되는 모순을 의식하며, 자신의 동기에 허영이나 거짓이 없음을 간절하게 해명한다. 이 글은 루소가 왜 훗날 그토록 지난한 자서전식 글쓰기를 통해 끊임없이 자신의 삶을 변명하고 증명해야 했는지, 그 심리적·사회적 배경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열쇠다.
학문의 연마가 전사의 자질에 해롭다면, 도덕적 자질에는 훨씬 더 해롭다. 유년기부터 이미 몰상식한 교육이 우리의 정신을 치장하여 우리의 판단력을 망쳐 놓는다. 사방에 거대한 건물들이 보이고, 그곳에서 청년들은 막대한 비용을 들여 온갖 것을 다 배우지만, 단 자신의 의무만 제외된다. 당신의 아이들은 모국어는 모르면서 어디서도 사용되지 않는 어떤 다른 언어로 말을 할 것이며, 자신조차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시를 쓰게 될 것이다. 진리와 오류를 분간할 줄 모르면서, 그럴싸한 논법으로 남들도 그것을 알아보지 못하게 만드는 기술을 갖게 될 것이다. 관대함, 공평, 절제, 인간미, 용기 같은 단어들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할 것이다. 조국이라는 다정한 단어도 그들의 귀에 아무런 떨림을 주지 못할 것이다. 하느님에 관한 말씀도 그에게 경외심을 일으키기보다 두려움을 안겨 줄 것이다.
-〈학문예술론〉 중에서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전제하고 또 몰인정의 습관과 자선의 목적을 양립시킬 수 있다 하더라도, 자네는 정확히 어느 정도까지 재산을 모으기로 정했는가? 그리고 반드시 그 정도에 만족하는 확고한 어떤 이유가 있는가? 자네가 이제 충분하다고 이성적으로 말할 수 있는 어떤 한계를 사물의 본성 속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 아아, 자네가 다른 인간들이 저지를 악행을 모두 바로잡기를 바란다면, 자네의 능력이 우리의 가난만큼 널리 확장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면, 자네는 죽을 때까지 만족을 모르고 몰인정하게, 널리 자선을 베풀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재물을 갖지 못해 끊임없이 축재를 할 것이고, 그러다가 누군가 도와줄 시기도 수단도 결코 찾아내지 못한 채, 황금과 세월과 탐욕에 짓눌려 죽어 갈 것이다.
-〈부에 대하여〉 중에서
언젠가 그들이 내가 대중의 호평을 열망하는 조짐이 보이는 것을 알아차린다면, 또는 내가 아름다운 노래를 만들었다고 자만하는 것을, 또는 형편없는 극작품을 썼다고 부끄러워하는 것을, 또는 내가 경쟁자들의 명예에 흠집을 내려고 애쓰는 것을, 또는 내가 우리 시대의 위인들에 대해 그들의 지위를 끌어내림으로써 그들보다 높은 지위에 이르려고 험담하려는 것을, 또는 내가 아카데미의 지위를 열망하는 것을, 또는 사교계에서 유행을 이끄는 여인들에게 아첨하려 드는 것을, 또는 대가들의 어리석은 짓거리도 예찬하는 것을, 또는 내 손으로 직접 노동하여 먹고살기를 그만두고 비열하게도 자신이 선택한 직업을 차지하고 재물을 향해 걸음을 내딛는 것을 알아차린다면, 한마디로 말해서 내가 명성을 추구하여 미덕에 대한 사랑을 잊어버렸다는 것을 알아차린다면, 내게 경고해 주기를 그것도 공개적으로 경고해 줄 것을 그들에게 간청한다. 그리고 즉시 나의 글과 책들을 불에 던져 버리겠다고, 나의 모든 잘못을 시인함으로써 그들이 나를 마음껏 비난하게 내버려두겠다고 그들에게 약속한다.
-〈〈나르시스〉 서문〉
작가 소개
지은이 : 장 자크 루소
18세기 프랑스 문학과 사상을 대표하는 문인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1778). 1712년 6월 28일 제네바에서 태어난 그는 태어나자마자 며칠 후 어머니가 사망해 시계공이었던 아버지의 손에서 자란다. 그러다 열 살 되던 해인 1722년 아버지가 그의 양육에서 손을 떼면서 제네바 남쪽 보세의 랑베르시에 목사의 집에서 하숙생으로 몇 년간을 지내게 된다. 몇 년 후 1728년 도망치듯 제네바를 떠나 험난한 시절을 보내게 된다. 1749년부터 디드로와 친교를 맺었으며 1750년 《학문예술론》을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문단에서의 활동을 시작했다. 1754년에 발표한 《인간 불평등 기원론》은 이후 1762년에 완성된 《사회계약론》의 바탕이 되었다. 이 저술은 그를 민주주의의 기반을 마련한 사상가로 올려놓았다. 한편 1761년에 발표한 《신 엘로이즈》라는 서간체 소설로 당대의 많은 독자를 매료하기도 한다. 1762년은 루소에게 매우 중요한 해로 《사회계약론》와 함께 또 다른 중요한 저술을 발표하는데 바로 《에밀》이다. 《에밀》은 루소가 교육학자로서 이름을 날리게 되는 계기가 되는 한편 종교와 성직자에 대한 공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로마 가톨릭 교회의 미움을 사게 만든다. 때로 감상주의적이라고 오해받기까지 한 그의 예민한 감성은 그를 타협보다 ‘역설적’, ‘모순적’이라는 비판을 직면하는 쪽으로 몰고 가 결국 정치적, 종교적, 사상적, 문화적 권위 주체들 모두에게서 지탄받는 상황에 봉착하게 만든다. 이로 인해 루소는 말년에 지극히 고독한 상태가 된다. 이에 그의 자아 천착 성향에 더해져 《고백》이나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같은 자전적 저술에 진력하도록 이끈다.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을 쓰면서 자신의 정체성에 관해 명상하지만 집필을 끝내지 못하고 결국 1778년 7월 2일 죽는다. 그의 최대의 문학적 걸작으로 일컬어지는 《참회록》과 《루소는 장 자크를 이렇게 생각한다》 등은 그의 사후에 발표되었다.
목차
서문
학문예술론
1부
2부
부록
부에 관하여
〈나르시스〉 서문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