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2분 달리기와 2분 걷기”, 완벽하지 않은 속도가 가르쳐준 것들
아일랜드, 포르투갈, 이탈리아에서 달리기 하나로 버텨낸 삶과 성장 이야기
초보 러너의 서툰 발걸음부터 하프 마라톤 완주에 이어 풀 마라톤 도전까지…
한계를 마주하고 다시 나아가는 ‘열린 결말’의 인생 이야기
속도나 완주보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중심에 두고,
달리기를 통해 자신을 다시 발견해가는 한 사람의 내밀한 기록
“멈추지 않고 달리다 보면, 결국 나에게로 도착한다!”우울과 무기력의 늪에서 찾은 2분의 가능성서른한 살, 번듯한 직장을 뒤로하고 떠난 아일랜드 어학연수와 대학원 생활 중 예기치 못한 우울증과 마주한다. 이미 통장 잔고는 바닥나고, 언어의 장벽 앞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으며, 이방인으로서의 열패감은 삶의 의지마저 갉아먹었다. 해가 일찍 지는 아일랜드의 겨울은 그 무기력을 더욱 짙게 눌렀다.
그런 그녀에게 ‘달리기’는 아주 우연하고도 요란하게 찾아왔다. 학창 시절 체육 시간을 증오하고 오래달리기를 ‘인생 최대의 시련’으로 여겼던 저자는, 30대가 되어 다시 운동화를 신는다. 걷는 것조차 버거워 엘리베이터를 타고 밖으로 나가는 데만 한 시간이 걸렸다.
거창한 목표는 없었다. 달리기를 시작한다고 갑자기 인생에 그럴듯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 기대하지 않았다. 그저 “하기 싫은 것에서 ‘사는 것’만은 지워보고 싶다”는 절박함이 시작이었다. 온갖 요령을 피우는 마음과 달리 정직하게 반응하는 몸에 가느다란 희망을 건 것이다.
이 책은 이렇게 ‘2분 걷고 2분 달리는’ 초보 러너의 서툰 발걸음부터 하프 마라톤 완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처음은 단 2분 달리기와 2분 걷기였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몸이 버티지 못해 멈춰 서야 했던 그 시간은 결코 ‘운동’이라 부르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그래도 달리고 나면 딱 하나 좋은 것이 있었다. 몸이 제일 가벼웠다. 굽어있던 어깨가 저절로 펴졌다. 하기 싫은 것들 목록에서 적어도 ‘사는 것’만큼은 지워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작은 희망이 거기서 생겨났다. 그렇게 그 작은 움직임을 반복하며 점차 자신의 몸과 마음을 회복해나갔다.
잘 달리는 법’이 아닌, ‘살아가는 법’에 대한 이야기아일랜드에서 시작된 이 달리기는 포르투갈을 거쳐 이탈리아로 이어진다. 낯선 타지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며 겪는 외로움과 불안, 그리고 반복되는 자기 의심 속에서 달리기는 단순한 운동을 넘어 삶을 버티게 하는 방식이 된다. 기록을 단축하는 방법도, 효율적인 러닝 루틴도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왜 달리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달리기를 하며 마주한 것은 더 나은 기록이 아니라, 비교에 지쳐 있던 자신, 멈추고 싶었던 순간들, 그리고 끝내 포기하지 않았던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달리기는 삶을 단번에 바꿔주는 해결책이 아니라, 그저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만드는 작은 계기’였다. 그러나 그 작은 계기가 쌓이면, 결국 삶의 방향을 바꾸는 힘이 된다.
《완벽하지 않아도 계속 달리기로 했다》는 성취의 서사가 아닌 완벽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해 여전히 부족한 자신을 끌어안고 나아가는, 살아가는 법에 관한 이야기다. 타인의 속도에 맞추느라 숨이 가빠졌던 이들에게, 멈추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한다. 빠르게 달리지 않아도 괜찮고, 때로는 걷더라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 아니라 ‘지속’이니까. 그 끝에서 우리는 결국 자기 자신에게 도착하게 된다.
타인의 속도에서 벗어나 나만의 보폭으로이 책은 ‘2분 걷고 2분 달리는’ 초보 러너의 서툰 발걸음부터 하프 마라톤 완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보여지는 나’ 때문에 선뜻 달리지 못했던 한국에서의 삶과 달리, 아일랜드의 공원과 포르투갈의 해변을 달리며 저자는 비로소 ‘나다운 속도’를 발견한다. “달리기에 온전히 몰입하는 순간, 오직 달리는 나만 보일 것”이라는 깨달음은, 세상이 정해준 ‘결혼의 때’나 ‘성공의 지표’에 매몰되어 있던 독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해방감을 선사한다.
달리기는 결승선을 통과하는 순간의 환희보다는 그 과정에서 겪는 고통과 사점(Dead Point), 그리고 그것을 견뎌내는 인내의 시간에 가깝다. “인생에서 필요한 것은 고민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견딜 수 있는 체력”이라는 통찰은 드라마 <미생>의 대사처럼 묵직하게 다가온다. 특히 뇌암 말기 선고를 받고도 열여덟 번의 마라톤을 뛴 이안 워드의 일화나, 90대 마라토너의 인터뷰를 통해 ‘무엇이 진정한 완주인가’를 묻는다. 삶은 언제든 멈춰 설 수 있는 불확실한 것이지만, “달릴 수 있을 때까지는 달릴 수 있다”는 태도가 곧 삶을 대하는 고결한 의지다.
오늘도 자신만의 트랙 위에서 흔들리는 모든 이들에게 “부족한 내 모습 그대로도 충분히 괜찮다”며 어깨를 툭툭 쳐주는 따뜻한 응원이 될 것이다. 비록 2분 걷고 2분 달리더라도 자신만의 속도로 자신만의 삶의 기록을 써나가길 기원한다.

달리기는 내 속에 고인 물을 흔드는 비였고, 바람이었다. 그래서 중요한 미팅이 있었거나 바쁜 업무로 힘들었던 날에는 무조건 밖으로 나갔다. 달리기를 하면 산소가 들어올 길이 생겼고, 부정적인 생각이 떠나갔다. 어떤 날은 달리는 대신 오래 걸었다. 바람을 쐬며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뱉었다.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들 때까지 오래 머물다 집으로 돌아갔다. 집을 나설 때까지 몹시 거칠었던 마음이 돌아올 때는 한껏 부드러워졌다.
“오늘 잘 달렸어. 잘했어. 그걸로 충분해.”
건강한 두 다리를 가진 것에 감사했고, 달릴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뿌듯했다. 감사한 마음이 커질수록 결핍은 작아졌다. 디스토피아 같은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다가도 푸른 잔디, 높게 뻗은 나무, 노을 진 하늘, 무리를 지어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들을 보면 어느새 세상은 유토피아로 바뀌어 있었다. 미팅만 하고 나면 쪼그라들던 마음에도 조금의 여유가 생겼다.
“당신들은 한국어 못하잖아. 한국에서 한국 회사에 취직해서 한국어로 일할 수 있겠어? 영어 밖에 할 줄 모르면서.”
내 마음에 제대로 들리도록 일부러 더 호탕하고 크게 외쳤다. 해외에서 직장생활 하는 건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거라고, 그럼에도 잘하고 있다고 나 자신을 인정해주고 싶었다.
작은 실수 하나에 과자 조각처럼 부서지는 마음이 나에게 건네는 격려와 칭찬으로 벽돌처럼 지은 집이 되는 것. 이것이 달리기가 알려준 삶의 신비였다. 달리기는 그렇게 내 두 다리만이 아닌 내 삶을 움직이고 있었다.
한여름의 햇살 아래, 동네 포도밭의 포도알들이 탐스럽게 영글어가고, 내 얼굴도 빨갛게 익어갔다. 뜨거운 햇살을 그대로 맞으며 달리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걷기만 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날씨에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뭐가 좋아서 나는 이 생고생을 하고 있을까?’
학창시절처럼 감시하는 선생님이 있는 것도 아니고, 좋은 기록을 내면 이직이나 승진에 유리한 것도 아니었다. 내가 원한다면 언제든 멈출 수도, 쉴 수도, 줄일 수도, 미룰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이유는 딱 하나였다. 그저 달리는 것이 좋았기 때문이다.
여름은 내가 달리기를 향한 마음이 얼마나 깊은지 확인할 수 있게 해준 계절이었다. 7월생인 나는 어쩌면 한여름에 무언가를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뜨거움을 안고 태어났는지도 모른다. 봄처럼 찔끔찔끔 떠보지 않고, 가을처럼 과묵하게 뒤에서만 지켜보지 않고, 겨울처럼 속앓이만 하지 않고 앞뒤 계산 없이 직진하는 열렬한 계절, 나는 달리기를 더 좋아하게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