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이찬란 작가의 첫 장편소설 『나의 벤 존슨』은 1988년 서울올림픽의 영광과 추락을 상징하는 인물 벤 존슨을 매개로, 고립된 현대인의 연대를 그린 작품이다. 보증금 없는 방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해 “희망을 품을 수 없는 구조” 속에 갇힌 청년 호달과, 자신을 벤 존슨이라 믿으며 과거의 영광을 고집하는 중년 남자가 신림동 고시촌에서 만난다. “누구도 나를 간섭하지 않지만 동시에 책임져주지도 않는” 매끄럽고 쿨한 세계에서, 호달은 난생처음 자신을 지켜주는 타인의 온기를 경험한다.
피시방 습격 사건과 한낮의 추격전을 함께하며 쌓인 연대는 “옆에 있어주잖아요. 나 가족 생긴 거 처음이에요”라는 고백으로 이어진다. 작가는 무례함 속에 숨겨진 낡은 애정이 어떻게 개인을 구원하는지 통찰하며, “패배하기로 결심하지 않는 한, 패배의 법칙은 없다”는 용기를 건넨다. 이 소설은 차가운 고립의 시대를 이겨낼 다정한 참견이 필요한 이들에게 9.79초라는 결과보다 더 눈부신 ‘함께 달리는 과정’의 진실을 선사한다.
출판사 리뷰
“원래 영웅이란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포기하지 않는 법이다”
『나의 벤 존슨』은 1988년 서울올림픽 100미터 결승전이라는 역사적 장면으로 문을 연다. 9초 79,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영웅이 되었으나 단 72시간 만에 약물 복용으로 추락한 ‘실패한 영웅’ 벤 존슨. 이찬란 작가의 첫 장편소설 『나의 벤 존슨』=은 이 강렬한 기억을 2020년대 서울 신림동 고시촌의 차가운 현실로 불러낸다. 월세를 내지 못해 “이제 고시원에는 그의 방이 없는” 절박한 청년 호달과 자신을 벤 존슨이라 믿으며 과거의 영광을 고집하는 정체불명의 중년 남자가 만난다. 지하철 불법 촬영 누명을 쓴 호달 앞에 나타난 남자는 사기꾼인지 조력자인지 알 수 없는 기묘한 페이스로 그를 흔들고, 두 사람은 낡은 ‘88국수집’의 기억과 빈 지갑의 서러움을 공유하며 세상이 정한 ‘패배의 법칙’에 정면으로 맞서기 시작한다..
누구도 나를 간섭하지 않지만
동시에 책임져주지도 않는 세계
작가는 매끄럽고 쿨한 관계가 미덕이 된 현대 사회에서, 타인의 삶에 참견하고 훈수를 두던 과거의 ‘질척이는 관심’을 소환한다. “온라인으로는 전 세계와 연결되어 있지만 휴대폰이 꺼지는 순간 혼자가 되는” 무한히 방치되는 세계에서, 호달은 난생처음 자신의 곁을 지켜주는 타인의 존재를 경험한다. 피시방 습격 사건과 한낮의 추격전을 함께 겪으며 쌓인 연대는 “옆에 있어주잖아요. 나 가족 생긴 거 처음이에요”라는 고백으로 이어진다. 타인의 사생활을 침범하던 무례함 속에 숨겨진 낡은 애정과 온기가 어떻게 고립된 개인을 구원하고, 경로를 이탈한 삶을 다시금 ‘있어야 할 곳’으로 인도하는지 이들의 뜨거운 동행을 통해 통찰한다.
“그래도……
지금은 나쁘지 않다.”
이 소설은 88올림픽의 향수와 현대 청년 세대의 고단함을 절묘하게 교차시킨다. 실패가 두려워 시작조차 포기한 이들에게는 응원을, 과거의 영광 뒤편에서 길을 잃은 이들에게는 새로운 시작의 용기를 건넨다. 작가는 “무례함은 벗겨내고 타인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찾아내 씨앗처럼 이 세계에 흩뿌려놓”듯, 구질구질하고 귀찮을 정도의 타인이 실은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힘임을 역설한다. “그래도…… 지금도 나쁘지는 않다”라는 문장처럼, 완벽하지 않아도 끝내 포기하지 않는 이들의 질주는 우리에게 9.79초라는 결과보다 더 눈부신 ‘함께 달리는 과정’의 진실을 선사한다.
굳건한 강자의 세계와 약하고 가난한 이의 세계가 뒤섞이고 전복될 수 있음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불가능의 벽을 허물고 가능성의 세계를 열어젖힌, 그야말로 진정한 영웅, 벤 존슨.
이 동네는 모든 게 다 이랬다. 프렌차이즈와 화려한 상점이 즐비한 거리의 뒤쪽, 사람들의 시선이 좀처럼 닿지 않는 고시촌. 이제는 고시생보다 빈민에 가까운 일용직 노동자가 더 많아진 곳.
무엇보다 결정적인 건, 경찰들이 왔다 간 후 재활용 쓰레기 틈에 법률에 관한 책 묶음이 끼어 있었다는 점이다. 밤샘 알바를 마치고 고시원으로 들어가던 길에 우연히 그것을 발견한 호달은 멈춰 서서 담배를 한 대 피워 물었다. 안 그래도 텁텁한 입안이 바짝 마르기만 할 뿐 아무런 맛도 느낄 수 없었다. 노끈으로 헐겁게 묶인 책 묶음 위에 담배 끝을 눌러 끄는데 한 권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이찬란
소설과 에세이, 서평을 쓴다. 2024년 독립 인생 여정을 기록한 에세이 『나의 경우엔 이혼이라기보다 독립』을 펴냈으며, 독립문예지 베개 9호에 에세이 <토마토의 맛>을 발표했다. 브런치스토리에 가족과 관계, 독립생활에 관한 글을 연재 중이다.
목차
세기의 대결
신림동, 고시원
납골당의 유령
불법 촬영의 그물
88국수집
한낮의 추격전
빈 지갑
버스는 사랑을 싣고
피시방 습격 사건
실패한 영웅
미행
짧은 만남
다시 혼자
패배의 법칙
있어야 할 곳
경로 이탈
정면 승부
말하지 못한 이야기
새로운 시작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