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프랑스 계몽 철학사상의 상징 볼테르의 대표작을 한데 모은 작품집이다. 《캉디드 또는 낙천주의》를 비롯해 《미크로메가스》, 《자디그 또는 운명》 등 10편의 이야기를 통해 낙천주의와 비관주의, 인간과 사회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순진한 주인공 캉디드의 파란만장한 여정을 중심으로, 모순된 사회와 타락한 종교, 인간의 위선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사랑과 풍자, 철학적 사유가 어우러진 이야기 속에서 현실의 고통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함께 그려 낸다.
볼테르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통해 만물의 상대성, 행복과 운명, 선과 악의 균형을 탐구하며 인류에 대한 관용과 희망을 놓지 않는다. 짧고 흥미로운 서사를 넘어 시대와 국경을 넘어서는 철학 콩트로서, 인간 존재와 삶의 의미를 다시 묻게 한다.
출판사 리뷰
프랑스 계몽 철학사상의 상징 볼테르
낙천주의 신봉자 캉디드 파란만장 삶의 여정
최선의 세상과 미래에 대한 간절한 소망
비관적인 이 세상에서 행복으로 가는 길!
"땅을 일구고, 마시고, 먹고, 침묵하라"
"볼테르는 이성의 논쟁에 향연의 모습을 부여했다" -롤랑 바르트
지금은 괴롭더라도 미래는 찬란하리라! 낙천주의자 캉디드
몽테스키외, 루소, 디드로와 함께 프랑스혁명 계몽주의시대를 이끈 사상가이며 작가인 볼테르. 이 책에는 그의 대표작인 《캉디드 또는 낙천주의》를 비롯해 《미크로메가스》, 《세상 돌아가는 대로》, 《자디그 또는 운명》, 《바빌론의 공주》 등 모두 10편의 짧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캉디드 또는 낙천주의》는 ‘비록 현실은 괴롭고 암울한 일들로만 가득하다 해도 미래에는 즐겁고 희망 넘치는 세상이 다가오리라’ 믿는 낙천주의자 캉디드 삶의 여정을 바탕으로 한다. 볼테르는 철학적인 요소를 끝까지 밀고 나가면서도 그 위에 사랑이라는 그림을 그려 넣고, 종교 비판과 과학에 대한 애정도 잊지 않는다. 더없이 순진하고 고지식한 캉디드는 세상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그런 그의 여정을 좇는 것 자체가 흥미롭고, 그가 부딪치는 일들에 실소가 터진다. 《미크로메가스》는 엄청나게 큰 외계인이 우주여행을 하는 이야기로, 이 거인의 눈으로 인간 세상을 재치 있게 들여다보고 있다. 《자디그 또는 운명》은 일종의 비유적 자서전이며, 인간 운명에 대한 작가의 통찰이 핵심을 찌른다. 볼테르는 저마다 특색 있는 글들 속에서 풍자와 해학을 마음껏 펼치며 당대 사회의 부조리와 인간의 위선을 날카롭게 드러내면서도 인류에 대한 관용과 희망을 놓지 않았다. 그의 작품들이 단순히 짧고 흥미로운 이야기로만 머물지 않고 시대와 국경을 넘어 보편적인 철학 콩트로서 그 빛을 잃지 않고 있는 것은 바로 그런 까닭이다.
볼테르의 대표작《캉디드 또는 낙천주의》
‘순진한’, ‘순박한’이란 뜻의 이름을 가진 주인공 캉디드가 등장하는 이 소설은 작가 볼테르의 대표작으로 알려져 있으며, 유럽에서는 대단한 문제작이자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받아 최근에도 많이 연구되고 있다. 세상을 낙천주의로 볼 것인가 아니면 비관주의로 볼 것인가, 질문을 화두로 놓고 있는 작품이다. 이는 《캉디드》가 그 시대에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던 철학사상을 염두에 두고 쓴 소설이라는 것을 뜻한다. 모순된 사회, 부패하고 관용 없는 종교를 신랄히 비판하며 인간 운명은 오직 스스로 개척하는 것이라는 볼테르 철학 사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캉디드는 팡글로스 선생으로부터 늘 ‘세상은 최선으로 되어 있다’고 배운다. 그러나 그 뒤 이어지는 그의 삶은 그야말로 최악이다. 발길 닿는 곳 어디나 추하고 악한 모습들로 가득 차 있다. 군인은 잔학무도하고 명예란 것을 모르며, 성직자들도 신의 뜻을 저버린 채 몹시 타락해 있다. 엘도라도에서 얻은 막대한 보물들은 덧없는 환상처럼 어느새 사라져 버린다. 온갖 자연재해로 거의 죽다 살아나며, 누구나 그를 핍박하고 등쳐먹으려 한다. 그뿐인가? 더없이 순진한 캉디드도 본의 아니게 사람이나 원숭이를 잔인하게 죽이고 만다. 그야말로 이 세상은 저주받은 것임에 틀림없다.
과연 팡글로스 선생의 말은 옳은 것일까? 캉디드는 회의를 품는다. 비관주의, 염세주의자 마르틴의 등장이 그것을 더욱 부추긴다. 우여곡절 끝에 팡글로로스를 다시 만나고 낙관주의를 버리지는 않지만 그 뒤에도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는다.
낙천주의와 비관주의
캉디드는 온갖 악의 사건을 겪은 뒤 황금의 나라 엘도라도에 들어가는데, 이곳만이 최선으로 되어 있는 이 세상의 유일한 나라, 지상에 있는 유토피아다. 또한 그렇게 애타게 찾던 ‘최선의 것’, 베네치아에서 찾은 퀴네공드 양은 이미 정신적 유토피아와는 먼 존재가 되어 있다. 흉한 몰골의 노예이다. 그럼에도 캉디드는, 반은 두 사람의 결혼을 반대하는 퀴네공드의 오빠에 대한 반발심 때문에, 나머지 반은 결혼을 약속한 사이라는 이유 때문에 그녀를 버리지 않는다.
이야기 첫머리에서 팡글로스 박사의 가르침을 곧이곧대로 믿으면서 ‘스스로는 아무것도 판단하지 못하도록 교육받은’ 젊은이가 마지막 장에서는 스승의 말을 가로막으면서 ‘정원의 교훈’을 이야기한다. 주인공의 성장을 암시하는 부분이다.
과연 세상을 낙천주의로 바라볼 것인가, 비관주의로 바라볼 것인가? 《캉디드》는 명확한 해답을 주지 않고 독자에게 그 판단을 넘기며 끝을 맺는다. 결국 볼테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검증 없는 낙천주의를 비판하는 것이지 비관주의의 옹호는 아니다. 작은 농토를 경작하면서 캉디드가 한 말이 주는 메시지는, 최선의 세상과 미래에 대한 아직 남아 있는 꿈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 생각하지 말고 일합시다. 일을 하는 것만이 삶을 견딜 만하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볼테르의 지혜와 통찰을 만나다!
볼테르는 《캉디드 또는 낙천주의》에서 철학적인 면 말고도 몇몇 다른 의도를 내비치고 있다. 먼저 애정소설적인 면이다. 볼테르는 철학적인 요소를 끝까지 밀고 가면서도 그 위에 사랑이라는 그림을 그려 넣어서 독자의 흥미를 유지한다. 다만 이 작품에 등장하는 여인들의 운명과 사랑이 너무 기구하고 비참한 점은 조금 불만일 수 있다.
다음은 종교 비판이다. 그 무렵 성직자들은 행정권이나 재판권을 쥐고 탐욕에 빠져 더없이 타락했다. 《캉디드》에서도 성직자들이 사기행각이나 매춘 등을 아무런 죄의식 없이 받아들이는 모습이 나오며, 이를 통해 그 시대 종교의 부패상을 엿볼 수 있다.
과학에 대한 볼테르 자신의 열성과 애정도 나타난다. ‘원인이나 결정적 이유 없이는 어떠한 일도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는 라이프니츠의 원리를 수용한 것, 팡글로스의 실험물리학 수업, 낙천주의를 증명하려 애쓰는 캉디드의 언행은 그것을 잘 보여 주는 일례들이다.
볼테르의 역사관도 드러난다. 그는 정치 부패, 종교 타락을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사실에 빗대어서 비판한다. 당대 종교 지도자나 정치 지도자들은 시민에게 복종을 강요했고 존경받고 싶어 했지만, 실상은 위선자들이었다. 역사적 관점은 볼테르의 모든 철학을 지배하고 있다.
《캉디드》는 사상의 자유를 중시하며 깨어 있는 의식으로 사회 비판에 누구보다 앞장섰던 볼테르의 지혜와 통찰을 보여 준다. 볼테르의 철학소설은 이 세상에서 ‘자연적인 악과 도덕적인 악’이 사라지지 않는 한 변함없이 존재 의의를 지니면서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다.
만물의 상대성《미크로메가스》
시리우스 별의 미크로메가스는 한 토성인과 함께 우주여행을 하던 도중 지구에 온다. 지구는 광대한 우주에 비하면 점 하나에 불과할 정도로 하찮은 곳이다. 토성인은 이런 곳에 생명체가 있을 리 없다고 단정한다. 그런데 그곳에는 눈에 잘 보이지도 않을 만큼 아주 작은 인간이 있었다. 미크로메가스는 그들과 대화를 나누는데, 뜻밖에 인간들이 뛰어난 지적 능력을 갖고 있음을 알고 놀란다.
이 작품은 주인공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만물의 상대성’을 주제로 하고 있다. 모든 것은 작은 것에 비하면 크고, 큰 것에 비하면 작다. 마찬가지로 절대적인 지혜란 있을 수 없다. 토성인의 섣부른 판단이 빗나가는 것을 본 미크로메가스는 로크의 경험론을 바탕으로 하여 만물의 상대성을 확인한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백지 책’은 인간의 지혜로는 감히 신의 뜻을 헤아릴 수 없음을 말한다.
온화한 낙천주의와 현실적인 지혜의 균형《세상 돌아가는 대로》
정령 이튀리엘은 페르세폴리스에 대한 처분을 내리기 전에 먼저 바부크에게 그 도시를 둘러보라고 명령한다. 바부크는 페르세폴리스에서 매관매직, 비참한 배우들, 타락한 성직자, 경박한 문학자, 엄청난 세금 등 수많은 부패와 악습을 본다. 그러나 결국 그 도시가 마음에 들어, 이튀리엘에게 멸망시키지 말아달라고 부탁한다.
페르세폴리스는 곧 파리이며, 앞에 든 폐해 또한 그 시대 프랑스가 가진 고질적인 문제점이었다. 볼테르는 “모두가 선은 아닐망정 그럭저럭 괜찮다”는 결론을 맺는다. 이는 그 자신의 낙천주의와 현실주의 때문일 것이다. 가장 고귀한 것과 하찮은 것을 섞어 만든 조각상은 ‘선과 악의 균형’을 나타낸다.
행복이란 과연 무엇인가?《자디그 또는 운명》
볼테르의 자전적인 작품이며 ‘행복’이라는 주제를 다룬다. 바빌론의 현인 자디그는 왕의 총애를 잃고 쫓기는 몸이 된다. 그를 남몰래 사랑하던 왕비는 그의 탈출을 돕지만 두 사람은 기약 없는 이별을 하게 된다. 그 뒤 자디그는 가혹한 운명 앞에서도 신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하나의 선이나마 태어나게 하지 않는 악은 없다’는 신념으로 고난을 헤쳐 나간다. 이것은 《캉디드》에 드러난 신에 대한 환멸과 비관주의와는 큰 대조를 이루고 있어 꽤 흥미롭다. 또한 자디그가 왕의 총애를 받다가 눈 밖에 나는 장면에서는 베르사유궁전에서 쫓겨나는 볼테르를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다.
행복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자디그에게 천사는 “선을 낳지 않는 악은 없다”고 대답한다. 자디그가 두 번이나 이의를 제기해도 천사는 대답하지 않고 천공(天空)으로 날아가 버린다.
볼테르는 자디그의 긴 여정을 통해, 하느님의 섭리는 인간 지혜로는 헤아릴 수 없지만, 인간 운명의 실에 분명한 형태로 제시된다고 말하고 있다. 자디그는 수많은 시련을 겪은 끝에 왕비와 결혼하여 왕위에 오르고 이야기는 행복하게 끝이 난다. 볼테르의 기막힌 문학적 상상력과 간결하고도 빠른 리듬의 문체가 돋보이는 걸작이다.
인간의 지혜《멤논》
멤논은 완벽한 현자가 되겠다는 꿈을 꾼다. 그는 여자를 멀리하고 술과 음식을 자제하며, 노름이나 말다툼을 그만두고 궁궐생활을 단념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러나 날이 저물기도 전에 아름다운 여인에게 홀려 돈을 뜯기고, 술에 취해 노름에 빠졌다가 싸움 끝에 한쪽 눈을 잃고 궁궐에서 얼간이 취급을 받는다. 이 이야기에서는 순진하게 별생각 없이 저지른 최초의 실수와, 그로 인해 나타나는 중대하고도 심각한 결과 사이의 엄청난 낙차가 강조된다.
천사가 “모든 것은 선하다”고 말하자 멤논은 “잃어버린 한쪽 눈이 되돌아오지 않는 한 믿을 수 없다”며 되받는다. 이 작품을 쓸 무렵 볼테르의 복잡한 심정을 느낄 수 있다.
볼테르의 염세주의적 작품《스카르멘타도의 여행 이야기》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끔찍하고 무서운 사실들을 환상과 현실을 뒤섞어 일인칭 시점으로 담담하게 늘어놓는다. 주인공에게는 아무런 목적도 야심도 없다. 그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인상 깊게 본 것들을 늘어놓을 뿐이다. 온갖 위기를 넘기기도 하고 깜짝 놀라거나 탄식을 내뱉기도 하지만 단지 그뿐이다. 온갖 것을 보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결혼식을 올리고 아내와 함께 잠자리에 든다. 그것이 인생에서 가장 편안한 상태임을 뼈저리게 느낀 것이다. 그 시대에 유럽 곳곳에서 벌어지던 온갖 만행에 대한 볼테르의 비판을 엿볼 수 있다.
‘성녀가 되다’《코시 상타》
코시 상타 부인은 정절이 지나친 나머지 애인을 비운에 죽게 하고 남편에게 사형 판결을 받게 하지만, 상대의 요구에 맞는 자비심을 보인 덕분에 동생과 아들과 남편을 살린다. 사람들은 이런 여성이야말로 진정한 가족이라 여기고, 그녀가 죽은 뒤 성녀로 받든다. 비문에는 이렇게 새긴다. “위대한 선을 위한 작은 악.”
볼테르 철학 콩트의 서곡《바빌론의 공주》
바빌론의 왕 벨루스는 아름다운 딸 포르모잔트의 남편감을 찾기 위해 세 왕을 초대한다. 그들은 서로 겨루어서 이긴 사람이 포르모잔트와 결혼하기로 한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아름다운 청년 아마잔이 모두의 이목을 사로잡는다. 포르모잔트는 서둘러 떠난 아마잔을 찾기 위해 불사조와 함께 머나먼 여행을 떠난다.
볼테르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볼 수 있듯이, 두 남녀 주인공은 전 세계를 여행하며 모험을 즐기고 깨달음을 얻는다. 결국 두 사람은 다시 만나 결혼하고 행복한 결말을 맞이한다. 모든 일이 좋은 결과로 이어진다는 주제는 《자디그》와 유사하다.
그런 한심한 의지박약은 아마 우리 인간의 가장 비참한 성향의 하나일 거예요. 왜 그런 거 있잖소. 당장에라도 땅에 패대기치고 싶은 무거운 짐을 계속해서 끌어안고 있으려는 것보다 더 미련한 게 어디 있겠어요? 자기 삶을 몹시 미워하면서도 그것에 집착하는, 말하자면 심장을 파먹을 때까지 우리를 게걸스레 먹어치우는 뱀을 귀여워하는 것보다 멍청한 짓이 또 있겠느냐고요.
“낙천주의가 뭔데요?”
카캄보가 물었다.
“아, 그거? 그건 말이야, 순조롭게 돌아가지 않는데도 모든 것이 선이라고 주장하는 미친 열병이야.”
온갖 불행한 사건들을 경험하는 것과, 아니면 여기 있으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하고 대체 어느 쪽이 더 견디기 힘든지 알고 싶군요. (…) 이 발언이 모두를 또다시 새로운 고민에 빠뜨렸다. 특히 마르틴은, 인간은 불안에 의한 경련이거나, 그도 아니면 권태의 무기력 상태 속에서 살아가도록 태어났다고 결론을 내렸다. 캉디드는 그것에 찬성하지는 않았지만, 확실한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팡글로스는 자신은 줄곧 가혹한 일을 겪어왔음은 인정했지만, 일단 모든 일이 더할 수 없이 순조롭다고 주장한 뒤로는 여전히 그렇게 주장했다. 그러면서 자기 주장을 전혀 믿지 않는 것이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볼테르
볼테르라는 필명으로 알려진 프랑수아 마리 아루에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계몽주의 작가이자 시인, 극작가, 비평가이다.1694년 11월 21일 파리의 부유한 공증인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1704년 예수회가 운영하던 루이 르 그랑 학교에 입학하였다. 1711년 루이 르 그랑을 졸업하고 법과 대학에 입학했으나 자유사상가들의 모임 ‘탕플’에 출입하며 많은 자유사상가들과 교류하였다. 1717년 오를레앙 공의 섭정을 비판하는 풍자시로 인하여 바스티유 감옥에 11개월간 수감되었고, 옥중에서 『오이디푸스』를 집필, 출옥 후 공연에서 성공을 거두고 이때부터 ‘볼테르’라는 필명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1726년 귀족 로앙 샤보와 싸움에 휘말려 다시 바스티유 감옥에 갇히면서 제정치하의 불평등에 환멸을 느끼게 된다. 영국으로 망명한다는 조건으로 석방된 그는 1734년, 영국에서의 경험들을 엮어 『철학서간』을 출간하였다. 이후 검열당국에 의해 금서 조치가 내려져 체포영장이 발부되었고, 그는 후견인이자 연인이었던 샤를레 부인 영지로 도피하여 10년간 은둔 생활을 하며 작품 활동을 계속한다. 1750년 프리드리히 2세의 초청을 받아 베를린에서 머물렀으며, 1751년 『루이 14세의 세기』를 출간하고 베를린을 떠나 수년 동안 제네바에서 머물다가 1758년 프랑스와 스위스 국경가까이의 페르네에 정착하여 다음 해 1759년 『캉디드』를 출간하였다. 1778년 파리에 귀환하여 마지막 작품 『이렌』을 상연하였고, 긴 여행에 따른 피로와 연일 이어지는 환영행사를 이겨내지 못하고 그해 5월 30일 사망하였다. 1791년 그의 유해는 프랑스의 역사적 위인들을 모시는 팡테옹에 안치되었다.볼테르는 사상의 자유, 종교적 관용, 이성과 평화, 인간의 행복을 위해 억압에 맞서던 투사였다. 그는 드니 디드로, 장자크 루소와 함께 대표적인 계몽 사상가로 손꼽히는 인물이자 ‘종교적 관용’을 뜻하는 똘레랑스를 프랑스 정신의 일부분으로 만든 사람이기도 하다.
목차
볼테르의 철학 콩트들
캉디드 또는 낙천주의 … 13
미크로메가스 : 철학적 이야기 … 155
세상 돌아가는 대로 : 바부크의 환상 … 179
자디그 또는 운명 : 동양 이야기 … 199
멤논 : 또는 인간의 지혜 … 286
스카르멘타도의 여행 이야기 : 그가 직접 쓴 원고 … 294
코시 상타 … 305
접속곡 … 312
바빌론의 공주 … 335
이성에 바치는 역사적 찬사 : 어느 지방 아카데미에서 M…씨의 연설 … 412
볼테르의 생애와 문학 사상
볼테르의 생애와 문학 사상 … 427
볼테르 연보 … 474