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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고래 | 부모님 | 2026.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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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우리는 춤을 춘다
비극을 넘어 빛으로 이어진 춤

책고래마을 신간 《춤》은 국가 폭력으로 희생된 이들을 추모하고, 남겨진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그림책입니다. 의자 작가는 말로 다 전할 수 없는 시대의 상처를 ‘춤’이라는 상징적 언어로 풀어냈습니다.
헬리콥터가 위협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총성과 불빛이 온 마을을 뒤흔들었습니다. 어린 남매는 두려움에 떨며 책상 아래로 몸을 숨겼지요. 다행히 여자아이는 살아남았지만, 오빠는 끝내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마을 곳곳에서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들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깊은 분노와 슬픔 속에서 누군가는 종이배를 띄우고, 또 누군가는 춤으로 절망을 견디며 사라진 이들을 마음을 다해 배웅했습니다.
《춤》은 그저 비극적인 사건을 보여 주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죽음을 넘어 이어지는 사랑, 폭력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인간의 존엄, 상실로부터 피어나는 연대의 서사를 그립니다. 의자 작가는 빛과 리듬, 침묵의 언어로 “우리는 어떻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가”를 묻습니다. 그리고 이 질문은 광주의 봄, 바다의 희생, 도시의 밤에 새겨진 우리의 아픔을 모두 담고 있습니다. 그림 속 한 장면 한 장면은 특정 사건을 직접 가리키지 않으면서도, 독자가 스스로 기억을 꺼내게 만드는 힘을 지녔습니다.

슬픔을 견디는 가장 아름다운 몸짓, 춤

평화롭던 마을에 갑자기 세찬 바람을 일으키며 헬리콥터가 나타납니다. 총성과 불꽃과 비명소리가 뒤섞이며 세상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합니다. 어린 남매는 영문도 모른 채 책상 아래로 몸을 피하지요. 정신없이 이어지는 폭격 속에서 여자아이는 살아남았지만, 오빠는 그만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마을에는 오빠처럼 죽음을 맞이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어요.
총탄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슬픔이 차올랐습니다. 부모, 자식, 친구를 잃은 마을 사람들은 울부짖었습니다. 그때 누군가 애도의 마음을 담아 종이배를 만들었고, 또 누군가는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떨리는 손끝과 흔들리는 발끝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춤은 절망을 견디기 위한 몸짓이자, 사라진 존재를 향한 마지막 인사이며, 살아남은 자의 다짐이었습니다.
《춤》의 서사는 고요한 장면으로 시작해 독자의 내면을 서서히 흔듭니다. 작가는 구체적 장면을 보여 주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폭력을 더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탱크 바퀴 자국 위를 걷는 아이들’, ‘떠난 자리의 빈 의자’, ‘벗겨진 신발’ 등 상징적인 이미지가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더 깊은 공감을 이끌어 냅니다.
잔혹한 비극 앞에서도 사람들은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슬픔을 딛고 일어서서 춤을 추었습니다. 춤은 그저 의미 없는 몸짓이 아니에요. 삶을 일으키는 활력이자 저항의 극적인 표현, 애도의 가장 원초적인 형식입니다. 촛불 아래에서 춤을 추는 사람들의 모습은 슬픔을 이겨 내고, 마침내 긍정과 희망으로 승화하는 인간 정신의 회복력을 아름답게 보여 줍니다. 무엇보다 죽은 오빠와 여동생이 함께 추는 춤은 보는 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개인의 고통을 공동체의 기억으로 확장하고, 애도를 나눌 수 있는 장을 열지요.
묵직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것은 ‘오빠와 여동생’입니다. 작고 약한 존재들의 삶을 조명하면서 《춤》은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폭력에 대해 일깨웁니다. 조금 주의를 기울이면 국가나 단체, 힘 있는 다수에 희생된 사람들의 상처와 슬픔을 쉽게 마주할 수 있습니다. 뉴스에서, 신문 지면에서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올 때가 많지요. 《춤》에 담긴 이야기는 먼 나라, 낯선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쩌면 나의 가족, 가까운 이웃의 아픔일 수 있습니다. 나아가 인류가 겪어 온 보편적인 상실과 슬픔을 담고 있기에 누구나 공감하고 몰입하며 읽을 수 있는 그림책입니다.
근현대사를 지나오면서 한국은 비극적 사건을 숱하게 겪었습니다. 오늘날에도 국가로부터 보호받지 못한 사람들이 덧없이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세월호 사건이 그러했고, 이태원 참사가 그러했지요. 지난 겨울에는 무장한 군인들이 국회로 쳐들어오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다시 무고한 희생자가 발생하지 않을까 누군가는 국회 앞으로 뛰어나가고, 누군가는 밤새 기도하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새벽을 기다렸습니다. 비극의 역사 앞에서 선량한 우리 국민은 촛불을 들었습니다. 평화적인 시위로 폭력에 맞섰지요. 《춤》은 한국 민주주의의 살아있는 기록이자, 그들의 아픔과 슬픔을 끌어안고 위로하는 그림책입니다.
“어떻게 고통을 견디며 서로를 비추고 살아갈 것인가.” 작가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어쩌면 《춤》은 그 물음에 관한 한 가지 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정해진 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기억하고 끊임없이 묻고 답해야 할 질문이지요.




  작가 소개

지은이 : 의자
《춤》을 그리는 동안 동안 작가는 여자아이의 목소리를 따라 춤을 추었습니다. “오빠, 나는 노래하는 새가 될 거야.” 그 목소리는 지금도 귓가에 선명합니다.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런던 골드스미스 대학에서 아동문학과 어린이책 일러스트레이션을 전공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사막의 농부》, 《얼굴》, 《그림 좀 아는 고양이 루이》, 《캠핑 좀 하는 고양이 루이》, 《수영 좀 하는 고양이 루이》 시리즈가 있으며, 그림 에세이 《낯선 곳에 대책 없이 살고 싶다》를 출간했습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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